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 부산수필의 현실과 부산수필이 나아갈 방향
- 협회지 시대를 종식시키고, 동인지 시대를 꽃피워, 수필의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야한다 -
권대근
(문학박사, 비평가)
I. 머리말
한 해를 마감하는 의미에서 2005년 한 해 동안 수필문단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움직임들을 정리해 보는 것은 그 양적인 확대는 물론이거니와 그 질적인 심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 할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수필은 문학이다. 그러나 “수필은 문학이다”라고 명제화한다고 해서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마를 지닌 수필가의 치열한 수필정신에 의해 문학이 되는 것이다. 수필가는 수필가이기 이전에 문장가여야 한다. 수필은 좀 못 써도 되지만 수필가가 ‘아닌’ 글을 쓰면 안 된다. 바른 글만이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
부산 수필문단은 남녀 성비율로 볼 때, 여성수필가가 남성수필가보다 많다. 많을 뿐만 아니라 좋은 수필도 여성들이 많이 발표하고 있다. 2005년 한국명수필로 뽑힌 부산의 4인도 모두 여성이다. 본 주제 발표는 외적으로는 안정된 모습을 보이지만, 작품 내적으로는 사실상 우리 부산수필의 질적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수필 또는 수필가들을 중심으로 부산 수필의 특성과 그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양적으로 수필가가 많이 출현하는 현실에서 양적 발표나 활동을 중심으로 수필계를 재단하는 일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문학사나 문단사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다 질로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작가는 당연히 글로 말해야 하고, 그 평가의 중심에는 질적 요소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2005년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겉으로 드러나는 문단 활동상은 남성 수필가들이 우세했지만, 질적으로는 남성수필들이 여성수필들을 따를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남성 수필가 중에서도 송두성, 최홍식, 안명수 등의 수필가들이 여성 못지않은 저력을 보였지만 그 힘이 여성 작가들의 성과를 누르기엔 부족했다.
본 발표문의 중심 내용은 2005년도 부산문단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문제적 현실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다음, 2005년도에 꽃을 피운 수필의 현황을 동인지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결론적으로 그 특성과 함께 우리 부산수필이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야 할 현실성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II. 2005 부산수필의 발자취
부산의 수필가는 여러 계층으로 분화되어 있다. 수필 쓰기를 전업으로 하는 수필가보다 여러 직종에 종사하면서 여기로 수필을 쓰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치열하게 쓰는 작가도 있는 반면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의 친목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동인 단체도 있고, 자기 과시와 허명을 위해 정체성도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떠돌이 수필가도 많다. 2005년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많은 수필 동인지들이 나오고 있다.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수필 동인지들이 올해의 풍성한 수필의 밭을 일구어냈다. 이미 오래 전에 부산수필문학협회에서 <부산수필문학>이라는 협회지를 내었고, 또 하나의 단체인 부산수필문인협회에서 <부산수필문예>라는 기관지를 선보였다. 그 외에도 <동백수필>, <에세이부산>,<수필문학21>, <부산수필>, <수필부산>, <윤좌>, <길> 등 수필 동인들끼리 활동하며 엮은 수필 동인지들이 연말을 맞아 화사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수필과 비평 출신들이 <부산수필과비평> 동인지를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부산 수필가들이 협회지로서의 구실을 하는 연간집 성격의 동인지나 수필 동인지 등에 작품을 발표하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반가운 일이다. 질을 끌어 올리는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수필가가 300여 명에 육박하는 만큼 수필문단 내의 차별화 전략에 의해 자체적으로 질적 정화운동이 전개되리라 기대해 본다.
