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 POINT
GEORGE FRIEDMAN의 글이다. 번역자는 제목을‘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지정학’이라 했다. 저자의 서문은 이렇다. 한국 현재의 입지는 북한, 중국, 일본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 언급한 나라들의 추구하는 이익이 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한국의 입장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수출은 산업화의 토대에서 고용과 사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공생관계로 출발했지만, 중국은 대미 수출은 늘리면서 자국 시장은 걸어 잠그면서 두 나라의 긴장이 높아졌다. 미국이 장악한 태평양은 아시아와 열강을 견제하는 완충지다. 중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미국에서 뚫어야만 선택지가 넓어진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중국은 이득을 본다. 미국은 곤란해져 발이 묶이고 북한과의 협상에서 중국의 역할에 의존하게 된다. 이를 이용해 중국은 미국에서 양보를 얻어내 주한미국의 철수라는 선택지를 갖는다.
한반도 분할 상황에서 한국은 두 가지를 해야 한다, 국방과 국익을 위한 해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북한을 막는 데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미국에 의존하지만, 태평양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킬 역량을 신장해야 한다. 북한과 타협하고 해군력과 공군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투자 해야 한다. 북한의 정권 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한국과의 화해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한국과 화해를 하면, 북한은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안길 것이다. 한국의 전략적 입지는 악화하였다. 중국과 일본은 자국의 전략적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 주둔군을 감축했고 나토에서 책임도 줄었다. 유럽 동맹국들이 자기 몫을 다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어야 한다. 잠재적 미국의 적국들에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이 필요한 것은 태평양 지역의 장악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유럽대륙에서 전쟁이 발발할 때 전쟁터가 중부유럽이다. 서유럽이 러시아를 공격할 때 표적지가 중부유럽이었다. 프리드먼은 미국인으로 만사가 인간이 내리는 결정으로 이뤄지는 세계에서 살았다. 유럽인으로서 필자는 역사의 산사태가 인간을 짓누르면 인간이 내린 결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에서도 살았다. 필자의 아버지는 약한 이웃 나라들과 접한 강한 나라에 살고 싶어서 미국을 선택했단 다. “필자의 아버지에겐 세상은 단순했다. 유럽은 늑대와 늑대가 잡아먹으려는 사람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미국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치의 만행을 뒤이어 한, 러시아인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필자의 아버지에게 유럽은 괴물과 부역자와 피해자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아버지는 다시는 헝가리나 유럽을 찾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35년간 압박과 설움을 받을 시기의 유럽은 1914년부터 1945년 사이에 31년간, 대략 1억 명이 전쟁, 학살, 숙청되었다. 그 시기 독립을 유지한 강대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인은 극동의 망한 대한제국과 국민과 다를 바 없었다. 이 시기의 유럽은 지옥으로 가는 서막이었다. 31년간 유럽은 갈기갈기 찢겼다. 유럽을 위대하게 만든 기술, 철학, 정치가 유럽인을 공격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유럽은 파괴된 도시와 조각난 삶이 널브러진 무덤이 됐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는 더 이상 유럽적인 삶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유럽의 허세를 조롱하는 소리로 들렸다.
유럽은 지리적 여건 때문에 통합이 어렵다. 섬과 반도가 있고 산맥이 반도를 가로막았다. 반도와 산맥은 깊은 계곡과 평야를 만들고 강들이 사방팔방으로 흘러 갈라놓는다. 유럽은 오늘날 50개의 독립국으로 구성되었다. 유럽경제지역은 유럽반도와 본토를 구분하는 지역이다. 서구와 러시아를 구분하는 지역으로 우크라이나, 벨로 루시, 리투아니아 같은 나라들을 아우르는 아주 광활한 지역이다. 우크라리나 (Ukraine)은 단어가 ‘가장자리’라는 뜻으로 경계 지역이란 말이다. 유럽연합의 공식 노래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다.
