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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원문보기 글쓴이: 박희정
2014년 《나래시조》봄호 특집 ② - 신춘문예특집 좌담
2014년 신춘문예 작품 모음
<경남신문>
풀꽃을 말하다
박복영
햇볕이 제 몸 꺾어 담벼락을 올라간 곳
담장 밑에 땅을 짚고 깨어난 풀꽃하나
시간의 경계 밖으로 내몰린 듯 애처롭다
뿌리박고 살아있어 고마울 따름인데
손때 묻은 구절들이 꽃잎으로 흔들린다
흔하디 흔한 꽃으로 피어있는 이름처럼
살면서 부딪치며 견뎌온 시간들이
따가운 햇볕에 파르르 떨고 있다
켜켜이 자란 잎들이 꽃 향을 우려내고
풀꽃, 하고 부르면 네, 하고 대답할 듯
감아쥐고 올린 꽃은 또 흔들리고 흔들려도
중심을 잡고 일어선 꽃 대궁이 절창이다
[당선소감] "율격 속에 책임과 자유가…"
땡볕에 시간이 낯설어지면 홀로 이마에 땀방울을 찍으며 산길을 걸었습니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좋았고 그 그림자에 나를 세우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습니다. 남루의 들판을 덮어오는 눈발이 좋았고 일찍 찾아온 어둠이 좋았습니다. 아마도, 내 몸 안에 문학의 깊은 뿌리가 없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시조의 뿌리가 저에게 기꺼이 신발 하나 내어주어 고맙고 부족한 글속에서 어둠보다 그늘이, 그늘보다 햇볕이 좋음을 일깨워 주신 이달균 시인님, 장성진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그러나 아직 미숙한 저에게 돌아온 큰 몫은 몸 안에 뿌리 하나 튼실하게 키우라는 뜻으로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먼 길을 기다려준 아이들과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쟁이가 되겠다고 감히 약속도 해봅니다. 또한 빈터 동인들, 그리고 수원의 홍 시인, 김 시인, 윤 시인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끈 풀린 자유보다는 율격 속에 더 많은 책임과 자유가 있음을.
이제 그림자 하나 기꺼이 제 몫으로 지고 산길을 걸을 수 있어 무척 기쁩니다.
박복영
1962년 전북 군산 출생. 1997년 《월간문학》시 당선 등단. 2001년 방송대 문학상 시 당선
[심사평] "풀꽃의 안간힘 형상화 뛰어나"
새로운 갑오년 첫날을 열면서 또 한 사람 시조인의 장도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700년을 이어온 시조의 위의를 생각하고 그 과업을 계승할 단 한 사람의 신인을 뽑으면서 우리는 자못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시조라는 정형의 그릇 속에 미감이 좋으면서도 영양이 잘 갖춰진 음식을 담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포착한 대상이 구태의연해서도 안 되고 가락의 긴장감이 느슨해서도 안 된다. 늘 말해 왔듯이 밖으로 일탈하고자 하는 원심력과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구심력의 균형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시조는 발현된다. 다시 말하면 가락을 유지하면서 제 할 말을 하는 신인을 찾으려 했다.
우선 마지막까지 선에 든 응모자는 조경섭, 송가영, 권예하, 박복영 네 사람이었다. 조경섭의 ‘소매물도에서’는 마디를 끊어가는 안정감은 있으나 결구를 맵시 있게 요리하는 솜씨가 부족했다. 송가영의 ‘초꼬슴, 초꼬슴처럼’은 대상을 끌고 가는 힘은 좋지만 참신한 이미지보다는 지나치게 산문적 서술에 의존한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권예하의 ‘거미’는 남성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점에 눈길이 간다. 8각형의 거미집이 기하학적 형식미를 갖는 이유는 먹이는 걸려들지만 바람과 햇빛은 통과시킨다. 결국 거미집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한 편의 절창처럼 완벽하다. 이 작품은 굳건한 건축에는 성공하였으나 섬세하고 부드러운 세공에는 실패한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박복영의 ‘풀꽃을 말하다’를 최종 당선작으로 민다. 이 작품 역시 흠결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자연의 한 존재로 살아가려는 풀꽃의 안간힘을 형상화한 노력에 점수를 준다. 군데군데 서술적 표현이 거슬리지만 넷째 수 종장의 완결미가 이를 보완해 주었다. 더욱 정진하여 빛나는 시세계를 열어나가기 바란다.
응모한 작품들을 일별하면서 우리는 기존의 고정관념에 메스를 대고 싶었다. 대체로 연시조로 승부를 거는 것은 신춘문예 당선작의 경향성에 의도적인 짜맞추기를 하려는 증거로 보인다. 단수라 하더라도 상상력이 독특하거나 서정성의 완결미를 보여준다면 당선의 영예를 얻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굳이 장황하게 연을 늘여 긴장감을 잃어버리기보다 정형시 본연의 압축과 절제를 보여준다면 훨씬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당선인에게는 축하를 드리고, 아쉽게 선에 들지 못한 이에게는 재도전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모두에게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 장성진·이달균)
<경상일보>
뜨게 부부 이야기
곽길선
내 가난은 에멀무지 뜨개질 하고 있다
도안 없는 가시버시 그 실눈 크게 뜨고
허공에 색실을 놓아 곰비임비 재촉한다
이랑뜨기 몰래하다 코 놓친 지난날이
너설을 빠져나와 휘감아 본 길이지만
마음은 삐뚤삐뚤한 아지랑이 길이 된다
어영부영 또 하루가 저녁으로 흘러가고
양지에 펼쳐놓은 눅눅해진 저 그리움들
오늘도 발바닥에 밟힌 티눈을 뽑아낸다
-뜨게 부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남녀.
-너설: 험한 바위나 돌 따위가 삐죽 나온 곳.
양파의 시
곽길선
날마다 집에 갇혀 봄날을 기다렸던
한겨울 불면의 밤 스스로 걸어 나와
창문에 드리워진 슬픔
입김으로 닦는다
긴긴날 시린 생각 껍질을 벗겨내고
반짝이며 날아온 햇살의 지문으로
꽉 막힌 울대를 만져
닫힌 말문을 연다
얼룩진 그리움들 눈먼 시간도 지워
백지로 떠오르는 욕망의 흰 속살에
몸으로 움켜잡은 먼 길
바람이 읽고 있다
[당선소감] 시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
밤이면 자주 시를 쓰는 꿈을 길게 꾸었습니다.
어릴 적 글쓰기를 좋아했던 저의 꿈은 노벨 문학상을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을 잊고 산 몇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운명처럼 시조를 만났고 그 막연했던 꿈이 다시 열정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시를 공부하면서 날마다 저의 욕심을 뜨겁게 담금질했습니다. 그동안의 신춘문예 낙선이 매우 쓰라렸지만, 그 좌절의 시간이 저를 더욱 튼튼하면서도 강하게 키운 힘이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의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시조를 위해 넓고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경상일보사 관계자 분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시조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저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 운명이 선명하게 각인되고 천착될 수 있도록, 그동안 희망과 용기를 주신 이교상 선생님께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수업한 김성현 시인, 유선철 시인, 이병철 선생님, 김석인 선생님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묵묵히 저를 지켜봐 주고 배려해준 든든한 남편과 소중한 가족들께 이 영광을 모두 돌립니다.
곽길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시조백일장 입선. 제21회 신라문학대상(시조부문)수상
[심사평]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 돋보여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작품은 20명의 78편이었다. 경상일보 응모작의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조라는 정형이 시를 어떻게 빛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만만치 않은 내공의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차례 숙독을 하다가 처음 가려낸 작품은 ‘사리의 바다’ ‘엇박자 풍악놀이’ ‘목이 긴 새’ ‘계산기’ ‘뜨게부부 이야기’였다. 물론 같은 투고자의 다른 작품도 꼼꼼히 읽은 후의 결정이었다.
위 작품들은 두드러진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감각적 이미지를 구사해내는 점에서, 일상적 경험을 자연스레 시화해내는 능력면에서, 대상을 치밀하게 그려내는 점에서, 난해한 이미지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구성면에서 보면 ‘계산기’가 좋지만 너무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목이 긴 새’는 섬세하고 치열하나 기성시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결국 심사위원의 눈은 ‘뜨게부부 이야기’에 닿았다. 이 작품은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천착,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신산한 우리시대 삶의 풍경을 잘 삼투시키고 있다. 그런 미덕들이 개성적이고 실험적으로 보였다. 같은 시인의 ‘양파의 詩’를 더하여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심사위원 : 이우걸)
<국제신문>
무지개를 수놓다
김정수
사다리 걸쳐놓듯 계단 쌓은 다랭이논
시금치 초록 한 뼘 유채꽃도 덧대놓고
종다리 박음질 소리 자투리 천 깁고 있다
시침질 선을 따라 꽃바늘로 감친 삶을
한 땀 한 땀 길을 내며 구릉 위에 서고 보면
지난날 눈물겨움도 무지개로 떠있다
개다리 밥상위에 옹기종기 놓인 그릇
아이들 크는 소리 가만가만 듣고 싶어
스르르 색동 한자락 꽃무늬로 앉는다
[당선소감] 늦은 나이에 틔운 글싹, 정성 다해 키워가겠다
새 세상을 열어 놓은 듯 울산에도 첫눈이 왔다. 순백의 도화지 위에 요란스레 쏟아낸 아침 물까치 떼의 울음은 간밤에 꾼 꿈을 미리 해몽이라도 한 것일까? 거짓말처럼 걸려온 당선통보 전화. 머릿속에 저장된 모든 파일이 하얗게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생을 아우를 수 있는 글쓰기는, 육십갑자에서 생(生)이 다시 시작하듯 그만큼 삶의 경험과 내면의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된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늦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는 아직 삐뚤빼뚤하다. 작물에도 손이 많이 가야 윤기가 나듯 주어진 시간을 아껴가며 한 포기 한 포기 글 싹을 정성을 다해 키워 가겠다.
