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봉 시인의 시-「갈퀴넝쿨꽃과 붉은 녹의 관계」
예술가들에게 대상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과 탐구는 새로운 기법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例가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빛에 대한 탐구 기법이다. 프랑스의 화가 마네, 모네 등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서 태양의 빛이 던져주는 강한 인상을 밝고 단편적인 색채와 빠른 붓질로 표현하였다. 그들의 뒤를 이어 조르주 쇠라는 1886년 그의 유명한 그림 <그랑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작은 색채의 점으로 찍어서 표현하는 새로운 화법인 점묘법點描法을 창안했다. 그들은 1704년 뉴턴이 발견한 빛의 입자성粒子性을 (빛은 운동하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광학Opticks의 이론) 예술적인 직관력에 의해 표현한 것이다.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은 시간과 공간은 아주 작은 불연속적인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대의 물리학의 중력에 대한 양자量子 이론과도 합치되어서 과학적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이 우주의 물리적인 것들이 불연속적인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대물리학의 이론은 아날로그의 ‘흐름’과 대립되는 디지털의 ‘불연속’ 이론과도 연결된다.
현대시에서도 대상에 대한 시인의 주관적인 ‘견해, 정서, 상상’ 이전의 ‘객관적인 관찰’이 중시된다. 배한봉 시인의 「갈퀴넝쿨꽃과 붉은 녹의 관계」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의 시가 대상에 대한 관찰에 매우 충실한 사유思惟의 시이기 때문이다.
언덕에 선
갈퀴넝쿨나무의 배후에는 하늘이 있다
하늘은 갈퀴넝쿨나무의 여백
그 푸른 여백에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 하나 점(点)처럼 찍혀 있다
하늘을 배후에 둔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를 보니
우리집 푸른 철대문에 화인처럼 찍힌 붉은 녹이 생각난다
페인트를 칠하지만
녹의 배후인 세월을 지울 수는 없었다
푸른 철대문은 붉은 녹의 여백이 아니라 삭히고 뚫어야 할 어둠
갈퀴넝쿨꽃처럼 저도 푸른 하늘을 여백 삼고 싶다는 것인지
덧칠한 페인트를 뚫고 다시 붉게 번진다
철대문의 내심(內心)에는 의심이 있고
의심 속에는 그 의심을 갉아 먹으며 자라는 녹이 숨어 있다
철대문에게 녹은 지겹고 끔찍하게 찾아오는 병(病)과 같지만
녹에게 철대문은 필생의 힘을 다해 뚫어야 할 현실의 장벽이 아니겠나
붉은 녹이 뚫어 놓은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들고
언덕이 보인다
거기 갈퀴넝쿨나무의 배후에는 하늘이 있다
맑고 푸른 여백에 화인처럼 찍힌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이
세상을 흔들어주고 있다. 우리는
푸른 철대문에 핀 꽃을 녹이라 불렀던 것은 아닐까
아니, 대문 없는 세상을 꿈꾸는
어떤 존재의 힘을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닐까
------「갈퀴넝쿨꽃과 붉은 녹의 관계」전문
그의 눈은 카메라가 되어서 언덕 위에 서 있는 갈퀴넝쿨나무와 배후의 푸른 하늘을 찍어서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 하늘을 갈퀴넝쿨나무의 여백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덕에 선/갈퀴넝쿨나무의 배후에는 하늘이 있다/하늘은 갈퀴넝쿨나무의 여백/그 푸른 여백에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 하나 점(点)처럼 찍혀 있다>라고,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그와 동시에 장면을 바꾸어서 시의 대상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푸른 철대문에 화인火印처럼 박혀있는 붉은 녹으로 옮겨 간다. 이 장면 이동은 푸른 하늘과 푸른 철대문, 갈퀴넝쿨의 붉은 꽃과 철대문의 붉은 녹이 서로 연상관계聯想關係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시의 폭을 확대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녹과 철대문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삶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고, 인공과 자연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들의 정신이 지향하여야 할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을 그는<하늘을 배후에 둔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를 보니/우리집 푸른 철대문에 화인처럼 찍힌 붉은 녹이 생각난다/페인트를 칠하지만/녹의 배후인 세월을 지울 수는 없었다/푸른 철대문은 붉은 녹의 여백이 아니라 삭히고 뚫어야 할 어둠/갈퀴넝쿨꽃처럼 저도 푸른 하늘을 여백 삼고 싶다는 것인지/덧칠한 페인트를 뚫고 다시 붉게 번진다>라고 서술한다. 그리고 <철대문에게 녹은 지겹고 끔찍하게 찾아오는 병(病)과 같지만/녹에게 철대문은 필생의 힘을 다해 뚫어야 할 현실의 장벽이 아니겠나>라고, 그의 사유는 독자들을 향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이 철대문과 녹의 관계는 인간의 몸에 붙어서 인간의 몸을 끝내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마는 암세포와 인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붉은 녹이 뚫어 놓은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들고/언덕이 보인다/거기 갈퀴넝쿨나무의 배후에는 하늘이 있다/맑고 푸른 여백에 화인처럼 찍힌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이/세상을 흔들어주고 있다. 우리는/푸른 철대문에 핀 꽃을 녹이라 불렀던 것은 아닐까/아니, 대문 없는 세상을 꿈꾸는/어떤 존재의 힘을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닐까>라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환하게 뚫리는 시적 공간과 의미를 만난다. 그와 함께 독자들은 시의 의미 속으로 들어가서 암세포도 인간의 몸에 피어난 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인간이 없는 순수한 자연을 꿈꾸는 ‘어떤 존재의 힘’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상상은 형이상학적인 철학세계의 문을 여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대상에 대한 시인의 관찰과 사유와 상상은 논리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멀지만 철학적 사유의 세계를 여는 계기를 만드는 데는 부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인의 사유는 철학자나 과학자처럼 논리적인 무모순성無矛盾性에서 자유스럽지는 못하더라도 감성과 상상의 힘으로 능히 논리의 세계를 극복해 나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런 생각은 승계호 교수의 (미국 택사스대 교수) 공개강연 (2007,6,1 금융회관 강당)「과학과 시의 갈등」의 주제와도 근접된다. 그는 서양철학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철학에서 시적방법은 과학의 질시에 의해서 저지당했고, 결국 현대 철학에서는 소멸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현대철학은 분석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좁은 공간 속에 갇히고 말았는데, 그 분석적 방법(변증술적 방법)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쉽고 값싼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철학에서 시적인 방법을 재생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편이 좋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추구하는 철학은 시적인 재능을 과학적인 이해와 결합시키는 것으로, 그것은 현대철학이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대상에 대한 시인의 객관적 관찰(경험)을 바탕으로 철학적인 사유의 세계를 열어주는 배한봉 시인의 시,「갈퀴넝쿨꽃과 붉은 녹의 관계」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의 시와 철학의 만남 ’이라는 개성적인 기법을 제시한 시로 인식된다.
* 배한봉: 1998년 <현대시>에 등단
[출처] 배한봉 시인의 시-「갈퀴넝쿨꽃과 붉은 녹의 관계」 (문예샘터) | 작성자 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