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영
1일 ·
활동 중
최봉영
1일 ·
# 묻따풀 학당
아래에 있는 글은 이기상 선생이 페북에 올린 글이다. 공유가 되지 않는 글이어서 통째로 가져다 옮겼다.
이십 여년 전에 나와 이기상 선생이 만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우리는 뜻으로 하나가 되어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을 만들었고, <우리말 철학사전>을 펴냈고, 인문학 학술집지 <사이>를 발행했다. 모두 옛일이 되고 말았지만 처음에 이루고자 했던 그 뜻은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고맙습니다.
《이기상 선생이 쓴 글》
사색의 꼭지: 최봉영 선생의 <묻따풀학당>과 <한국말 말차림법>
11월 20일 아침 7시 10분 손전화가 울린다. “아니 이 시간에 누가 웬일이지?!” 최봉영 선생이었다. 내가 방금 올린 페북 글을 보며 통화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전화했다는 최선생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린다. 11월 25일 토요일 자기가 하는 <묻따풀 학당 바탕차림 공부모임>에 올 수 있는지 묻는다. 최근에 낸 책 <한국말 말차림법>도 전해주고 싶어서 전화했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얼굴을 본 지가 꽤 돼서 한번 만나고 싶던 차였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우리말의 뜻새김”과 관련된 주제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출간한 책이 무척 궁금하던 차이었다. 흔쾌히 가겠다고 대답하고 나도 모르게 그날을 은근히 기다리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최봉영 선생과의 지난 인연의 순간과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국말 말차림법
11월 25일 최봉영 선생의 <묻따풀 학당 바탕차림 공부모임>에 참석했다. 마치 “혁명”을 모의하는 엄숙한 모임 같은 느낌이 들게하는 정말로 아주 진지한 공부모임이었다. 쉬는 시간도 없이 3시간 30분을 강행한 “우리말 공부” 연구모임이었다. 최봉영 선생의 발표와 발표내용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진 참석자의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이 오고가는 “묻고 따지며 풀어가는” 공부모임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3시간 반을 꼼짝하지 않고 귀기울여 들었다. 하나하나의 내용들이 정말로 “혁명적인 선언들”이었다.
강의와 토론이 끝나고 저자의 싸인이 담긴 최봉영 선생의 새책을 받았다. 『한국말 말차림법』(묻따풀학당, 2023)이었다. 표지에 “한국말이 가진 힘을 또렷이 드러낸 완전히 새로운 한국말 문법!”이라고 강조되어 있었다. 강의가 끝나고 최봉영 선생과 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그야말로 10년만에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게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그 다음날부터 모든 것 재쳐놓고 책읽기에 몰두했다. 감탄과 감탄을 거듭해가며 사흘을 공부해서 다 읽었다. 그리고 읽은 것을 생각으로 정리하며 또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글로 독후감을 쓴다.
정말로 대단한 작품이다. 벌써 다음 책들이 기다려진다. 이 첫권의 두배가 되는 분량의 책이 서너 권은 더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최봉영 선생이 정년퇴임 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연구결과물들이다. 어느 누구도 감히 엄두도 못한 일을 최봉영 선생 혼자서 묵묵히 해낸 것이다. 그 대단한 노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1929년 출간된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이 생각난다. 그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말모이>가 떠오른다. 우리말을 지키고 제대로 정리해서 살려내는 것이 목숨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런 시대적 사명을 다 망각하고 너무나 모든 것을 당연시하며 시류에 휩쓸려 우리말의 고마움과 “위대함”을 잊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내 주목을 끈 것은 우리의 한국어는 “글” 이전에 “말”이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최봉영 선생은 “한글”이라는 단어에 얽매이지 말고 “말”을 강조하는 “한국말”을 고집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한국말 말차림법>이다. 그 흔한 단어인 “문법(文法)”을 사용하길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이 떠오른 것이다. 우리 “한국말”은 “글”이나 “문자”가 아니라 “말”로 시작했고 그렇게 몇 천년을 이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본과 보기 문화이론>(지식산업사 2003)이라는 책까지 펴냈을 정도면 최현배 선생을 좇아서 “말본”이라는 낱말을 씀직도 한데 그것도 피하고 “말차림법”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거기에는 분명 속깊은 이유가 있으리라. 그것은 <한국말 말차림법>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가 있다.
우선은 왜 “글”보다 “말”을 선호하고 있는지 그 까닭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20세기 철학의 형세와도 깊이 연관된다. 20세기 철학에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언어론적 전환>이라고 이름한다. 그것을 주도한 사람은 비트겐슈타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말의 뜻은 그 사용이나 활용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기에서부터 “화용론(Pragmatik)”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다. 말과 언어의 근원과 그 활동의 마당을 글과 명제, 문장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그 말이 사용되고 있는 현장인 일상의 “생활세계”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말의 뜻을 굳어져버린 글과 문장에서 찾지 말고 말이 노닐고 있는 놀이의 현장인 일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말을 버리고 글을 택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민족과 국가들은 다 자기들의 “모국어”를 빼앗겨 잃어버리고 남의 말로 공부하며 생활하는 식민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구위에 몇천 개의 다양한 언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숫자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하지 않는가! 유럽에서 유학하던 시절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들이 프랑스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부러워했다. 그랬더니 당사자인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이 “너는 네 모국어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아느냐! 우리는 언어를 빼앗겨 남의 언어를 배우게 되면서부터 민족성도 잃어버린 얼빠진 사람들이 되었다.” 지금 K-Pop을 비롯한 한국문화가 일으키는 한류열풍이 지구촌에 불어닥치면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말을 배우려고 아우성 아닌가!