지정학에 따르면 인간은 늘 잔혹한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을 하게 되며, 국가는 나아가는 방향은 그 나라의 처한 현실을 보면 예측할 수 있다. 히틀러가 반유대인 정서에 의지한 까닭은 독일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최소합리화가 된다. 필자의 가족은 전쟁 전에 사회민주주의자였고 요주의 인물이었단 다. 필자는 1949년에 태어나 그의 부모는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국경을 넘는데 북으로 올라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넘어온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탈출해 다뉴브강을 고무보트로 건너 이스라엘인과 합류한다. 이 지역은 로마 시대부터 밀수 루트가 성행한 곳이라 안내원은 닳고 닳았다. 특화된 전문 분야 안내자는 도강, 철도안내원이 달랐다. 체코 국경수비대에 그들 가족은 체포되어 이스라엘인과 분리된다. 아버지의 작전 뻐기었다. 아버지는 이스라엘이 지정학적으로 미국만 못하기에 일부러 탈락한 것이다. 비엔나는 유럽의 축소판이다. 여기서 정식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난민으로 미국에 들어간 것이다.
이베리아반도는 피레네산맥이 유럽과 막는 고갯길이라 이곳은 모슬렘 세력이 들어왔다. 포르투갈은 인도로 들어갈 길을 찾아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고 있었고, 늦게 시작한 스페인은 인도는 가고 싶은데 포르투갈이 막으니 콜럼버스의 제안을 받아, 서쪽으로 탐험을 시작한다. 문명은 세 국면으로 나뉜다. 첫 국면은 야만이다. 사람들이 자기 마을의 법을 자연법이라 믿는 시기다. 두 번째 국면은 문명인데, 자기 방식이 옳다고 믿지만, 자신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시기다. 세 번째는 타락이다. 진실은 존재하지 않거나 모든 거짓이 똑같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는 시기다.
유럽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무관심한 문명이 존재한다. 예수가 구세주라면 대부분 인류가 그리스도교를 접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까? 세계는 넓고 다채롭고 유럽 문명이 우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모든 문명이 동등해 보이게 되었다.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도하면서 로마가 유럽의 중심이라는 개념에 도전한다. 로마 주교는 신과 특별한 관계가 아니며, 개개인이 신부의 개입 없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 가톨릭은 유럽에서 우월성을 상실한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입증한다.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을 신의 형상으로 본떠 만들었다면 우주가 존재하는 목적인 그의 창조물은 왜 그 중심에 놓지 않았을까?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으로 인간은 하찮은 존재라는 정서를 낳았고 수많은 종교의 가르침에 대면 정면 도전을 한 것이다. 하느님이 자기 외아들 예수를 인간들에게 보냈다는 믿음을 신봉하는 종교에서 가장 큰 난관을 안겨주었다.
문맹은 글을 모르기도 하기만 읽을거리가 없어서였다. 인쇄기 발명으로 누구나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로마어가 아닌 자신의 모국어로 말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은 누구보다 사제의 권위를 잠식했다. 일요일에 예배를 보러 가서, 신부의 말씀을 듣고 해석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집에서 날마다 성서를 읽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독일계 폴란드인이고, 루터와 구텐베르크는 독일인이다. 계몽주의는 반종교적이다. 따라서 계몽주의는 종교와 충돌했다. 핵심에는 이성이 있다. 인간의 이성이 우주와 인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계몽주의는 이성의 찬미를 구체제에 맞서는 혁명으로 변모시키는 개념을 싹틔웠다.
갈릴레오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면, 누구든 원하는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 결국 천재와 명인을 구분하는 기준을 결정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나의 길은 민주주의 혁명으로 이어졌고, 하나는 실력주의 사회, 즉 이성적인 사람들에 의한 통치로 이어졌다. 개인주의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개인주의는 공동체를 보완해야 했다. 그 대표성에는 공화국이고 선택에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인간이 미신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저급하고 비합리적인 의미에서 종교에서 벗어나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과학과 계몽주의는 인간을 물리적인 본성과 욕구의 집합체로 규정했다.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서로에 지켜야 할 의무는 무엇인가? 무엇이 도덕적이고 아닌가? 이 질문에 대답을 못 하면 인간은 위험한 존재로 변질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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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프리드먼 지음
홍지수 옮김
김앤김북스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