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는 모처럼 보스에 나오는 다른 아가씨들 이야기도 늘어 놓았다. 희애라는 아가씨는 예의도 밝고 제일 예쁘고 친구들에게도 잘 해 주어서 참 좋은 아가씨인데 옷을 너무 자주 바꾸기 때문에 돈을 못 번다고 한다. 진실이는 미소가 매우 매력적인 아가씨인데 전문학교에 다닐 때에 미스 충북에 나가기도 했단다. 진실이는 남자친구들이 많은 것이 흠이다. 돈 벌어서 남자친구들하고 놀면서 다 써 버린단다. 김교수와 핸드폰 통화를 했던 지난 번에, 세 사람이 청평에 수상스키 타러 같이 갔단다. 수상스키는 그날 처음으로 타 보았는데, 자꾸 물에 빠져서 물을 많이 먹었단다. 올 때는 약간 후회가 되더란다. 돈을 너무 쓴 것 같아서.
여럿이 술 마시면 시간이 금방 가는데, 단 둘이 술 마시니 시간이 더디게 간다. 김교수는 평소에 궁금했던 술집 아가씨들의 세계에 관해서 물어 보았다. 술을 매일 마시다보면 몸이 견디지 못할 텐데, 어떻게 그러한 폭음을 견디느냐고? 그들 세계에는 나름대로 술 적게 마시는 비법이 있단다. 술잔을 받았다가 안 볼 때에 다른 그릇에 슬쩍 따르기도 하고, 술을 마신 후 입에 머금고서는 물잔을 들어서 마시는 척하면서 뱉는 방법도 있고. 손님들이 취한 이후에는 남이 얼마나 마시는지 볼 겨를이 없으니까 쉽게 속일 수가 있단다.
내친 김에 손님과 여관에 가서는 어떻게 하느냐고 노골적으로 물어 보았다. 그 말을 물으면서 아가씨를 바라보니 별 걸 다 물어본다는 듯이 약간은 뜨악한 표정이다. 술을 한 잔 마시더니 아가씨는 솔직히 털어 놓았다. 자기는 속된 말로 몸을 팔기도 한단다. 돈이 아쉬울 때에 2차 가자는 손님이 있으면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돈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느낌으로 싫은 남자하고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일단 남자를 따라가면 몸은 그 남자에게 맡기고서 머리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단다. 때로는 시골에서 보았던 눈이 커다란 소를 생각하기도 하고, 바다에 떠있는 하얀 배를 생각하기도 하고, 엉뚱하게 연꽃을 생각하기도 하단다. 몸은 더럽혀져도 마음만은 깨끗하게 보존하려고 애를 쓴다고 한다. 그 일을 즐거워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괜히 흥분한 척하여 빨리 일을 끝낸다고 한다. 김교수는 아가씨의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내가 쓸데없는 것을 물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갑자기 아가씨의 인생이 딱해 보였다. 원하지 않는 손님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고 몸만 움직이는 짧은 시간의 떨림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한 인생이 가련하기도 했다. 원래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닌데. 사랑이란 잘 모르는 사람과 나누는 악수와는 다른 것. 사랑은 잘 아는 사람끼리 마음과 마음이 합해질 때에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인데. 왜 하필이면 너처럼 예쁜 아가씨가 헛사랑을 하면서 외롭게 세상을 살아가느냐? 김교수는 갑자기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격한 욕정을 느꼈다. 그는 아가씨를 일으켜 세우더니 낚아채듯이 껴안고서 강렬한 키스를 하였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그는 지극히 점잖은 모습을 보여 주었었다. 이처럼 갑자기 난폭하게 껴안고 강렬하고 뜨거운 키스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남자의 혀가 여자의 입술 사이로 쳐들어갔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고 그의 혀를 받아 들였다. 짜릿하고, 촉촉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키스였다. 시간은 정지해 있었다. 아, 이 남자에게도 이러한 면이 있었네. 전혀 새로운 발견이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술 한 잔을 비우더니 그녀가 슬며시 몸을 기대면서 그의 목을 껴안고 다시 키스를 해왔다. 그 역시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두 번째 격렬한 키스가 끝나자 그녀는 슬그머니 그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서는 손을 넣어 그의 거시기를 꺼내었다. 거북 머리 모양의 커다란 거시기가 은은한 불빛에 씩씩한 모습을 들어 내었다. 그녀는 슬쩍 거기시를 훔쳐보더니 다시 바지의 지퍼를 올려 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영화를 보듯이 그녀가 하는 행동을 지켜 보았다.
