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의 「금요일 오후 5시 12분」 해설 / 정재훈
금요일 오후 5시 12분
김 언 창밖으로 구름 하나가 한참을 떠 있다가 갔다. 한 점이라고 해야 하나 한 덩어리라고 해야 하나. 어찌 불러도 만족할 수 없는 구름 하나가 한참을 떠 있다가 간 하늘에 새 한 마리 잠깐 보이다가 사라졌다. 새와 새 아닌 것. 구름과 구름 아닌 것. 그리고 나와 나 아닌 것. 이토록 명확한 경계가 또 있을까 싶은 입추도 지난 여름 하늘에 비행운 하나가 그려지고 있다. —계간 《딩아돌하》 2023년 여름호 ........................................................................................................................ 금요일 오후, 서서히 해가 저물어가는 하늘에 구름 하나가 떠 있었다. 누군가는 늘 봐 왔던 익숙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일상에 쫓기며 창밖으로 잠깐 눈길만을 주었을 뿐 더는 내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 구름 또한 ‘자연의 글자’ 중 하나였을 테다. 시인의 눈은 구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마치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낯선 무언가를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도 시인은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의 행간과 여백 틈으로 “잠깐” 나타났던 새의 날갯짓을 놓치지 않았다. 이렇듯 시인은 일정한 틀로 구획된 창문을 넘어 마음속에 이른바 잔영처럼 퍼지는 “구름과 구름 아닌 것”이자, 잠깐이라는 찰나에 스쳐 지나간 “새와 새 아닌 것”이라는 불분명함을 일상으로부터 건져 올린다. “한 점”이든 아니면 “한 덩어리”든 간에 하늘 위의 구름을 “어찌 불러도 만족할 수 없는” 것으로서 바라봤던 시인이라면, 이제 곧 어떠한 해석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문장을 시로 옮겨 담고자 할 것이다. ‘자연의 글자’를 ‘다시 조명하고 새롭게’ 읽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시인이 그간 무수하게 마주했던 어느 ‘문장’의 모습과 꽤 닮아 보였을지도 모른다. 시인만의 창밖이었을 습작의 백지 위에서 “한참”과 “잠깐”의 시간차가 무수히 일어났을 것이며, 해석으로써 “명확한 경계”를 짓기 어려운 문장들의 움직임은 구름처럼 한없이 높았고, 새의 날갯짓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인은 새로운 구름(“비행운”)을 떠올린다. 구름이면서 구름이 아닌 것으로서 떠오른 “비행운”이 창밖 너머로 이어진다. 그렇게 시인은 창문이라는 틀을 뚫고 “나와 나 아닌 것”이라는 존재적 관계를 무한한 것으로 확장시킨다. 시인이 떠올린 “비행운”은 이곳(지상)에 세워진 경계를 명확하게 가로지른다. 언젠가 저 구름도 흐릿하게 지워질 테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나’와 ‘나 이외의 것들’ 사이를 잇는 새로운 선線이다. 이로써 시인이 상상한 새로운 관계는 이곳(지상)에서 지정된 어떠한 관습이나 이전의 관계를 초월한다. 자연의 글자를 다시금 ‘심안’으로 새롭게 써 내려가는 것은 자연 안의 관계(‘나’-구름, ‘나’-새)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나 아닌 나’로서 열리는 무수한 ‘나’)을 열어 놓는 것이기도 하다.
—《문예바다》 2023년 겨울호 -------------------------- 정재훈 /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공역 『‘재일’이라는 근거』(다케다 세이지, 소명출판)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