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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정물의 세계
-민구의 시
전영규
시인의 정물
여기, 한 폭의 풍경을 감상해보자. 배 두 척이 나란히 놓여 있는 고요한 저녁 강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한 사람. 그가 수심이 내비치지 않는 강의 한가운데 멈춰 서서 불붙은 장작을 던지자, 수면 위에 비친 기다란 굴참나무 그림자가 흔들린다. 수면에 비친 산허리가 휘어지고 밀고 당기기를 몇 번, 나무줄기에 매달려 밖으로 나오는 회백색 물고기들. 그때 누가 나무 밑에서 걸어 나와 빈 배에 올라타는지 그의 신발 뒤축에 끌려 산 아래서부터 중턱에까지 쏟아진 흙부스러기.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구절. “또 한 번 배가 산으로 가나?/ 너의 낡은 구두가 빛난다. 살아서는 신지 못할,// 물 속에 매달아놓은 조등.”(「배가 산으로 간다」중에서)
첫 시집의 표제작이자 등단작이기도 했던 민구 시인의「배가 산으로 간다」의 일부분이다. 다시 한 번, 이 시가 지닌 잔상을 좀 더 자세히 느껴보자. “강가에 나란히 놓여 있는 두 척의 배”는 망자가 벗어놓은 신발이 되고, “수심을 내비치지 않는 강의 한가운데”에 멈춰 선 망자의 신발 아래 “조등”이 빛난다. 망자들을 싣고 산으로 가는 배. 그들을 위해 물 속에 조등을 달아놓는 자. 시인이 달아놓은 조등으로 이곳의 풍경은 낯설게 환기된다. 이후 시인의 조등은 비누가 된 달이 되기도 하고, (「오늘은 달이 다 닳고」) “빛을 삼킨 고래의 내장에서/ 빛나는 형형색 해초”가 되거나,(「공기-나는」) “병풍 속의 새” 혹은 “부패한 연어”가 되어 방안을 부유하기도 한다.(「房-탄생」) 평범한 일상의 사물이 특별한 정물로, 시인의 언어에 의해 정물(靜物)이 정물(情物)이 되기까지. 시인의 정물은 이렇게 탄생하고 있었다. 시인이 정물이 탄생하는 공간은 주로 산이나 강, 운해(雲海)로 이루어진 자연이 되거나, 방이나 거울, 심지어는 공기와도 같은 특정한 소재가 배경이 된다.
‘조등’이 상징하는 것과 같이 시인이 발견한 정물을 중심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나누어진다. “그림의 안개가 걷히자 /커다란 관이 하나 떠 있”는 풍경. (「房-북쪽」) “거울 속에는/ 단정한 매무새와 수려한 용모/ 오랜만에 보는 나의 영정.”(「房-호출」) “태어나지 않은 알의 오리들이/ 날아다니는 무덤.”(「공기-오리」) 시인이 발견한 경계 너머는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을까. 시인은 경계 너머의 세계에 다가가고자 한다.
잠든 나의 구두를 신고서
거울 속으로 걸어가는 이
(중략)
나는 그물을 들고 있다
그물망 사이로 아무것도 없이
빛나는 바다를 본다
사공 없는 바다 한가운데
파닥거리는 물고기
아가미에서 중얼거리는 입술
해변을 서성이던 종마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나에게 다가와 큰소리로 운다
나는 벌떡 일어나며 말의 안장에 오른다
이제 막 눈뜬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거울 너머 펼쳐진 백사장을 달려간다
-「房- 거울 너머」일부
“그물망 사이로 아무것도 없는 바다를” 보는 나. “사공 없는 바다 한가운데/ 파닥거리는 물고기.” 주인 없이 해변을 서성이는 “종마.” 그 너머의 풍경은 단지 “아무것도 없이 빛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아름답다. “나는 기다려 천천히 녹는 거울을/ 흐르는 평범한 세계를.”(「房-거울」) 거울의 안과 밖, ‘나’의 구두를 신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너’ 사이, 꿈과 현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는 시인의 언어에 의해 천천히 녹아내린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가 천천히 녹아 사라지며 고요하게 빛나는 세계의 풍경들. 지금부터, 시인이 그려내는 정물의 풍경을 감상해 보자.