몇 해 전, 한참을 망설이다 시조의 문을 두드리게 된 울산문인협회 시민문예대학에서 박영식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은 내 생에 큰 행운이었다. 한국의 대표 문화 브랜드인 시조가 전통의 맥을 이어 가려면, 무엇보다 현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는 것과 시조만이 가지는 절제와 가락의 울림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말씀에 늘 노심초사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밤늦도록 글 짐 이고 끙끙댈 때 따뜻한 보리차 한잔 슬그머니 놓고 가던 내 시의 첫 독자이며 매운 소리로 거침없이 비평하던 남편께 영광을 바친다. 늘 투덜거리면서도 은근히 엄마를 자랑하는 늦둥이 아들아, 고맙다. 자식 못잖은 사위와 딸, 글 쓰는 할머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손자 손녀, 지칠 때마다 등 떠밀어 주신 시누님 시동생님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새파란 하늘 한 장 가슴에 들앉게 해주신 심사위원님과 국제신문사에 갑오년 새해 아침 무릎 꿇어 큰절을 올립니다. 복 받으소서!
김정수
1952년 경북 영일 출생. 현 울산 거주. 제28회 부산전국시조백일장 장원, 가람 이병기 시조시인 추모 제14회 전국시조현상공모 장원 등
[심사평] 신인다운 패기에 언어 함축·절제미까지 갖춘 작품
신춘문예는 문학의 새봄을 여는 뱃고동 소리 같은 것이어야 한다. 소재나 주제나 표현이나 내면에 잠긴 사유 세계가 참신해야 한다. 그래야만 신춘문예에 값하는 작품 아니겠는가. 심사위원들은 이런 기본의 틀에서 작품들을 선별하였다.
응모한 많은 작품 중에는 기성인의 그것을 흉내 낸 작품들이 많았지만, 이런 풍을 먼저 선별해내고 앞서 말한 선자들의 기본 틀에 조명하다 보니 1차로 다섯 편이 선정됐다. '달빛 길어올리기' '노랑부리저어새의 칠십 리' '아폴론의 화살' '청동기와, 잠을 깨다' '무지개를 수놓다'가 그것이다.
어느 것이나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작품의 완결성 또는 참신성을 더 따져서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토론한 결과, 최종 두 편 '청동기와, 잠을 깨다'와 '무지개를 수놓다'가 끝까지 선자들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이 두 편을 저울질할 때 신인다운 패기는 같으나 역시 언어의 함축미와 절제 면에서 '무지개를 수놓다'를 당선작으로 뽑는 쪽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당선자에게 많은 기대를 건다. 당부하고 싶은 바는, 시어를 보다 참신하게 갈고 닦는 일에 노력을 더 해 달라는 것이다.
(심사위원 : 임종찬 ‧ 전일희)
<농민신문>
진천 삼용리 백제 토기요지에서
홍수민
미호천 끼고도는 야트막한 구릉지
안내판만 정자세로 오는 이 반기고 있다
그 곁에 오랜 침묵 깨고 말을 거는 토기요지
달빛 한 점 받아내서 토기를 빚었을까
돗자리 두드림 문양 양념처럼 넣고서
반지하 움집 같은 가마 속 잉걸불에 뒤척이며
인사동 골동품점 자리잡고 앉아 있을
질박한 타날문 토기 어둔 등요 빠져나와
둥기둥 춤추고 있다, 나뱃뱃한 얼굴로
[당선소감-홍수민]“더딘 걸음의 글쓰기 길에서 희망 갖게 돼”
서울 토박이가 아무 연고도 없는 진천이란 낯선 도시로 이사한 것은 3년 전의 일입니다. 산다는 것이 내 맘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다 돈 주고 산 경험을 통해서였습니다. 뜻밖의 당선 소식은 한밤에 일어나 커피 한잔을 마시게 합니다. 이곳 신월리에서 삼용리까지는 왕복 한시간이 넘는 거리라 운동하기 적당한 코스입니다. ‘삼용리 백제 토기요지’라는 팻말을 보고 숨은 그림 찾기처럼 찾아간 곳입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읽으며 눈물 쏟던 시절과, 정채봉 선생님의 <간장종지>를 읽으며 느낀 그 맑은 영혼의 울림을 기억합니다. 우연히 신춘문예 당선시집에서 박지현 선생의 <눈 녹는 마른 숲에>란 작품을 보고 깊이 매료되어 시조를 접하게 된 겁니다. 남들보다 항상 더딘 걸음으로 걸어온 글쓰기의 길에서 한 줄기 빛을 보내신 심사위원 두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처럼 누구나 애송하는 시를 쓴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랑하는 어머니, 친구 영숙이, 마음의 빚이 많은 친구 정희, 그리고 가족들과 아들 호준이랑 형준이가 자랑스러워하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홍수민
1957년 서울 출생.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5년(11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2006년(5월)·2007년(4월)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심사평]“역사적 유물 삶과 결부 시킨 것 인상적”
예심을 통과해 올라온 작품은 총 59편(10명)이었다. 작품 내용은 농촌 환경·역사·일상생활 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 작품을 장시간 공들여 읽은 후 최종 심사위원 두 사람의 손에 남은 작품은 <진천 삼용리 백제 토기요지에서> <서마지기 논배미> <갈대바람이 꿰어본 이중섭의 추억> 등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진천 삼용리 백제 토기요지에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진천 지역에서 발굴된 가마터의 역사적 유물을 삶과 결부시켜 형상화했다. 역사성과 문화성이 짙게 묻어나 있고, 시대적인 무게감에서 공감대를 형성해냈다. 한 가지, 현실성이 다소 미흡하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서마지기 논배미>는 농촌 정경을 그림처럼 선명하게 묘사해 예술성은 뛰어났으나, 일상적으로 흔히 다뤄온 평이한 소재여서 아쉬웠다. <갈대바람이 꿰어본 이중섭의 추억>은 작품이 깔끔하게 다듬어진 점은 눈길을 끌었으나, 이 역시 그동안 많이 다뤄진 소재여서 당선권에서 멀어졌다. 등단을 꿈꾸는 신인이라면 기성 시인을 뛰어넘는 주제나 소재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한 편만 당선작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탈락된 작품들에 아쉬움을 남긴다. 다음을 기약하며 정진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 이근배‧ 한분순)
<동아일보>
바람의 풍경
김석인
억새의 목울대로 울고 싶은 그런 날은
그리움 목에 걸고 도리질을 하고 싶다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내 모습 세워놓고
부대낀 시간만큼 길은 자꾸 흐려지고
이마를 허공에 던져 비비고 비벼 봐도
흐르는 구름의 시간 뜨거울 줄 모른다
내려놓고 지워야만 읽혀지는 경전인가
지상에 새긴 언약 온몸으로 더듬지만
가을은 화답도 없이 저녁을 몰고 온다
[당선소감]시조로 세상을 더듬은지 7년… 시린가슴 시원하게 닦습니다
내 삶의 등댓불은 꺾이지 않는 바람이다
얼어붙은 땅거죽을 체온으로 녹이며
저 들녘 가로지르는 외눈박이 무소 같은
돌아보면, 제가 걸어온 길은 바람의 길이었습니다. 무수히 흔들리면서도 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의식중에 바람의 보법을 권법처럼 익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어지러운 지각의 얼룩을 핥는 바람의 혓바닥으로, 오늘은 두근거리는 시린 가슴을 시원하게 닦습니다.
저의 바람을 따뜻하게 읽어주신 심사위원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신 신문사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시조로 세상을 더듬은 지 7년이 되었습니다. 정완영 선생님을 김천에서 직접 만나면서 시작된 인연입니다. 시조의 눈을 뜨게 해서 걸음마를 익히게 해주신 분이 정완영 선생님이라면, 제 시조에 부리와 발톱을 돋게 하고 날개를 달아주신 분은 이교상 선생님입니다. 두 분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함께 공부해온 곽길선 선생님, 김성현 선생님, 유선철 선생님, 이병철 선생님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흔쾌히 내어주신 고운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불어 그동안 제 졸작의 첫 번째 독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은 유곡 선생님과 청곡 선생님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나를 지켜봐주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김석인
1960년 경남 합천 출생. 경북대 철학과 졸업. 이조년전국시조백일장·중앙시조백일장 장원
[심사평]현대인의 고독 억새에 버무려… 쓸쓸함의 상투성 벗어난 절창
장황한 언술과 지나친 기교에서 오는 피로도가 높을수록 현대인은 순간의 서정양식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를 반영하듯 시조 부문은 해마다 응모자가 늘고 있다. 응모작 449편의 경향은 세 가지였다. 첫째, 시조 율격에 대한 이해 부족을 보이거나 초보적 수련 과정에 있는 작품군으로 이들은 논의에서 제외했다. 둘째, 시적 밀도와 탄력성은 미더우나 기성 시인을 모방하거나 유행처럼 번지는 소재 선택의 편협성을 보이는 작품군. 셋째, 신인다운 미숙함이 있으나 참신성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작품군.
둘째, 셋째 작품군에서 시류에 편승해 습관적인 모방, 표절 의혹이 짙거나 미숙성 때문에 전범으로 삼기에 부족한 응모작은 제외했다. 끝까지 남은 작품은 김석인의 ‘바람의 풍경’ 김범렬의 ‘암사동, 눈뜨는 빗살무늬토기’ 정미경의 ‘손안의 새’ 유수지의 ‘물병자리를 찾는 서쪽 풍경’이었다. 습작의 강도를 짐작하게 하는 이들은 발상과 시어 운용의 참신성, 진정성 면에서 각축을 벌였다.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시조의 미학을 살린 ‘바람의 풍경’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억새밭에 이는 바람과 바람이 변주해내는 풍경으로 은유한 당선작은 낯선 발화에 실린 유려한 시어 구사가 돌올(突兀)했다. 시조의 유연성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이마를 허공에 던져 비비고 비비”는 억새는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나를 표상한다. “화답도 없이 저녁을 몰고” 오는 “가을” 속에 “내 모습”은 간데없으나 개성적 어법으로 쓸쓸함의 상투성을 벗어난 절창이다. 갈채를 보내며 시조의 미래를 이끌어갈 동량으로 정진, 대성하길 축원한다.
