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9월16일(日)晴
▲밀양,정승골(3)(삼거-구천리-정승골-정승쉼터)
해봉산악회(13명)
♠참 고
□ 영산(靈山): 주위의 주민들이 신령스럽게 여겨 붙은 이름이다.
도래재 서쪽의 산으로 높이가 888m이다.
□ 정승봉(政承峰): 밀양시 산내면 남명초등학교 남서쪽에 우뚝 솟은 산이다.
높이가 803m인데 남서쪽에 있는 정승동에 이웃한 산이라 붙은 이름이다.
□ 정승동(政承洞): 밀양시 단장면의 영산, 정각산, 정승봉 사이에 있는
마을로 동서북쪽이 높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신라시대 어떤 왕자가
병을 고치기 위하여 재약산으로 들어갔을 때 수행한 정승이 머물렀던
곳이라 전한다. 조선시대 어느 정승이 여기에서 귀양살이를 했다고도 하고
근대에는 천주교도들이 관헌의 박해를 피해 숨어산 곳이라 하여 가끔 다녀가는
신도들이 있다.
언양천주교회의「신앙전래 이백년사」에 의하면, 조선말기에 서울 명동의 중인
천주교도 김범우가 을사추조적발사건에 의하여 밀양시 단장면으로 귀양 와서
천주교를 포교 하였다고 한다.
위의 두 사실로 미루어 보아 김범우가 정승동에서 귀양살이 하다가 죽은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볼 수도 있다.
□ 정각산(正覺山): 밀양시 단장면과 산내면의 경계에 있는 860m의 펑퍼짐한 산이다.
정각산 남서쪽 골마마을에 지금도 정각사라는 작은 절집이 있는데,
옛부터 있었던 그 절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한다.
♣산행 코스
삼거-->구천리-->정승골-->정승쉼터농원-->삼거
☞☞☞이틀 전 저녁운동을 위하여 시약산 약수터로 가기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심한 무릎관절 통증이 와 걱정하며 전자빔등 수지침요법으로 간신히 치료하여
남해의 슬흘산~응봉산 종주를 위해 다소 걱정을 하며 집을 나선다.
한데 시민회관 앞은 한산한 가운데 승차한 회원은 겨우 10여명, 신 회장님도
나왔으나 바쁜 일이 생겨 산행을 할 수 없다며 돌아가고
지난주에도 인원부족으로 산행을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적자가 나더라도
산행을 하겠다고 한다.
부산교통관광버스 대신 나온 가야고속관광버스로 서부산T/G를 빠져 나왔으나
썰렁한 차내 분위기 때문인가 김 대장은 아예 안내방송도 하지 않고 얼마가지
않아 차량이 정체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벌초기간의 피크라는 걸 깨닫고 오랜만에 나온 조 고문이
한마디 한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도착시간이 늦어 산행도 못하고 그냥 되돌아올지 모르니
코스를 임 대장이 있는 밀양 정승골로 하는 게 어떼!“
모두 이의가 없다며 찬동하여 진영나들목에서 밀양으로 가는 국도로 빠진다.
국도변의 야산자락의 묘지에 많은 사람들이 벌초하느라 제초기를 작동시켜
부산하게 움직이고 차량정체는 국도에서도 한동안 진행된다.
얼마가지 않아 사거리에서 오소리 한 마리가 깔려 처참하게 죽어있는데
교통정리하는 경찰관은 계속 수신호만 하고 있다.
오른편으로 긴늪을 바라보며 달리다 조 고문이 이 총무에게 임 대장에게
연락하여 닭 세 마리를 잡게 하라고 시킨다.
11시24분, 정승골 들머리인 대추나무에 대추가 달려있는 ‘삼거’에 도착.
대형관광버스는 들어갈 수가 없다며 전원 하차하여 조 고문과 부녀회원등
세 명만 마중 나오는 차를 타고 올라오게 하고 나머지는 산행이 시작된다.
도로변에 탐스럽게 열린 대추를 바라보며 가다 짓궂은 회원들이 따먹기 시작한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정승쉼터에서 임 대장이 트럭을 몰고 내려와 삼거로 갔다
되돌아 올라오는 걸 전원이 짐칸에 승차한다.
