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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첩 1 | 박채란
세계와 인간을 향한 끝없는 질문
▶ 작가로서 좋은 청소년 문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문학이란, (더 나아가 예술이란)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 본연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답을 제시하는 문학은, 작가의 세계 안에서 이미 완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문학은 완성도가 높을 수는 있지만 읽는 사람의 삶을 흔들지는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좋은 문학은, 독자의 본질을 꿰뚫는 명확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순간,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고, 그 질문에 독자 스스로 답을 하는 과정에서, 독자는 새롭게 생겨난 세계를 완성시킵니다. 좋은 작품은 이처럼, 작품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독자에게 자기세계를 완성할 기회를 내어 줍니다. 마치 훌륭한 교사가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청소년기는 너무나 당연히도 수많은 질문에 봉착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세계는 그들의 질문을 억누르고 마땅한 요구를 묵살합니다. 저는 청소년문학이 청소년들에게 바로 그 ‘질문의 온당함’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와 인간을 향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문학의 태도를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이 세계를 향해 ‘질문해도 된다.’라는 것을 배우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질문은 어디서 비롯될까요? 언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게 될까요? 질문은 선언이 아닙니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궁금하다는 뜻입니다. 의례적으로 던지는 질문, 궁금하지 않은데 던지는 질문은 누구나 쉽게 알아챕니다. 그러므로 좋은 질문은 오직 상대방의 삶의 맥락 가운데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맥락 안에서 묻는다는 것은 내 삶의 문맥이 만들어 내는 답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삶을 향해 나의 귀를, 몸을, 마음을 기울일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즉, 좋은 청소년문학이란, 어른의 시각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다가간 순간에 찾아온 질문을 기반으로 한 문학이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외적으로는 이 시대 청소년들의 삶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고 내적으로는 작가가 자신의 청소년기를 향해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채란
2004년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 『국경 없는 마을』로 작가활동을 시작하였다. 『까매서 안 더워?』, 『오십 번은 너무해』, 『우리가 모르는 사이』 등의 동화책을 썼고 청소년소설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를 썼다. 어린이책 기획 집필 그룹 ‘날개 달린 연필’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어린이 청소년들과 만나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작가 수첩 2 | 이송현
오늘도, 내일도 재미있는 이야기
▶ 작품을 쓸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늘 고민이 많다. 이래야 더 재밌을까, 저래야 더 괜찮은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작품의 주제를 정하고 나면 바로 등장인물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편이다. 나에게 작품을 쓸 때 최우선 순위는 ‘캐릭터’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엑스트라든,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통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여담이지만 여행 스타일에서도 이런 징크스(?)는 드러난다. 누군가는 자연과 경치를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하는데, 나는 여행을 가서도 어디를 다녀왔는지 장소에 관한 기억보다는 만난 사람들이 가슴에 꽉 차 있다. 본 적도 없는 낯선 이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심지어 카페에 앉아서 옆 테이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엿듣기도 한다. 그러다가 같이 웃는 바람에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무안함은 잠시, 결국엔 생면부지 사람들과 합석하는 일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사람, 인간에 대한 관심은 작품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작품 속 캐릭터에 애정이 생기지 않으면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기가 무척이나 곤혹스럽다. 반면에 캐릭터와 손발이 척척 맞으면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청소년 소설 『내 청춘, 시속 370km』(사계절출판사, 2011)를 쓸 때가 그랬다. 주인공 동준이 매사냥에 미친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과 심정을 그리기란 만만치 않았다. 이야기의 중심으로 잡은 우리의 전통 매사냥이 쉽지 않은 소재인 데다가 나 스스로도 전통 매사냥을 직접적으로 접해 본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마냥 허무맹랑하게 상상력에만 의존해서 작품을 그릴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매사냥에만 집중하자니, 소설이 아닌 학술논문이 될 것 같았고 매사냥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그리자니, 소설의 중심 소재로 잡아 놓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은 전통 매사냥을 가운데에 두고 주인공 동준이와 매사냥 전수자인 아버지의 행동과 심리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진행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인물의 대사 하나에 매사냥 관련 설명을 녹여내는 데에 애를 먹었다. 냉철하게 자료를 살펴봐야 하는 장면은 낮에 썼고 동준과 아버지, 동준과 어머니, 혹은 친구인 다문화 가정의 인물인 똠양꿍의 감정 변화 신은 주로 밤에 작업을 했다. 심장이 말랑말랑해지는 밤 시간에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인물들의 대사를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외쳐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직업이 배우도 아닌데 혼자 발연기 아닌 발연기를 했던 셈이다. 그러다가 든 생각이 ‘이러다가 돌겠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작품 속 인물들은 내가 소리 내어 대사를 치거나 울부짖지 않아도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모든 사건이 기다렸다는 듯이 적재적소에 나타났다.
이송현
제5회 마해송문학상, 2010 〈조선일보〉 신춘문예(동시 당선), 제9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제13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았다. 아동과 청소년은 물론 그들의 부모들도 함께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작품을 쓰는 것이 소원이다. 지은 작품으로 『내청춘, 시속 370km』, 『슈퍼 아이돌 오두리』, 『아빠가 나타났다!』, 『열두 살 백용기의 게임회사 정복기』, 『호주머니 속 알사탕』, 『엄마 배터리』, 『지구 최강 꽃미남이 되고 싶어』 등이 있다.
