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결혼식에 와 준 친구들이 고마워 점심에 초대하였고,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카페 손님들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소리쳐 불러야 집으로 뛰어가던 날처럼 누군가 불러야 멈출 수다였다. 깔깔거렸다. 주변을 의식하기는 하지만 젊어서처럼은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유로움과 통한다. 찬금과 찬희와 효숙과 영자와 나. 오십여 년이 넘는 세월 전 초등학교 동창들이다.
사월에 벚꽃 필 때 영자네 가자. 효숙이 말했다. 다육이 농장이 얼마나 큰지 몰라 다육이도 구경하고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잘 만들어져있어. 시시한 곳에 가는 것보다 몇 배 만족할 수 있다니까. 누가 마다할까. 날짜까지 정해졌다. 사월 이십 육일. 영자는 어렸을 때 키가 크고 말랐다. 주변에 친구들이 몰려있었다. 초승달처럼 둥그스름해지는 눈매로 우물가에 활짝 피어나 온 동네를 환하게 만들던 복사꽃같은 웃음 때문이다. 만개한 웃음을 보면 수다스러울 것 같은데, 적당한 때에 적당한 말만 한다. 풀 뽑는 게 그렇게 재미나다 는 그녀의 말에 덥석 손을 잡고 싶은 친근감이 든다. 텃밭에 앉아 풀을 뽑을 때 무념무상의 그 고요함을 나도 익히 알기 때문이다. 밥하기 싫어진 이 나이에 밖에서 점심을 먹으면 좋으련만 영자는 점심을 준비하겠단다. 누가 차려주는 밥 만큼 맛있는 밥이 있을까. 속으로는 은근히 신이 난다.
이십팔일에 딸네와 제주도에 가기로 한 나는 영자네 집에 가는 일을 망설이는 중이었다. 평택까지 자동차 없이 가는 일은 만만치 않다. 체력에 자신감이 없는 나다. 혹시나 하고 운전을 잘하는 찬희에게 전화부터 했다. 일본에 갔다가 25일에 돌아온단다. 그럼에도 바로 다음 날 영자네 가겠단다. 자동차를 가지고 갈 계획이란다. 오호!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어디에서 만나면 좋은지 말해줘. 지하철역 어디라도 좋아. 최소한 찬희를 덜 힘들게 하는 게 따라가는 자의 도리다. 장지역이 적당하단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고 집안의 대소사를 전부 맡아서 처리해 온 똑똑한 아내. 남편이 떠났어도 세상살이에 끄떡없는 여자. 세상을 어리숙하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살아온 나는 그녀가 존경스럽다. 운전을 잘하는 만큼 말도 청산유수다. 함께 다니면 말이 적은 내가 심심할 틈이 없다. 어스름 저녁에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일이 가장 힘들단다. 애잔하다. 부부애가 남달랐던 그녀다.
영수가 동행하였다. 얼마 전까지 직장을 다녔던 성실한 친구다. 친구들을 만나는 일에 누구보다 열성이다. 평생 일을 했더니 난 놀 줄을 몰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닐 사람 있으면 좋겠어. 부리부리한 이목구비에 파마한 흰 머리를 매만져서 품위 있게 넘겼다. 이국 여자 같은 느낌이면서 나이에 어울리는 우아함이 느껴진다. 동탄초등학교 꽃밭에서 여학생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을 보면 가장 키가 큰 여자애가 그녀다. 쫑쫑 땋은 긴 갈래머리에 부리부리한 눈매에 갸름한 얼굴이었다. 지금에 와서 봐도 참 이쁜 얼굴이다. 딸아이가 빼닮았다. 현대적 미인이다. 셋이서 즐겁게 이야기하며 평택으로 가는 길은 길지 않다. 벌써 다 왔어?
영자네 도착하니 영자가 저만치서 그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두 팔을 벌려 반겨준다. 뒤쪽에 서 있던 재숙이가 달려 나와 반겨준다. 재숙. 그녀는 초등학교 때 참 똑똑하고 주장이 분명하고 야무졌다. 공부도 잘했다. 말이 없던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그녀를 좋아했다. 수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에서 살아온 나는 그녀를 볼 수 없었지만 궁금할 때가 많았다. 소식은 들려왔다. 순박하고 착한 남자와 결혼했으며 부지런히 활달하게 재미있게 잘 살아가고 있단다. 불균형이었던 얼굴을 수술하고 이뻐졌다는 소식은 나를 흥분시켰다. 곁에 있다면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며 기뻐하였을 것이다. 그녀를 빨리 보고 싶었다. 영자 큰딸 결혼식에서 만난 재숙은 몰라보게 이뻐졌고 자신감이 넘쳤다. 보기 좋았다. 흰 블라우스에 청 자켓을 걸쳐 입은 지금의 재숙은 참 잘 살아온 얼굴이다. 그려잉. 고향 말씨가 남아있는 말투는 고향처럼 정겹고 다정했다. 재숙아 재숙아 자꾸 말을 붙이고 싶었다.
