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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찾아 떠나는 해파랑길
영덕구간 해파랑길이면서 블루로드의 네 코스 종주를 무사히 끝낸 종착지 고래불 해수욕장의 밤은 서울 가족들이 마냥 그리운 채로 깊어만 갔다. 우르릉 쾅쾅 퍼붓는 빗줄기 소리와 번쩍대는 천둥번개가 타지에 혼자 있는 나를 마구 흔들어댄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공연히 애태우지 말자고 아예 자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부터 찾아 떠날 관동팔경의 이모저모를 다시 인터넷으로 검색해 위치 표식이며 갈래길 등을 수첩에 꼼꼼이 메모하느라 새벽이 되는 줄도 몰랐다.
울진으로 넘어가는 넷째날 아침 모텔 방 창문 밖을 바라보니 시커먼 하늘에 주룩주룩 장대비가 무섭다. 채 마르지 않은 옷의 축축한 감촉과 꾹쩍꾹쩍 물이 찬 트래킹화로 걸을 생각하니 갑갑함과 퀴퀴함에 짜증이 인다. 잠도 못 잤는데, 하루 쉰들 무슨 대수랴! 엊저녁부터 조금씩 기침이 나고 목이 따끔거리는 감기 증상까지 느껴진다. 이참에 오늘은 모텔에서 모든 것 다 잊고 잠이나 실컷 잘까? 슬그머니 나태의 유혹에 느림의 미학까지 자기합리화가 이어진다. 감기약을 먹고 살살 올라오는 졸음에 그대로 누웠다. 얼마를 잤을까 불현듯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벌써 10시 반이 넘었다. 암만 늦어도 8시 전에는 항상 출발했었는데 너무 늦장 부렸다. 어떻게 떠나온 길인데, 이럴 수는 없다. 다시 채비를 했다. 저 대단한 빗속을 걸어가려면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 카메라며 배낭, 허리가방을 이번에 새로 구입한 폭넓은 빨간 우비 속으로 모두 넣고 머리까지 완전히 뒤집어썼다. 스스로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울진 관동팔경의 명승지를 찾아 출발하였다.
고래불 해수욕장을 빠져나올 때에만 해도 비릿한 해풍과 희뿌연 해무를 즐기며 운치있어 했다. 용머리공원을 통과하고 근 한시간 동안을 코앞의 땅만 보고 걸어갔나보다. 점차로 맥이 빠지고 힘이 들기 시작했다. 쉴 곳을 찾던 내 눈에 빨갛고 파란 기둥 조형물들이 반갑게 띄었다. 패션단지 중의 하나인 ‘메르 센트(Mer Scent)’ 팬션 입구에 있는 카페 건물이었다. 입구로 들어서니 종업원이 우비를 받아준다. 빗방울들이 쉬임없이 흘러내리는 창문 바깥으로 동해 물결이 넘실대고 하얀 파도가 집채만큼 철썩철썩 쳐댄다. 이런 비오는 바닷가 찻집풍경은 오래도록 기억해두고 싶다. 향긋한 드립커피로 따뜻하게 몸과 마음을 데웠다. 실내 장식이 특이하고 신선한 한쪽에 어코스틱 기타가 보인다. 종업원에게 노랠 불러도 좋으냐고 물으니, 서로들 기타 치며 노래하고 즐기는 곳이란다. 허락을 얻어 팝송 2곡을 불렀다. 몇몇의 손님들 역시나 박수와 앵콜을 퍼부어준다. 이어 3곡을 기타치고 노래 부르는 사이 젖은 마음은 말끔히 말랐다. 우연한 라이브는 또 하나의 활력소이다.
