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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가 선택된 이유
성경본문 : 에스더 2: 15-18
15.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정한 것 외에는 다른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굄을 얻더라
16. 아하수에로왕의 칠년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이끌려 왕궁에 들어가서 왕의 앞에 나아가니
17.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욱 사랑하므로 저가 모든 처녀보다 왕의 앞에 더욱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를 삼은 후에
18.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방백과 신복을 향응하고 또 각 도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풍부함을 따라 크게 상 주니라 에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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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냐고 물으시겠습니다만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시편은 매 편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 이상 여러 번씩 꼭꼭 빠짐없이 나오는데 에스더서는 1장에서 10장까지 전체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에스더서를 누가 기록했기에 그렇게 되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모르드개가 기록했을 것이다" "에스라가 기록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만일 모르드개가 기록했다면 모르드개의 이름이 1인칭으로 나올 것입니다.
에스더서를 기록한 사람이 왜 하나님이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 때문일까?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왕실을 무대로 한 이야기인데 페르시아 왕실의 사치한 잔치 이야기, 음모, 이런 일들을 적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 것이 송구스러웠기 때문일까?
그저 이런 짐작만 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에스더서를 성경(정경)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하는 것을 가지고 많은 논의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더라도 에스더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아주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에스더서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 유대인들이 비록 페르시아에서 소수민족으로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며 원수들의 음모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서 승리를 거두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앙을 가지십시오."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명절 가운데 부림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부림절을 한자로 어떻게 적습니까?"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월절(踰月節) 같은 것은 한자를 알아야 "뛰어넘는 절기", 그 뜻이 정확하지요. 부림절은 원음 그대로입니다. 영어로는 "푸림(Purim)"이라고 발음합니다.
부림절은 일종의 승전 기념일입니다.
에스더서는 "우리 민족을 몰살시키려는 원수들의 음모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막아 주시고 오히려 원수들을 물리쳐주신 부림절이 이렇게 해서 생겼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강하게 담겨 있다는 점에서 에스더서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큰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자주 내세우지만 실제의 생활에서는 하나님의 향기를 풍기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라는 말, 자기가 신자라는 말은 별로 하지 않지만 에스더서와 같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은은하게, 그러나 강하게 풍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편인가, 한 번 생각해 보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생활에도, 입으로 열심히 참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은 입술 순(脣)자를 써사 순도(脣徒)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봉사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신도라도 할 때는 믿을 신(信)자 무리 도(徒)자를 씁니다만 신도들 가운데 이런 분들은 몸 신(身)자를 써서 신도(身徒)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도는 거의 없고 몸 신 자 신도들이 많은 것이 목양교회의 강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과 같이 에스더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떤 환경 속에 있든지, 어떤 어려움 속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세심한 섭리로 보호해 주시며 승리를 거두게 해 주십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목양교회 성도들 가운데 지방에 계신 분들, 외국에 계신 분들, 그래서 목양교회의 예배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또는 주보를 통해서 간접으로 설교와 교회 소식을 접하고 있는 분들도 오늘 에스더서를 통해서 나는 먼 곳에 와 있지만 하나님께서 세심한 섭리로 보호하고 계심을 깨닫고, 든든한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또 성도 여러분, 어디 여행갈 때, 특별히 어려운 임무를 가지고 힘든 곳에 갈 때 "에스더 당시, 믿음의 민족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에서 위험 속에서 살 때도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여행지, 출장지에서도 지켜 주실 것이다"하는 믿음을 가지고 떠나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군대에 보낸 부모님들, 해외에 보낸 부모님들, "에스더 당시 믿음의 민족 유대인들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서 내 아들을 군대, 또는 해외에서도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평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더서가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르의 왕비로 선택되는 내용입니다. 일반 역사에는 아하수에르 왕이 희랍어 발음을 따서 크세르크세스(Xerxes)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포로로 잡혀온 소수민족 출신의 여인, 더구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손에 양육된 고아 출신인 에스더가 그 당시 인도에서 에디오피아 까지를 다스리고 있는 페르시아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를 모르드개의 조카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정확하게는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사촌오빠입니다. 15절에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인데 자기 딸 같이 양육했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에스더는 어떻게 해서 왕비로 선택될 수 있었습니까?