지난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되돌아볼 때 내가 싫어한 과목 가운데 첫째가 “국어”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전혀 이해도 안 되고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그 “문법”이 지긋지긋했다. 영어는 영어를 배워 영어책들을 읽고 외국인들 만나 말이라도 할 수 있으려면 좋든 싫든 배워야 하는데, 우리말 “문법”은 실제 말하고 읽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도 않는 그저 시험을 위한 공부였다는 기억이다. 이것은 최봉영 선생이 잘 지적했듯이 한국말에 전혀 맞지 않는 영국말의 문법용어를 가지고 억지 춘향식으로 뒤집어 씨워버린 형국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일부 국어학자들이 그것을 바꿔보려고 부단히도 애썼지만 서양물 먹은 학자들이 판을 치는 국어학계이다 보니 변화가 불가능했다. 몇 개의 파벌로 나뉘어 하던 쌈박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나 역시 무척 애를 썼다. 최봉영 선생과 같이 한 운동이 바로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우학모)이었다. 2001년 시작할 당시에는 전국의 200여 학자들이 참석해서 여론의 주목도 받았다. 나는 여기저기서 인터뷰하자는 요청이 들어와서 몹시 바빴다. “한글학회”에 소속된 몇 사람이 교수들이었는데, 그분들은 대놓고 “이 모임은 우리가 주도하며 만들었어야 하는데 부끄럽다!”고 했다. 덕분에 나도 한글학회에 가입하게 되고 글도 써서 발표하기도 하고 한글학회에 가서 강연도 하게 되었다. “우리말 지킴이”로 뽑히기도 했다.
최봉영 선생은 그쪽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연구도 하고 관련 대학에서 연구도 하고 학위도 취득했기 때문에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잘 안다.
<한국말의 힘을 또렷이 드러낸, 새로운 문법을 차려내며>
최봉영 선생은 머리말에서 이 책을 내기까지 그가 겪은 앓음알이와 알음앓이를 몇 가지로 엮어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제목을 통해 그의 “물음, 뿔금, 풀음”으로 이어지는 앓음과 앎의 발걸음들을 뒤밟아 갈 수 있다.
“내가 겪은 학교 교육 속 한국말” => “학문의 길에서 말의 바탕에 눈뜨다” => “한국문화,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사람과 한국말” => “서양말·일본말 문법에 기대지 않고, 한국사람들의 머릿속에 차려진 한국말을 제대로 풀어내다”.
글 읽는이들은 앓음 없이 제대로 익은 알찬 열매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그의 “알음앓이”의 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참석한 <묻따풀 공부모임>의 주제는 “사람은 어떻게 말이 뜻을 갖게 만드는가?”였다. 최선생은 “말”과 “낱말”의 관계를 “뜻을 갖게 만드는” 사람의 “의미부여” 행위와 연관지어 한국사람이 배우고 쓰는 “낱말의 갈래”를 조목조목 풀어나갔다.
우리가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낱말들을 예로 들어서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니 이해가 쉬워 소통과 공감이 절로 된다. 모든 낱말들이 어려운 학술 개념들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쓰는 토박이 우리말들이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와 같은 교육현장에서 <국어>를 이런 식으로 가르쳤다면 학생들이 재미를 느끼며 즐겨 배웠을 것같다.
“낱말의 갈래”를 낱말의 뿌리, 짜임, 바탕, 가암[감], 내력 다섯 가지로 풀었다. 그리고 개개의 항목을 또 두세 가지로 나눠 설명하였다. 그 개념들이 얼마나 감칠나는 우리말인지 맛보기 위해 열거해보면 아래와 같다.
“터박이 낱말, 뜨내기 낱말; 짜임새 낱말, 덩어리 낱말; 알뜰한 낱말, 얼치기 낱말, 껍데기 낱말; 밑가암 낱말, 줄임말 낱말; 생겨난 낱말, 들여온 낱말, 뻐꾸기 낱말” 등등이 설명에 등장하는 개념 용어들이다.
그야말로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강의와 글쓰기였다.
오늘은 <한국말 말차림법>을 맛보기 차원에서 소개했다. 앞으로 몇 차례 책을 읽으며 느낀 소감을 적어가며 책의 시대사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써보려고 한다.
긔림: 최봉영 <한국말 말차림법>, 최봉영 저자의 싸인, 최현배 <우리말본> 1929,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창립총회 2001년, 최봉영 <낱말의 갈래>, <강의하는 최봉영 선생>
(2023.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