(심사위원 : 이근배·홍성란)
<매일신문>
흑점(黑點)
이나영
한사코 뿌리치는
너의 어지럼증엔
무언가 있지, 싶은
가을날 해거름 녘
비밀리
자라고 있다던
뇌하수체
꽈리 하나
좁아진 시야만큼
햇빛도 일렁인다며
태양의 밀도 속에
움츠러든 코로나처럼
궤도를
이탈하는 중
너는, 늘
오리무중
[당선소감] 언어의 우물에 시조의 두레박을
대학교 3년 동안 철없고 덜 여문 나날들을 영글게 해준 것이 제겐 시조였습니다. 어떤 궤도로 진입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던 저에게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길을 잡아주는 나침반이었지요. 스물둘, 초록의 날을 고스란히 바치며 시조 한 수 한 수를 열매로 달기 위해 두근거리는 언어들을 품어왔습니다. 왜 하필 시조냐며 자꾸만 다른 안테나를 들이밀던 세상의 말들에도, 꿋꿋이 타자기를 두들겼던 보람이 이렇게 꽃핍니다.
시조의 운율 속에 내 마음결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 고등학교 시절이었지요. 그때부터 시조의 행간을 오가며 어설픈 발걸음으로나마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내게 평안과 힘을 가져다주는 이 길이 언젠가는 다른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이기를 믿습니다. 성공과 취업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그늘진 젊음의 시간을 시조가 구원해 주었듯이 그들에게도 따스한 위안이 되고 한 줄기 빛을 내어줄 수 있는 시인이기를 원합니다.
아직은 들끓는 태양의 운동처럼 들쑥날쑥하지만 살아 있는 언어의 우물에 시조를 길어 올릴 두레박을 힘껏 던집니다. 홀로 방황하며 망설였던 날들은 이제 날려 보냅니다. 궤도로 진입했으니 주저함은 떨치고 당차게 시조의 길을 갈고 닦겠습니다. 길목에서 손잡아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바르게 시조를 지켜내는 시인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재촉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부족한 맏딸을 끝까지 믿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온 마음을 바칩니다. 매운 가르침 뒤에 늘 따스한 격려를 잊지 않으셨던 이승은 선생님께도 금싸라기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그리고 ‘좁아진 시야’ 가운데에서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 친구가 참말 고맙습니다.
이제, 새해 햇귀에 시조의 오늘을 얹으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이나영
1992년 대구 출생.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 2013년 중앙시조백일장, 제14회 전국가사시조창작공모전 입선
[심사평]의학·과학 용어 도입…상징·은유로 집약
시조는 정형률을 가지고 있으므로 외적 기율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장과 구의 개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밑바탕으로 내용의 축조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응모작들이 형식에 갇혀 자신의 생각을 개성적으로 풀어내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오랜 절차탁마로 극복할 길 밖에는 없다.
으뜸의 자리에 오른 이나영 씨는 장래가 촉망된다. 당선작 '흑점'이 그것을 잘 말해줄 뿐만 아니라 같이 보내온 세 편의 탄탄하고 참신한 작품들이 그 점을 넉넉히 뒷받침해준다. '십자드라이버' '스물의 자취' '별똥별'이다.
두 수로 직조된 '흑점'은 은유의 깊이와 폭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전문적인 의학`과학 용어가 시어로 도입되어 효과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흑점이 폭발하면 지구의 기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어지럼증’을 안기는 셈이다. 흡사 몰래 자라고 있는 머릿속 ‘뇌하수체 꽈리’처럼.
흑점 폭발로 태양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이온화된 고온의 가스로 구성된 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 영역인 ‘코로나’는 움츠러든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도 ‘코로나’처럼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려는 존재가 있다. 궤도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줄로만 여기는 기성세대의 눈길로 볼 때 ‘오리무중’으로 일탈하는, 일탈을 감행하는 요즘 청소년들이 몹시 불안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당선작 '흑점'은 그런 시각을 바탕으로 시조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중층구조의 상징과 은유로 집약화한 결실이다. 즉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새로운 발화로 생명의 존엄과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명징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이것은 신인으로서 신뢰가 가는 강점이다. 그 점을 높이 산다.
최종까지 오른 용창선, 이한, 안은주, 박경화, 후인영, 김광희 제씨들의 응모작들도 공정의 깊이를 보였지만 당선에 이르기까지는 몇 가지 미흡한 점이 있어 다음 기회로 밀렸음을 밝힌다.
당선된 이나 결승선 직전에 주춤하게 된 이들 모두 가일층의 분발을 빈다. 이 궁핍한 시대에서 시조 쓰기란 우리 삶을 보다 윤택케 하고, 개개인의 내적 품격에 꽃이슬을 얹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 이정환)
<서울신문>
바람의 책장-여유당*與猶堂에서
구애영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그대의 표정을 보네
파도소리 스며있는 머리말 속살을 타고
첫 장을 지나는 노을
갈채로 펼쳐지네
오래도록 서 있었을 배다리 뗏목 위로
저문 하늘을 업고 떠나는 새떼를 향해
별들도 산란을 하네
넘어가는 책장들
갈잎은 결을 세우려 마음을 다스리는가
안개의 궤적을 뚫고 스러지는 이슬안고
목민의 아슬한 경계
은빛 적신 판권이었네
*다산 정약용 생가
[당선소감] 시조의 길, 늘 처음 걷는 듯 설레고 가슴 벅차
그날, 눈이 내렸습니다. 당선의 소식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연서였습니다. “어멈아, 산 사람은 묵어야 살지야, 우리!” 눈을 감으실 때까지 서숙미음을 드셨던 어머니! 당신의 똥 싼 기저귀를 안 보이려고 거식증으로 생을 마치신 친정어머니! 두 분의 어머니에게 이 기쁨의 밥을 올리렵니다. 지난여름 유라시아 문화포럼으로 연해주에서 발해의 시원(始原), 솔빈강을 바라보았습니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깊고 잔잔하게 펼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물줄기가 시조의 3장 6구 정제된 가락의 도저함으로 나를 달뜨게 했습니다. 걷고 걸어도 이 길은 늘 내게 처음 걷는 길처럼 설레고 가슴 벅찹니다.
서투르고 느린 저를 그 사유하는 시조의 길로 이끌어 주시고 지금까지 지도해 주신 이지엽 교수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명지전문대 문창과 교수님들, 시민대 하린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와 길’ 동인들, 급우들, 여러 문우님들 격려해 주시고 힘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저희 사랑하는 가족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야간 수업을 마치고 자정이 되어서야 집으로 갑니다. 길섶에서 만난 바람과 별들, 비오리 가족들, 갈잎의 향기도 모두 저의 친절한 친구였지요. 부족한 글을 흰 눈밭에 새겨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서울신문사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우리 시조의 품격에 자긍심을 가지고 더 겸허히 공부하여 좋은 작품 쓰겠습니다.
구애영
1947년 전남 목포 출생. 목포 정명여고 교육행정직 정년퇴임. 현재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재학 중
[심사평] 감각적 은유와 언어의 새로운 조형에 가산점
새 아침의 언어는 왜 햇살처럼 밝고 싱싱한 푸르름인가. 오랜 밤을 지나왔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모국어가 낳은 시조가 해를 거듭할수록 뻗쳐오르고 있음은 저 깊은 역사를 꿰뚫고 솟아나는 이 땅의 시의 원천인 까닭이다.
시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이때에 시조의 날을 벼르는 손길들이 쉬지 않고 있음을 응모 작품들에서 읽을 수 있어 반가웠다. 몇 번을 걸러서 당선권에 오른 작품들은 저마다의 글감과 말 꾸밈이 잘 익어서 밀어내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새, 혹은 상형문자’(장은해)는 시조를 다루는 능숙함이 빛났으나 “길 없는 만행의 길” “내출혈하는 저녁놀” 같은 타성의 표현이, ‘낮은 별자리’(조경섭)는 “해떨어진 숲속의 단출한 상차림” 등의 구수한 입담이 돋보였으나 사람 얘기가 빠진 자연 묘사만이, ‘지지대에서 머뭇거리다’(용창선)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는 사부곡인데 3수로는 속내를 다 못 그린 것이, ‘다시 완경’(오은주)은 꽃을 ‘여자’의 알레고리로 형상화했는데 “꽃” 낱말을 다섯 번씩 써야 했는지? 이런 점들이 지적되었음을 알린다.
당선작 ‘바람의 책장-여유당에서’(구애영)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에 가서 그 생애와 드높은 학덕의 온축(蘊蓄)을 감각적 은유로 풀어 가는 능숙함과 사실(史實)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게 조형하는 어법이 가산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그대의 표정을 보네”로 첫 수 초장을 산뜻하게 깨치더니 “목민의 아슬한 경계/ 은빛 적신 판권이었네”로 끝 수 종장을 닫는 결구 또한 흠집이 없다. 누구는 시조의 글감이 왜 옛것이어야만 하느냐고 물을지 모르나 옛것을 낡은 것으로 버려 두지 않고 새것으로 만들어 오늘의 삶에 빛을 씌우는 일이 문학, 예술의 몫이 아닌가. 사뭇 무거운 주제를 새 문법으로 각자(刻字)해 내는 기량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심사위원 : 문인수‧ 이근배)
<영주일보>
옥돔
이명숙
지느러미 가시 같은 까칠한 손잔등이
햇살을 뒤척이며 꾸득꾸득 말라간다
함지 속 대여섯 뭉치 하얗게 핀 소금꽃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 세시
굵은 주름 행간마다 서린 미소 너른 여백
때 늦은 국수 한 사발 입술주름 펴진다
식용유 한 스푼에 열 올려 튀겨내면
뼈째 먹는 보약이라나 오일장 할망 입심
바다도 통째 팔겠다 검정 비닐 속 찬거리
[당선소감]
미용실 쉬는 날, 중문 가는 길 1,100도로 전망대에서까마귀들이 하늘을 업고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흑요석 같이 땅에 앉은 까마귀의 검은빛 그 단색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순간 그것이 그리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이런 뜻밖의 좋은 소식을 접하려는 전조였던 것 같다.
몇 십 년 넘게 살던 서울에서 제주까지 와야만 했던 이유가 시조를 쓰기 위해서였나 보다.'고통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는 은혜로운 선생님의 시론을 기억한다.
아직은 제주의 오름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잘 모르지만제주의 뿌리 깊은 아픔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많은 정성과 시간을 제주를 이해하는데 쏟게 될 것이며 시조를 쓰는 것으로 아름다운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뭍에서 제주를 찾는 인구들이 늘어나는 요즘제주를 알리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글을 쓰려거든 제주로 오라'잊고 있던 모든 감성이 제주에 와서 활화산처럼 폭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높고 큰 하늘과 부드럽고 넉넉한 바다가 내게 주는 느낌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람 그리고 초록빛 생명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쓰는 내 시조의 바탕은 사랑이다. 도로를 해안을 중심으로 한 겉모습만 봤지만 이제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속의 사랑을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시조, 율격이 아름다운 춤사위로 선보이고 싶다. 젊은 사고로 우리 시조의 나이까지도 줄여서'시조' 하면 고루하게 생각하는 젊은 영혼에 신선한 충격이 되는 시조를 짓고 싶다.