정물 1. 부서지는 사과
시인의 방 안에는 큰 해변이 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어느 날의 밤, 시인의 해변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당도한다. 파도에 떠밀려 온 신원 불명의 시신과, 수면 위로 떠오른 난파선. 나는 시신을 뒷산에 묻고, 춤을 추는 남녀들로 가득 찬 선실로 들어선다. 그러다 “아침이 오면 흔적없이 사라질 먼 바다.” (「房- 바다 건너」)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언젠가는 흔적 없이 사라질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그 허상이야말로 시(詩)임을 알게 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적 없이 사라질 것들을 끊임없이 상상해야만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시인은 고독해진다.
“새로 쓴 건/ 시가 되지 않았다/ 새로 만난 이도/ 오래 가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여전히 낯설고.”(「신작」,『문학동네』, 2019년 봄호 중에서) “혼자 남은 사람은/ 미래가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서/ 집으로 들어가겠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모래가 담긴 병에서/ 조금씩 늙어가고.”(「장호」,『현대시』, 2019년 7월호) 내가 쓰는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임을 아는 일.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 없이 사라져가는 시의 언어가 주는 고독과 무력이 시인의 삶을 잠식할 때가 있다. 그 시기가 유독 아프게 다가오는 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을 여전히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게’ 감각하는 시인의 천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시기가 올 때가 있다. 언제부턴가 새로 쓴 건 시가 되지 않고, 새로 만난 이와의 관계도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할 때. 결국엔 혼자 남아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 나의 고독을 실감하는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시기. 2009년 등단 이후, 무려 1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시인의 삶이다. 그 과정에서 고독과 무력을 한차례 경험한 시인의 언어는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중략)어떤 걸 써야 할지 모를 땐 그냥 눈을 감아요. 그러면 사과가 보여. 나무에 매달린 사람들, 꽃이 피는 계절에 결혼하는 신부들, 어떤 사람은 뉴턴이나 스피노자, 합격사과를 먹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한 홍천의 과일 장수를 떠올리겠지. 맥북 쓰세요? 그럼 배보다 사과. 사과에 감정이 없다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어요. 맞아, 없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감정을 느껴요. 그건 즉흥이었지만 실은 오래전 내가 배웠던 사실들에 더 가까웠다. 그때 한 학생이 고개를 들었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세잔은 사과를 좋아했을까? 죄송합니다, 저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아요. 학생들이 하하하 웃었다. 엉뚱한 대답이었다. 나는 오래전 백일장에서 낙방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하며 소재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술관에서 세잔의 그림을 실제로 본 건 몇 달 뒤였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과였지만 그건 사과가 아니었다. 빛깔도 향기도 없었고, 아무런 감동도 없었다. 뒤의 남녀가 순서를 기다려서 그들이 감동을 느끼도록 사과를 두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주머니 안에는 사과가 있었다. 그것은 값을 치르고 그림을 본 사람들이 받는 기분이었지만, 세잔의 것과 달리 말랑말랑했고 좋은 냄새가 났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자식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리고 활을 쏜 빌을 생각하며 봄의 광장에서 부서지는 빛을 보았다.
-「정물」일부
시의 소재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소재를 통해 경험하는 나의 “감정”이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것”들, 남들은 보지 못하지만 나는 보는 것들에 대해. 나의 구두를 신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 너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순간. 꿈에서 현실로 되돌아오는 순간.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천천히 녹아 사라진 세계 너머에 도달한 자의 삶은 과연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을까.
그곳엔 한 개의 빛나는 사과가 있었다. 시인의 사과가 특별한 정물이 되기 위해서는 사과의 감정을 느껴야 한다. “오래전 내가 배웠던 사실들”처럼, 사과에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가 되는 일. 사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과를 보며 감정을 느끼는 내가 더 중요했다. 세잔의 사과가 “빛깔도, 향기도, 아무런 감동도 없는” 사과임을 알게 된 순간. 그 사과는 세잔의 사과일 뿐, 나의 사과가 아님을 알게 되는 지점. “세잔의 것과 달리 말랑말랑했고 좋은 냄새”가 나는, 그림 속 사과가 아닌, 내 주머니 안에 있는, 내가 만질 수도 있고, 향기를 맡거나 먹을 수도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스런 감정도 떠올리게 하는 사과를 지닌 나. 그러자 시인의 사과는 다시 한 번 낯선 정물이 된다. ‘나’의 구두를 신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 ‘너’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순간. 상상이 현실로 되돌아오는 순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인은 “봄날의 광장에서 부서지는 빛”을 본다.
