깐 도웅 비치 Canh Doung beach에서.
호텔에서 마련해 준 셔틀버스로 Canh Doung 해변을 가려고올라 탔더니 씩씩하게 생긴 거구의 서양 여자와 그 일행 3명이 이미 앉아 있다.
“안녕. 어디에서 왔어요.?”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안나-나중 알게된 그녀의 이름-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행객끼리 처음 만났을때 말문을 터는 인사말로 이 만큼 자주 쓰이고 유용한 것은 없다.
“체코 리퍼블릭입니다. 당신은요?” 그 녀도 기다렸다는듯이 틈도 주지 않고 내게 되물어 본다.
“코리아 리퍼블릭입니다.” 나도 '리퍼블릭'에 일부러 악센트를 주고 흉내를 내었더니 그 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함빡 미소를 머금는다.
“리퍼블릭 코리아와 데모크라틱 코리아를 구별할수 있나요?” 내가 물은 이 질문에 대답할수 있으면 그녀는 지적 수준이랄까 사회 돌아가는 이치에 밝은 것이다.
“물론이지요. 한국과 체코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걸요. ”
자그마한 봉고 스타일의 셔틀 버스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직 떠나지 않고 있다. 안나는 뒷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들과 체코어로 무었인가를 속닥이더니 한가지 제안을 해 왔다.
“아시다시피 이 버스는 해변에서 오후 두시에 호텔로 돌아 오기로 되어 있는데 한 시간 더 늦추어 세시에 출발하면 안될까요? 우리가 바다에서 더 놀고 싶어서요.”
우리가 묵고 있던 베나다 라군 리조트 Venada Lagoon Resort는 베트남 다낭과 후에 사이의 거대한 호수가에 자리해 있다. 독채의 빌라 거실을 통해서 바다 같은 멋진 풍경을 보여주긴 하지만 진짜 바닷가는 아니다. 그래서 호텔 측에서 하루 한번 오전 10시 반에 호텔을 출발하여 오후 2시에 해변에서 돌아오는 스케줄의 버스를 제공하여 숙박객들에게 해수욕을 하게 해 준다. 해변 백사장까지는 30분 거리로 운전수를 포함해 버스를 통째로 내주어 투숙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안되겠는데요. 내가 3시에 호텔측의 어떤 시설을 이용하기로 말해 놔서요."
"네, 그렇군요. 아쉽지만 어쩔수가 없네요..." 안나는 자못 아쉬운듯 말꼬리를 흐린다.
"내가 알기에는 체코에는 바다가 없지요? 프라하밖에 가 보질 못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는 제의를 매몰차게 거절한 것에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 체코에 와 보셨군요. 네, 그래요. 바다가 항상 그리운 나라지요."
'바다가 항상 그립다'는 이 말에 나는 상황을 다시금 들여다 보게 되었다. 버스엔 승객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으니 나만 오케이하면 된다. 호텔에는 미리 연락하여 예약을 늦추면 될것이고 나도 오랜만에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하는데 좀 더 시간을 할애해도 무방할듯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대로 승락하기보다는 약간의 장난기가 낀 역제안을 했다.
"아, 그래요. 정 그러시다면 내가 1시간 양보하지요.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바닷가에 가서 맥주 한 잔을 나에게 사주어야합니다."
안나는 이 말에 즉각 친구들과 체코어로 몇마디 떠들썩하게 주고 받다가 친구들과 크게웃으며
"친구들 모두들 좋다고 합니다." 라 하였다.
이렇게 버스에서 우리만의 새로운 거래가 이루어졌다.
10시 30분이 되자 버스에 신혼 부부로 보이는 미국인 둘이 올라 탔다. 안나는 그들에게 또 물어 본다. 그들은 해변에서 내려서 저녁 먹고 택시로 호텔에 돌아 올 예정이니 아무런 상관이 없단다.
하지만 셔틀 버스는 떠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부릉거리기만 할뿐 아직 떠 날 생각이 없어 안나 일행의 애를 태운다.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베트남인 노 부부가 올라탄다. 안나는 또 양해를 구해 본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결국 30분 늦추기로 한 모양이다.
"안됐네요. 30분만 늦추었으니 맥주는 없습니다.' 안나가 약올리는 어린 목소리로 나에게 보고한다.
"네, 내 맥주 한병이 훨훨 날아 갔네요." 나는 재미가 반감되었기에 아쉬움 반 푸념 반으로 대꾸한다.
