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심미안과 시적 발견 — 오영수의 「보물찾기」
보물찾기
오영수
시인에게 있어 보물찾기란 꼭꼭 숨겨진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이다 좋은 시 한 수 건지는 일이다
범인(凡人)에게 보이지 않는 시가 시인의 눈에 띄는 까닭은 시를 찾는 심미안이 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어느 눈 밝은 거리의 화가가 담장에다 그린 여인의 모습에서 나의 첫사랑을 보았다
오매불망 못 잊어 하던 여인이 담쟁이에 몸을 숨기고 숨 죽인듯 나를 보고 있다
바람꽃을 닮은 그녀는 누구에게도 머물지 못하고 거리의 화가 곁을 또 다시 떠난듯싶다
나의 청춘이 그녀를 찾아 거리를 배회했듯이 무명화가도 그녀를 찾는지 내 첫사랑을 담벼락에 그려 놓았다 |
기억의 심미안과 시적 발견 — 오영수의 「보물찾기」
오영수의 「보물찾기」는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곧 ‘시적 발견’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보물찾기란 단순히 숨겨진 물건을 찾는 놀이가 아니라,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과 기억을 발견하는 시인의 정신적 행위를 의미한다. 시인은 평범한 풍경 속에서 보이지 않던 감정과 기억을 찾아내며, 그것을 시라는 언어로 건져 올린다.
시의 첫 연은 이 작품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시인에게 있어 보물찾기란 / 꼭꼭 숨겨진 소중한 것을 찾는 것이다 / 좋은 시 한 수 건지는 일이다”라는 구절은 시 창작의 본질을 간명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보물’은 물질적 가치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 혹은 순간의 아름다움과 같은 비가시적 가치이다. 시인은 그것을 찾아내는 탐색자이며, 그 발견의 결과가 곧 한 편의 시가 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시인은 시인과 범인(凡人)의 차이를 ‘심미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범인에게 보이지 않는 시가 / 시인의 눈에 띄는 까닭은 / 시를 찾는 심미안이 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은 시적 감수성이 세계를 새롭게 보게 만드는 능력임을 강조한다. 이 부분은 다소 설명적이지만, 시인의 자기 인식을 드러내는 메타시적 성격을 지닌다. 즉 이 시는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시인이 어떻게 시를 발견하는가를 성찰하는 시론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의 중심 장면은 거리의 담장에 그려진 여인의 그림에서 시작된다. “오늘 나는 어느 눈 밝은 거리의 화가가 / 담장에다 그린 여인의 모습에서 나의 첫사랑을 보았다”라는 구절에서 현실의 그림과 과거의 기억이 겹쳐진다. 이 순간, 거리의 벽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첫사랑을 불러내는 매개가 된다. 여기서 예술은 기억을 소환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담쟁이에 몸을 숨기고 숨 죽인듯 나를 보고 있다”라는 표현은 과거의 사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아 있음을 암시한다. 담쟁이는 오래된 벽을 타고 자라는 식물로, 시간과 기억의 지속성을 상징한다. 첫사랑은 더 이상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시적 형상으로 변한다.
후반부에서 시는 한층 더 서정적인 분위기를 띤다. “바람꽃을 닮은 그녀”라는 표현은 첫사랑의 순수하고 덧없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바람꽃은 아름답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 꽃으로, 사랑의 일시성과 청춘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그녀가 “누구에게도 머물지 못하고 / 거리의 화가 곁을 또 다시 떠난듯싶다”는 구절은 사랑이 결국 붙잡을 수 없는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개인의 기억을 예술적 행위와 연결한다. “나의 청춘이 그녀를 찾아 거리를 배회했듯이 / 무명화가도 그녀를 찾는지 / 내 첫사랑을 담벼락에 그려 놓았다”는 구절은 예술가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기억을 찾고 있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시인은 시로, 화가는 그림으로 그 기억을 남긴다. 이 순간 첫사랑은 개인적 경험을 넘어 예술적 상징으로 확장된다.
결국 「보물찾기」는 시인의 시적 감수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평범한 거리의 벽화에서 첫사랑을 발견하는 순간, 세계는 더 이상 일상의 풍경이 아니라 시적 의미로 충만한 공간이 된다. 그렇게 시인은 보이지 않던 보물을 찾아내고, 그것을 시라는 형태로 독자에게 건네준다.
이 시가 보여주는 보물찾기는 결국 기억과 감정의 탐색이다. 그리고 그 탐색의 끝에서 발견되는 것은 다름 아닌 한 인간의 청춘과 사랑의 흔적이다. 시인은 그것을 조용히 건져 올려, 한 편의 시로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