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대야산으로 간다.
이곳 역시 여러 번 들렀던 곳이지만 친구가 100 명산+20산을 다시 진행하는 바람에 따라가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백두대간 진행 시 지나간 이후로 벌써 7년이 흘렀다.
당초에는 대야산 주차장에서 진행을 하려 했으나 거리가 조금 짧은 것 같아 운강 이강년기념관 앞에서 출발하여 선유9곡을 거쳐 대야산을 오르기로 했다.
운강 이강년기념관.
이 기념관은 운강 이강년 선생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2002년 4월에 세웠다. 여기에는 선생의 의병항쟁 연보를 비롯 교지, 간찰, 만사 등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500m거리에 그의 생가지를 복원해 놓았다.
선생은 1858년 이곳 가은읍 도태리(현 가은읍 상괴리)에서 태어나 1880년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행용양위부사과와 선전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1884년 갑신정변을 계기로 낙향하여 학문에 몰두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비분강개한 선생은 도태리에서 창의하여 농암장터에서 친일 관찰사 김석중을 처단하였다. 이후 제천, 단양, 수안보 등지에서 항전을 계속하였다. 선생은 1907년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자 다시 거의하여 충북 제천, 충주, 단양을 중심으로 경북 문경, 영주, 봉화, 강원도 영월, 원주, 화천, 인제, 홍천, 강릉, 양양, 경기도 가평, 포천 등지에서 유격전을 벌이며 일제에 항전하였다. 그러다 1908년 7월 제천 작성전투에서 적의 탄환에 발목을 맞고 붙들려 사형판결을 받아 그해 10월 교수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여 그의 공을 기리고 있다.
이강년 기념관 담장 위에 핀 무궁화.
내를 건너 선유 9곡을 따라간다.
길가에는 예쁜 야생화들이 곳곳에 피어 있고...
비비추.
약간 우측으로는 장성봉과 애기암봉이 보인다.
범부채.
메리골드.
봉숭아도 예쁘게 피었다.
처음에는 겹황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겹꽃삼잎국화.
루드베키아.
이질풀.
칠우대.
초입 바위 절벽을 칠우대라 명명하고 칠우들의 이름을 새겼다.
칠우들은 모두 어리석을 우(愚)자가 들어간 호를 가진 1884년(甲申)~1888년(戊子)생이다. 칠우정원들이 남긴 '낭원총설'에 칠우대 기사, 절구와 율시가 전한다.
달맞이꽃.
제3곡 백석탄.
흰 돌들 사이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바위로 인하여 여울을 만들며 흘러가니 보던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닭의장풀.
제4곡 와룡담.
바위에 새겨진 '와룡담' 글씨는 해서와 초서를 배분, 조합하여 절묘한 느낌을 준다. 위로부터 내려오던 시냇물이 이곳에 이르러 큰 못을 이루면서 넘실거려 마치 용이 누워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 굽이의 이름을 용이 누워있는 못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제5곡 홍류천.
홍류는 붉은 물을 의미하며 실제로 물이 붉을 수는 없으나 이것은 물 위에 붉은 꽃이 떨어져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 곳은 물살이 천천히 흐르고 있어 붉은 꽃잎들이 물을 가득 메우고 흘러가기에 홍류천이라 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제6곡 월파대.
월파대는 칠우칠곡의 다른 굽이와 달리 바위가 넓게 자리하고 그 옆으로 시내가 흘러가 대(坮)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비스듬히 자리하는 바위 때문에 시냇물이 완만히 흐른다. 달이 뜬 밤이면 달빛이 이 물살 위에 비치며 하얀 물결을 이루고 흘러가기 때문에 월파대라고 이름한 것으로 보인다.
제7곡 칠리계.
여울이 7리에 걸쳐 있다 하여 칠리계라 불린다. 널따란 바위가 약간의 격차를 가지고 있어 선유구곳에서 흘러오는 물이 이 굽이에 이르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가니 7리를 걸쳐 흐르는 여울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선유구곡에 이른 사람들이 물길을 따라 내려오다 이곳에의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머물기도 한다.
제1곡 옥하대(玉霞臺).
각 곡마다 한시가 새겨져 있다. 2곡 이하 한시는 생략한다.
흰 돌에 아침햇살 비쳐 밝게 빛나고
맑은 시내 찬 물결에 안개 붉게 오른다.
한가로이 새겨진 제자 찾기가 어렵고
흰 구름만 누대 위로 저 멀리 자리하네.
白石朝暾相映華 晶流寒玉紫騰霞 閒尋題字迷難辨 只有白雲臺上遐
백석조돈상영화 정류한옥자등하 한심제자미난변 지유백운대상하.
제2곡 영사석.
제3곡 활청담(活淸潭).
제4곡 세심대(洗心臺).
제5곡 관란담(觀爛潭).
우측 바위에 '구은대', '관란담'이라 새겨져 있다.
구은대.
9명의 김씨 이름이 종서로 새겨져 있다.
관란담.
제6곡 탁청대(濯淸臺).
제7곡 영귀암(詠歸岩).
제8곡 난생뢰(鸞笙瀨).
제9곡 옥석대(玉舃臺).
건너편 바위에 옥석대라 새겨진 글씨가 보인다.
학천정.
선유동천나들길 1코스(이강년기념관-학천정)가 끝나는 곳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높은 습도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입은 옷이 땀에 젖어 줄줄 물이 흐를 정도가 되었다.