부족한 작품에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격려를 아끼지 않는 남편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이명숙
서울 출생. 2013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10월 장원. 현재 헤어디자이너
[심사평]
시조는 정형양식의 시이다. 정형양식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현대시로서 불리한 점이기도 하다. 좋은 시조는 시각과 청각을 자극해야 하고 3D 동영상처럼 입체적이며 동적으로 다가올 때 실감과 감동을 일으킬 수 있다.
영주신춘문예에 공모된 작품들의 수준은 고르게 높았다. 여러 차례 정독을 하고 심사위원간 돌려 읽기와 소리 내어 낭송하는 과정을 거쳐 이명숙의 「옥돔」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함께 보내온 9편의 응모작도 당선작을 결정하는데 역할을 했다.
「옥돔」은 오일장에서 옥돔을 파는 좌판의 풍경을 배경으로 우리 시대의 서정을 우려낸 작품이다. ‘갈매기 비린 문자도 졸고 있는 오후3시’에서는 감각의 수준을, 할머니의 구수한 입심이 실린 ‘바다도 통째 팔겠다’에선 시의 너른 품이 읽혀진다.
최종심에서 겨룬「여줄가리 닭의장풀」과 「가을적벽」이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손을 떠나지 못했음을 밝힌다. 아쉬움을 전하며 더욱 정진을 빈다. 거듭 이명숙 님의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권갑하(글) 박명숙)
<조선일보>
꽃피는 광장
정승헌
돌담도 스크럼 짠 유월의 대한문 앞
물대포 날아드는 왜자한 화단 너머
샐비어 붉은 깃발이 자리싸움 한창이다
질끈 두른 머리띠에 징소리가 울린다
응어리진 선소리꾼 목이 쉰 구호마다
신호에 발 묶인 차들 덩달아 소리치고
발 디딘 한 뼘 땅을 탐하려는 트레바리
촛불도 고개 숙인 분향소 흘금대다
저물녘 도시 소음에 귓불이 시려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꼬리 문 메아리들
흘레바람 비를 몰아 묵은 앙금 씻고 나면
헐벗은 저 꽃밭에도 봄은 그예 오겠지
[당선소감] "뿌리를 일깨워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갓난아기 때부터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과 우리나라를 들락날락하는 생활이 11년이 넘었다. 유난히 우리 부모님만 꼭 독립 유공자 후손인 양 한국에 뿌리내리기를 원하는지, 영어도 서툰 어린 나이에 학교에서 집에만 오면 그때마다 부모님은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한국의 뿌리를 유독 강조했다. 특히 교사 출신인 어머니는 남다른 교육열로 다른 친구들처럼 집에서 영어 한마디 더 연습시키기보다는 항상 한국말, 한국 교육의 중요성을 더 일깨워 줬다. 기본 과목은 물론 한국 고전, 현대문학, 논술까지 과외를 받게 하였으니.
어릴 때는 다양한 학업을 병행해서 혼란스러웠지만 오히려 풍부한 문화적 경험이 큰 재산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우리말을 세계화할 수는 없을까? 언젠가는 영국의 소네트처럼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글이 알려졌으면 하는 열망과 감히 내가 그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자칫 잘못하면 한국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닌 괴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조건에서 나의 스승이자 감시자인 아버지와 중심을 잡아 일상생활에서 옆길로 새지 않고 바르게 인도해 주신 교육자인 어머니. 앞으로 더욱 발전된 모습의 젊은 시조시인이 되도록 매진하겠다.
정승헌
1981년 서울 출생. 아주대 미디어학부 졸업. 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재직
[심사평] 삶의 장면 뒤로 보이는, 廣場의 새로운 힘
신춘문예는 무엇보다 신(新)의 개진과 가능성을 높이 친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낡은 서정이나 안이한 관념의 세계를 벗어낸 작품이 늘어 반가웠다. 그중 눈에 더 띈 것은 정승헌, 김지선, 후인영, 용창선, 신준희, 조경섭씨의 작품이었다. 김지선씨의 '지리산 만복대' 등은 발랄한 어법과 발상이 신선했고, 후인영씨의 '빈 솥'은 밀도와 심도를 아우르는 감각적 형상화가 빼어났지만, 작품의 편차가 걸렸다. 용창선 씨의 '겨울 수화(手話)'는 절제된 묘사에 비해 참신성이 달렸고, 신준희씨의 '담쟁이 DNA'나 조경섭씨의 '민들레의 몽상'은 현실성을 부각하는 구조화에 신뢰가 갔지만, 압축미 미흡에 따른 이완이 느껴져 내려놓았다.
정승헌씨는 안정적인 시조 문법과 작품의 균질성이 돋보였다. '광장'이라는 현실의 역동적 장소성과 삶의 장면들을 네 수에 고르게 배치하며 우리 사회의 바람을 '꽃피는 광장'으로 승화해 가는 역량도 뛰어나다. '스크럼 짠 유월의 대한문 앞'에서 꿈꾸는 '봄'은 당면한 계절과 상관없이 우리가 모두 바라는 상징적인 봄이겠다. 주문을 덧붙이면, 바라보는 자의 시선에 머물 수 있는 공소성의 우려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젊은 시는 생물학적 젊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직시나 발견의 시선은 피상적 인식을 넘어서 젊은 시조를 개진하는 좋은 힘이다. 정승헌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부디 새로운 시조의 꽃 광장을 열기 바란다.
(심사위원 : 정수자)
<중앙일보>
바둑 두는 남자
김샴
쉰다섯의 전장까지 판판이 패자였다
실패한 한 중년의 마지막 한 판 승부
밀리면 더 갈 곳 없는 종점에 서 있었다.
이겨도 얻어내는 전리품은 없었지만
함몰된 눈알 가득 불꽃들 살아 튄다
세상에 남길 유흔이 살아있는 눈빛이듯.
마지막 외통수가 비수로 남았을 때
찌르지 못한다면 찔려야 했었기에
파르르 손이 떨리던 일대기가 끝났다.
여름옷 입은 채로 한 겨울에 발굴됐다
바둑 두는 남자의 노숙터 부장품은
살아서 빛나던 한때 아버지란 칼 한 자루.
[당선소감] 채울 수 없었던 삶의 허기-쓰는 동안, 나는 배 불렀다
1993년 2월1일 어머니의 배속에 우리 3남매는 함께 들어 있었다. 누나는 고고성을 울리며 세상으로 나왔고 동생과 나는 불발탄으로 붙어 있었다. 어머니의 천사는 3이 아니라 2와 1/2이었다. 2는 건강했지만 나머지 그렇지 못했다. 내가 그 1/2이었다. 허약한 몸과 늘 배고픈 허기, 허기에 고통처럼 더해진 유제품 알레르기. 그래서 더 배가 고팠다.
대학을 다니면서 내게 가장 힘든 것은 불화도 가난도 아닌 허기였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 허기를 시로 채워보라고. 그래서 나는 시의 길을 걸었다. 시를 읽고 필사하는 동안엔 허기지지 않았고, 시를 쓰는 동안엔 배가 불렀다. 휴학이냐 4학년 진학이냐 그 고민 사이에 당선소식을 받았다. 시인이 된다는 기쁨보다 졸업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지난 여름의 무전여행이 생각난다. 춘천서 진해까지 780㎞를 무일푼으로 걸었다. 그 시간이 나의 ‘율(律)’을 발효시켰다. 올 겨울에는 남도를 따라 서쪽까지 1800㎞를 걸어볼 생각이다. 문학이 강한 대학 경남대와 중앙도서관 10층에 독수리 둥지로 앉은 청년작가아카데미, 동고동락한 열정2기의 동기들에게 감사한다. 국문과 교수님들께, 스승이신 정일근 교수님께 큰절 올린다. 내 작품의 손을 잡아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지치지 않고 이 길을 걷겠다고 약속 드린다.
내 시가 내 인생은 물론 누군가에게 ‘포르투나(Fortuna)’가 되길 바란다. 한 몸으로 태어나 내게 상처만 남겨준 동생이지만, 많이 보고 싶은 날이다.
김샴
본명 김태년. 1993년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심사평]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심사평
응모작 대부분은 대체로 마디를 잇고 끊는 호흡이 안정돼 있고, 선택한 제재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신뢰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먼저 김샴의 작품 6편에 주목했다. ‘UFO를 먹다가’ ‘프로게이머’에서 시조와 판타지의 결합을 시도했고, ‘샴쌍둥이를 위한 변명’에선 자신의 불편한 출생마저 5수로 녹여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몇 차례 의견 교환 후에 ‘바둑 두는 남자’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주검의 발견을 ‘발굴’로, 소지품을 ‘부장품’으로 표현한 것이 독특했다.
마지막까지 용창선·이나영·이명숙·엄미영 네 명을 논의했다. 용창선은 대상을 포착하는 방식이 신선했고, 이나영은 시를 밀고 가는 힘이 좋았다. 이명숙과 엄미영은 공히 숙련된 언어구사 능력을 보여주었다.
(심사위원 : 오승철·권갑하·강현덕·이달균(대표집필 이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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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나래시조》 봄호 특집
2014년 신춘문예 특집 좌담
일시 : 2014년 2월 6일 12시-17시
장소 : 대전 무지개한정식
참석인원 : 정용국, 박희정, 이송희, 서정택, 이민아, 김남규, 김보람, 박성민, 변현상 (등단순서)
좌담을 열며
2014년 《나래시조》봄호에 새로운 기획을 한다. 2000년 이후에 등단한 여덟 명의 시인을 초대해 신춘문예 특집 좌담의 시간을 가졌다. 한 시인에 의해서 조명하던 방식을 탈피하고 젊은 목소리를 집결시켜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참석한 시인들은 당선작에 대해 숙독을 하고 대전에서 좌담을 가지며 신춘문예 전반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 그동안 이렇게 젊은(?) 시인들만의 공식적인 모임을 가진 적이 없음에 목말라하며 나래시조에서 기획한 좌담이 반향反響의 시간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진다.
