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과학의 외피를 두른 예언자 / 김동광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녹색평론 170호(2020. 1-2월호)
유발 하라리의 저서가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많이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가히 "유발 하라리 열풍"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미래사회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폭하고 있는 반영입니다.
저는 고작 그의 3부작 중에서 <사피엔스>를 몇 년 전에 읽은 적이 있을뿐,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요번 녹색평론에서 비판적인 주장이 있기에 과열된 기운을 조절할 겸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내용은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남궁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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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국 수백만부가 판매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 인류의 역사를 거대사의 관점에서 다룬 전편과 ‘미래의 역사’라는 도발적 부제가 달린 후편은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 ‘데우스(Deus)’, 즉 신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는 대담한 주장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하라리는 요란하게 과학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정작 그의 과학적 이해는 깊이가 얕고 그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에 작금의 유행은 오래갈 것 같지 않다.
‘빅히스토리’ 유행의 인식적 경향
하라리의 도발적 발언 : “2100년이면 현생인류가 사라질 것”, “인간이 신을 발명할 때 역사는 시작되었고,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는 끝날 것이다.” “호모데우스, 이것이 진화의 다음 단계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빅히스토리’(거대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빌 게이츠와 함께 ‘빅히스토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철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거대사가 빅뱅-항성 탄생-원소의 등장-행성의 형성-생명 출현-인류 진화-문명 발달-산업 부상 등으로 8단계에 거쳐 복잡성을 증대시켜 현재의 인류가 등장하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박학다식한 저자가 일필휘지로 생물학, 물리학, 심리, 종교, 문화, 예술, 역사를 두루 넘나들며 인류 탄생에서 현재에 이르는 역사를 하나의 관점으로 꿰어서 설명한다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다.
그런데 거대사가 위험할 수 있는 것은 자칫 우주와 생명에 하나의 역사, 하나의 내러티브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와 생명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탐구하고 존중하는 대신에, 그 속에 들어 있는 통일성과 일관성을 중심으로 편의적으로 재구성해서 일종의 법칙성을 부여하는 것을 ‘이해’로 간주하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현재의 관점에서 100억년이 넘는 장구한 우주의 역사를 재구성하면서 인간중심적 관점과 현재의 상황에 도달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는 식의 정당화를 부를 수 있다.
오늘날 인간의 활동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지질학적 차원에 이르렀다는 ‘인류세’ 논의가 이루어지는 마당에 거대사는 이러한 성찰적 관점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유발 하라리의 두 권의 책은 이러한 거대사 담론이 인류의 탄생에 대한 설명을 기반으로 인류의 개조 내지는 증강의 필연성으로 이어지는 인식적 경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2004), 닉 보스트롬의 《슈퍼인텔리전스》(2014),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2015)는 다른 듯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커즈와일은 미래사회의 중요한 진전을 예측하는 시나리오를 여러 차례 발표하면서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시점을 ‘특이점’이라 불렀고, 그 시기를 대략 2045년으로 점찍었다.
닉은 ‘특이점’ 대신 좀 더 정확한 용어로 ‘지능 대확산’, ‘지능 폭발’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기계가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가질 수 있는 시기를 뜻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거대사라는 내러티브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칭송하고 그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특히 생명공학, 인공지능, 신경과학 같은 신흥 기술에서 이루어진 진전들을 중심에 놓고, 사회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전형적인 기술중심주의 또는 기술결정론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에 시작해서 2003년에 물리적 지도 작성을 완성한 ‘게놈 프로젝트(인간유전체계획)’이 그후 10년이 지나도록 무병장수라는 애초의 장밋빛 약속을 실현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들 예언서들은 생명공학 대신 인공지능을 주된 수사적 자원으로 삼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의 긴 침체기 이후로, 최근 사람의 신경망을 흉내 내는 인공신경망과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 같은 기술적 진전이 이루어지면서 이 분야는 기술중심 예측서의 중요한 논거를 제공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 역시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체 합성을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육체를 이탈해서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전환하는 세 번째 방법에 역점을 둔다. 《호모데우스》의 결론에서 ‘데이터교(敎)’라는 신흥종교를 제기한다.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종교라면 말이 된다. (최근 목사 전광훈은 하느님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 종교의 교리는 진보와 정복이다.
무한성장 경제와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의 결합
그는 《사피엔스》에서 죽음을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인류의 모든 문제 중에서 가장 성가시고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면서 죽음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수메르 길가메시 신화에서 이름을 딴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주창한다.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길가메시를 패배주의로 규정하고, 죽음은 과학자들에게 기술적 문제라고 한다. “사람이 죽는 것은 신이 그렇게 정해 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심근경색, 암, 감염과 같은 다양한 기술적 실패 때문이다. ... (과학자들은) 신약, 혁명적 치료법, 인공장기를 개발하여 언젠가는 죽음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신자유주의와 생명공학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테크노사이언스가 긴밀히 결합하는 근거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우리가 미지의 세계로 빠르게 돌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브레이크를 밟는다면 경제가 무너지고, 그와 함께 사회도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무한성장에 기반한 경제에는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불멸, 행복, 신성은 이러한 프로젝트로 안성맞춤이다.”(《호모데우스》80-81쪽)
이 과정에서 선진국 “엘리트층은 영원한 젊음과 신 같은 힘에 접근하고, 개도국 수십억명은 계속 가난, 질병, 폭력에 시달릴 것이다. 궁전에 사는 사람들의 의제는 언제나 판자집에 사는 사람과 달랐고, 21세기도 마찬가지이다.”( 《호모데우스》 86-87쪽)
그의 글은 얼핏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사회적으로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커즈와일의 예측을 바탕으로 2050년경에는 거리에서 옆을 지나치는 누군가가 이미 불멸의 존재가 되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적어도 뉴욕 월스트리트나 5번가라면 그럴 확률이 있다.” 그라 말하는 미래는 소수 엘리트들의 미래이다.
알고리즘과 데이터 숭배
유발 하라리는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에서 폭넓은 지식으로 수많은 분야와 시대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수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의 과학적 논거는 매우 취약하며,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의 미래는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
생물학에서 노화와 죽음은 중요한 연구주제지만 아직 뚜렷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죽음은 생명이 유성생식(有性生殖)을 획득하면서 치르는 비용의 일부라고 보기도 한다. 인공지능도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016년 대학에서 ‘왓슨’을 도입해서 화제가 되었지만, 2018년 폐암진단에서 인간과 일치되는 비율은 17.8%에 불과했다.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도 온갖 편견과 가짜뉴스, 인종차별과 여성폄하로 왜곡되어 있다.
알고리즘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자동차 내비, 인공지능 비서, 작가, 의사 등 상당 부분 알고리즘에 맡겨지고 있다. 그러나 날로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알고리즘에게 중요한 의사결정을 과도하게 위임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최근 과학기술사회학에서 ‘알고리즘의 거버넌스 수립’이 중요한 연구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편향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인류사회의 노력은 장기적으로 수행할 프로젝트이다. 2007년 국내에서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주제로 일반시민이 참여해서 윤리적. 사회적 함의를 논하는 시민합의회의가 열린 적이 있다. 굳이 동물장기를 이식해서 사는 것이 행복인가?, 초고령사회에서 이종이식의 천문학적 연구비와 의료비용을 지우는 것이 옳은가?라는 사회적 정의까지 제기했다.
하물며 죽음을 극복하고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프로젝트를 논하는 것이 과연 가치있는 일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