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2021.2.11.
오늘 한국은 설날이다. 외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설날이라고 사 온 다 썰어 놓은 떡국 떡으로 떡국 한 그릇 끓여 먹고 아이들에게 세배라도 받으면 그로써 설날 할 일을 다 한 듯하다. 어렸을 적 설은 이렇지 않았는데....
아버지께서 삼대독자셨기 때문에 명절에도 집에 오시는 아버지 삼촌이나 고모네 가족은 없으셨다. 어머니도 서울에 오누이들이 다 사셨으니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시골에 명절이라고 오는 외삼촌이나 이모네 식구는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명절이면 늘 여러 날 전부터 바쁘셨다.
어머님께서는 시장에 나가 설빔도 사시고, 손수 뜨개질과 바느질로 옷도 만들어 주셨지만, 그보다 손님맞이 때문에 더 분주하셨다. 집에 가사를 돕는 분이 두 분 계셨지만, 명절이면 고향 집에 명절 세러 가셨다. 다행이고 고맙게도 명절 전날에는 동네 아주머니 몇 분이 일손을 보태 주셨다. 하지만, 요즘같이 편리한 주방 기구도 없이 물을 길고 아궁이 불을 때면서 직접 맷돌로 녹두 가시고 빈대떡과 전 부치시고, 떡도 빚으시고, 한과도 만드시고, 새로 김치 담그시고, 엿도 고고, 식해에 수정과에 모두 손으로 직접 해야 하셨으니 그렇지 않아도 손이 모자라는데 얼마나 바쁘셨을까.
제삿날도 종가라고 일가친척분들이 밤에 오셨지만, 명절날이면 아침 10시에 5대조 할아버지부터 4 반상 차례 잡수시고, 우리 식구 아침 먹기 바쁘게 손님들이 집에 오시기 시작했다. 동네 아이들은 거의 모두 차례에 올린 옥춘, 산자, 약과와 과일을 받고 싶어서인지 점심 전에 다녀갔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차례상에 전통 음식 말고 요즘 같은 사탕, 과자도 같이 올리셨으니 과자와 사탕 종합 선물 세트를 명절 선물로 받던 시절에 아이들에게 그런 사탕, 과자는 무척 귀하고 탐나는 것이었다. 여기에 작으나마 세뱃돈도 주셨으니, 돈이 귀하던 그 시절 아이들은 평소에는 얼씬도 못 하던 우리 집에 용기 내어 무리 지어 왔다.
정작 어머님을 더 분주하게 하는 것은 명절이라고 돕는 사람도 없는데 명절날 거의 저녁까지 이어지는 친척들의 인사 방문이었다. 몇 개 부락에 우리 성씨가 모여 살던 집성촌이라 수백 가구가 가깝고 먼 친척이었으니 다녀가는 친척들이 수십 명도 넘었다. 친척들은 집 서북쪽에 있는 사당에 먼저 배례하고, 집 안에 들어오셔서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시다 가시는데 어머니는 이분들 모두에게 상을 차려 주셨으니 쉴 틈이 있으실 리가 없으셨다.
어린 나는 어머니께서 만드신 엿이며 강정을 다락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맛있게 먹기만 했으니 명절은 늘 기다려지는 즐거운 날이었지만, 어머니께는 무척 고단한 날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힘드시다는 내색도 전혀 없이 내가 수정과를 좋아한다고 곶감 속에 잣을 넣고 말아 썰어 띄워 주셨다. 그리고,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기쁜 눈길로 지켜보셨다.
지금 그 옛날의 명절처럼 손수 옷을 만들고, 음식을 준비하고, 많은 사람이 왕래하기 힘든 길을 걸어 오가면서 인사를 나누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 사는 맛이 나고 정이 있는 시절이라면서 말이다. 나도 명절이면 친척을 찾아뵙고, 세배하고, 안부를 묻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어머님이 해 주신 특별히 맛난 음식 생각에 입에 절로 침이 돈다. 따스함이 절로 배어 나오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그런 그리움 때문에 20년도 훨씬 넘은 어머님이 아이들 돌에 떠 주신 털 옷을 아직도 고이 보관하고 있다. 어머님께서 직접 바느질하거나 뜨개질한 그 정성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차례를 마치면 풀어지는 떡국도 가족, 친지와 함께 정담을 나누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모두가 누구의 희생 위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손님 치를 일도 없고, 많은 식품을 사서 차례를, 명절을 준비하고, 더군다나 제사를 지내는 집도 드문 이 시대에도 명절 증후군을 앓는다는 주부들이 많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거 어머니들의 정성을 칭송하면서 옛날을 미화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우리 머릿속에는 기억의 분장사가 사는 게 아닐까? 지나간 일들을 아름답게 꾸미고 회상 시켜 주는 마술사. 그래서, 우리는 정성과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어려움, 궁색함, 불편함을 채색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현대의 편리한 삶을 사는 이 중 누가 정말로 기꺼이 그 불편하고 고달픈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 살고 싶을까? 이미 가사만이 아니라 직업을 가지고 남성 못지않게 경제 활동의 일익을 담당하는 여성에게 이런 희생과 노고를 기대하는 것이 타당할까, 가능할까? 옛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그런 시절을 미화하기보다는 소비와 소유를 위한 과도한 경쟁에 시간과 노력을 덜 쏟고, 가사 등에 쓰는 시간과 노동이 줄어든 만큼 과시가 아니라 아는 이의 안부라도 한 번 더 묻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1인, 2인 가구가 대세인 이 시대 우리는 너무 외롭게 살고 있다. 우리는 살가운 대인 관계가 필요하고 그리운 게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한 번영과 행복에 무언가 잘못이 있다는 생각을 설날을 맞으며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