먼저는 에스더의 소박한 아름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왕비 후보생들은 일 년 동안을 치장을 하고 왕에게 나갑니다. 왕에게 나갈 때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13절과 14절은 당시 왕실의 제도 하나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왕비 후보생들이 왕에게 나갈 차례가 되면 그 동안 묵고 있던 후궁을 떠나 저녁에 왕에게 갑니다. 왕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아침이 되면 그 동안 묵고 있던 후궁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다른 후궁으로 가서 다른 내시의 통제를 받습니다. 왕이 다시 부르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이제는 궁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왕과 잠자리를 한 번 같이 했다는 것만 간직하고 일평생을 보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에게 위해 나갈 때는 원하는 것은 다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이용해서 많은 것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평생 먹고 살 것을 요구했을지도 모릅니다. "몇 캐럿 짜리 물방울 다이아 반지도 주세요", "이런 패물도 주세요", "저런 패물도 주세요", "밍크 코트도 주세요" "호피 무늬 코트도 주세요" "이런 화장품도 주세요"했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치장을 하고 왕 앞에 나갔을 것입니다.
에스더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왕비 후보생들의 관리를 담당한 내시 헤개가 주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것으로 치장한 여인들이 선택되지 않고 소박하게 꾸민 에스더가 왕의 눈에 든 것은 에스더에게 소박한 아름다움,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원래의 곱고 아리따운 용모와 모르드개로부터 받은 엄한 신앙교육이 합해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움-, 내면적인 아름다움, 그 위에 신앙적인 미가 더해진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이런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여러분 이런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진짜 미인들은 교회에 있는 법입니다. 아니 교회에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요즘 영화배우 마랄린 몬로의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마랄린 몬로의 아름다움을 내면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분은 없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은 잘해야 감탄의 대상입니다. 사람에게 충동을 주고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그칩니다. 요즘은 너무 이런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에스더는 왕 앞으로 나갈 때 왕비로 꼭 선택되어야겠다는 초조한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했지만 이 때는 "뽑히면 뽑히리라" 했을 것입니다.
담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큰 일을 합니다. 큰일을 앞에 두고 잇는 분들, 담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에스더가 왕비로 선택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아하수에르 왕은 이성을 잃고 판단력이 매우 흐려져 있었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아하수에르 왕은 왕비 와스디를 폐위시킨 다음에 희랍 원정을 떠납니다. 그런데 기원 전 480년의 살라미 해전에서 대패하고 돌아와서 실의에 빠져 환락 가운데 지냈습니다. 헤로도투스(Herodotus)라는 역사가가 이 때의 일을 자세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왕비를 구하기 위해 전국의 아리따운 처녀들을 다 궁궐로 모아들인 것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2절을 보면 왕의 측근들이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임금님을 위해서 전국 각 지방 관리들에게 명령을 내려 아리따운 처녀를 다 후궁으로 모아들여 그 가운데 왕의 눈에 제일 아름답게 보이는 처녀를 왕비로 삼으시오" 아룁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의 측근에 있다면 참 야단입니다.
왕은 마땅히 "아니되오. 왕비로 삼기에 적합한 여인이 있는지 조용히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대들은 아리따운 처녀를 뽑으라고 거듭 말하는데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현숙한 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오. 짐이 이 국난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왕비를 선택하기 위해서 힘쓰기 바라오. 지금 우리 나라는 패전을 해서 몹시 어렵지 않소? 그러니까 간소하게 이 일을 진행하시오." 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르 왕은 그것 참 좋다고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엉터리입니다. 우리 나라의 연산군이라는 임금이 예쁜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전국에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들을 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와 비슷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에스더를 보는 순간만은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에스더를 왕비로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이 몰살의 위기에 빠질 것을 미리 아시고 이것을 막기 위해 아하수에르 왕의 마음을 주장하시고 바른 판단력을 주셔서 에스더가 왕후가 되게 한 것입니다.