우리는 자유발언을 중심으로 신춘문예 심사에 대한 전체적인 의견을 수렴했으며 세부적으로는 신춘문예 작품에 대한 각론과 시조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각자 눈치보지 않고 제 목소리로 피력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좌담의 열기는 진지했다. 릴레이 형식으로 자유발언을 한 내용을 싣는다.
신춘문예 심사를 향한 말‧말‧말
가람 :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신춘문예 출신의 대접양상에 퍽 예민했다. 신춘문예의 필연성은 인정하지만 신춘문예 후의 활동을 보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걸 느낀다. 신춘문예 출신과 다른 신인상 등단에 대해 차별화를 두는 것도 문제이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신문지상에 발표되었을 때 그 작품이 문학성을 갖추었느냐, 아니냐 하는 점도 문제가 되지만 신춘문예 등단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되는 경우도 있고 등단 후 활동을 잘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시조를 가르친 스승에 따라 작품 흐름이 유사한 경우, 당선 후 발표되는 작품의 수준이 당선작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경우 등, 음으로 양으로 끊임없이 드러나는 문제점도 문제인 거 같다.
대놓고 자신의 제자를 등단시키는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는 시조단의 길, 제자의 길을 망치는 행위이며 이러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심사자의 인격에 실망을 하게 된다.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좁은 시조단에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응모자나 심사자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시조의 발전은 불투명하다. 신춘에 응모하는 많은 예비 시인들도 심사자의 취향에만 맞는 창작을 하려고 노력하는 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13년 《나래시조》봄호에 수록한 정용국 시인의 해설이 많은 시조시인들로부터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곱씹어 새겨야 할 부분이 많았다.
나래 : 올해 당선된 신춘문예 작품을 보면 매우 실망스럽다. 예년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 시를 공부하는 습작생들에게 신춘문예 시조 작품을 보여주기 민망하기까지 했다. 습작생들이 이런 아마추어 작품으로 등단할 수 있는 게 더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볼 때마다 나 또한 부끄럽다. 이는 응모자의 문제인지, 심사자의 문제인지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심사자가 연임을 하니 이러한 부분이 노출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방향의 시조를 발견하면 이유 없이 밀어주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것 또한 바람직하지는 않다.
시조는 시대반영을 많이 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부분에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심사위원들도 이런 부분에 초점을 두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작품이 먼저 되어야지(작품성) 시대반영이(현대성)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심사하시는 선생님이 매년 같은 분이 지정되는 것도 문제다. 시조를 공부하는 평론가, 교수 등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분들이 안 계시니까 심사도 정체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중앙지와 지방지의 당선작품의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까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다솜 : 공통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2013년 《나래시조》봄호, 신춘문예 해설 말미에 신춘문예 10년 동안 심사위원을 도표로 만들어서 첨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많은 시인들이 말려서 수록하지 못했다. 지금도 보니까 심사위원의 면면이 바뀌지 않고 있다. 문제는 심사위원을 맡은 그분들도 그 글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시조의 현실이다. 어느 시인이 전화를 해서 지방에 있다보니 작품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또 응모자들을 아는 경우도 사실이다. 심사자에 대한 부분은 많은 공감을 가진다며 격려를 해주시기도 했다.
올해 심사위원들도 작년과 비슷했다. 이우걸 선생님의 경우, 심사위원이 문제가 아니라 작품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점을 돌려서 이야기한 것 같다. 정종명 이사장의 말씀을 들어보면, 각 분야 신춘문예 등단자들의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20대-30대는 줄어들고 50대-60대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시조단만의 문제라고 보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협회 차원에서 자성이 필요하기도 하고 연임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 신춘문예는 작품 수준이 많이 떨어지고 응모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작품 편수가 없는 것이 70%, 심사위원의 연임, 고령화가 30%의 문제점을 가지는 것 같다. 혁명이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질 수 없는 노릇이고 우리 젊은 시인들이 이렇게 제반 문제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특집을 이어간다면 심사위원들도 눈여겨 볼 것이고 점진적인 방안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뜻있는 모임으로 이어가기를 희망한다.
라온 : 제 생각은 작품 부족보다는 문학성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10편이 고만고만하다. 심사 기준을 3가지로 정리해 봤다. ①서정성, ②감각적 이미지, 일상에 대한 천착, ③참신성과 진정성. 예전에 비해 패기와 현대성은 오히려 빠진 셈이다. 이는 심사위원 자체가 맥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 대충 안정성을 추구하고 원만하게 읽히는 작품을 선정한 게 첫 번째 문제이다.
저는 시를 볼 때 제목에 70%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인데, 예전의 음풍농월식의 제목에서 벗어난 점은 좋다. 10편의 제목을 살펴보면 선정 제목은 다양해서 긍정적이라 본다. 자유시 당선작 24편을 분석해보면, 삶을 주제로 삼았고 (시조도 삶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 5편) 자연에서 소재를 가져와 삶을 통한 환치를 안정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읽힌다. 자유시는 제목 자체가 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제목이 시가 된다는 것은 내용 자체도 책임감있게 썼다는 점이다. 개혁, 현대성, 문학성 등에 비중을 두고 쓴 점도 살펴 읽어야 한다.
시조집도 많이 발간되고 인터넷을 통해 많은 작품들을 읽을 수 있는 현실에서 이번 신춘문예 작품을 살펴보면, 표절의 의혹을 벗어날 수 없는 부분이 더러 보인다. 지금은 표절에 대해서 많이 관대해졌지만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며, 표절의혹이 있는 작품이 선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심사위원들께서도 강한 의지와 작품에 대한 깊은 분석을 해야 하며 치열한 공부를 한 후에 심사에 임해야한다. 심사위원으로서 준비 없이 심사에 임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심사기준을 강화해서 의혹이 있는 작품은 배제해야 하며 때로는 ‘당선작 없음’도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의 심사기준은 너무 느슨하다.
다솜 : 예선을 거쳐 온 몇 작품이 예선을 통해 올라온 작품의 전부일 수도 있다. 그만큼 응모작품이 없다. 경상일보가 당선작으로 2편의 작품을 올린 것은 작품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응모자를 밀기 위함인지 당선작이 부족하여 2편을 선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까지 당선시킬 이유는 없었다고 본다. 물론 당선작을 못 낼 경우의 사정을 심사위원도 크게 걱정했을 것에는 동감하지만…….
라온 : 예전에는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200-300편 들어왔다고 한다. 갈수록 응모작품 편수가 줄어든다.
가람 : 작품을 보면 표절의혹이 많은데 못 골라냈다는 것은 심사위원이 기존 기성시인들의 발표작품을 안 읽는다는 결과의 소산이다.
마음 :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할 때는 문단 서열화를 경계하자는 전제를 두어야 한다. 신춘문예 당선자라는 특권의식을 앞으로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등단 후 잘 쓰는 시인, 작품을 바라보아야 한다. 신춘문예가 7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제도라면 습작 초기같은 작품은 선정하지 말아야 한다. 저는 어느 해 당선작과 낙선작을 비교한 적이 있는데 의문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도 습작초기의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는 어쩌면 학연, 지연 등이 선정의 사유가 되기도 하고, 떨어뜨리기 위해 빌미를 줄 수도 있는 것 같다. 너무 노련해서 떨어뜨렸다, 너무 거칠어서 떨어뜨렸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칠다”가 “신선하다”로 포장될 수도 있고, “기성시인 모방”이 “노련하다”, “완숙하다”로 포장될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신선한 작품을 거칠다고 떨어뜨리고, 습작기가 충분하여 완결미를 갖춘 작품을 새롭지 않다고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심사자가 누구를 뽑아야겠다면 심사평은 어떻게든 나온다. 결론은 신춘문예 선정 후 자생력이 있는가가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인들이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는 표절의혹, 대필의혹 등이 발생되기도 했다. 동아일보 시 당선작 「오리시계」에 대한 분분한 견해를 읽으며 첨삭을 통한 창작의 문제점이 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라 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승과 관련없이 스스로 창작의 길을 갈 수 있느냐에 대한 신인 등용문이 필요하다. 자생력이 있는 당선자, 습작기간을 거친 신인, 신선한 가능성에의 문제를 극복한 신인 등을 선정해야 한다. 특히나 습작초기의 작품은 선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심사평으로 치장, 과장, 위장을 해도 눈에 보인다. 그러한 심사평은 더 문제가 된다. 등단 후 2-3년 안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인을 선정해야 한다. 습작기가 긴 사람들은 당선작 수준의 작품을 20-30편 정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등단 후 활동하는데 전혀 문제시 되지 않는다.
우리는 등단 후 활동하지 않는 시인을 많이 보아왔다. 등단작은 수작인데, 등단 후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는지, 못하는지 그런 시인들이 꽤 많다. 이는 자생적이기보다는 타의적인 선정에 의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라온 : 신춘문예 당선 후 시조단에서 볼 수 없는 신인을 찾는다면, 2007년 서울신문 당선자 이아영 시인, 2007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자 정상혁 시인 등일 것이다. 이 두 시인은 등단 이전부터 전국 대단위 시조백일장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다녔던 촉망받는 신인들이었다. 특히 정상혁은 습작기간도 길다. 2013년 중앙시조 대상 시상식에서 만났는데 앞으로는 시조를 발표할 것 같은 믿음을 받았다. 어떻게든 다시 이끌어 내어 지켜봐주면 좋겠다.
바다 : 해마다 같은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한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제는 새로운 전환을 시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당선작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비난을 면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어떤 분으로부터 “시조는 조금만 노력하면 신춘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참으로 부끄러웠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는 현실이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등단 후 잘 쓰지 않고 있는 시인에 대한 걱정과 우려도 좋지만 그보다 꾸준히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시인들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시인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본다. 자존심을 지켜가면서 능력 있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끌어내는 건 시조단의 열악함을 증명하는 모습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많은 시인들 중에서 시조를 잘 쓸 것 같은데 떠난 시인들이 분명 있다. 그들을 일일이 챙겨주지 못하면서 특정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도 문제다. 물론 신인과 작품과 심사자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시조단에는 이러저러한 외적인 이유로 누군가에게 관심을 두고 챙긴다면 문제가 된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작품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심사자를 미리 알거나 언질을 주거나 할 때 분명 응모자가 줄어들고 좋은 작품이 뽑힐 리가 없다. 또한 뽑혀도 관행과 전철을 밟다보면, 쏠리게 된다. 이러한 불편한 고리는 이제 끊어야 한다.