그림 속의 사과 하나가
내 앞으로 굴러왔다
잠시 뒤 바구니를 든 여인이 나타나
사과를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방바닥의 사과를 주워
송진 냄새가 진동하는 들판을 향해
천천히 내밀었다 그러자 사과는
손바닥에서 뛰는 심장처럼
은은하게 빛이 번져 어두운 방구석을 환하게 비추었다
나는 사과를 반으로 잘라서 삼켰다
나머지 반은 책상에 엎어두고
그녀가 그림에서 나오기를
멀리 점으로 묘사한 굴뚝의 연기와
소리없이 날아가는 철새들이
검은 우박처럼 방안으로 쏟아지기를 기다렸다
-「房- 빛의 사과」일부
“손바닥에서 뛰는 심장처럼/ 은은하게 빛이 번져 어두운 방구석을 환하게” 비추는 시인의 사과는, 어느덧 찬란하게 부서지는 봄날의 햇살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부서지는 사과’라는 부제가 달린 시인의 정물에 대한 설명이 되겠다.
풍경 1. 겨울의 밀밭과 불의 정원
창밖으로 뛰어내렸지만 죽지 않았다
죽지 못해 살았지만 사는 게 아니었다
빨리 들어오라고 지시하는 사람들과
알아서 기어 나가라고 밀어내는 사람들 틈에서
꿈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너도 무언가에 쫓기듯
분주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평범」일부
시인에게는 생활이 있다.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거룩한 속물들이 되어버린 삶의 풍경. 꿈에서도 현실과 다를 게 없었다. “죽지 못해 살았지만 사는 게” 아닌 삶. “빨리 들어오라고 지시하는 사람들과/ 앞으로 기어나가라고 밀어내는 사람을 틈”에서 ‘나’의 삶도 “무언가에 쫓기듯/ 분주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이후에도,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무언가에 쫓기듯 분주하게 이어지는, 죽지 못해 간신히 버티어내는 삶 속에서 ‘나’는 시인의 삶에 대해 골몰한다.
나는 알 수 있었어
식빵을 오려서 만든 나라는 춥다는 걸
사람들이 일군 조그만 밀밭과
하루 종일 느리게 지나가는 태양과
더디게 오는 저녁이 나를 깨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새에게 돌을 던지지 않는 상냥한 소녀가
보이지 않는 밭을 적시는 기침을 하고
창백한 얼굴로 빵을 내오면
그때 무릎으로 잘게 떨어지는 빵가루처럼
눈이 내린다는 것을
우리 집 밀이 제일 맛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너의 마음은
식사가 끝나면 헤아리지 못할 거야
-「산타는 없으니까 귀엽다고 말해」일부
풍경 1. 겨울 저녁의 밀밭
시인은 호밀로 만든 식빵 한 조각을 바라보며 겨울의 밀밭 풍경을 상상한다. 저녁 무렵의 밀밭. 나는 작은 밀밭을 일구는 어느 농부의 집에 초대받는다. 창백한 얼굴로 기침을 하며 빵을 내오는 소녀. 시인은 생각한다. 이곳의 식사가 끝나면 “우리 집 밀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는 소녀의 마음을 다시는 “헤아리지 못”하리라는 것을. 시를 쓴다는 건 상냥한 소녀의 미소 속에 숨겨진 마음을 헤아리는 일일 것이다. 식빵 조각 하나에 감춰진, 밀밭을 일구며 녹록치 않게 살아가는 자들의 삶의 흔적 같은 것들. 하루 종일 느리게 지나가는 태양과, 더디게 오는 저녁을 보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자들의 삶. 어느 추운 겨울 저녁, 그들이 일군 조그만 밀밭에서 수확한 밀로 만든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어느 소녀의 저녁 시간을 상상하는 일처럼.
(중략)조금 잠잠해진 불길은 어쨌든 계속 타올랐고 좋은 향기도 매일 맡으면 머리가 아픈 것처럼 정원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그 무렵 나는 지방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특별한 정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을 방문했다. 그것은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홀로 위풍당당하게 도시의 심장처럼 두근거리고 있었다! 타는 물질 없이 솟은 불길은 심장 없이 살아 있는 모조 새 같아서 그것을 종이에 옮겨 보았지만 그렇다고 시인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주변의 나무들을 만져보았다. 그것은 손을 뻗으면 나무를 포기하고 불붙은 전봇대처럼 뜨거워지려 했다. 하지만 그건 망상일 뿐, 집으로 가는 길에 힘들게 키운 시의 불길을 비벼 끄며 나는 보았다. 아무도 없는 정원을.