다육이 농장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하고 희귀한 품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영자 부부가 얼마나 오랜 시간 정성을 들였는지가 한눈에 보였다. 식물을 기르는 사람은 식물을 닮아간다. 영자 남편은 온유하고 밝다. 고기를 굽고 있는 영자 부부는 남매처럼 닮았다. 모양도 빛깔도 크기도 다양한 다육이를 구경하느라 나는 농장 안을 한참을 서성였다. 그냥 그곳에 오랫동안 있고 싶었다. 각양각색의 다육이 얼굴은 어린아이와 눈맞추 듯 마음을 맑게 했다. 나도 구미에 사는 친구가 준 다육이 화분 두 개를 기르고 있지만 자라는 속도는 지루하리만큼 느리다. 분재 화분처럼 굵기도 굵고 키도 크고 멋진 다육이가 있어 가격이 궁금했는데 이천오백냥이란다. 성장 속도를 안다면 비싼 가격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찬금이와 효숙이가 인천에서 조금 늦게 왔다. 둘 다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한 동네 친구다. 효숙은 내가 초등학교에 가는 길목 안말에 살았다. 엄마가 아프시다면서 동생을 업고 있는 적이 많았다. 학교에 오지 못하는 날도 잦았다. 어린 동생을 업고 있는 효숙은 늘 명랑하게 웃었다. 맏딸은 재산 밑천이라 했던가. 그녀는 이번 모임을 주선한 만큼 매사에 주도적이다. 김치며 화장품이며 무엇이든 나누는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이번에도 우리 몫까지 도토리묵을 쑤어왔다. 매달 초마다 절대 잊지 않고 행복의 카톡을 보내 행복을 나눠주는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전화 속 목소리는 높고 명랑해서 상대방의 마음까지 둥둥 떠오르게 한다.
찬금은 내 집에서 서쪽으로 이십여 분 더 걸어가야 하는 동학산 아래 구석진 마을, 음말에 살았다. 가냘픈 몸매에 자잘한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내 마을보다 아이들이 많지 않아 학교에 가는 길이 혼자일 때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 외롭다는 것 혼자라는 것. 그것은 오히려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다. 아이들 다 키우고 그림과 사진에 몰두하게 된 그 힘은 바로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근원이다. 사진 곳곳에서 어느 작가의 사진보다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 옅은 슬픈 감성을 만날 수 있다. 그녀의 사진 전시회에서 탐이 나던 작품 하나를 가져왔다. 이슬과 거미줄과 어슴푸레한 새벽빛 한가운데 장미 한 송이. 엷은 붉은색 계열 뒷배경이 뭉개져 있어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아침마다 장미 한 송이를 마주하는 일, 내게는 기쁨이다.
한쪽에서는 고기를 굽느라 바쁘고 한쪽에서는 상을 차리느라 바쁜데, 하필이면 바로 그때 멀쩡하게 걸어가던 내가 말썽을 일으켰다. 어느 순간 턱에 걸렸다 싶었는데, 넘어지지 말아야지 하면서 온몸에 힘을 주던 내가 퍽! 땅바닥에 넘어졌다. 큰일났구나 싶어 가만히 누워서 나를 살펴보는데 오른쪽 얼굴이 아픈 것 말고는 괜찮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는데 오오! 괜찮다 괜찮아. 이렇게 감사할 수가. 팔과 다리가 부러졌다면. 병원으로 실려 갔다면. 지금의 이 싱그러운 모두의 기분은 떨어진 목련 꽃송이처럼 나뒹굴텐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속으로 되뇌었다. 다들 괜찮으냐고 걱정 걱정을 했다. 괜찮구말구요 팔 부러지지 않았으니 좋아요 좋아요. 준비성이 철저한 찬희는 마데카솔 연고를 내게 주었다.
영자는 고기와 야채와 나물 반찬과 총각김치와 배추 김치를 준비해 놓았다. 그것뿐이랴. 손님을 맞이하려면 이것저것 손 가는 일이 참 많다는 것을 주부들은 다 안다. 효숙은 대파 장아찌를 비롯한 장아찌를, 야들야들한 도토리묵을, 바삭한 튀각까지 준비해왔다. 기침 소리가 듣는 사람도 목이 아플 정도다. 독한 감기가 분명한데 괜찮다고 이 정도는 참을만 하단다. 긍정적 자세에 박수를 보낸다. 재숙은 직접 재배한 표고버섯을 바짝 말려 담은 커다란 봉지 다섯 개를 가져왔다. 바로 채취한 두릅도 맛나게 무쳐왔다. 찬희는 일본 여행에서 사온 바나나빵을 가져왔다. 고맙고 감사하고 기뻤다. 빈손인 내가 빤히 보였다. 다음번에는 친구들을 위해 무엇이든 가져와야지. 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운다,
무엇이든 나눠 먹고 나눠주던 고향 마을 인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초등학교 친구들. 참 좋다. 우리 자주 만나자. 집순이인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깜짝 놀랐다. 넘어져서 얼굴이 부어있고 무릎과 손바닥에 통증이 있어도 어릴 때처럼 마냥 신이 났다. 집에 와서도 여러 날 마음이 따스했다. 영자야 찬희야 영수야 재숙아 효숙아 찬금아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