유대인 몰살의 음모를 꾸미는데 앞장섰던 사람은 3장 1절에 나오는 하만입니다. 하만은 아각 사람입니다. 아각은 아말렉 족속의 왕입니다. 아니라고 하는 성경학자도 있지만 하만은 아각의 후손인 것 같습니다.
기원 전 1030년경, 그러니까 에스더 시대로부터 550년쯤 이전에 사울이 아말렉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들과 그 소유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대적한 일을 벌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았는데 하나님의 명령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기름진 것은 남겨 두었습니다. 아마 욕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결국 아각은 사무엘의 손에 의해 처형당합니다(삼상 15:33). 아각 사람 하만은 이런 일을 기억하고서 유대인들을 몰살하는데 그렇게 열을 올렸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만이 등장할 줄 줄 알고 그에 맞서 에스더로 선택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예비입니다.
아까 부림절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부림은 제비라는 뜻입니다. 3장 7절을 보면 하만이 유대인들을 몰살하는 날을 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자기가 죽는 날이 되었습니다.
유대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에스더를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돕는 사람들도 예비해 주셨습니다.
☛먼저 모르드개를 들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신앙으로 양육했습니다. 사촌동생을 신앙으로 양육해서 페르시아 왕비의 자리보다 동족 구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모르드개는 모세의 어머니와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을 믿음으로 양육했는데 모르드개는 짐으로 여기기 쉬운 부모 잃은 사촌 동생을 딸처럼 믿음으로 정성껏 양육했습니다.
유대인이 몰살당할 위기에 몰렸을 때 에스더에게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4:13∼14) 강하게 말해서 에스더로 하여금 발벗고 나서게 합니다.
고레스가 페르시아를 세우고 "우리 나라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유대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하는 귀환령을 내렸을 때 일부 유대인들은 에스라 같은 지도자들을 따라 돌아왔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이 남아있던 유대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민족적 자존심이 유달리 강한 모르드개는 앞장서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야 마땅한데 왜 페르시아에 남아 있었을까 하는 것도 의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귀환은 기원 전 538년부터 일차, 이차, 여러 차례에 걸려 있었는데 모르드개는 왜 여기에 끼지 않았을까? 참 궁금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일에 크게 쓰기 위해서 모르드개를 남겨 두셨던 것 같습니다.
부림절을 한동안은 "모르드개의 절기"라고 불렀습니다.
☛다음에는 헤개입니다.
헤게는 궁녀들을 주관하는 일을 맡은 내시입니다. 헤개는 처음부터 에스더를 좋게 보고 잘 대접했습니다(2:9). 에스더가 이것저것 욕심부리지 않고 자기가 정한 것으로 만족하는 것을 보고 더 호감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헤개는 에스더가 왕에게 나갈 때 왕이 좋아하도록 잘 꾸며주고 "이렇게 하면 왕이 좋아한다" 하는 것을 알려 주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궁녀를 담당하는 내시이니 왕이 어떤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대 민족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내시 헤게도 예비해 두셨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이 여럿 나옵니다. 바로 왕으로부터 "히브리 남자 아기들은 해산 자리에서 죽여버려라"하는 명령을 받고도 이를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 산파 십브라와 부아, 아합 왕 밑에서 벼슬을 하면서도 선지자 백 명을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인 오바댜, 다 헤게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야 하고 또 자신들이 이런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사람입니다. 멸망당할 위기를 만난 선민 유대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로 선택되게 하셨습니다.