유쾌한 안나씨 덕분에 아무 영문을 모르는 두 쌍의 부부들을 포함해서 우리 9명 승객들은 서로 통 성명을하고 해변을 향해 달린다.
도착한 그 곳은 조그마한 어촌 마을로 백사장이 그리 크지도 않았거니와 해수욕을 하러 온 손님들도 우리 뿐이어서 해변은 무척 한가했다.
군데 군데 허름한 식당 몇 곳과 비치 의자가 딸려 있는 파라솔 십여개가 전부인 한적한 그러나 평화스러운 곳이었다.
나는 호텔측에서 준비해준 타월을 비치의자에 깔고 호텔 도서관에서 빌려 온 잡지를 읽을 요량으로 바로 독서 모드에 들어 갔지만 다른 이들는 옷을 갈아입자 마자 바다로 돌진을한다.
한동안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책을 읽다 마음껏 여유를 부리며 한껏 나만의 자유를 누렸다. 몇페이지나 읽었을까 그러다가 살포시 잠에 빠져있는데 옆에 자리를 잡았던 베트남 노부부가 나를 깨운다.
"혹시 괜찮으면 이제 점심 식사를 할까요?. 내가 시간이 되면 같이 점심하러 가자고 미리 말해 두었던 터이다.
우리 셋은 식당에서 똑 같이 해물을 기름에 볶은 국수를 시켜 먹었다. 값도 싸고 맛은 훌륭하였으나 위생 상태가 정갈하지는 않아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염려하지 마라고 내게 안심을 시켜 준다.
부부는 30여년전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이제 은퇴를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호치민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베트남인이었다.
립 서비스로 중국을 조금 욕해 주었더니 그 들은 역시 베트남인들 답게 더욱 중국에 열을 내며 나의 욕에 대한 보답으로 한국만 내년에 꼭 방문하리라한다.
점심 식사를하고 또다시 책과 함께 오락가락 오수에 빠져있는데 해변가로 부터 시끌법적한 소동이 느껴져 귀가 먼저 깨었다.
눈을 떠 돌려 보니 언제부터인지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바다를 향해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다. 고기 잡이 배가 그물을 끌고 돌아 온 모양이다. 바다가 없는 나라에서 자란 체코 아줌마들은 좋아라 함께 참여해서 밧줄을 잡아당기기도하고 또 사진을 찍으러 왔다갔다 야단이 났다. 나도 호기심에 다가가보니 그물에 물고기들이 펄떡거리며 요동을 치고 있었으나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부들은 많이 실망한 눈치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체코 아줌마들은 환호성을 질러 대었다. 그 김에 휩쓸려 나도 바닷물에 뛰어 들어 얼마 동안 수영을 했다. 햇살은 너른 바다위로 따갑게 내리 박히고 바닷물도 알맞게 따뜻하게 데워져 온 몸 구석에까지 평화로운 기분이 스며 들었다. 한참을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머리만 내밀고 있자니 안나가 뒤에서 내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바다속에서 신나게 물장난을 한 후 바로 앞 식당으로 돌아왔다. 돌아 갈 시간이 다 된듯하여 옷을 갈아 입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도 운전기사마저도 도통 갈 생각을 않고 있다.
의아해하며 조금 있자하니 안나가 양손에 맥주를 한 캔씩 들고온다.
"어떻게 된거요. 안나?"
"아까 잡은 물고기로 사시미를 떠 달라고 식당에 부탁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늦어져서 약속대로 맥주를 가져 왔지요."
"아, 그래서 늦는거구나. 이왕 맥주를 사는 것이라면 체코 맥주가 더 좋은데."
"맞아요. 맥주라면 우리나라의 필스너가 최고지요."
"자 건배합시다. 우리들의 리퍼블릭을 위하여. 또 체코와 한국의 우정을 위하여!." 우리는 베트남 한적한 바닷가에서 우연치 않게 애국자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간소한 맥주 파티를 벌였지만 나는 따로 우려가 되는 점이 있어 베트남 부부에 다가가 물어 보았다.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베트남에서도 종종 회를 먹나요?"
"네, 나도 걱정이되네요. 베트남에서도 회를 먹기는 하지만 이곳은 좀 아닌데.." 그 들도 위생이 걱정이 되었나 보다.
이렇게 말로만 걱정을 나누었을 뿐 식당 주인이 신나게 회를 썰고 있고 운전기사까지 끼어들어 부추기는 마당에 우리가 그만두게 할수는 없었다.
세시를 훌쩍 넘어서야 우리 모두는 돌아갈 버스에 올라 탔다.
