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적 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1) 하나님은 나의 복(福)이시다.
시 16:2의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나 주밖에는 나의 福이 없다 하였나이다.”에서 나의 복은 “나의 복, 나의행복”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인간실존의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시며, 제일의 복은 하나님이시며, 최대의 福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딤전 1:11에 “복되신 하나님”이라고 했으며, 딤전 6:15의 하나님은 복되시고는 “하나님은 복이시라”는 의미이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 자신이 복의 내용이시며, 복의 본질이시며, 복의 근원이시며, 복의 출처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오늘 우리 한국교회처럼 복을 좋아하는 교회도 없을 것이다. 물론 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종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복을 물질적인 개념에서 구하고 찾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자는 복을 받는 자이며, 하나님을 소유한자는 최고의 복을 소유한 자인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시편기자 다윗처럼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는 신앙의 깊은 고백으로 나가야 할것이다.
2) 예배가 복(福)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복”은 “예배드리다”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이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어떤 복을 받기위한 행위가 아니라 그 자체가 복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요 축복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롬 9:4에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라고 했다. 이와같이 예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부여하신 은총이며, 축복이며, 특권이었다. 때문에 오늘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린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허락하여 누리게 하시는 놀라운 복이며, 위대한 녹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 자체를 복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참으로 물질적인 축복에만 기울어져가는 한국교회의 축복관이 바로 고쳐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때문에 이례되는 날을 축복하셨는가? 그것은 예배가 복이기 때문이다. 물론 물질적인 복을 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뒤로하고, 물질적인 복을 우선으로 하는 기본적인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 자체가 복임을 깊이 인식하고 그 복을 영원토록 누리는 성도들이 되어질 것이다.
3) 기도가 복(福)이다.
“축복하다”는 “꿇어 엎드린다, 하나님께 빌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복은 다른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께 무릎을 굻고 기도하는 그 자체가 복이다. 기도는 그 자체가 은총이며, 선물이며, 축복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 4:7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 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이와같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베푸신 은혜이며 축복인 것이다. 때문에 시편기자는 시 116:2에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라고 고백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평생토록 기도하는 그 삶 자체가 놀랍고 엄청난 축복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또 다른 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 그 자체가 복인 것을 모른다거나, 혹은 안다하더라도 그 귀중한 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단지 다른 어떤 물질적인 것만을 얻는 하나의 방편으로 여긴다면 그것이 곧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참으로 “기도”는 그 자체속에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약속을 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응답과 신비와 영광을 담고있는, 실로 보고이며 축복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선물은 이익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했다”.
4) 찬송이 복(福)이다.
시편 134:1~3의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라.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을 그 자체가 복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찬송하며 찬양하는 것은 모든 민족에게 다 허락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선택된 행복한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사 43:21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시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이와같이 찬송은 누구나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오직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통하여 구속된 자들에게만 내리시는 놀라운 선물이며, 영원한 축복이다.
그러므로 엡 1:3~6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위의 “찬송”도 축복이라는 의미이며, 복도 “찬송, 찬양”이라는 말과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롬 15:29의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에서 “축복”도 같은 말이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언어나 성경에 기록된 글이나 말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축복인가? 찬송이 축복이다. 우리가 기쁠때나 슬플때나,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는 영혼의 노래가 축복이며, 마음의 찬송이 축복이며, 삶의 찬송 그 자체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엄청난 축복인 것이다.
왜 우리가 찬송 할 때마다 마음이 감동되고 뜨거워지는가? 왜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마다 마음 새로워지고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솟아나는가? 그것은 찬송 그 자체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하고 놀라운 축복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찬송을 부르는 자는 더 깊은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며, 그 축복의 찬송을 듣는 자들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때문에 찬송을 부르는 자는 그 찬송이 바로 축복임을 알고 성령과 은혜로 부르고 또 부를 것이다.
5) 감사가 복(福)이다.
단 4:34의 “지극히 높은 자에게 감사하며”의 감사하다는 것은 축복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감사 그 자체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놀라운 복이며, 엄청난 축복이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내리시는 또 다른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 그러므로 감사는 그 자체가 복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양은 다 같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의 깊이는 다를 것이다.