동해가 울부짖고 갈매기들이 날질 않는다. 세상이 힘든가보다. 혼란한 마음 추스리며 울진대게 한마음 광장에 도착했다. 울진대게 붉은대게 축제 현수막이 나붙었다. TV에서 본 ‘백년손님 자기야’ 프로그램의 후포항이다. 어시장에 들러 홍게 큰 걸로 2마리를 샀다. 바로 삶아 주어 시장 안쪽의 식당에서 먹었다. 대게는 3월이면 끝나고 지금은 붉은 대게 홍게 철이란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홍게를 맥주와 곁들여 맛있게 먹고 나오니, 그 사이 비는 그치고 해가 반짝 났다. 식당 아주머니는 혼자 무거운 짐을 지니고 다니는 내가 안쓰러운지 삶은 고구마랑 옥수수를 주며 먹으면서 가라고 한다. 배낭이 꽉 차서 조금만 받아오며 큰 언니 같은 인정에 슬쩍 눈물이 났다.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대게를 떠받히고 있는 울진대게 유래비와 어부조각상이 세워진 울진 바다 목장과 해상 낚시공원에 도착했다. 솔숲 가로수가 시원한 거일리해변을 지나면서부터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를 찾아야겠기에 빠른 걸음으로 숲속 길을 걸었다. 우람한 소나무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길은 바로 ‘월송정’ 가는 길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숲이 많고 바다가 보이는 강원도의 빼어난 풍경 8곳을 정하여 ‘관동팔경’이라 이름하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북한쪽 통천에 총석정과 고성에 삼일포가 있고, 우리나라 제일 위쪽간성에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그리고 가장 남쪽에 위치한 울진의 월송정이다. 월송정은 신라의 화랑들이 솔숲에서 달을 즐기며 놀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정자에 앉으니 정자 양쪽 소나무 사이로 하얀 모래사장이 쫘악 펼쳐지면서 푸른 바다 물결이 넘실거린다. 현판, 싯귀, 글들이 천정과 단청 사이사이에 걸려 있다. 이런 정자에서 풍류도 노래도 맘껏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섯째날 토요일 오늘은 6.25날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흥얼거리며 구산 바다로 나갔다. 굵은 소나무들이 풍성한 구산 해수욕장엔 아침 햇살이 벌써 찬란하다. 주말 여행객이 가족 단위로 일찍부터 와서 웃음꽃을 피운다. 구산어촌체험마을을 지나 조선조 독도 순찰사들이 바람 잔잔하기를 기다려 머물던 곳이라는 대풍헌을 돌아보았다. 근처 해변엔 독도의 모습 조형물이 단정히 자리하고 있다. 우리의 땅 독도가 더 이상 힘들지 말아야 할텐데. 동해 갈매기들과 파도를 말없이 기도하며 걷는다. 허리를 펴지 못하는 꼬부랑 할머니 한분이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작대기로 미역을 건져 올리신다. 마구 쳐대는 파도를 연신 다 맞고 계신다. 저렇게 긴 세월 묵묵히 살아오셨으려니 가슴이 찡해 온다. 기성교차로를 지나 녹색 모를 심은 넓은들판이 시원하다. 어린 모들이 줄을 맞춰 서서 바람에 파르르 떨고들 있다.
드디어 ‘자연이 살아 숨쉬는 땅’ 울진엑스포공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 한쪽으로 커다란 늪과 하천이 보인다. 왕피천 하천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건너편 야트막한 산 위쪽에 정자 하나가 보인다. 관동팔경 두 번째 명승지 ‘망양정’이다. 왕피천의 끝에서 산길로 이어지는 연결다리가 있나 끝까지 들어가 보았지만, 하천과 바다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 너른 왕피천을 돌고 돌아서 수산교를 건너 해맞이공원 광장과 망양대종이 있는 망양정 정자에 올랐다. 시원한 해풍에 멋드러진 송림, 파도치는 동해 장관에 누군들 반하지 않으리! 예전엔 지금보다 원시적 송림이 더 우거졌고, 유흥시설이 전혀 없었다고 하니,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기에 더없이 빼어난 곳이었으리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들어선 울진엑스포공원엔 금강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송림산책길, 소나무 휴양림으로 흠뻑 삼림욕에 취했다. 물고기 2마리 형상의 다리가 보인다. 울진의 명소 은어다리는 비늘 조각이 선명하게 저녁햇살에 반짝이며 신비한 환상을 자아낸다.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은어의 입 속으로 들어가도록 해파랑길은 안내한다. 은어의 뱃속을 걷는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따끔거리던 목은 더욱 심하게 아파온다. 병원을 찾으니 연호공원 쪽이 번화가라고 한다. 저녁 6시로 문은 닫았지만 약국이 보인다. 감기약을 구입하고 근처에 성당이 있을까 찾아보았다. 울진성당엔 7시 반에 토요특전미사가 있다. 작은 여관에 여장을 풀고,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미사에 참례했다. 사뭇 진지한 신부님과 시골 신자들의 경건한 모습, 신부님의 강론은 나를 위한 듯 절절했다. 눈물이 마구 솟구쳤다. 미사가 끝나자 신자 한명 한명 악수로 배웅하시던 인자한 신부님이 무거운 배낭을 맨 나를 보시곤 타지 사람이냐 물으신다. 그저 주체 못하는 눈물이 흘렀다. 신자들을 다 보내신 후, 두 손을 내 머리에 얹고 한참을 말없이 기도해 주셨다. 실로 많이 편안해졌다.