“오빠, 오늘 보니 진짜 남자네. 나는 오빠가 불구인 줄 알았어요.”
“그래 나도 남자다 요년아. 남자여서 불만 있니?” 김교수는 장난 섞어 말했다.
“나는 오빠가 임포인 줄 알았지요. 오빠. 어쩌면 그렇게 나를 속여요?”
“내가 언제 너를 속였니?”
“나는 사실 처음에는 그저 그렇고, 두 번째 만났을 때부터 오빠가 좋았어요. 그러니까 잠실에서 만났을 때 말이에요, 오빠.”
“지금은?”
“지금도 좋지요. 그러나 오빠는 별로 나를 좋아하지 않는가 봐.”
“나도 너가 좋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를 보면 슬픈 생각이 난다.”
“오빠, 뭐가 슬퍼요?”
“너를 바라보면 즐겁지만, 너의 인생을 생각하면 슬프구나.”
“오빠, 슬픈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지금은 기쁜 시간이잖아요.”
“그러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 쨍 한번 하자”
두 사람은 술잔을 다시 부딪쳤다. 김교수는 그녀가 자기를 애타게 갈망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표정만 보아도 안다. 사랑한다는 말은 군더더기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김교수는 어찌할 것인가?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하나? 지금 이 순간의 사랑을 회피하지 않고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어찌 보면 아가씨의 순수한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른다.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세상사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외도, 이혼, 망신, 사직, 후회, 비참, 자식 등의 단어가 떠올랐다. 돈, 협박, 함정, 임신, 소송, 살인 등의 단어도 떠올랐다. 아, 어려운 선택이다. 시간을 앞으로 돌려 한 사람이 선택한 행동의 결과를 미리 알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여자 문제에 관해서 말이다. 김교수가 겪고 있는 치열한 내면의 갈등은 모른 채 아가씨는 조잘대며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가씨가 기대면서 김교수의 귀에 뜨거운 입을 대고 속삭였다.
“오빠, 오늘 밤 나하고 같이 지내요.”
“얘가 대담하네. 싫다 요년아.”
“오빠는 내가 싫어요?”
“네가 좋지만 오늘 너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왜요?”
“내가 그렇게 헤픈 남자는 아니다. 나하고 하룻밤을 보내려면 네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게 무어에요? 오빠.”
“첫째, 서울에서는 싫다.”
“좋아요. 서울을 벗어나 여행을 한 번 같이 가요. 오빠.”
“둘째, 호텔에서는 싫다.”
“좋아요. 그럼 민박집에서 자면 되겠네. 오빠.”
“세째, 돈 주고는 싫다.”
“좋아요, 오빠. 가난한 교수님더러 돈 달라고는 안 할께요.”
“마지막으로,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밤이어야 한다. 한 이불을 덮기 직전에 보름달을 한 번 보아야 한다. 구름이 끼면 무효다.”
“무어라고요? 오빠, 정말 대단한 남자네. 보름달을 보아야 한다고요? 그렇지만 오빠가 좋으니까 기다리지요 뭐. 언젠가는 보름달이 뜨겠지요. 좋은 사람 열 번인들 못 기다리겠어요?”
김교수는 아가씨를 살짝 껴안으면서 귀에 대고 말했다.
“고맙다, 얘야. 그러나 이 세상에는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도 있단다.”
김교수는 아가씨를 마지막으로 만나기 며칠 전에 우연히 ‘배비장전’이라는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을 읽었다. 배비장전에는 발령을 받고 새로운 임지로 떠나는 제주목사를 따라 육지로 떠나는 정비장이 그동안 사귀어 온 제주기생 애랑과 헤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정비장은 애랑이 이별을 서러워하자 다음과 같은 선물을 준다.