2014년 신춘문예 자유시 당선작품을 읽어봤는데 작품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시와 시조에서 다 느껴진다. 당선자 연령대가 높아지는 것은 다른 장르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꼭 안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시조단에서 작품보다는 신인의 개인사에 관심을 두고 마음을 쓰며 밀고 당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심사위원의 자질문제가 그래서 자꾸 언급되는 것이다. 늘 심사를 하시는 분이 하시고 변화는 없고 반복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문제만 제기되고 해결되지 않는 현실까지 왔다.
다솜 : 신춘문예나 어떤 문학상을 주관하는 시청, 군청 등 기관의 문제점이 뭐냐 하면, 공무원이나 기자들이 시조시인을 잘 모르고 누군가를 통해서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잘 아시겠지만 지역의 문학상 경우 그 지역의 시인을 통해 심사위원을 결정하거나 행사를 진행한다. 그런 행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객관성을 갖지 않을 경우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것이다. 협회도 이러한 제반 문제에 대해서 객관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을 때 서울문화재단에서 심사위원을 추천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대학교수인 시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시인, 후학을 가르치는 시인 등은 제외한 적이 있다. 신문사가 문인협회 등에 요청을 해서 심사위원을 추천받는 경우 협회가 공정함을 떠나 협회 간부 등을 추천하는 경우도 좋은 추천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현황으로 보면 신문사 문화부 담당 기자들이 문인에 대한 숙지도가 미흡한 것도 문제이다. 심사를 하는 시인은 특히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심사를 해야 한다. 이러한 점부터 개선해나갈 때 심사는 훨씬 더 객관화되고 투명해지리라 믿는다.
다수 : 이번 기회를 계기로 새로운 일을 추진하자. 오늘 신춘문예 대담을 계기로 우리가 진취적인 일들을 추진해 보자.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 우리가 해보자.
다솜 : 우리가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세미나 때 심사제도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다루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람 : 신춘 시즌이 가까워올 쯤 각 신문사 문학 담당기자를 초빙하여 간담회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 : 저는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서예학원에서 시조를 붓글씨로 썼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백일장에 참여했다. 또한 동아일보 신춘문예도 7년 만에 당선되었다. 그러기 위해 저는 2007년 당선될 때까지 심사위원의 표를 만들어가며 응모를 했다. 표를 만든 것은 왜 내가 자꾸 떨어지나를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살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심사위원이 바뀌지 않았다. 그때는 광고지 뒷면에 표를 그려가며 심사위원을 정리했는데 20년 전에는 어땠을까도 살펴보았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강영환 시인이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실 때 이근배 선생님께서 심사를 하셨다. 제가 1979년 생이다. 그런데 30년이 지나 제가 등단한 2007년 동아일보에 이근배 선생님이 심사를 하셨다. 강영환 시인이 “나 때도 그 분이 뽑으셨는데 너 때도 그분이 뽑으면 우냐노?” 하셨다. 이근배 선생님은 올해도 2군데 심사를 맡으셨다. 몇 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심사위원! 투고자는 심사위원의 성향을 보고 투고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이 여태까지 이어져왔고, 올해도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이어질거라는 생각을 하면, 시조의 내일은 어떻게 되겠는가? 또한 중앙지로 등단한 시인과 지방지로 등단한 시인에 대한 차별된 청탁도 문제라고 본다. 저는 2005년 국제신문(시)으로 등단했을 때는 1년에 청탁이 2회 정도밖에 오지 않았는데 2007년에 동아일보에 당선되고 나서는 15회 청탁이 왔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현상인가. 중앙지와 지방지를 차별하는 것은 신문사, 시인, 잡지 등 모든 문학 관련자들의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발상같다. 저는 등단 후 5년 동안 사는 일에 바빠서 시조당선작을 보지도 않았고 시인들과 소통도 하지 않았다. 5년 후에 행사에 참여했고 오늘도 오게 되었다.
2년 동안 조선일보 당선자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현재 아카데미에서 이렇게 가르치는 것밖에는 아웃라이너(outline)하게 가르치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심사위원들이 가르치는 제자가 없다면 향유자도 없다. 《나래시조》가 동인지를 벗어나 향유자에서 생산자의 중심세력인 추동세력으로 가는 것은 이미 대중문화의 흐름이라고 본다.
지금 나래시조 말고 누가 심적으로 물적으로 작품의 양적으로 시조에 투자하는가? 없다고 본다. 향유자들이 그러한 시조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시조를 창작할 때 신춘문예 당선은 가능하다. 응모자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열정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심사평에서 뭐라고 하는가 하면, 심사자의 작품 이름만 나오는 경우는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이름을 밝히면 너무 뻔하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다. 10편의 심사평 중에 최종심에 거론된 명단을 보면 김석인, 용창선, 조명섭, 후인영 등이다. 작품 명만 나온 곳이 네 군데인데 이름을 밝히면 똑 같은 이름이 있을 것이다. 결국은 작품이 없다는 증거다. 작품이 없는 것은 창작자 그룹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소수인만의 향유가 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제가 부산일보에 4년이나 투고했지만 떨어졌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장순하, 최승범 시인이 심사를 맡았다. 이 분들은 부산일보 김상훈 사장의 스승이시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심사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심사위원을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
제가 신춘문예 응모할 때는 혼자서 몇날 며칠 들어앉아 고민하며 썼는데 요즘 응모자들은 누가 그러나? 스승이 있고 첨삭을 하고 메일로 소통하며 작품을 완성해간다. 제가 등단하기 2년 전에 정일근 시인이 동아일보를 심사하셔서 심사위원이 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후 다시 이근배, 한분순 선생님이 심사를 하셨다. 이것이 심사위원의 현주소다.
시조에서 일가를 이루고 계신 선생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제자를 안 키우는 것이 제자를 키우는 것’이라는 점이다. 등단 후 창작공부를 하려면 스승을 찾지 말고 도반들과 해야 한다. 또한 지면에 발표한 후 선배들에게 지적받고 공부하고 퇴고하면서 창작의 길을 스스로 가야하는데 시조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안 되고 있다. 따라서 심사위원들과 창작 스승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학교수, 출판사, 창작지도를 하는 시인의 제자가 수상을 했다.
상피제도에 의해 심사자들은 스스로 나가주셔야 한다. 시조 수요자가 없는 저변에서 당선될 때까지 의미있는 과정이고 필연성이 제기되는 문제이지만 그 이후는 다르다. 비전있는 심사방법으로는 중앙일보의 신인문학상 방식이 모범적이다. 심사자의 견해에 따라 선별하고 선정하는 심사형태를 취하는 것 같아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과 심사평을 읽어보면 작품과 심사평과 안 맞는 작품들이 많다. 호평好評에 따른 작품이 아니란 점이다.
문학에서 심사위원의 물결이 바뀔 때는 타 작가가 스타덤에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시조단에서는 그러한 스타덤이 없다. 흡인력을 가진 차세대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조의 확산을 위해 스타작가 팬 만들기, 팬덤(Fandom)이 필요하다고 본다. 부산에서는 북콘서트에 스타작가 만들기를 하기도 한다. 또한 시조자체에 대한 매력을 가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 필요하다. 대산문화재단은 스타덤을 이루는 역할을 해오고 있으나 시조에서는 현역시인을 중심으로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 스펙트럼으로 작품화하지 말고 다른 장르까지 인정하는 시스템을 몰고 갈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중견 시인의 스타덤이 필요하며 비판적인 작품에 승부를 걸 수 있는 스타덤의 필연성을 제안해본다.
아름 : 많은 분들이 신춘문예의 문제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부분에 공감한다. 달리 드릴 말씀은, 신춘문예 당선 작품 편차가 심하다는 점이다. 어떤 작품은 왜 선정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불필요한 부분이 많기도 했고 지나치게 작위적인 작품도 있었다. 저도 신춘문예 응모할 때는 긴장하고 초조해서 당선이라는 결과에 대해 목말라했는데 돌아보면 신춘문예는 작품으로 오늘과 내일의 시조를 위해 치열한 창작을 할 수 있는 자를 선정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신춘문예 당선 이후에 활동하지 않는 많은 시인들을 살펴본다면 응모자나 심사자 모두 신중해야 한다.
중앙일보 당선자 김샴 시인의 소감을 읽으면서 시조분야에 스터디 그룹이 있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룹을 위해서도, 단체를 위해서도 그러한 그룹의 활동이 왕성히 이루어질 때 시조문학의 발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춘문예 당선작품, 이렇게 읽었다
우리 일행은 옹골찬 1부의 좌담을 마치고 식당 바로 옆 건물의 찻집에서 2부 모임을 가졌다. 2000년대 출신 시인만의 발언이라서인지 사뭇 긴장과 결속의 시간이었다. 자유 발언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찻집에서는 각 신문사 신춘문예 작품에 대한 각론과 앞으로 시조문학이 나아가야 방향에 대한 제안을 하기로 했다. 먼저 신춘문예 당선작품에 대한 발언의 시간을 가졌다. 신문사는 가나다 순서로 조명한다.
<경남신문>
나래 : 이 작품은 아마추어 냄새가 많이 난다. 둘째 수는 불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참신하지도 않고, 매력적인 문장도 없고 음보도 안 맞고, 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자수 맞추기에 급급한 느낌이 났다. “시간의 경계 밖으로”, “손때 묻은 구절들이” 같은 부분은 너무 평이한 표현 같고 표절 문제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작품이다. 종장 역시 제 역할은 하지 못한 것 같다.
다솜 : 심사평에는 마지막 종장이 절창이라고 했다. 시인이 그렇게 썼다. 과연 그런가.
가람 : 작품 종장의 음보가 안 맞다. 대학생 아들에게 낭송해보라고 했는데 “시간의/ 경계 밖으로”가 아니고 “시간의 경계/밖으로” 읽더라. 나머지 종장도 “흔하디 흔한”, “켜켜이 자란”, “중심을 잡고”로 읽혀진다. 이는 자수, 음보 모두 문제가 있는 작품이다. 또한 4수 초장은 유재영 시인의 작품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
마음 : 4수 초장 부분은 자유시에서 나온 발상으로 봤다. 너무 흔한 표현이다. “중심을 잡고 일어선 꽃 대궁이 절창이다”에서 “절창이다”라는 시어만 넣으면 절창이 되는가.
