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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유학산 산행 2013. 10. 23.수요일 맑음
오전 9시30분 동양고전 연구소 주차장에 모여 15명(김성희,김주영,박귀련,박용구,박희정,손수룡,윤영희,윤태주,이영환,이희숙,임경희,장세후,조인숙,차한근,황성숙) 차3대로 출발하여 계획한 대로 칠곡 유학산으로 향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 주차장에 모여 10시 다시 자동차를 타고 팥재주차장에 갔다가 장박사차를 타고 손선생과 다시 다부동주차장에 차를 가져다 놓고, 팥재주차장에서 10시30분에 출발하여 가파른 시멘트 자동차 포장길을 도봉사까지 700m를 걸어 올라갔다. 등허리에 땀이 나고 힘이 들었으나 맑은 하늘과 짙푸른 가을 날씨가 상쾌함을 더해주었다.
도봉사 대웅전 대구왜관 가는길(멀리낙동강이보인다)
도봉사 앞 마당에 가로 막고 서있는 여인숙 같은 숙사 모습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아 매우 생경해 보이고 사찰의 운치가 거의 나지 않았으나 철재 계단을 올라가 쉰길바위 밑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대웅전과 안쪽의 종각 모습이 사찰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잘 어울려 보였다. 6,25때 최고 격전지였다는 이곳에 그 후 언젠가 지어진 절이겠지만 멀리 보이는 왜관 쪽 낙동강의 흐름을 보면서 서있어서 자리가 터를 잘 잡은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입구에 서있는 조립식 건물인 종무소 때문에 다시 눈살이 찌푸러졋다. 전체를 보고 그 안에 들어설 건물을 배치하고 그 건물양식을 정했더라면 유서 깊은 유학산에 걸맞는 아름다운 사찰이 창건이 되었을 것인데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곳에서 다시 가파른 산길을 타고 650여 메터 위쪽에 유학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바로 옆에 유학산에서 가장 높은 839고지가 있다. 이 고지를 빼앗으려는 공방전이 치열하게 일어나 이곳의 전선이 6.25 전세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전과였다고 한다. 백선엽장군의 혁혁한 공로로 승전고를 울려 대구를 지키고 부산을 지켜 풍전 등화 같은 대한민국의 맥을 이어 갔다고 한다. 백선엽장군은 평양을 제일 먼저 탈환했으며 이승만 정권에서 32살에 육군 참모총장이 되었다고 했다.
도봉사 뒤쪽 길은 처음 목책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 쉽게 올라갔으나 점점 길이 좁아지고 바위길로 되어 한걸음 한걸음이 쉬엄쉬엄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제 신갈의 나무숲이 시작이 되고 이 나무들도 노란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산 아래 나무들은 아직 그대로 늦가을의 푸른색을 유지하고 있으나 해발이 700m가 넘는 이곳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한 일주인 뒷면 아름다운 단풍의 경치가 장관을 이루리라고 생각되었다. 다들 올라가기 어려운 울퉁불퉁한 바위길을 잘도 올라간다. 그러나 나이 탓인가 뒤처지는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올라 12시가 다된 시간에 헬기장 그리고 150m 위쪽에 있는 遊鶴亭에 올랐다. 이정자에서 6.25순국용사들과 선혈들에 대한 묵념을 이영환선생의 제안으로 다같이 묵념을 올리고 정자 아래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유학정앞 단체사진(사진찍는 사람까지 15명) 학산정에서 구미쪽으로
학들이 와서 놀았다는 이름의 유학정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대단하다. 서쪽으로는 왜관과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구미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군위의 들판들이 추수를 앞든 황운(黃雲)이 펼쳐진다. 왜관에서 대구에 들어가는 다부동 길이 산아래로 뱀처럼 길게 휘감아 돌아 이곳이 대구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어진지임을 알수 가 있었다. 다른 정자에 올라가면 수많은 문인들의 자취가 남아있으나 이곳은 덩거렇게 시멘트로 지어놓은 정자로 정자위에는 아무런 시나 문장이 걸려 있지 않았다. 전쟁의 피해가 너무가 깊은 탓일가 가슴에 어린 한이 너무 짙어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고 만 것일까?
아니다 분명 누군가가 이 좋은 경치를 읊지 않았을까? 권호문(1532-1587)의 송암집에 유학산을 시가 있다. 지금은 싸움터이야기 뿐이지만 그 옛날 그 시절에 유학의 경치가 그냥 손에 잡힐 듯하다.
