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우리에게 대전은 '노잼 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진 멋없는 도시로만 여겨지지만, 30년 전에는 다른 의미로 유명한 곳이었다. 1993년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93일간의 일정 동안 대전에서는 '새로운 도약의 길'이라는 주제로 (부제는 '전통기술과 현대 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 세계박람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짧게 '대전 엑스포'라 불렸던 이 박람회는 이전까지 열렸던 박람회들의 규모와 사뭇 달랐다. 일단 우리나라 최초로 국제박람회 기구의 공인을 받아 개최한 박람회였다. 또한 대덕연구단지 안의 도룡지구에 만들어진 박람회장의 총면적은 약 27만 3천 평에 달했으며 과학공원 구역과 국제 전시 구역, 관리 운영 시설, 놀이기구 시설 등으로 꾸며져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이후 이 시설과 부지는 국민과학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엑스포과학공원'으로 만들어졌다.
대전 엑스포에는 세계 108개 국가와 유엔 등 33개의 국제기구가 참가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여 개의 기업들이 참가하여 화려한 기술을 뽐냈다. 자기부상열차, 태양열 자동차 등 그 당시만 하더라도 다소 생소한 첨단 기술이 소개되었으며, 이를 보기 위해 1,400여만 명의 관람자가 대전을 찾았다. 대전 엑스포가 특별한 이유는 국내외의 다양한 첨단 기술과 문화행사가 만남의 장을 가지고 열리는 자리였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우리나라가 이루어낸 산업화의 결과물을 한눈에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 처음 참가했던 우리나라는 100년 후 개발도상국 최초로 세계박람회, 대전 엑스포를 열어 전 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엑스포를 통해 대전은 도시 기반 정비, 새로운 수요 창출 등 가시적인 변화와 더불어 과학기술 부문에서 성장 잠재력이 있는 도시로 인정받으며 과학 연구를 하려는 이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30대 이상이라면 이 대전 엑스포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 것이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대전 엑스포를 관람하던 우리들은 이제 나이를 먹고 스스로 여행을 떠날 줄 알게 된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대전에는 그 시절 세계박람회의 모습을 간직하는 곳이 곳곳에 남아 우리에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엑스포를 대표하던 한빛탑
몇 개월 전 대전을 들렀을 때, 우리는 한밭수목원을 찾았었다. 수목원을 들르면서 자연스레 엑스포과학공원을 탐방하며 옛 추억을 떠올릴 줄 알았다. 하지만 수목원의 규모가 상상이상으로 컸고, 엑스포과학공원의 일부는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계획했던 대로 공원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한빛탑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일이 아쉬웠던 우리는 다시 대전을 찾았다. 그리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와 다르게 공원의 한켠에는 거대한 규모의 백화점이 들어섰고, 그 덕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 또한 많아진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눈에는 1993년, 그때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때로부터 28년이나 지났으니 세 번 정도는 바뀌어도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전히 한빛탑이 공원의 중심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람회장 시설은 일부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여전히 엑스포를 대표하는 한빛탑은 그 역사를 간직한 채, 그때 모습 그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탑의 모습만 보면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다. 40미터 높이의 한빛탑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는 점과 전망대에서 대전시의 전경을 360도 돌면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대전의 관광명소로 꼽히고 있었다. 또한 탑 주변에 있는 물빛광장에서 시간마다 화려한 음악 분수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한빛탑의 모습은 낮에도 아름다웠지만, 가장 멋진 시간은 역시 밤이었다. 도시의 야경에 어울리는 푸른빛이 탑을 감싸고, 음악 분수 덕분에 물빛광장에 고여있는 물웅덩이가 탑의 모습을 아름답게 반사하여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탑의 모습과 더불어 대전 엑스포 마스코트인 꿈돌이의 모습은 이곳을 더욱 아련하게 추억하게 했다. 꿈돌이 너머, 백화점의 모습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것 또한 의미 있는 볼거리였다.
하루에 두 번, 한빛탑을 비추는 미디어 파사드 공연은 낮에 이어 밤에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미디어 파사드 공연은 일정에 맞지 않아 볼 수는 없었지만, 도시의 야경에 잘 어울리는 한빛탑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동적이었다. 추억 여행의 마무리로 밤에 엑스포과학공원을 찾은 건 퍽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엑스포과학공원으로 발길을 이끌게 하는 신세계 백화점
엑스포에 대한 추억 때문에 대전을 찾긴 했지만, 최근에 생겼다는 '대전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를 안 가볼 수 없었다.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가 백화점을 찾은 이유는 이곳의 '전망대' 때문이었다. 193미터 높이의 엑스포 타워는 대전 어디에서나 보일 정도로 높은 건축물이었고, 대전에 내려온 순간부터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졌다. 다행히 이곳은 엑스포과학공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발길은 전망대로 향했다.
지금까지 대전시의 풍경을 보려면 한빛탑을 올라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신세계 백화점 엑스포 타워에 있는 전망대 '디 아트 스페이스 193'가 한빛탑 보다 더 높다. 그래서 도시의 전경을 보려면 이곳이 최적의 선택이다. 사전 예약을 통해 전망대 및 전시회 티켓을 구입한 후 신세계 지하 1층에서 전망대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갈 수 있다.
홈페이지의 '93엑스포의 추억이 담긴 한빛탑부터 갑천 너머로 보이는 둔산 도심까지 대전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만나볼 수 있습니다.'라는 소개글이 과장이 아니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전망대의 창 너무로 보이는 대전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갑천과 한빛탑은 물론 대전엑스포 시민광장, 국립중앙과학관, 매봉산 등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전망대의 감동은 신세계백화점에 있는 하늘 공원까지 이어졌다. 여러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마치 유럽에 한 정원에 온듯한 착각이 일게 하는 공원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우리는 휴식을 취하며 이곳의 여유로운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이어 대전의 풍경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노을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여행에서 유명한 관광지를 가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즐거움이지만 그곳만의 풍경을 시간을 천천히 들여 바라보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다. 노을빛에 따라 식물들은 물론이고 건물의 색이 변화하는 것을 바라보며 새삼 대전의 진가를 느꼈다.
대전을 대표하는 쇼핑 공간답게, 신세계백화점에서는 대전 엑스포를 추억하게 하는 한빛탑과 꿈돌이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곳곳에 있어 눈길을 끌었다. '노잼도시'라는 별명 대신 '꿀잼도시'라 칭하며 꿈돌이를 내세워 대전의 굿즈를 소개 및 판매하는 전시관이 있으며 레고 매장에는 꿈돌이와 한빛탑이 레고 블록으로 만들어져 전시되어 있었다. 지하 식품 매장의 한 베이커리에서는 꿈돌이를 모티브로 한 케이크를 판매하는데 오후에 가면 살 수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대전을 대표하는 아이콘을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대전시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올해 8월 문을 연 이후로 대전 사람들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대전의 유명한 관광지는 한빛탑이 있는 '엑스포과학공원'과 더불어 '대전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다. 앞으로 대전에 들를 때마다 이곳을 오겠다는 다짐을 하며 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