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적은 돈으로 터를 마련해야 했기에
원하는 조건에서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는 걸 전제로 함)
지리산자락에 터를 마련한 지 벌써 일년 됐습니다
그 시간을 보내며 정리한 것을 적어 볼게요.
(장사를 한다거나 애들이 있어 학군 걱정을 해야 하거나
그런 거 없이 오로지 내 한 몸 맘 편히 있고자 한 것임)
1) 약간의 폐쇄공포증 땜에 막히지 않아야 하고
2) 새로운 인간관계는 맺을 맘이 없기에 동네는 피하고
3) 감각에 예민해서 혐오시설이 없어야 하고
4) 기반시설(상하수도, 전기)이 돼 있고
5) 운전을 못하니 택배차량 출입이 자유로울 정도의 도로.
이 정도 선에서 적은 돈에 맞춰 최대한 구한다고
5년을 대중교통 타고 다니며 지리산 자락 둘레를 맴돌았습니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중요하니
4번이 제일 중요할 수도 있으나 1번으로 하지 않고 4번으로 한 까닭은
음... 사실 5년을 넘게 극심한 무기력에 빠져서
먹고 사는 데에 힘을 쏟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던 게지요.
원하는 조건을 다 갖출 돈이 있다면야
이런 저런 말을 할 까닭이 없을 것이나
최소한의 돈으로 움직여야 해서 말이 많아질 뿐...
시골 땅에 공시지가는 무의미하고
원하는 사람이 많은 곳은 무조건 실거래가이기에
지리산자락은 손대지 않은 곳은 15만원 선이고
축대나 기본 기반시설을 해놓은 곳이면 2-3배 정도는 있어야 하고
계곡이나 뭐 도로 사정이 좋은 곳은 3-4배 정도 받으려 합니다.
계곡 가까운 곳에 살아본 나로서는 계곡 쪽은 아예 제외했지만...
땅이 몇 백평이 넘어가면 단가는 내려가나
작은 땅, 거기다 200평 정도 땅일수록 평 단가는 세지요.
원래 산 속으로 가고 싶었으나 임야란 것이
보통 평 수가 커서 단가는 싸도 총액으로 따지면
내 처지로는 어림 없는지라 5년을 넘게 다녔어도 힘들더군요.
지리산자락 둘레를 어슬렁거리며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억대도 없으면서 이곳 땅을 보러 다니냐는 핀잔과
여러 무시를 당해서 이골이 날 정도였습니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그 많은 곳을 가봤으나 우선 답답함이 들면
다른 좋은 점이 있어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그 점을 첫번째로 잡았습니다.
옛 어른들, 사람 얼굴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니
맘씨, 솜씨 좋은 게 최고라 했고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고
아름다운 꽃도 며칠 못 가고
멋진 풍광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라는...
그러나 내 성격이 막힌 것에 답답해 하니
탁 트이지는 못할 지언정 어느 정도는 트여 있어야 합니다.
전경이 트인 곳이라면 바닷가가 훨씬 선택 여지가 많으나
소금기 있는 바닷바람이 싫은 나로서는 애초부터 안중에 안 뒀습니다.
하루 이틀 여행 가서 맞는 바닷바람이야 뭐랄 거 없으나...
이곳 매물이 나와서 처음 왔을 때
금대암 있는 산자락부터 함양으로 나가는 길로 해서
중봉, 천왕봉, 장터목대피소, 세석평전까지...
너무 가깝지도 않게 펼쳐져 있는 풍광이 있고
평수는 200평 밖에 안 되지만 탈탈 턴 돈으로 살 수가 있고...
천왕봉이 너무 가까워 마치 동네 뒷산 같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떨어져 있어서 천왕봉임을 실감케 하더군요.
다른 동네도 가 보았지만 너무 가까워 답답하거나
아님 굳이 말하지 않음 지리산인지 전혀 모르거나...
(이건 지리산자락으로 들고자 하는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음 ㅋㅋ)
처음 봤을 때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전봇대는 길 옆에 있음)
상하수도 문제가 있고, 포장된 길이긴 하나
많이 가파른 구간이 세 군데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내 예산으로 봐서 포기할 것이 몇 가지가 생기게 되면
이 정도는 포기해도 되겠다 싶어 바로 사버렸습니다.
이 땅은 내가 제일 먼저 봤고, 선택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산자락에 연고를 둔 부동산 덕분입니다.
그곳에 몇 번을 찾아가 부탁해 놓아서 기회를 잡게 된 것이지요.
전화로 주소를 받아(모르는 사람한텐 주소 안 줌) 로드뷰까지 확인하고
포기해도 좋을 액수(총액이 작아서 부담 역시 작았음)을 먼저 입금하고
매물을 내리게 한 다음 버스를 서너 번 갈아타고 가서 확인했던 것.
1~3번까지는 흠 잡으려면 먼지 정도는 있겠으나
거의 흠 잡을 거리가 없어 보였답니다.
그 흔해 빠진 송전탑이나 축사도 하나 없고
차량 번잡한 큰 도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방랑자처럼 5년을 넘게 여기저기 떠돌던 생활도 끔찍하고
돈이 더 생길 구멍도 없고 해서 그만 고민하고 바로 잡아버렸습니다.
1번에 대한 결론은
일년 지난 지금, 아직 질리지 않은 풍광을 감상 중입니다.
저녁에 장터목대피소 불빛을 보고
오늘 밤 저곳에서 잠을 청하는 이는 누구일까...
왼쪽 산자락이 금대암 있는 곳이고
가운데는 오도재 넘거나 용유암 쪽으로 가거나...
하봉 - 중봉 - 천왕봉 - 제석봉 - 연하봉...
너덜지대 가운데 봉우리가 중봉
올 삼월 꽃샘 추위 때 내린 눈
첫댓글 이 글을 쓸 때는 일년이 지났을 때이고
지금은 6년이 지났다. 지금도 변함 없는가?
무인도 아닌 이상 인간 사이에서 생기는 탐욕과 관련해
정말 정말 답이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