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E201
이진우
이른 아침에 원시의 밥을 먹고
포스트모던하게 핸드폰을 들고
중세의 회사에 나가
근대적 논리로 일하다가
현대의 술집에서 한잔하고
본능의 잠을 자는 나날들
돌아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습관들이
만들어내는 안정된 생활이
대사와 동작을 반복하는 코미디처럼 느껴질 때
한번쯤 돌아볼 일이다
월급 명세서 위에서 2차원 활자로 살아가는 자신이
11차원 우주를 뛰어 넘나드는 자연스런 시간과
상상 너머 공간 어디쯤 있어야 하는지
안정에 목숨 걸고 변화에 인색한 생명이
어느 행성에서 번성하는지
혹은 멸망하였는지
한 몸에 수많은 지층 연대가 들어 있구나. 오래된 시간은 퇴적층에 화석으로만 굳은 게 아니라 생생히 살아 움직이고 있구나. 내 안에 원시와 중세와 근대와 현대와 포스트모던이 뒤섞여 있구나. 때때로 반복되는 코미디 같은 일상은 시간과 공간, 차원의 불일치가 빚어내는 것이었구나. 그러나 균질한 시간이 어디 있으랴. 나무의 나이테에서 과거를 지우면 쓰러질 것이고, 올해 핀 저 꽃도 묵은 가지에서 나온 것이다. 오래된 것들은 안정을 원하고 새것들은 변화를 원한다. 안정과 변화 사이 꽃이 피고, 꽃이 진다.
-반칠환 시 해설집 {당신의 짐이 당신의 날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