올해도 많은 개인 작품집이 발간되었다. 그만큼 부산 수필가들이 많은 창작의 고통을 앓았다는 것이다. 작가의 혼이 투영된 수필집으로 전국적인 호응을 받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리의 편린들>(김보희), <인생은 기다림이다>(유태연), <하나님과의 대화>(안광준), <가슴을 타고 흐르는 강물>(김영),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이성보), <약창에 비친 잔물결>(정인조), <어, 세상 참 괜찮네>(박윤희), <목동의 피리>(안대영), <꽃을 든 남자>(정인호), <얼추왔제>(강숙련) 등이다. 미처 입수하지 못한 수필집도 있으리라 본다. 신인들도 많이 탄생했다. 여성수필비평가 이윤희가 ‘피천득 수필의 문학적 한계’라는 평론으로 비평가로 등단했다. 부산 유일의 여성비평가로 등장하였다. 활동이 기대된다. 2005년 한 해의 부산 수필문단에서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특성은 젊은 여성수필가들의 약진을 들 수 있겠다. 피천득이 수필은 서른여섯 중년이 넘은 사람들의 글이라 명명한 이후, 중년의 글로 인식되어온 수필은 80년대 이후 문예 르네상스기를 틈타서 젊은 여성수필가들이 혜성처럼 문단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 결실이 2005년도에 와서 빛을 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할 정도로 올해의 부산수필문단은 여성수필이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005년도에 등단한 작가들의 성비나 발표된 수필의 수나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부산수필에서 여성수필의 강세는 두드러지지만, 그보다도 질적으로 여성수필은 확실히 남성수필을 능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전반적인 현상에서 여성수필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고 해서, 여성수필이 부산 수필계를 이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유난히도 2000년대로 오면서 여성수필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런 흐름의 앞장에는 <동백수필>, <에세이 부산> 동인 그룹이 있다. 특히 에세이부산 동인들은 90년대말에서 2000년대 초에 등단한 신인들이 주가 된 모임인데도, 2000년대 초반부터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수필 공모전이나 몇 안 되는 신문사에서 공모하는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주로 이 동인의 여성작가들이 뽑힘으로써 부산 수필의 여성 강세를 이어나갔다. 박영란 (2003년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 등단), 정성화 (2003년 부산일보 신춘 당선, 2005년 명수필 선정), 박능숙 (2004년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 당선), 송연희 (2004년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2005년 명수필 선정), 황소지 (2005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등의 작가들이 여전히 2005년도에도 화려하게 꽃피웠다고 하겠다. 가장 화려한 신춘문예 출신작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작가군으로 구성된 전통의 <동백수필> 사단의 활약은 에세이 부산에 비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2004년 첫 동인지를 낸 <부산여성수필문학회> 역시 송명화 (2005년 전남일보, 교육신문 신춘문예 당선) 외는 크게 주목받은 작가가 없었다.
II. 부산수필문단의 문제적 현실
2005년 우리 수필문단의 현재는 어떠했는가. 저급수필, 단수필 등의 등장으로 우리 수필의 정체성이 점차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급’이란 ‘아닌’ 수필을 의미한다. 국어를 바르게 쓰지 못하는 수필가가 쓴 글은 이미 ‘저급’의 글이다.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 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부산수필문예>를 중심으로 작품성을 살펴보니, 문제는 심각해진다. 2005년도 부산수필문인협회에서 내어 놓은 동인지 <부산수필문예>에는 90여 편의 부산 수필가들이 쓴 수필이 실려 있다. 부끄럽게도 이중 정확히 40여 명은 문단 개념도 모르는 채 수필을 쓴 것으로 보인다. 문인이라면 바른 글을 쓸 줄 알아야 하고, 수필이 좋아서 수필을 쓴다면 그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수필가의 임무다. 또한 연간집이라면 연말 결산의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연간집에는 대표작 정도가 실려야 정상이다. ‘부산수필문예’라는 부산의 대표성을 가진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아닌’ 글들, 기본기가 안 된 수필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수필가로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기 위해서는 수필의 개념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 이전에 글에 대한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 문단에 대한 지식은 작가의 기본 요건이다. 범람하고 있는 수필가의 홍수 속에서 명예롭게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문장에 대해 공부해야 하리라 본다. 일단 바른 글로 창작해야 한다. 고급수필에 대한 가치 부여는 이런 기본이 안 된 수필가들에 대한 부정적인 양상을 깨우치고, 그것과 싸우도록 만드는 역설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수필은 그런 역설 기능을 통해 자기 가치를 고양하지 못하고 오도된 이론에 멍든 채, 서슴없이 순응하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저급 문학의 잘못된 영향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2006년도의 부산수필문단은 저급 문학과 고급 문학을 차별화하는 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차별화 운동은 전개되었다. 이런 차별화 전략의 차원에서 수필의 발전적인 미래를 열기 위해 수필 전문지 <에세이문예>가 본격수필의 기치를 열고 2005년도를 넘기면서 창간 1주년을 맞았지만 <에세이문예>는 처음의 의도대로 본격수필만 싣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여기에는 일선 수필가들의 수필론에 대한 지식 부재가 한 몫 했고, 본격수필만 싣는다는 문구와 실린 글에 대한 평가가 작가들에게 부담을 주었던 것도 한 원인이다. 아직도 수필은 수필가들 사이에 ‘비전문적이고,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생활 속에 얻어진 느낌을 자유롭게 쓴 산문, 넓은 의미에서는 일기, 기행문, 편지 등도 포함’되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부산수필의 질을 상향시키는 데 수필가의 재교육이 절실한 편이다. ‘수필’의 본질에 대해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도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수필을 ‘주제’나 ‘제재’중심의 문학이 아니라 ‘개성’의 문학이라고 이해한다. 물론 개성도 중요하지만 수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다. 수필 쓰기는 고도의 전문화된 이론적 바탕에서 주제의 전략화 차원으로 발전해나가야 하는데, 2005년도 현재 상당수 부산 수필들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수필을 쉽게 여기는 소위 ‘누구나’의 군에 드는 수필가들이 ‘누군가’의 대열에 드는 사람보다 많아 수필을 배움이 아닌 ‘느낌’으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다.