안나와 그 일행은 봉투 하나씩을 부여 잡고 자리를 잡았다. 따로 늦게 돌아갈 것이라던 미국인 신혼 부부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그로 인해 차속에서 생선 비린내를 흠뻑 맡아야했다.
하지만 체코 아줌마들은 아랑곳없이 새로운 음식을 먹을 생각에 몸시 들떠 있는 듯 하다.
"한국인들도 사시미를 먹나요?"
" 네, 우리는 '회'라고 말하지요, 저 비닐 봉투에 들어 있는 음식은 어죽이라고 하고요."
"회는 무슨 술하고 어울리나요?" 세계 최고의 여성 애주가들인 체코인 답게 반주까지 섭렵할 모양이다.
"우리는 소주랑 마셔요. 보드카 같은 한국 술인데 많이 덜 독하지요,"
"아, 우리 보드카 많이 가지고 왔는데...'
"그 보드카에 물을 타면 소주가 되겠네요. 환상적일거예요." 나는 이 말을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노래 불러요. 존 레논을 닮은 시뭔이 먼저 하세요. 임마진 Imagine!" 제길 젋을때는 윤형주가 나를 닮았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존 레논이라니!
"난 노래 못해요. 기계가 있어야해요."
"아, 한국인은 가라오케가 없으면 못하는 군요. 그럼 우리가 하지요."
안나 일행은 봉고차가 휘청일 정도로 체코 노래를 크게 불러 대었다. 지들이 뭘 알겠어? 한국 노래를. 나도 아무 노래나 할걸.
노래가 끈기고 한 동안 대화가 없어 내가 먼저 말을 내어보았다.
"그런데 일행분 네명은 어떤 사이예요?"
"무슨 말인지, 좀..." 갑자기 엉뚱하고 약간은 사적인는 질문이어선지 안나가 되묻는다.
"아, 같은 학교를 졸업한 동창생이라던지. 아니면 동네 친구든지 무슨 관계로 같이 베트남까지...."
"그건 아니고. 쟤랑은 아들 학부모로 만났고 저 쪽애랑은 수영장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고 이애는 ..."
"아, 그렇군요. 이해가 갑니다."
"그럼 시뭔은 혼자 여행을 하고 있나나요?" -나의 여권 알파베 이름은 Simone이다. 영국, 프랑스에서는 여자 이름 시몬이지만 라틴국가에서는 남자이름으로 시모네이다. 혼동이 올 수 있어서 나는 한국식 발음으로 '심원'이라 부르라 한다.-
"네, 사실은 16명이 왔는데 다들 오늘 아침 '후에'로 관광갔어요. 난 홀로 이리로 왔고." 후에는 가도 후회하고 안가도 후회한다지만 10여년전에 가 보았을 때 그닥 매력을 못 느껴서 이번에 동행을 하지 않았다.
"시뭔은 베트남에 며칠간 일정으로 여행하세요?" 이번에는 안나가 물어 본다.
"우리는 보통 5박입니다. 가까운 일본 여행은 3박을 주로 하고요. 그쪽은?"
"우리는 3주간입니다. 체코에서 베트남은 엄청 멀거든요."
"3주씩이나! 그러면 그 동안 남편은 어쩌구요!." 나는 장난끼 다분히 물었지만 사실 자못 궁금하기도 하였였다.
"내 남편은 우리보다 그 동안 해외로 많이 돌아다녔어요."
이 말이 나오자마자 안나와 나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친구들의 대답이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 저기서 튀어 나온다.
"이번엔 내가 나갈 차례였어요!."
"나도 얼마나 여행하고 싶었었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란 동서양 모두 다 비슷한 것이다.
이윽고 호텔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면서 안나가 말한다.
"혹시 배가 고프거나 술을 마시고 싶으면 우리 숙소로 오세요."
나도 그들과 같이 술은 마시고 싶었지만 비린내가 진동하는 푸석한 베트남 생선회를 생각하니 술맛이 저만치 달아났기에 정중히 사양을하고 돌아 왔다.
다음 날 아침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체코 아줌마 부대를 또 볼수 있게 하여 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PS. 안나가 찍어 준 사진은 아이폰을 가지고 있는 안나의 친구에게 전송하고 그 친구는 내 아이폰으로 전송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에게 왔다. 아이폰끼리는 에어드롭을 통하여 사진을 주고 받을수 있다한다.
첫댓글 잘보구갑니다.
ㅎㅎㅎ
재미있게 일고 갑니다..
@귀한구슬 ㅎㅎㅎ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