나흘 뒤에 총선거가 있는데 여러분, 에스더 같은 사람, 욕심 없고 소박한 성품을 가진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택해서 표를 던지시기 바랍니다. 모르드개 같은 사람, 헤개 같은 사람도 좋습니다. "목사님, 그런 사람 없어요!' 하지 마시고 선거 자료들을 꼼꼼하게 살피셔서 거기에 가까운 사람을 선택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기권하셔서는 안 됩니다. 크리스천은 교양을 갖춘 민주시민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우리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공을 쌓았는데 이 전통을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구약성경에는 여자의 이름으로 된 성경이 둘 있습니다. 룻기와 에스더서입니다.
룻은 효도의 모범을 보였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성경에 오르고 그 이름이 성경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왜 그렇습니까? 왕후가 되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왕과 왕후보다 목동, 가나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된 사람으로서, 이번 주일 주보 5쪽 가정예배의 제목처럼 이를 위하여 이 때에 부름 받은 사람으로서 그 사명을 잘 감당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에 성경에 자세하게 오르고 그 이름으로 된 성경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됩니다.
우리도 에스더들입니다!
남자 성도들은 "내가 에스더라니요? 나는 여자가 아니고 남자입니다!"하실 것입니다.
여자 성도들은 "내가 에스더라니요? 나는 에스더처럼 미인이 아니예요!" 하실 것입니다. 에스더라고 하니까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이 시대에 부름 받은 에스더들입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하나님의 정밀하신 섭리 가운데 이 자리에 부름 받은 에스더들입니다.
에스더는 위기에 빠진 동족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을 잘 이뤘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 영적 민족인 한국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IMF 때 보다 더 어렵습니다. IMF 때는 국민이 힘을 합해 이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장롱에 숨겨 두었던 금붙이들도 나라를 위해 아끼지 않고 내 놓았습니다.
지금은 너무 심하게 상대방을 헐뜯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성의 어디에 이렇게 저열한 성품들이 숨어 있었나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의약분쟁과 파업도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가뭄과 산불과 구제역(口蹄疫)도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일반 매스컴에 "재앙"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재앙이라는 말이 "심판"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에스더는 삼일 금식을 하고 왕 앞에 나갔습니다. 왕이 금 규(規: 예전 성경에는 홀이라고 되어 있지요)를 내밀지 않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나가는 것입니다.
사흘을 금식했으면 얼굴이 초췌해지는 법입니다. 그런데 왕의 눈에는 더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5:2).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금식기도의 효능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헤게를 찾고 모르드게를 찾아 힘을 합하고 함께 기도해야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모르드개가 되고 헤개가 되어야합니다.
에스더와 같이 금식해야합니다.
여러분 사순절에 금식을 많이 하시는데 금식하시면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보 10쪽에 금식에 대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형식적으로 밥을 안 먹는 것, 억지로 안 먹는 것은 굶식인데 굶식을 하지 말고 금식을 하시면서 나라를 위해 기도 많이 하셔야 합니다.
주보 10쪽 끝에 적은 대로로 이번 주일의 컴퓨터 선교에도 금식에 관한 설교가 한 편 실려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단호한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에스더는 왕비의 자리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면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어야합니다. 여러분의 기득권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페르시아 왕비의 자리에 비할 수 잇는 것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공감하신다면 자기의 가슴에 손을 대고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에스더다!"
하나님께서는 2,500년 전의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선택받은 백성 유대민족을 몰살의 위기에서 구원하기 의해 에스더를 왕비로 선택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000년대 영적 민족인, 제2의 선민인 한국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우리를 성도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새 역사를 열어 가는 신앙공동체가 되기 힘쓰는 목양교회 교인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에스더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것입니까? 어떻게 해야할 것입니까?
고난주간을 앞둔 이 주간, 사순절 다섯째 주간, 믿음을 재정비해야 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 이 때에 이 질문의 답을 찾으면서 보내기를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