-「보이지 않는 정원」일부
풍경 2. 불의 정원
“도시 외곽에 자연발화하는 정원”이란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다. 경북 포항에는 이른바 불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2017년의 어느 날, 공원을 만들려고 땅을 파는 과정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상당량의 천연가스로 인해 그 불길은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는 것. 어느 날 나는 눈이나 비가 와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이 있는 정원을 찾아간다. “그것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었고 홀로 위풍당당하게 도시의 심장처럼 두근거리고 있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말한다.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다. ‘불의 정원’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정원’을 보는 나의 감정이 더 중요했다. “타는 물질 없이 솟은 불길은 심장 없이 살아 있는 모조새”라는 문장을 “종이에 옮겨 적었다고 해서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정원. “심장 없이 살아 있는 모조새.” “손을 뻗으면 나무를 포기하고 불붙은 전봇대처럼 뜨거워지”기만 하는 그것. “하지만 그건 망상”일 뿐임을 알게 해 준 그곳에서 나는 본다. “아무도 없는 정원을.”
아마 시인의 언어는 이제는 망상이 되어버린, 한때 홀로 위풍당당하게 도시의 심장처럼 두근거렸던, 힘들게 키운 시의 불길을 비벼 끄며 아무도 없는 정원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시인은 어느 웹진 인터뷰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시의 지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제가 최초에 생각한 시의 지점이 있어요. 타협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질질 끌려 다니겠다는 다짐이요. 문을 두드려도 안 열어 줄 걸 알고 있어요. 문을 열어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해볼 만하지 않나, 생각해요.”
“이 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고 “행복한 꿈 속의 양털로 짠 이불처럼/한 번 차내면 덮을 수 없”는 것.(「머랭」,『현대시』, 2019. 7월호) 내가 쓰고자 하는 것들이 현실에서는 구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지점에서 시인의 언어는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어느 봄의 광장에서 부서지는 빛처럼, 아무도 없는 정원에서 꺼지지 않고 혼자 조용히 불타오르는 불꽃처럼.
텅 빈 정물의 세계
이번에는 지워지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건물과 건물을 잇는 고압선 위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건물 두 채를 뽑아버릴 것 같은 기세로 머리와 날갯죽지를 번갈아가며 움직이는 새.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면. “눈앞에서 새를 지운다 비가 새는 날개,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구름, 구름 위의 발자국, 발자국에 신겨놓은 눈발을 모두 지우고, 공중에 흥건한 새의 부력을 마지막으로 박박 문지른다 산성비를 뿌려 뒤처리한다 지워진다, 새, 전부 지워져서// 새가 새의 가죽을 벗고 그림자만 남는다 그림자가 바벨을 들고 있다.”(「바벨 드는 새」중에서)
물 속에 매달아놓은 조등이 은은하게 빛나는 어느 고요한 저녁 강가. 새가 새의 가죽을 벗고 그림자만 남아 있는 하늘.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저 묵묵히 채워지거나 지워지기를 반복하며 탄생하는 시인의 정물들.
공중에 흥건한 시(詩)의 부력으로 가득찬 시인의 텅 빈 공간을 들여다본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는 것.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없기에 몇 번이고 그려넣거나 지워내기를 반복하는 시의 부력으로 가득 차 있는 곳. 흔적 없이 사라질 것들을 상상해야만 하는 시인의 언어는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 부력으로 가득 찬 텅 빈 정물의 세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시의 부력으로 탄생하는 낯선 정물들. 정물(靜物)이 정물(情物)이 되는 곳. 그림자만 남긴 채 망자를 싣고 배가 산으로 가는 곳. 부서지는 사과와 겨울 저녁의 밀밭. 꺼지지 않는 불의 정원이 있는 곳. 흔적 없이 사라질 것들을 그려내고 지워내기를 반복하는 시인의 시화(詩畵). 앞으로 그려낼 시인의 시화들이 아무 것도 없어도 빛나는 텅 빈 정물의 세계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약력: 전영규. 문학평론가.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등단. 창작동인 “켬”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