목도 마르고 해서, 시원한 동동주 1통을 사서 둘이서 마시고 2코스가 이어지는 용추계곡으로 가는데......
이 동동주가 쥐약이 될 줄은 이때만 해도 미처 몰랐다.
학천정은 숙종부터 영조까지의 학자 도암 '이재(1680~1746)'를 기리기 위해 1906년 후학들이 세운 정자이다.
주차장 갈림길을 지나,
선유동천나들길 2코스를 이어간다.
무당소.
용추폭포 아래에 있는 무당소는 수심이 3m쯤 되는 정도로 100여년 전 물 긷던 새댁이 빠져 죽은 후 그를 위해 굿을 하던 무당마저 빠져 죽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무당소의 물이 아주 맑고 투명하고 주위에는 산들이 둘려 있어서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용추폭.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오른 곳이라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용추 양쪽 거대한 화강암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할 때 용트림을 하다 남긴 용비늘 흔적이 신비롭게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월령대지킴터를 지나,
피아골 삼거리에 도착했다. 직진하면 밀재 방향, 우측은 피아골 방향이다.
우리는 피아골로 올라간다.
시원한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나니 달아올랐던 얼굴이 조금 식는 가 했지만 금세 다시 달아오른다.
이쪽 방향은 경사가 급하고 바닥 흙이 미끄러워 로프가 매어 있어 조심해야 할 곳이었지만, 지금은 곳곳에 계단과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힘이 들어 식사를 하고 진행하는데...
제대로 된 급경사에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같은 땀방울이 온 몸의 수분을 모두 내뱉는 듯하고,
자그마한 폭포 옆에서 위한을 찾으려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계단, 계단들.
바람 한 점 없는 곳을 오르려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점점 심해지는 급경사에 쏟아지는 땀을 씻기는 커녕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 정도다.
정상 밑의 마지막 계단.
온 몸의 수분을 다 쏟아낸 끝에 밀재갈림길에 도착했다.
용추계곡 입구에서 여기까지 2시간 40분이나 걸렸다.
여기서부터는 대간길. 7년 전 이곳을 지나가고 나서 처음이다.
정상에 표지판이 보인다.
7년 전 지나온 백두대간 능선 상의 봉우리들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아련한 추억에 젖어들고...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남쪽 속리로 이어지는 대간능선이 더욱 그립다!
대야산(930.7m).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에 걸쳐있는 산(930.7m)이다. 대야산은 '큰산'이라는 의미인데, 옛날 이곳에 홍수가 났을 때봉우리가 대야 만큼만 남아 있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대간 마루금이 이어지는 뒷쪽 직벽 방향은 막아놓았다.
바로 뒤 우측 멀리 희양산이 보이고,
다시 좌측으로 고개를 더 돌리면 우측 둔덕산도 보인다. 둔덕산 왼쪽으로는 멀리 시루봉과 도장산도...
약간 우측으로 백악산도 멀리 흐릿하다.
한동안 쉬고 나서 이제 밀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에는 멋진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데 대문바위, 코끼리바위, 곰바위 등이 그것들이다.
앞 봉우리 약간 왼쪽으로는 도명산도 흐릿하게 보이네.
중대봉갈림길인데 우측 중대봉방향은 막아놓았다.
로프를 타고 오르내리던 예전 등로는 어디가고 전부 계단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대봉갈림길에서 뒤돌아본 대야산 정상, 그리고 우측 뒤로 희양산도...
곰바위.
중대봉 대슬랩.
과거 농암 방향에서 중대봉 슬랩을 거쳐 대야산으로 올라온 적이 있다.
밀재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서는데 예전에는 이곳도 전부 로프가 설치되어 있던 곳이다.
조금 편하기는 하지만 암릉을 타는 재미는 멀리 사라져버렸다!
좌측 둔덕산과 우측 조항산.
대문바위를 지나,
조망처에서 중대봉을 감상한 후,
다시 계단을 내려서면,
미어캣(?).
코끼리바위가 나타나는데 계단을 설치해 놓아 코끼리의 본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망할놈의 계단.
밀재에 도착.
직진은 대간길, 좌측으로내려가면 오전에 지났던 월영대와 용추가 나온다.
산죽길도 잠시 지나고,
떡바위도 지난다.
다시 월영대로 내려섰다.
휘영천 밝은 달이 중천에 높이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을 흐르는 맑디맑은 물위에 어리는 달빛이 아름답게 드리운다 하여 월영대라고 한다.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다시 잠시 내려가다 시원하게 알탕을 하고,
용소바위도 지나간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용추계곡에서 머무르고 하늘로 승천하다가 발톱이 바위에 찍혀 그 자국이 신비롭게도 선명하게 남아있어 이를 용소암이라 한다.
마침내 식당가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여 힘들었던 산행을 마감한다.
도상거리 16.5km.
곳곳에 설치된 계단 때문에 암릉산행의 즐거움을 망쳐 버린 하루이기도 했고, 금년 산행 중 땀을 제일 많이 흘린 하루이기도 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릿 탓에 힘이 들어 6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본격적인 산행 시작 전 마신 동동주가 오늘 산행을 힘들게 한 주 요인이었다.
안그래도 덥고 습한 날에 동동주로 몸에 열을 확확 내게 만들었으니 그 뒤는 말해 무엇하랴!
첫댓글 구경한번 잘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쥐약으로도 동동주를 빚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