중량 한 통, 세량 한 통, 탕건 한 죽, 우황 열 근, 인삼 열근, 월자 서른 단, 마미 백 근, 장피 마흔 장, 녹비 스무 장, 홍합.전복.해삼 백 개, 문어 열 개, 삼치 서 뭇, 석어 한 동, 대하 한 동, 장곽.소곽.다시마 한 동, 유자.백자.석류.비자.청비.진피.용.얼레.화류 살쩍. 삼층난간 용봉장. 이층 문갑. 가께수리. 산유자 궤.뒤주 각 여섯 개, 걸음 좋은 제마 두 필, 총마 세 필, 안장 두 켤레, 백목 한 통, 세포 세 필, 모시 다섯 필, 명주 세 필, 간지 열 축, 부채 열 병, 간필 한 동, 초필 한 동, 연적 열 개, 설대 열 개, 쌍수복 백통대 한 켤레, 서랍 하나, 남초 열 근, 생청 한 되, 숙청 한 되, 생률 한 되, 마늘 한 접, 생강 한 되, 나미 열 섬, 황육 열 근, 호초 한 되, 아그배 한 접.
그러나 애랑은 이에 멈추지 않고 온갖 애교로 정비장의 갖두루마기와 돈피 휘양과 철병도와 바지저고리와 적삼을 얻어내더니 앞니를 하나 빼어 달랜다. 마지막으로 애랑은 양각산중주장군(兩脚山中朱將軍: 두 다리 사이의 붉은 장군으로서 남자의 성기를 말한다)을 반만 잘라 달라고 떼를 쓰는 장면이 나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고 예쁜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면 다 넘어가게 되어 있다. 성불구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 남자는 두 사람 빼고는 다 넘어갈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누구일까?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영어 속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There is no rule, but has exception.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끝 -
첫댓글 60회에 걸쳐 연재한 중편소설 이야기는 오늘로써 끝냅니다. 작년 3월 19일 교협이 출범한 이후 공동대표로서 저의 임무는 카페 활성화이었습니다. 교협회원이나 외부 사람이 카페에 들어왔다가 새롭게 읽을 거리가 없으면 실망하고서 더 이상 카페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왜 교수협의회에 가입하였는가”부터 시작하여 생태 이야기, 구도 이야기, 불교 이야기 등등 예전에 발표하였던 글들을 현재에 맞게 약간 수정하여 계속해서 올렸습니다. 휴~ 이제는 더 이상 올릴 글이 없습니다. 정말이지, 학교측과의 갈등이 이렇게 오래 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올해 1월에 해직교수가 되어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25일이 되어도 제 통장에는 봉급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친구나 친지를 만나도 식사비는 다른 사람이 냅니다. 각시는 평창 허브나라에 가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오고 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아들 녀석은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 학교측에서 모든 자료가 있는 저의 연구실을 자물쇠 만들어서 폐쇄한 이후 저는 8월말까지 끝내려던 저술도 연기하였습니다. 복직소송을 시작했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기죽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각시에게는 “재판에서 이기면 밀린 봉급을 이자까지 붙여서 다 돌려받으니 적금붓고 있다고 생각하자”라고 말했습니다. 각시에게 “적금타면 우리 크루즈 여행 한 번 가자”라고 큰소리쳤습니다. 시간이 많아지자 뒤늦게 여러 가지 잡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바둑과 당구를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판소리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기 보다는 앞산인 우면산에 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럿셀의 말이 생각납니다. “인생에서 행복이란 다양한 취미를 가지는 것이다.” 저는 뒤늦게 행복찾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당분간 소설이나 수필 같은 글쓰기는 쉬려고 합니다. 거의 17개월 동안 카페에 글을 썼는데, 이제는 글의 소재도 바닥나고, 쉬려고 합니다. 퇴직을 만 1년 앞둔 저에게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총장님이 생각을 바꾸어 교협을 학교 발전의 파트너로 인정하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수원대의 모든 교수와 직원들이 화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교직원들이 어느 날 학교 본부건물 옆의 넓은 잔디밭에 함께 모여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축제를 한번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축제가 열리면 저도 앞에 나가 판소리 한번 하겠습니다.
이러한 저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충분히 재충전될 때까지 편히 쉬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뭐꼬님이 글로서 기부하신 재능이 이곳 교협카페를 또 다른 차원에서 풍요롭게 했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저의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쉬지 않고 올라 오는 교수님의 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글 재미있게 읽고 많은 느낌을 받앗습니다.
쉬신다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잠시 재 충전하셨다가, 좋은 글로 다시 돌아오시기를 ...
지난 시간들을 되새겨 보는 ,,,,
교수님 글과 행동에 큰 용기를 얻고 있는 용기없는 후배입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등불로 인도하시어 정상화되는 그날 모두가 상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수님! 그간 수고많으셨습니다. 소설을 보면서 김교수가 제가 아닌가 할 정도로 공감을 느꼈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는데 아쉽습니다 . 교수님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