수필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수필에 대해서 안다고 우기는 수필가, 바르지 못한 문장으로 수필 같지 않은 수필을 써놓고도 명수필쯤으로 알고 있는 문장론적 지식 부재의 부산 수필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수필에 대해선 배울 필요도 없고, 내 식대로 하면 된다는 수필가들이나 글 같지 않은 글을 써놓고 사회적 지위나 인생 연륜으로 원로나 대가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의 큰 목소리가 부산수필의 업그래이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다. 작가 자신의 끊임없는 자기 정진을 통해 새로운 창작 이론체계를 수용하고,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수필은 고급 독자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이들에게 수필 쓰기는 주제화 전략 차원이 아닌 ‘체험의 기록’ 차원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III. 부산수필문단의 현황
부산수필문단에서 가장 많은 작가의 작품이 실린 <부산수필문예>의 작품이 준 실망에도 불구하고 부산수필문학사에서 2005년을 화려한 수필의 해로 이끌어 낸 그 중심에 몇 개의 눈에 띄는 수필 동인이 있다는 데서 평자는 위안을 삼고자 한다. 제일 먼저 언급해야 할 수필 동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계간 에세이문학 출신 작가들의 모임이다. 그 이름이 자기 정체성을 살린 <에세이부산동인회>다. 주로 사십 대 후반의 젊은 여성수필가들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인 이 동인들은 ‘새로 태어나는 별보다 오래 반짝이는 별이 되고자 수필 창작에 혼신의 노력을 다 한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단연 작품성이 돋보인다. 창간호의 작품보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건 아쉽지만 다른 동인지와 비교하면 질적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동인지 <에세이부산> 4호를 읽어 보면, 부산 여성수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할 정도로 수필의 품격이 높다. 90년대 등단한 몇 회원을 빼고는 거의 2000년대 초반에 등단한 이들 동인들은 마치 자기네들끼리 경쟁이라도 하듯 좋은 글들을 써내고 있기에, 단연 우리 부산수필을 선도한다고 하겠다. 에세이부산 제4집에는 이미 수준 높은 글을 써서 그 작품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노현희의 <국기>외 2편, 박영란의 <셋째>외 2편, 윤희아의 <장모시대> 외 2편, 김은미의 <오답노트> 외 2편, 강경채의 <고래잡이> 외 2편, 김도우의 <점>외 2편, 박능숙의 <난향이 전하는 말> 외 2편, 2004년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화려하게 등단한 김인호의 <문주란> 외 1편이 실려 있다. 이들 동인들은 문단 활동에의 참여보다 작가는 글로 말한다는 자세로 수필 동인 활동에 충실하면서, 고급 수필 쓰기에 매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 다른 수필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주목받는 동인은 2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동백수필문학회>이다. 최근 발간한 19집에는 문화일보로 등단하여 이번에 수필문학사에서 등단 10여 년 만에 처녀 수필집을 상재한 강숙련의 <미남동 애사>를 비롯하여, 김원순의 <잔디에 누워>외 1편,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종희의 <돌> 외 1편,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남지은>의 <속새> 외 1편, 작년에 두 번째 수필집을 발간하여 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송연희의 <무슨 맘으로>,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좋은 작품을 쓰고 있는 윤자명의 <물방울> 외 1편, 2004년 수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안귀순의 <산다는 것은>, 2004년 동백문화상을 수상한 조재흥의 <파도의 노래> 외 2편, 2005년 문예시대 작가상 수필 부문 본상을 수상한 장한일의 <군자와 연꽃> 외 2편이 눈길을 끈다. 2000년대 초기에 등단하여 참신한 글을 써내고 있는 서채영의 수필세계가 한 비평가에 의해 특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동백수필 회원들 중에서 주목되는 작가는 올해 작품집을 내어 설송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강숙련이라 할 수 있겠다. 강숙련의 <종소리>는 정성화의 <소금쟁이 연가>, 송명화의 <고도>와 함께 부산수필학회에 의해 “올해의 베스트 수필”로 뽑혔을 정도로 수작이다.