아름 : 시상이 한데 모이지 않고 분산되는 느낌이다. 4수로 이어지는 긴 연시조임에도 불구하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바다 : 솔직히 이 작품에 할 말이 없다. 왜 당선작인지, 심사평 역시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경상일보>
나래 : 불필요한 시어 “에멀무지, 가시버시, 곰비임비” 등은 문제다. 한 장에 한번씩 부사어를 쓰도 되나
라온 : 이것은 스승이 같다는 점일 수도 있다. 한 스승과 오래도록 창작 공부를 했을 경우 나타나는 결과이다. 시조단에도 창작지도를 하는 곳이 몇몇 군데 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면 그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마음 : 경상일보는 두 작품을 선정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의 작품 같다. 고유어를 살렸으면 두 작품에 적절히 표현되었어야 응모자의 저력을 볼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뜨게 부부 이야기」와 「양파의 시」는 전혀 다른 사람의 작품 같다. 고유어를 살려 쓴 흔적을 보여주려면 「양파의 시」에도 표현되었어야 한다.
표현 기교도 두 작품이 다르다. 「뜨게 부부 이야기」와 「양파의 시」의 시적 조사법(措辭法)은 완연하게 다르다. 시어를 선택하여 결합하고 배치하는 두 작품의 양상을 비교해 보라. 「양파의 시」에서는 “불면의 밤”, “햇살의 지문”, “욕망의 흰 속살” 등 00의 00 형태가 3번이나 나오는데 「뜨게 부부 이야기」에서는 이런 조사법이 전혀 안 보인다. 신춘문예 당선작으로는 「뜨게 부부 이야기」만 뽑았어야 한다.
다솜 : “거친 것을 참신성으로 덮어주고, 기성시인의 시풍이 많다는 것을 완결성으로 덮어준다”는 위 시인의 말에 공감을 한다. 신춘문예 작품에서도 상당 부분 그러한 결과를 읽었다. 한 작품 안에 지나친 시어를 포진시켜 마치 신선한 이미지를 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심사위원은 우리말 부림에 너무 천착한 듯하다.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천착, 기성시단의 유행에 감염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는 심사평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가람 : 두 작품이 확연히 비교가 된다. 과연 한 사람의 작품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한 작품만 선정해야 한다. 두 작품을 선정한 것은 문제가 된다.「양파의 시」는 관념어가 많다.
<국제신문>
나래 : 의성어, 의태어가 너무 많다. 진짜 필요한 부분이라면 가능하지만, 첩어가 시어로 나올 때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한 땀 한 땀”, “지난날 눈물겨움”, “개다리 밥상위에”, “스르르 색동 한자락” 등 「무지개를 수놓다」에서는 불필요한 시어의 남발이 많다.
다솜 : 첫수가 참신한데 갈수록 주저앉는 느낌이다. 3수가 오히려 작품의 질을 떨어뜨렸다.
사랑 : 80년 대 등단하신 분이 심사한 전형적인 작품이다. 국제신문 당선작품은 심사위원의 시조관과 정서에 아주 잘 맞는 작품이다. 고시조 예찬론을 주장하시는 심사위원의 취향에 상응하는 작품이다.
마음 : 3수 종장 “꽃무늬로 앉는다”로 끝낸 표현은 최악이다. 이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에 묻혀 선정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부산 지역 신문도 지역 사람을 선정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지역사람을 선정하면 동네 신춘문예가 되는 경향이 짙다. 이렇게 작품이 없었나할 정도이다. 되도록이면 자기 지역민을 뽑는 일은 하지 말기를 권한다.
아름 : 형식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시조의 골격에 흐트러짐이 없는 시이기는 하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시가 너무 안이하게 펼쳐져있다.
<농민신문>
나래 : 그나마 농민신문 작품은 낫다. 농민신문다운 표현들, “오랜 침묵”, “달빛 한 점”, “잉걸불” 등의 표현을 통해 농민신문화 하려는 의도를 읽었다. 전체적으로는 토기요지를 표현하기에 바빴던 작품이다.
가람 : 농민신문 응모기준에 보면 농촌과 관련된 작품이라고 하는 언급이 있다. 그러나 당선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농민신문 응모기준에 들지 않는 소재였다는 점이다.
사랑 : 심사평은 정확하다. 신문사의 성격, 흐름을 잘 짚어준 작품이며 심사평에서 진정성을 느꼈다.
다솜 : 한문 투의 표현을 살펴봐야 한다. “토기요지”는 “도요지”로 써도 될 듯 하고, “두드림 문양”, “타날문 토기”는 같은 뜻이다. “등요”도 “가마”라고 써도 된다. 또한 첫수, 둘째 수 종장 음보가 많이 흔들렸다. 읽기가 어색한 부분은 문제이다.
마음 : 진술을 중심으로 습작이 끝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또한 비유가 적절치 않다. 직유가 초보적인 수준이고 직유를 적절히 사용하지도 않았다. “돗자리 두드림 문양 양념처럼 넣고서”나 “반지하 움집 같은 가마 속” 같은 표현이 직유로써 적절하고 신선한가 살펴볼 일이다.
라온 : 진술에 일관된 작품이며 셋째 수 종장이 묘사를 했다. 시조는 낭송을 할 때 걸리면 분명히 장으로써 문제가 있다. 종장 둘째 음보가 다섯 음보로 읽혀 음보가 많이 불안하다.
<동아일보>
나래 : 표현이 그다지 깊어 보이지 않는다. “억새의 목울대로”, “그리움 목에 걸고”, “지상에 새긴 언약” 등은 초보적인 표현이다.
다솜 : 허무하다. 음보는 잘 지키고 있는데 심사평이 오히려 더 문제시 된다. 당선작품과 심사평이 안 맞다. 심사평이 지나치게 오버했다.
라온 : 비유도 있지만 작위적인 작품이다. “이마를 허공에 던져”는 이해도 잘 안 되고, 시적이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부분이다. 그래도 셋째 수에서 서정성을 보여준 부분이 믿음이 간다. 지나치게 서정성에 초점을 두고 선정한 작품이다
마음 : “경전, 언약, 화답, 시간” 등 신춘문예의 정형을 보는 것 같다. 반복적인 패턴을 행하고 있고 응모자가 심사위원을 판단해서 응모하는 경향이 짙은 현상을 읽을 수 있다. 신춘문예 작품들도 보면 요즘 시단에서 쓰는 시어가 많이 나온다. 정형성에 발목 잡혀 반복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풀빵 찍어내듯 작품을 쓰면 안 된다. 이는 응모자가 심사위원들을 분석하고 심사위원의 성향, 취향을 정확히 찾아가며 응모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나래 : 그건 맞다. 나도 그런 과정을 해보았는데 적중했다. 후배가 신춘문예 응모할 때 심사위원을 분석해서 작품을 응모하게 해보았는데 다 맞았다. 이는 응모자가 신춘문예 당선작품, 심사위원의 심시기준을 다 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사랑 : 저도 응모할 때 네 군데를 냈는데 작품 분류한 것이 딱 맞았다.
<매일신문>
마음 :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면 3-4수가 당선된 경우가 많다.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번 신춘문예도 3수가 6곳, 4수가 3곳, 2수는 매일신문 단 1곳이 선정되었고 단수는 아예 없다. 당선작품들을 살펴보면 장별 배행으로 이는 모범적인 배열형식이다. 다른 당선작들은 정격배행인데 매일신문 당선작품은 형식적으로는 신선하다. 이는 심사위원의 눈치를 안 보고 쓴 젊은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은유를 하려면 “코로나, 태양” 등의 은유가 작품에 시어로 표현되지 않아야 한다. “코로나” 같은 과학용어가 시어로 쓰였는데, 흔히 알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각주가 달린 것도 아니라 읽으면서 과학용어 사전을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의학용어, 과학용어를 시조에 도입한 것은 신선하고 좋으나 작품의 상징성과 은유를 재고해봐야 한다.
나래 : 이 작품은 그런 배행형식에 의해 선정된 것 같다.
다솜 : 감각적이다. 또한 종장이 시각적이다. ‘너’는 애인이나 어떤 대상, 아프거나 힘든 대상 같고 그에 대한 전언같은 시다. 흑점의 파동이 뇌하수체에 전해져 앓는 이에 대한 전언의 방식을 취한 점이 좋고 수상소감이 참신하고 진솔하고 의젓했다. 심사평에서는 코로나에 대해서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썼다.
라온 : 시신경의 경계를 꼬집어 준 작품이다. 그러나 한 행 정도는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3수로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완결이 된 것보다는 쓰다 만 느낌이 든다.
사랑 : 간접화법 같은 형식의 시다. 어지럼증의 무언가를 암시한 작품으로 상징과 은유가 돋보인다.
<서울신문>
나래 : 다른 작품보다는 낫다. 그러나 음보가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또한 조사를 빼야 할 곳이 많다.
다솜 : 조사를 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응모자 나이에 비해 우수한 작품이다. 열정이 느껴진다.
라온 : 제목이 좋다.
마음 : 서울신문은 고전적 소재에 집착하는 것 같다. 자주 쓰는 어휘가 많다.
사랑 : 조민희 시인이 등단 시 이변이 일어났다. 전국 시창작하는 분들에게 신드롬이 되었다. 내가 아는 평론가께서 조선일보의 경우를 언급하며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예비 작가들에게 사기를 북돋워준 적이 있다.
<영주일보>
라온 : 자발적인 느낌이 든 작품이지만, 또한 지방적인 느낌이다. 「옥돔」이 「자리젖」의 아류인 느낌이 든다.
나래 : B학점 작품이다. 무난히 읽힌다.
다솜 : 이번 작품이 예년에 비해서 좋다. 영주일보는 지역 특성 상 제주 출신과 외부 출신을 번갈아 선정한다고 들었다 셋째 수 초장 “식용유 한 스푼을 열 올려 튀겨내면” 부분이 시어로서 부적합한 부분이 있다.