기쁨이나 행복은 다를 것이며, 하나님이 쏟아 부으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축복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의 축복을 받은 자들은 감사에 어떤 보상의 조건을 붙이지 말고 감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감사한 사람에게 주시는 또 다른 축복은 은혜로운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며, 다만 감사하는 자는 지금까지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도 감사의 조건이 되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사의 축복을 입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 감사할 때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조건 감사하고 또 감사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외부적인 축복보다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축복을 무엇보다 소중히 생각하고 끝없는 축복의 감사를 올릴 것이다.
6) 영생이 복(福)이다.
시 133:3의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에서 “복”이며 영생은 “그 영생”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누리시는 영원한 생명의 부와 가치와 영광의 끝없는 축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속에는 무한한 사랑의 행복과 기쁨과 끝없는 즐거움의 강이 흘러 넘치며, 자유와 평화와 쉼의 극치가 갈수록 깊어가는 삶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실존의 삶은 헛되고 무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제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또 누린다 하더라도 그 삶은 풀의 꽃처럼 시들어 버리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시 90:4에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다고 했으며, 솔로몬은 전 1:2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것이 헛되도다”라고, 이생의 부와 영광과 삶의 무상함을 깊이, 그리고 반복하여 탄식한 생의 고백을 남겼다. 그런데 우리는 “영생”이라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하찮은 물질적인 축복에만 몰두하는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생의 축복이 어떤 것이며,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축복들을 찾고 구하기 이전에 “영생”이란 축복이 어떠한 것이며, 그리고 얼마나 놀라웁고, 영원하며, 축복된 것인가를 깊이깊이 연구하는 신앙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7)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福)이다.
시 73:28의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에서 가까이 하다는 “접근하다, 가까이 가다, 합세하다, 제공하다, 생산하다, 준비하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축복은 다른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이 되어지는 그 자체인 것이다. 내가 나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복이며, 놀라운 축복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내가 나의 몸을 드려 헌신하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또 다른 보상이나 축복을 기다리곤 한다.
그러나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하여 보라! 내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나의 몸과 마음과 전생애를 바쳐서 충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숙고한다면 이러한 삶 자체가 위대한 축복임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때문에 약 4:8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한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가지며 그에게 나의 모든 생애를 드리는 것이 복중의 복임을 인식할 것이다.
8) 하나님의 인자가 福이다.
시 69:16의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흘을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에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는 “당신의 인자는 복(福)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의미이다.
여기 “인자”는 “인자, 사랑, 긍흘, 자비, 박애, 은혜”로써 하나님의 부드럽고 따뜻하며 포근한 영원 불변적인 사랑을 의미하며, “선”은 복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것은 다 변하고 낡아지고 지나가도 하나님의 인자는 영원불변함을 그 수많은 역사속에서 체험했다.
때문에 시인은 시 23:6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했다. 그런데 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란히 같이 기록된 것은 같은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며, 곧 하나님의 복이 정령 따르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지 시편은 시 136편 1절서 26절 끝절까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고백했다. 고로 누가 하나님의 복을 더 많이 받고 있는가는, 누가 하나님의 포근하고 아늑하며, 강같은 사랑을 더 많이 느끼고 있으며, 소유하고 있는가에서 평가되어져야 할 것이다.
아무리 외부적이며 물질적인 축복을 누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다면 그는 아직 축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이 엄청나고 무궁하며 광대한 사랑을 엄청나게 소유한 자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입는 자이며 소유한 자이다.
고로 하나님의 사랑이 현실적이며 영원한 최고 제일의 복임을 인식 할 것이다.
9) 하나님의 말씀이 복(福)이다.
왕하 20:19의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찐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에서 “선하다”는 복이라는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은 선이며 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한자는 복을 소유한 자이다. 때문에 계 1:3에 말씀을 읽는자와 듣는자와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하나님의 약속의 모든 말씀속에 담겨져 있다. 참으로 말씀은 축복의 창고이며 보고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한 자는 이미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을 받은 자임을 알 것이다.
|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