<수필과비평부산작가회>의 출발은 부산수필의 질을 드높이게 될 계기를 마련했다고 하겠다. 그 동안 <수필과 비평>지 출신으로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작가들이 많았지만, 별도 출신 모임이 없었다. 2005년에 와서 출신 동인회를 만들고 <부산수필과 비평> 동인지를 창간호로 내어놓았다. <동백수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재흥, 남지은, 김종희를 비롯하여, 이번에 제1회 시사문단이 주최한 무원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정여송을 비롯하여 차계자, 유희자, 김양희, 안경덕, 심선경, 박옥근 등의 작가가 괜찮은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정여송은 평자가 그의 작품세계를 논한 바 있지만, 수마에 걸렸다고 할 정도로 치열한 수필정신으로 수준 높은 수필을 발표해오면서 수필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다. 정여송의 발표작 <작은 비상>은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전해주려는 듯이 서두부터 숨 가쁜 언어의 질주가 느껴질 정도로 템포가 빠르고,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언어 감각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앞으로도 계속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여러 가지 문단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성실하게 실험정신으로 수필 쓰기에 매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근>, <희아리> 등의 수필은 ‘누군가’의 글이 분명하다. ‘누구나’ 쉽게 쓰는 그런 수필과 분명 격이 다르다. 격월간 <수필과 비평> 출신 작가들의 탄탄한 실력도 높게 평가되어지는 만큼 앞으로의 부산 수필 발전에 크게 기여하리라 기대된다.
공식 이름이 <부산여성수필문학회>인데, 별칭으로 <다스림>이란 이름으로 동인 활동을 하고 있는 ‘다스림’ 동인들은 그 뿌리가 부산교대 사회교육원 수필창작 과정이다. 이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부산수필문예대학 1기 구성원이 되고, 3기까지 이어지다가 4기부터 다시 신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 과정에 흡수되어 현재 7기까지 40여 명의 수필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2004년도에 <여인의 날개>란 창간호를 내어 크게 호평을 받은 바 있는데, 이 동인들은 수필 과정을 마치고서도 꾸준히 심화 과정을 통해 본격수필의 창작이론을 공부하면서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꾸준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2005년도 전남일보와 교육신문 신춘문예를 통과한 송명화 에세이문예 주간은 한국 수필문단에서 가장 바른 글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여인의 날개>, <창>, <고도>, <폭풍의 언덕>, <야인시대> 등의 작품을 써서,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로서 문학의 본질을 수필 장르와 잘 접맥시키는 1기 송명화를 비롯하여 에세이문예 편집장을 맡고 있으면서, <선수필>에 작품이 선정되기도 한 장미, 부산수필학회 기획이사, 에세이문예 편집차장을 맡으면서 독특한 칼라의 수필을 쓰고 있는 석명희, 언어감각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해박한 음악적 지식을 수필과 접목시키고 있는 손수영, 휴머니즘 수필의 진수를 보여주는 홍영순 회장, 여성적 삶의 상처와 그 극복의 치유의 과정을 진솔하게 문학 언어에 담아내어 아련한 감동을 주어왔고, 본격수필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라도 하 듯 본격수필의 구성틀에 들어맞는 좋은 수필만을 발표하고 있는 박영선 등의 작가들이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으며, 유려한 감정 표현으로 한국적 모성의 원리를 수필로 승화시켜 지명도를 높인 김임선, 발표하는 작품마다 계간평에 언급될 정도로 맛있는 수필을 건져 올리는 전이숙, 참신한 인식이 빛나 미래의 주목을 예고하고 있는 오귀옥, 박성숙, 석명희, 조복미, 최순덕, 김미화, 김순덕, 이명옥, 황명옥, 박순형 등의 신예 작가들이 비상의 날개를 펴고 있어서 앞으로 부산여성수필문단은 이들 여성작가들이 주도하리라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2005년 작품집 중에서 질적인 수준이 괜찮은 것을 뽑으라면, 제7집을 낸 <수필문학21>을 들 수 있겠다. 