자락 : 영주일보는 2008년부터 신춘문예를 선정한 걸로 알고 있는데 한 회만 제외하고 모두 제주 사람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마음 : 아까도 지적한 말이지만, 지방지 신춘문예에서 지역민을 뽑으면 동네 신춘문예임을 자부하는 것일 뿐이다. 투고 작품이 적게끔 스스로 만들면서 투고 작품이 적다고 푸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타 지역 응모자들이 들러리로 설 것을 뻔히 알면서 응모해 주겠는가. 내가 응모자들을 만나면 투고하지 말라고 말리는 신문사가 몇 곳 있다.
<조선일보>
나래 : 소재는 좋지만 직접적인 표현이 많다. “질끈 두른 머리띠에 징소리가 울린다”, “저물녘 도시 소음에 귓불이 시려온다” 등의 표현은 포착에 비해 진술이 약해 보인다.
다솜 : 아주 기가 막힌 소재를 잘 녹이지 못했다. 가장 현장성 있는 작품이지만 거칠어서 놓쳤다. 마지막 종장도 조금 상투적이다. 신문사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단독심사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래 : 젊은 응모자를 뽑다보니까 그런 현상이 있다.
가람 : “봄은 그예 오겠지”는 기성시인 풍의 표현이다.
마음 : 시적 형상화가 안 된다.
자락 : 젊은 사람, 누구에게 배우지 않는 사람을 뽑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점은 득得이 될 수도 있고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중앙일보>
나래 : 서울신문과 중앙일보 작품이 그나마 좋다. 중앙일보 심사 방법이 좋다. 첫수 종장이 아쉽다. “밀리면 더 갈 곳 없는 종점에 서 있었다” 부분이 약하다. 너무 쉽게, 편하게 썼다. 그러나 기획, 스토리가 잘 짜여진 작품이다.
마음 : ‘외통수’는 장기 용어이다. 자충수라고 해야 한다. “마지막 자충수가 비수로 남았을 때”로 해야 맞다. 노숙 이야기가 신선하지 못했고, 자주 다뤄진 노숙자 이야기를 다른 소재를 가지고 접근한 것 같다. “여름옷 입은 채로 한 겨울에 발굴됐다”는 다른 기존 시인의 작품에서 본 표현이다.
자락 : 김샴 시인은 작품을 신선하게 쓴다고 생각했는데 당선작품은 소재 선정에서 의외였다. 본인의 개성과 젊은 사고를 작품화한 것보다는 안정적이고 신춘다운 작품이 선정된 것 같아 좀 아쉬웠다.
사랑 : 정일근 시인은 아카데미 학생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최근에 매년 제자들이 중앙지로 등단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치열하게 창작하는지 알 수 있다. 경남대 청년 아카데미는 창작의 산실이다.
다솜 : 중앙일보 당선작은 만장일치로 뽑은 작품이라고 들었다.
아름 : 작품 전반적으로 어휘들의 선택이 평이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자신이 쓰고자 하는 소재로 작품을 밀고 나가는 힘이 좋았다.
시조의 오늘과 내일
창작을 하면서, 활동을 하면서 시인으로서 느낀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서 발언한 내용이다.
나래 : 어휘가 늘 고민이다. 시조 쓰는 분들이 시를 읽지 않는 점이 매우 아쉽다. 근래에 발표되는 작품들을 보면, 어휘가 너무 평이하다. 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시를 공부하는 습작생들 수준도 못 미친다. 아무래도 시조 쓰는 분들이 최근에 발표되는 시 작품을 잘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신춘문예 또한 어휘가 약해지면 앞으로 창작자들의 어휘가 더욱 약해질 것이다. 시조인이라고 해서 시를 읽지도 않고, 너무 안일하게 창작하는 것 같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시조는 짧아서 더욱 강렬한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을 자주 느낀다. 시집을 많이 읽어야 한다.
또한 음보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 자수율과 음수율만으로 시조를 진단할 수 없다. 초장, 중장이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신춘문예에도 나타나고 있다. 신춘문예 당선작에 대해서는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평론가를 시조단에 모시는 경우,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06년 유성호 평론가가 시조단에 들어온 것은 여러모로 시조단의 큰 힘이 되었다. 장경렬 교수님은 시조평론의 상징적 존재인 것 같다. 그러나 시조 장르가 아닌 작품에 대한 천착에서는 좀 모호하다고 느껴진다.
가람 : 위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랑 : 단시조로도 당선작품이 될 수 있지만 서사가 아니면 안 된다. 서사가 들어있지 않은 이야기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 또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고답적인 작품들이 문제다. 다양한 장르와 클로스오버를 넘어 융복합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조인들은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이 오늘의 시조이다. 유적지를 찾았다면, 과학적 변화를 꿰어야 한다. 현시적인 방법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내면의 상처, 학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시조는 광장에서 서성이는 경우가 많다. 자기 스스로의 창작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광장에서 골방으로 가야할 때다. 자기만의 유배지에서 자기만의 눈을 키우는 일, 우리 시조인들이 해야 할 숙제이다.
라온 : 두 가지로 요약하고 싶다. 종장 부분의 음보가 중요하다. 종장 3자가 5자에 종속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낯선 제목에 대한 기대가 많다. 낯설게 하기 측면에서 제목 부여를 잘 해야 한다. 제목이 바뀌어야 한다. 예전에는 명사형 제목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서술형 제목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바람직하다. 소재에 따라서 제목이 붙여지기도 하지만, 소재가 진부해도 제목으로 인해 다르게 구성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제목찾기도 시 쓰기 못지않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마음 : 등단 이후 시인의 활동을 살펴보아야 한다. 신인이 등단 후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책임있는 제도가 뒤따라주면 좋겠다. 잘 쓸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락 : 긍정적인 측면에서 2014년 신춘문예를 분석해보면, 전국적으로 응모한 흔적을 느낄 수 있고 당선지역도 전국구다. 나이도 1947년생부터 1993년생까지 다양하며, 남녀비율은 4: 6이다. 작품의 길이도 4수가 3편, 3수가 6편 2수가 1편으로 넓은 폭을 선정했다. 이는 젊은이에서부터 나이가 드신 분까지 시조에 대한 애정과 관심과 창작의 열정이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시조단에서도 젊은작가포럼 같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 중간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시조단의 행사는 많지만 단체의 성격이나 행사의 내용이 비슷한 것이 문제이다. 또한 단체의 흐름에 무념무상으로 자리만 빛내는 세미나도 문제다.
젊은작가포럼 형태의 소모임을 추천한다. 좀 못하거나 어눌하거나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젊은 시인들의 결집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는 공식적인 행사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정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면서 그때그때 주제에 따른 포럼을 통해 지면에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시조! 변해야 하고 달라져야 한다.
다솜 : 협회같은 단체에도 말해봤지만 역할은 제한적이다. 우리 시조단에서도 이러한 모임이 필요하다. 단체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끼리라도 세미나를 해 볼 필요성이 있다. 우리의 역할이 약한 시조단에서 오늘 같은 모임이 필요하다.
나래 : 젊은작가포럼 같은 모임이 필요하다. 선배 시인들께서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믿어주면 좋겠다. 젊은 시인을 중심으로 지면 확보를 해서 지속적인 기획을 할 예정이다. 지켜봐주면 좋겠다.
자락 : 시조 전문 잡지가 많지 않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계간지마다 차별성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시조 전문지나 종합지를 보면 목차가 비슷한 점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시조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고 평이한 시조, 고루한 시조를 만들어가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시인, 편집장, 편집주간 등이 눈여겨 살펴야 하고 문제점들은 적재적소에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사랑 : 그런 측면에서 조선일보가 당선자에게 <일사일언>의 지면을 주는 점은 좋다. 지방지는 소개의 지면을 주는 경우도 있다. 애정을 가지고 볼 때 협회차원에서 지면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부산은 평론가가 많고 활동도 적극적이다. 작가회의 중심으로도 잘 구성되어간다. <백년어서원>에서는 지속적으로 세미나를 만들어 간다. 소설, 평론가, 시인 등을 중심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데 시조에서도 이러한 지속가능한 세미나를 이어갔으면 한다.
가람 : 종장의 음보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합평을 해보면, 종장이 안 맞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시조의 현대성을 위하여 한마디 붙인다면 시어의 선택과 묘사를 참신하게 해야 한다. 상투어, 관념어, 한문투의 시어 사용은 현대성과는 자꾸 멀어지는 길이라고 본다.
바다 : 학회나 단체에서 심포지엄을 하면 시조의 현대성만 논의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당연하지만 실제 발표내용을 보면 ‘현대성’이란 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시조 부분에 있어서는 늘 주제가 같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러한 점은 벗어나야 한다. 현대성에 대한 인식, 음보에 대한 인식,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 기존 작품에 대한 분석 등 시조에 대한 폭넓은 담론을 쏟아놓을 장이 필요하다. 고정된 인식을 넘어 진취적인 모임을 추진할 때 시인과 시조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한 차원 높아지리라 믿는다.
아름 : 앞서 이야기한 선생님들의 말씀에 동감한다. 이러한 작업은 우열을 가리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작품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전향성과 실험의지, 작품의 주제들이 앞으로 시조문학 발전에 어떠한 기여도를 남길지 따져보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렇듯 현대시조의 방향성을 살펴보는 일은 현대시조의 문학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본다. 현대시조가 고시조의 이분법화 된 문학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개성을 가지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또는 문학의 특성에 따라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조를 향한 진취적인 자세는 과거 고시조에서 이어온 현대시조가 사회적 흐름을 타고 변용되어온 현대시조 모습을 그려보는 데 본보기가 될 것 같다.
좌담을 마치며
참으로 속엣말을 터놓은 좌담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저녁까지 이어진 특집 좌담에서 보여준 시인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때로는 왁자지껄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펴놓는 생각들은 그동안 신춘문예를 지켜보며 쌓아둔 엄숙한 잣대이리라.
함께 참석한 시인들의 발언이 그냥 바람으로 끝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언제 변할 것이며,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것인지에 초점을 두고 진취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개성있는 젊은시인들의 목소리가 시조의 지평을 넓히는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 발언자는 신춘문예 작품에 대한 가감 없는 생각을 나누기 위해 다음과 같이 순우리말 이름으로 정했다. 가람, 나래, 다솜, 라온, 마음, 바다, 사랑, 아름, 자락
첫댓글 신춘문예 작품 감상 잘하고갑니다
고맙습니다 송태준 선생님 항상 건강
하시고 문운가득 향필하세요
같은 인사를 드립니다,
이강철 고문님, 아림님 감사합니다.
절정에 오른 꽃들과 함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