11시49분, 눈에 익은 구천리 가게 앞에 도착.
세 명은 그냥 승차한 체 정승골 쉼터로 올라가고 나머지 10명은 좌측
계곡이 있는 마을로 내려간다.
마을을 지나 왼편으로 정각산 자락과 오른편으로 계곡을 끼고 좁은 밭두렁
길을 따라가다 바위 개울을 건넌다.
잡초와 잡목이 엉켜있는 곳을 거쳐
오른편으로 계속 계곡을 내려다보며 가다 너덜겅을 지나 내림 길을 타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
또 다른 너덜이 흘러내린 코스를 지나면서 앞장서 가든 회원이 다래를
발견하고 다래를 딴다고 잠시 행렬이 멈추며 정체한다.
12시33분, 두 번째 계곡을 건너면서 세수를 하고 개울물속에 버들치와
피라미를 발견한다.
치어를 비롯하여 꽤 많이 유영을 하고 있다.
김 대장과 후미담당 김 홍팔군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고
나머지는 이 총무를 따라 개울을 건너 임도 길로 올라간다.
12시45분, 임도에 올라 건너편에 보이는 정승골 쉼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약 1시간의 산행이 끝나고 임도변에 ‘정승쉼터농원’이라고 쓴 간판을 세워놓은
쉼터에 들어서니 흑염소 한 마리가 먼저 반긴다.
우선 밀렵꾼이 쳐놓은 올가미에 왼쪽 앞다리가 잘린 누렁이어미가
꼬리치며 반기는 걸 캠코더에 담고 농장 곳곳에 묶어놓은 사육견과 토종닭,
칠면조, 흑염소, 오리등을 촬영한다.
이 총무와 이 종원회원은 된장으로 고기를 잡는다고 개울 위쪽으로 올라간다.
먼저 도착해 있든 기사양반과 조 고문이 노천탁자위에 별도로 준비해 왔다는
닭찜을 펼쳐놓고 뒤에 나온 옷 닭 두 마리와 토종닭찜 한 마리 등을 푸짐하게
펼쳐놓고 조 고문이 그 특유한 목소리로 건배를 제의,
해봉산악회와 그동안 수고한 임 대장을 위해
“위하여!”
를 외치고 이야기한다.
“오늘 이리로 오기를 잘했어요. 우리가 남해로 갔으면 아직 도착도 못했을꺼요.
...그래서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줄을 잘 서야 해요.“
이런 저런 이야기로 정담들을 나누고
냉장고위에 여치한마리가 앉아있는데
방안에는 지난번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지리산천왕봉에서 단체 기념촬영 한 액자와
‘정승처럼 쉬었다 가시라’
는 글귀가 시선을 끌어 캠코더에 담는다.
임 대장이 약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별채가 있고 년 중 7,8월만 돈을
받고 나머지는 돈을 안받고 개방한다며 인터넷 ‘산사람들’에 올릴
‘정승골 쉼터’PR 글귀를 서신으로 보내겠다고 한다.
위쪽 넓은 개울에서 발가벗고 시원하게 멱을 김 윤근회원을 캠코더에 담고
15시27분, 임 대장의 노란 트럭으로 정승쉼터농원을 출발한다.
도중에 정각산을 산행하고 내려온다는 부산알파인 산악회 회원들 10여명을
태우고 15시55분, 삼거에 도착한다.
16시7분, 임 대장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부산으로 출발.
차기 산행은 함양의 서리산 대신 기장의 달음산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조 고문의 이야기로 김 대장은 정 대장과 상의해 보겠다고 한다.
이제 벌초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량행렬 사이로 아가씨를 뒤에 태운
모터사이클이 곡예운전을 하며 아슬아슬하게 앞질러 빠져나간다.
장유휴게소에 들렸다가 긴 여름 낮도 어둠 속으로 저물어 가는데
김해비행장으로 착륙하는 여객기가 야트막하게
내려가는 광경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19사5분, 서부산T/G를 빠져나간다.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