이 동인집은 월간 수필문학 출신들이 만들어내는 것으로서 그 중심에는 안명수 회장이 있다. 동인회의 공식 명칭이 ‘수필문학부산작가회’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필전문지 월간 <수필문학> 출신이라는 전통과 위상에 걸맞게 이 동인회에는 비중 있는 작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평소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2005년도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작가로는 이 동인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안명수를 들 수 있다. 영문학 전공자답게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지적 수필에서 서정수필까지 두루 아우르는 수준 높은 수필을 쓰는 그는 현재도 경북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고, 계간 수필 전문지 에세이문예에도 시사 테마수필을 쓰는 등 누구보다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 동인 중에서도 이성보, 배철웅, 조유환, 김원순, 송명화, 최홍식 등의 수필가의 작품성이 돋보인 한 해가 아닌가 여겨진다. 최홍식은 자신의 첫 수필집으로 2005년도 수필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그의 수필 <옥수수와 하모니카>는 <선수필>에도 뽑혔을 정도로 수준작이다. 수필문학부산작가회의 왕성한 활동의 배경에는 회원들의 나이가 많다는 점도 한 몫 했지만, 출신지인 <수필문학>이란 월간지가 있어 다른 동인들보다 발표 지면이 넓었다는 것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2005년도만 해도 여덟 명의 회원이 작품집을 내었는데, 여섯 명이 남성 회원이고, 두 분이 여성 회원이다. 그러고 보니, 수필문학부산작가회는 남성 수필가들의 활약이 부각된 반면 여성작가의 활동은 그 그늘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2005년 부산 수필의 다이내믹한 모습은 부산수필학회와 에세이문예사가 공동으로 제1회 국제수필학세미나를 개최하여 한중 수필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점과 여섯 차례에 걸쳐 개최된 부산수필학회 정기 워크숍의 성공적 개최라 하겠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계간 에세이문예를 통해서 이십 대의 젊은 여성 수필비평가가 등장한 것이다. 부산문인협회에서 주도하고 있는 영광문학토론회에 수필 장르가 한 해 두 번이나 초대되었다는 것은 ‘작문’ 수준도 안 되는 ‘아닌’ 글을 가지고 수필가 노릇을 힘차게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부산 수필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작가들이 평단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예전 같았으면 문학토론회에 수필은 아예 제외되었을 터인데, 2005년에 와서 수필가의 작품이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 부산 수필의 수필이 높아졌다는 증거라 하겠다. 계간 에세이문예사가 수필가들의 창작의욕 고취를 위해 제1회 한국본격수필문학상을 제정한 것이나, 여성 수필의 발전을 더욱 도모하기 위해 풀꽃수필문학상과 민들레수필문학상을 제정한 것은 부산 수필문단을 역동적으로 변모시킬 촉매제가 되리라 본다. 부산수필문인협회가 ‘부산수필문인협회 만남의 밤’을 개최한 것과, 부산수필문학 회보 발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것도 부산 수필을 빛나게 했다고 할 것이다. 그 외에도 강천형 수필가가가 <시와 수필>이라는 문예지를 창간해서 수필가들의 발표 지면을 늘린 것이나, 부산여성작가들의 문학상 수상 소식도 다이내믹한 부산 수필 문단의 증표라 하겠다.