여섯째날 아침 다시 성당에 들렀다. 하얀 성모님이 웃고 계셨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걷는 길 울진 장터에선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울진 12령 장터를 떠도는 바지게꾼들이 터덜터덜 걷는 모습, 막걸리 마시는 모습, 광주리 이고 가는 여인네 모습들이 구리조각상으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팍팍하고 힘든 삶이 느껴겨 가슴이 먹먹했다. 아침 햇살 듬뿍 받는 연호공원엔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너른 연잎들만 가득하다. 연호정 정자에 앉아 연잎 호수를 바라보며, 시장에서 사온 떡과 과일, 우유를 먹었다. 관동팔경길 따라 걷는 녹색경관길, 시퍼런 동해 새하얀 파도가 끊이지 않는 바닷길을 질리도록 보고 또 보면서 걷는다. 골장 해변을 지나고 봉평 해수욕장에 이어 죽변 해수욕장이다. 드라마 ‘폭풍 속으로’ 드라마 속 어부의 집과 용의 꿈길 세트장이 보인다. 일박이일 팀의 체험 사진과 송윤아 김석균 주인공의 사진이 걸려있다. 죽변 등대에 올라서니, 파도치는 푸른 바다는 빨간 어부의 집 지붕들과 함께 장면들마다 화려하고 신비스레 사진 속에 담긴다.
울진 마지막인 27코스가 시작된다. 뜨거운 햇살에 물병은 고갈되었다. 다리와 발은 화상을 입었는지 열이 푹푹 난다. 참음하며 가는 내리막길에 죽변제일교회가 보인다. 물 좀 얻어갈 양으로 들어가니, 마침 12시 40분으로 점심 식사들이 한창이다. 교회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여행객 같은데 밥때이니 밥 먹고 가라며 식판을 주고 수저를 쥐어준다. 식사할 곳도 딱히 없던 나는 체면 불구하고 미역국에 나물과 김치로 교회밥을 감사히 먹었다. 나곡 태실 가는 길, 수로부인이 걸었다는 수로부인길을 간다고 걸었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문경세재 넘듯 길고 넓은 언덕의 포장도로가 한참을 이어진다. 땡볕에 지열에 견디기 힘들 때 언덕 정상이 보인다. ‘도화동산’이란 표지석이 보인다. 울진군청에서 불에 타 없어진 나무들 대신에 백일홍꽃을 대단위로 심어 도화동산을 만들고 군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고 한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댓시간을 오르내린 이 길을 다 내려와서 물어보니, 강원도와의 경계이며 갈령재 고개라 한다. 아마도 수로부인길을 찾지 못하고 고포항 가는 길마저 놓친 듯하다. 월척항, 월척해변, 속섬의 이정표를 보면서 찻길 따라 걸어가니 호산 버스터미널이 보인다. 슈퍼마켓도 겸한 버스터미널에서 맥주 캔과 과자, 초콜릿을 사서 동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6일 동안 영덕 구간 64km, 울진 구간 79km 도합 163km를 걸어낸 신통한 나에게 맥주로 건배를 했다. 감사의 기도와 함께 다음 달에 이어질 삼척 동해 강릉 구간 길을 위해 체력과 준비를 잘 하자고 다짐했다.
*메르 센트 팬션 예쁜 카페
기타가 있고, 비내리는 풍경
*빨간 우비를 벗고 몸을 말리며
팝송과 가요 라이브를....
*비오는 후포항 어시장에서
홍게를 샀다.
*어시장 안쪽 식당 아주머니
웃음이 아름답다. 고구마도 주셨다.
*울산 대게 유래비가 있는 곳
*울진 바다목장 해상낚시공원
*관동팔경 월송정 가는 길에
해파랑길 주홍빛 리본이 반갑다
*관동팔경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신라 화랑들이 달을 즐기던 월송정!
*구산 해수욕장에서 하루 쉬고
소나무 숲 울창한 해변을 만난다
*구산 해수욕장의 아침 바다 풍경
*독도 순찰사들이 머물던 대풍헌
*구산 해변에 자리잡은 독도 조형물
*울진대게길엔 하늘과 구름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미역 건져올리는 꼬부랑 할머니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망양정에 올라
*울진 엑스포공원 이모저모
*울진 엑스포 공원 소나무길 산림욕장
*울진 엑스포공원 금강소나무
누워서 찍었다.
*울진 은어다리가 하도 예뻐서
*울진성당이 소박하다
*울진 장터 바지게꾼들의 모습상
*연호공원에 아침햇살이 빛난다
*연호정에서 앉아서 쉬었다
*골장 해변
*봉평해수욕장
*죽변항
*죽변항 드라마 세트장
*죽변항 등대
*드라마세트장 '폭풍 속으로'
*갈령재 고개 꼭대기 도화동산
첫댓글 관동팔경 2곳을 보고나니
다음에 이어질 해파랑길의
관동팔경 명소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