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김밥의 족보
어릴 적 소풍날을 앞두고 설렘이 가득했다. 맛있는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고 학교 밖을 나가는 것이 마냥 좋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김밥을 쌀 때면 군침을 꼴딱 삼키며 썰다 남은 김밥 꼬투리를 먹으며 마냥 행복했다.
이젠 다양한 김밥을 김밥전문점이나 분식집에서 사 먹을 수 있어 간편하다. 모두가 즐기는 김밥은 언제 어디서 발달한 음식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김밥의 원조를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초밥에서 찾기도 하지만 근거가 분명치 않은 추측이다. 하지만 김밥에 일본의 밑반찬인 노란 단무지가 들어가니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김밥의 기원을 알려면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를 먼저 살펴보면 된다.단무지,계란,시금치,맛살,햄,우엉,쇠고기나 멸치등이다.재료 중 맛살이나 햄은1970~1980년대에 들어갔다. 색색의 재료를 고넣어 돌돌 말아 잘라 접시에 담은 김밥 한 접시는 꽃처럼 예뻤다.
일본에서 김에다 밥을 깔고 채소를 얹어 원통형으로 돌돌 만 김초밥 노리마끼가 등장한 것은 1829년 무렵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순조 무렵이다.
우리나라도 그때 몇가지 형태의 김밥이 있었다.김으로 둥글게 밥을 말고 반찬은 따로 먹는 충무김밥,정월대보름에 오곡밥을 김에 싸서 먹는 복쌈이다.
김밥을 먹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다. 다양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가 있는 중국에서도
김과 산낙지는 즐기지 않는다.
1970년대 미국에 간호사로 취업이민을 간 이모에게 보냈던 먹거리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김이었다. 김을 먹는 동양인 아가씨를 보고 어떻게 까만 종이를 먹냐고? 놀란 눈으로 지켜보더라던 미국인 이야기를 듣고 오히려 깔깔 웃었던 기억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에 김을 채취하는 밭 '태전'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고,성종 때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에 다녀간 동월은 조선의 해산물로 곤포(미역)과 해의(김)이 유명하다는 글을 남겼다.
광해군 때 허균 역시<도문대작>에서 " 해의(김)는 남해에서 나는데 좋기로는 동해 사람들이 주먹으로 짜서 말린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예전 강릉 정동진,안인 근처에서 채취한 돌김이 임금님께 보낸 진상품이었으니 틀린 내용이 아니라 본다.
김을 지금과 같은 형태인 종이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숙종 때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나온다. "해의(바다 해,옷 의)라는 것이 있는데 바위에 붙어 자라는 이끼다. 색깔은 보라색인데 따서 종이처럼 펴서 만든다"고 기록했다.
순조 때 홍석모가 우리 풍속을 기록한 책 <동국세시기>에도 정월대보름에 채소나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 것을 복쌈이라 부른다고 했다.
일본의 김초밥 노리마끼가 등장한 것은 1829년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서다. 비슷한 시기인 순조 때 우리도 김밥을 먹었으니 한ㆍ일 두 나라는 각국의 형편에 따라 발전해 오면서 영향을 주고 받았을 거라 짐작한다.
김밥은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롤이라는 누드김밥이 되었다. 1970년대 LA 일식집에서 김 비린내를 싫어하는 미국사람들을 위해 개발한 것이다.
그나저나 도서관 지하식당에서 한 줄에 2500원 하던
보통 김밥 한 줄이 4500원으로 올라 깜짝 놀랐다. 코로나로 그동안 식당운영이 어려웠다고 한다.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는 말에 내 마음도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