IV. 부산수필이 나아야 할 방향
2005년 이후 부산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부산 수필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의 찾아내고, 그 바탕에서 진로가 설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시대와 사회가 변하는 만큼 수필도 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삶의 현실이, 그 현실 속에 몸과 마음을 던져 놓고 있는 인간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바뀌는데 그 삶의 모습을 어떤 형태로든 드러내는 수필이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대를 풍미했던 서사시가 전성기를 누렸던 장르의 힘을 유지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 전통의 뿌리를 소설과 서정시에 넘겨준 것은 장르의 정체성을 변화하는 시대정신 속에서 계승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로맨스가 전성기의 힘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 뿌리와 전통을 소설에 빼앗긴 것도 장르의 전통을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게 진화시키면서 능동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필의 운명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수필 창작에 대한 새로운 정보, 고급문학으로서의 새롭게 변신한 수필이론에 대한 지식을 얻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잡기를 쓰는 방식으로, 또는 여기를 적는다는 식으로 수필을 써서는 문학가 중에서도 비주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정신이나 대중의 욕구에 교통하면서 변화된 수필장르의 이론모형을 수용해서 고급문학으로서의 수필 정체성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동참하지 않으면 같은 수필가로 명함을 내밀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명심할 것은 장르의 정통과 정체성을 훼손하는 변화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르의 전통과 정체성 자체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은 자기모순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자기의 존재 목적을 상실한 문학은 반드시 그보다 힘이 센 타 장르에 흡수되거나 그 존재가치를 상실함으로써 전통과 정체성을 잃고 만다. 이런 차원에서 부산수필의 방향은 전통과 정체성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급문학으로서 당대인들의 예술 철학적 욕구를 반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 격을 높이는 길이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학 장르나, 새로운 시대의 철학적 이념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문학 장르는 결국 살아남지 못한 채 소멸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환상성과 유토피아적 이상성을 본질로 갖고 있던 중세의 화려한 로맨스가 사실주의 시대를 맞아 죽음을 고한 것은 바로 그런 모델이 되고도 남는다. 엘리엇의 말처럼, 과거의 과거성에 대한 인식과 과거의 현재성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가, 다가올 미래 정신에 대한 인식과 과거의 현재성에 대한 인식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가, 다가올 미래 정신에 대한 인식까지 내포하는 힘을 지닐 때, 수필의 미래는 고대 서사시나 중세 로맨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로운 전통의 길을 개척하게 될 것이다. 수필 개혁은 바로 위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문학의 위기에서 자신의 본질과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지금 부산 수필문단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안이한 창작성을 부추기는 단수필의 유행과 ‘아닌’ 수필의 범람이다. 다른 장르에 비해 문학적 가치가 폄하되고 있는 현실에서 수필을 바로 세우고 정체성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 문제는 곧 수필의 오랜 정통과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장르 차원에서의 자기 변혁을 위한 모색의 길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수필의 방향은 수필가 집단의 공감대 속에서 형성되는 게 바람직하다. 한 개인의 노력에 의해 수필계 전체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급문학으로서의 수필에 대한 인식을 갖춘 수필가들의 왕성한 창작활동과 이를 따르지 못하는 작품들에 대한 비평가들의 날카로운 비판, 수필 전문 이론가들의 이론적 체계화 작업 등이 상호보완적으로 진행될 때, 수필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첫째, 좋은 수필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고 깨닫게 할 수 있는 교본, 즉 창작이론 모형의 보급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시, 소설, 희곡 등과 같이 수필 역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수필은 더 이상 시나 소설의 하위 장르쯤으로 취급당해서는 안 된다. 수필은 필자가 글의 포면에 나서서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글들이 이런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문학적 체계가 뚜렷하고 학술적인 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수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잡문’이 유독 수필단체 동인지에만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수필의 정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붓 가는 대로’, ‘아무나 쓸 수 있는’ 등의 말이 나오게 되고 수필이 수필문학으로써 위상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동네 문화센터에 모여서 손쉽게 써보는 글 때문에 수필의 질이 떨어지고 수필의 정체가 모호하게 됐다’는 푸념보다는 ‘독자들의 수필에 대한 관심이 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본격문학으로서의 수필에 대한 정체성의 재확립이다. ‘수필 정체성 확립의 주체’는 ‘작가 자신’이다. ‘수필의 정체성’은 ‘작가정신’이다. 진정한 의미의 수필 작가 탄생, 아마추어가 아닌 작가정신에 입각한 프로가 출현해야 한다. 