蕩吟。次昔遊鶴山韻。
長嘯雲端步碧空(장소운단보벽공) 구름
一聲分落萬林風(일성분락만림풍) 외마디 소리 나누어 떨어지고 온 숲에는 바람부는구나
胸中不點塵埃氣(흉중불점진애기) 마음 속 세속의 먼지에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았으니
當作儒仙萬古雄(당작유선만고웅) 마땅히 선비 신선 되어 만고에 씩씩하리라
모두들 배가 약간 고팠으나 아직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들이다. 이곳에서 4.5km 떨어진 다부동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 내리막길이라 쉬우리라 생각하고 출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 생각은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도중에 다시 올라갔다 내려 갔다를 몇 번 반복하며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야하는 역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픈데 조금 참고 더 걸어 12시 40분이 다되어 중간에 넓은 길 위에서 다들 모여 가져온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맛있는 현미잡곡밥, 왕완두콩 밥, 김밥 그리고 갖가지 반찬 깍두기, 연근, 북어포 등등이 풍성하다. 거기에 이영환선생의 knowhow 오래 동안 숙성시킨 도라지 주 한잔, 국민주 소주도 한 병 그 다음에 나온 후식 과일 사과, 귤, 포도, 도마토, 복숭아 또 조인숙선생이 광양에서 가져왔다는 잘 삶아진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밤, 호텔의 뷔페 못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봉다리 커피와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원두커피 나는 커피대신에 가지고 간 녹차를 마셨다. 그런데 커피보다 녹차는 인기가 없었다. 나와 다른 한사람만 한잔 맛을 보는 수준. 강한 것과 순한 것의 싸움에서는 강한 것이 이길 것이메, 녹차도 그 진한 커피의 향과 맛에 관중을 휘어잡을 수는 없는가 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두고 생각해 보면 이 둘만의 경쟁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거의 차가 완폐 한 것 같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차의 소비가 급격히 늘고 있고 작년 스타박스사장 [하워드 슐츠]가 이제 커피의 시대는 끝나고 차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바 있다.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알게 모르게 우리주변의 모든 사물이 쉬지 않고 변하고 있는데, 커피, 차의 관계도 엎치락 뒤치락 변화고 또 바뀌어 가고 있음을.
맛있는 점심을 마치고 단풍의 숲길을 하산하면서
숲은 특히 가을의 숲은 엄숙한 분위기를 가진다. 마음껏 잎을 펼치고 꽃을 피우고 나비와 벌과 소통을 하고 천둥과 번개 그리고 억수로 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생명의 무한한 향락을 즐겼던 봄 여름을 지내고 이제는 길고 긴 동면의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 초가을의 숲과 나무들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것 아닐까? 그때 잘할 것을, 있을 때 잘할 것을... 그러나 그 화려한 세월은 이미 지나가버린 우리 손을 떠나버린 과거인 것을 ...
혹독한 추위와 생존의 치열한 싸움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할 어둡고 추운 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는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겨울 준비를 한다. 몸속에 들어있는 물의 양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몸속에 있는 녹말을 기름으로 만들어 -60도가 넘는 추위에도 살아남을 수가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해야한다. 활엽수들은 아예 에너지를 생산했던 잎을 모두 떨구고 숨을 쉬지 않고 거의 동면상태로 들어간다. 줄기나 겨울눈에 서만 최소한도의 호흡을 하면서 에너지 소모를 거의 하지 않고 겨울 잠을 자는 것이다. 가을 숲은 단풍의 아름다운 향연 속에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숲속의 방문자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숲이 주는 생과 사의 강열한 메세지인 것이다.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오르다가 잠시쉼 836고지에서 다부를 바라봄
837고지에서 813고지로 내려왔다가 다시 836고지로 올라 간다. 점심을 먹고 몸이 무거운데 다시 경사가 가파른 길을 올라가느라고 모두들 지치기 시작했다. 자꾸 얼마나 가면 다부동전적기념관 주차장이 나오냐고 성화가 시작이 된다. 이쯤 부터서는 “곧 바로“, 아니면 ”거의 코앞까지 왔다“고 같은 대답을 반복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참말이 아닌지 알지마는 그래야 힘이 빠지지 않고 끝까지 내려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했던 시간은 3시30분이라고 했으나 4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마지막 674고지에 도착하였다. 이쯤에 어느X이 이런 환장(환상)의 코스를 안내를 했는지 더럽게 힘이 들어 죽겠다고 한마디씩 던진다. 이 산행길을 계획하고 안내한 누군가가 아주 잘못한 것이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나 또한 이 길이 처음이 더 할 말이 있겠는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 고난도의 코스를 등산하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다들 한마디씩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산행을 무사히 마침에 대한 안도와 고마움과 그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기쁜 표현으로 받아들이며 내려왔다.
아름다운 단풍 신갈나무 줄기의 조형미
산벚나무와 신갈나무의 연리지 가을숲
내려오는 숲길에 연리지가 보인다. 이영환 선생이 먼저번 찍어 보내준 사진을 생각하며 사진에 담았다. 연리지는 백거이의 장한가에 나오는 1500년이 넘은 이야기이다. 긴 장한가의 싯귀중 연리지 부분을 잠시 소개한다. 당태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길 연리지에 빗대어 읊은 것인데 정말이지 이 사진에도 뗄라야 떼어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감고 또감아 붙어 있는 모습이 대단한 사랑의 에로를 보여주고 있는것같다.