작가 수첩 3 | 이숙현
나에게 말 걸기
▶ 작품을 쓸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이건 내가 먼저 얘기할게. 쳇, 어디 이야기해 보시지. 글 쓸 때마다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거든. 어떤 글을 쓰건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꾸만 챙기는 것이 있어. 나를 막 쥐어짜면서 죽을 둥 살 둥 매달리게 되는 것. 그만 뜸들이고 말해 주시지, 대체 그게 뭔지. 단어. 문장. 아니, 문장과 문장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 보이지 않는 흐름. 무슨 말이야, 쉽게 이야기 해 봐.
음, 그러니까 읽는 이는 눈에 보이는 글자를 징검다리 삼아 단어와 단어를 건너고 문장과 문장을 건너면서 이야기를 마음에 들이잖아? 그런데 이야기를 엮어 가는 작가 입장에서는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행간(行間)도 마음 쓰게 된다는 거지. 어떤 문장에는 있지만 어떤 문장에는 없어. 아니, 뭐가 있고 뭐가 없다는 거야? 글쎄,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보이는 글 틈 사이사이로 미꾸라지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뭔가가 있거든. 찰진 문장은 쫀쫀한 뭔가가 생겨나.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달라붙지. 그렇게 읽는 이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그래, 맞아. 이야기에 딱 맞춤한 단어와 문장들이라면 그리고 이야기에 꼭 맞는 리듬과 호흡을 가진 글이라면 엄청난 자기장(磁氣場)이 생겨나. 근데 문제는 이게 참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거야. 알고 있는 만큼 써진다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 끙끙거리며 애써도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어. 도무지 이야기의 힘이 살아나지 않는 것만 같을 땐 얼마나 괴로운지 몰라. 게다가 살뜰히 쟁여 둔 단어와 문장들이 뜻밖의 말뜻으로 변해 버릴 때는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우주의 기운’을 부를 수 없는 이 현실이 참담해. 이 시대에 태어난, 아무 죄 없는, 선량한 닭들은 얼마나 억울할까(‘내가 이러려고 닭으로 태어났나, 자괴감이 든다.’고 꼬끼오, 꼬꼬꼬—소리치고 있을 지도…….). 또, 얼마 전까지 저마다 자기 삶을 잘 살고 있었을, 수많은 평범한 순실 씨들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실제로 지역 내 최순실 교장 선생님의 마음은 요즘 하루하루 괴롭기 짝이 없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어.
하고픈 이야기가 생겨나면 주섬주섬 문장을 모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몇 번이나 쓰고 지우며 다듬어 가는 문장. 나만의 문체를 바라. 마음을 움직이는 힘, 촘촘하게 엮어 내는 이야기를 쓰고파. 그런 말 할 시간에 한 문장이라도 더 쓰시지. 맞아, 일단 쓰고 볼 일! 쓰고 또 쓰면서, 벼리고 벼릴 일이야. 쓰지 않으면 내일은 없으니까.
이숙현
경북 구미, 오래된 아파트 한가운데 이야기 숲 옆구리에 끼고 있는 곳, 금오유치원에서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소중한 인연 엮으며 이야기 짓고 지냅니다. 월간 〈어린이와 문학〉을 통해 동화 마당에 나왔으며, 지은 책으로 『초코칩 쿠키, 안녕』, 『선생님도 한번 봐 봐요』, 『날마다 달마다 신나는 책놀이터』(공저) 등이 있습니다.
작가 수첩 4 | 이장근
뒤돌아보게 하는 사람이 좋다
▶ 작품을 쓸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저를 움직이게 하는 동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자세를 고쳐 앉게 됩니다. 시를 읽는 동안 몸이 꿈틀꿈틀합니다. 그건 시인이 움직일 때 시의 대상을 발견했거나, 움직이면서 시를 썼기 때문일 겁니다. 몸으로 쓴 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면서 가장 닮고 싶은 시인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움직이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움직일 수 없으면 움직이는 것에 몸을 싣기도 합니다. 제가 시와 멀어질 때는 대부분 무슨 일로 멈춰 있을 때입니다. 그럼 그 상황에서 벗어나 일단 무작정 걷습니다. 걸으면서 보고 듣고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시를 읽기도 합니다. 달리는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싣기도 합니다. 그럼 고여 있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제가 움직임이 있는 대상에 관심이 많은 것도 이런 습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한테 “뒤돌아보게 하는 사람이 좋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동시도 같습니다. 동시집을 읽다가 귀퉁이를 접어 두는 건 뒤돌아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귀퉁이를 접어 두는 경우는 진심이 느껴지는 동시를 발견했을 때입니다. 표현은 조금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아니 표현이 너무 근사한 작품은 경계하게 됩니다. 진심이 없는 것을 표현으로 감춘 것 같은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표현이 과한 작품은 처음에는 눈이 크게 떠지지만 금방 시큰둥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동시를 완성한 후 표현이 너무 과하지 않은지 검토를 합니다. 과하면 저 자신을 의심합니다. 대부분 진심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한동안 제가 쓰는 시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한국글쓰기연구회에서 엮은 『엄마의 런닝구』(보리, 1995)라는 책을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시를 쓸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하루 한 편씩 무엇이라도 쓰려고 애를 씁니다. 시가 아닐 때는 낙서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그 밑에 짧은 글을 쓴다거나, 사진을 찍고 감상을 쓰기도 합니다. 시가 아닌 글이지만 그동안 쓴 것을 읽다 보면 시가 보이는 글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를 쓰는 일은 악기를 다루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주한 사람의 악기 소리는 다를 것이라 믿습니다.
이장근
200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0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 동시 당선. 동시집 『바다는 왜 바다일까?』, 『칠판 볶음밥』, 청소년시집 『악어에게 물린 날』, 『나는 지금 꽃이다』, 『파울볼은 없다』, 시집 『꿘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