완성된 수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로서의 삶의 완성이 중요하다. 2005년을 넘어 내일의 부산 수필을 담당할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카오스 이론 중 ‘나비 효과’라는 게 있다. ‘베이징에서 파닥거리는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 건너 뉴욕에선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이론인데, 아주 작은 원인이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수필 속의 자아는 ‘나’라고 하는 작가 자신이다. 그렇기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있고, 나아가서는 그것에 수필문학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새 세기가 수필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는 예견은 일찍부터 있어왔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고지식한 이론에 머문다면 수필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수필 외적 변화는 수필문학의 내적 충실도 곧 문예성 및 전문성을 견고히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셋째 수필은 예술이다. 예술이 목표로 하는 것은 미의식이다. 그리고 미란 감각적인 것이다. 단순히 지적이고 또는 의지적인 표현만으로는 예술 작품이 될 수 없다. 지적이고 의지적이며 훌륭한 어떤 내용이 있어도, 그것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미와 감정적으로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는 맛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맛있는 수필이 되게 창작해야 한다. 향기를 주는 글맛도 있어야 한다. 사람의 냄새도 풍겨야 한다. 당연히 주제의식은 인간성 회복에 두어야 한다. 특히 현대인들은 예전보다 사회 안에서의 인간관계가 깊지 못하다. 이러한 현대인을 위해 인간 사랑을 주제로 내세우는 수필이어야 한다. 신선한 상상력으로 복잡한 인생을 송두리째 엿볼 수 있는, 미학적으로 의미 있게 압축된 형상미가 주는 손맛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현실을 관통하는 인식의 눈맛도 주어야 한다. 고급수필로서의 수필의 맛은 전체적으로 무엇보다 천박하지 않은 데서 찾아야 한다. 경박하고, 우쭐거리고, 갈 길을 찾지 못해 허둥댐의 수필은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정서를 표면에 놓고 그 안에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감추고 있는 글을 독자는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부산 수필은 인간 존재를 억압하는 일체의 경향들에 대한 선전포고와 한 사회의 진보 가능성과 좌절을 한 때의 기억이나 풍경의 차원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잠복된 숨은 의미로 되새기는 구원의 문학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이제 부산 수필문단의 작품 활동은 협회 ‘기관지’보다는 ‘동인지’ 시대로 나아가야 할 것이고, 동인지의 작품성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부산이 일어서면 한국이 일어선다는 정치 논리가 어찌 수필계라고 적용되지 않겠는가. 먼저 부산이 달라져야 한다.
Ⅴ.결론
지금까지 2005 부산수필문단의 현실과 수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중요한 것은 작품의 질이 문제이고, 이에 의해 평가되고 판단될 수밖에 없다. 우리 부산에는 많은 수필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수필가의 수가 아니라, 과연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시대와 독자가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며, 그들이 만들어낸 감동이 정신 고양과 삶의 질 개선에 얼마나 기여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도 기본기가 된 작가인가 하는 게 큰 문제다. 부산수필이 앞으로도 그 위상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수필의 창작이론 모형의 보급화가 급선무라고 본다. 즉 수필을 고급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필계의 혼란은 문장론의 무지, 수필론의 부재로 인해 생긴 문제인 만큼 수필가의 이런 현실을 정확히 꼬집어 줄 비평가의 출현이 시급하다 하겠다. 이는 시대가 변하고, 독자의 의식과 취향이 변한다고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화를 통해 독자들을 고급독자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저급성, 대중성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부산 수필이 살아남을 길은 차별화밖에 없다. 고급수필로의 방향 전환만이 부산 수필을 살릴 것이다. 수필 쓰기는 삶의 돌아봄이다. 우리는 수필을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고, 가슴에 불꽃을 피울 수 있으며 강과 바다를 찬찬히 여울지게 할 수 있다. 인류의 화해와 자연과 신과의 만남도 이를 통해서 이룰 수 있다. 지혜와 포용이 그 안에 있다. 수필은 지나간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펼치는 사랑의 향연이고 언어의 축제여야 한다. 모든 고뇌와 기쁨이 정제되어 수필의 품에 뿌리내릴 때, 우리 삶도 빛날 수 있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건전한 삶의 풍토를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미를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작가가 한 작품을 낳기 위해 많은 산고를 겪으며, 인류에게 희망을 갖게 하고 고뇌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러한 수필정신도 바른 글 속에서 빛나야 한다. 사람은 옛 선현이 남긴 말을 통해 삶의 난관을 해결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받곤 한다.
부산 수필계가 300여 명이나 되는 거대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마당에서, 부산 수필의 질적 성장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하나다. 이제 협회 기관지 성격의 저급 연간지 발간 관행은 없어지거나, 대표선집 위주로 전환되어야 한다. 2006년부터는 수필가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 동인을 결성하고, 동인지 시대의 정착으로 가야 할 것이다. 동인지로서 경쟁하는 가운데, 수필의 질이 자연적으로 향상되게 해야 한다. 좋은 동인지의 출현으로 부산 수필이 바른 수필, 감동을 주는 수필이 된다면, 그것은 부산 수필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고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