長恨歌(白居易)
七月七日長生殿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 깊은 밤 남 모르게 한 약속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 높은 하늘 넓은땅 다할 때가 있건만
次恨線線無絶期 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그 아래길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그런데 이곳은 참나무류가 많다. 갈참, 굴참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그 주변에는 꿀밤이 수도 없이 흩어져 있다. 이영환선생의 지휘감독으로 다들 꿀밤을 주어 모으기 시작하였다. 다리는 힘이 빠지고 허리를 구부리기에도 힘이 들지마는 지천으로 흩어진 꿀밤을 줍는 재미도 솔솔했다. 아마 반말까지는 되지 않으나 두, 서너되가 될만큼 많이 모았다.
꿀밤 작살나무 열매(보라빛이 아름답다)
꿀밤을 잔뜩 안고 있는 시인(시가 나올것같다) 참산부추꽃
마지막 하산길(다리에 힘이 빠져..) 억새
꿀밤을 줍고 내려오는 길에 보라색이 아름다운 작은 열매가 송이송이 달린 작살나무를 보고 사진을 찍었다. 계곡주변에 비목도 보이고 그 아래는 잣나무를 조림해 놓아서 잣송이가 산길 위에 많이 떨어져 있다. 그 속에 잣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을 보니 이곳에는 다람쥐 같은 소동물이 살고 있지 않는 모양이다. 산위에서 보았던 산벚나무처럼 새들이 먹고 그리고 산에 여기저기에 씨를 뿌린 것처럼 참나무류들은 꿀밤을 다람쥐가 모아 땅속에 가득 저장해 놓고는 그 장소를 찾지 못하면 많은 수의 참나류들이 발아하여 천연갱신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눈에 보이지 않은 자연의 시스템속에서 상부상조하면서 조화롭게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숲이고 나무이고 그리고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자연환경일 것이다.
5시가 다되어 주차장 곁 길가에서 다시 팥재주차장에 놓아두었던 자동차를 끌고 내려와 대구로 돌아왔다.
대구 동양고전연구소에 도착하니 오후 6시 정각이 되었다.
오늘 하루 길고 힘든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산행에 동참한 모든 회원들의 협력덕분으로 생각하며 특히 자동차를 운전하여 주신 세분선생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김반장, 솔조교님 다들 오늘 산행에 수고가 대단히 많았다. 고맙습니다.
<참가인원 15명>
김성희,김주영,박귀련,박용구,박희정,손수룡,윤영희,윤태주,이영환,이희숙,임경희,장세후,조인숙,차한근,황성숙
숲과 문화 산행 2013년 후학기 제2차 칠곡유학산
산행기점(팔채주차장)->도봉사->유학산839고지->팔각정->837고지->793고지->674고지->다부동전적기념관
첫댓글 華谷菴13:35
이 날 선생님께서 이동민 선생을 “てんさい”라고 하셔서 제가 그 말을 몰라서 질문하니 天才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박 교수님도 천재이십니다.
제가 사진을 다시 정리해서 올리면서 생각했습니다. 같은 산을 다녀왔는데.. 보고 생각하는 것이 저렇게 다를 수도 있구나.. 탄식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첨부하라시는 말씀을 나중에사 읽고 이곳으로 옮겨놓습니다. . 화곡암 님 댓글도 옮깁니다. 옮기기 전 열여섯분 읽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만 사진이 안보이나요?
저는 컴에서도 폰에서도 잘 보입니다. 사진 위에 커서를 올려놓으시고 오른쪽 클릭하셔서 사진표시를 한번 눌러보시면 혹시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다른 분들도 안보이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다시 올려보겠습니다.
저도 왼쪽 상단에 빨간 X 표시만...
솔바람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사진부분이 사월님처럼 x표만 나옵니다. 원래 사진이 너무 크서 올라가지 않았는데 사진사이즈를 줄여야 하는 것인가요?
예 오늘은 저도 그러네요. ㅎㅎ
아직도 안보이십니까?
이제 사진이 잘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잘 보입니다. 눈이 뜨입니다.
다행입니다. 파일전환할 때 뭐가 잘못 되었나봅니다. 제가 하는 일이 늘.. ㅋㅋ
長嘯雲端步碧空(장소운단보벽공) 끝에서 길게 휘파람 불며 푸른 하늘 걷는데
一聲分落萬林風(일성분락만림풍) 외마디 소리 나누어 떨어지고 온 숲에는 바람부는구나
胸中不點塵埃氣(흉중불점진애기) 마음 속 세속의 먼지에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았으니
當作儒仙萬古雄(당작유선만고웅) 마땅히 선비 신선 되어 만고에 씩씩하리라
대충 위의 해석이 원의에 더 가깝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솔바람님 사월선생 해석대로 고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옙! 그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