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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산의 환성산(環城山) 산행(33차)과 사찰 「환성사(環城寺)」 한시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33차 환성산(環城山) 산행은 2026년 5월 1일 노동절 날, 대구스타디움 주차장에 팀원이 모두 집합해서 함께 천년 사찰 환성사(環城寺)로 향하면서 시작되었다. 10시 10분에 환성사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 팀 6명은 곧장 산행을 시작했다.
이곳 환성산 일대는 대구‧경북 지역 등산인들 사이에서 산을 여러 개 잇는 대표적인 종주 산행 즉, ‘가팔환초(架八環醮)’로 일컬어지는 42km 길이의 장거리 코스의 마지막 등산로(登山路)다. 경북 칠곡군 가산(架山, 901.8m)에서 출발하여~팔공산(八空山, 1,192.8m)~환성산(環城山, 811.3m)~초례봉(醮禮峰, 648.6m)까지 이어지는 대구와 칠곡·군위·영천·경산시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로, 대구·경북 등산인들이 말하길, 강한 정신력의 준족들이나 특수부대 출신들만이 무박 산행으로 주파가 가능하다고 일컫는 산행 코스다. 또한 산행의 산맥 줄기에 위치한 이 산들은 하나하나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명산(名山)들의 전시장이다.
그중에 환성산(環城山, 811m)은 경산시 하양읍 대곡리·사기리와 대구광역시 동구 진인동 · 평광동 사이에 있는 산이다. 환성산은 초례산(648.6m)과 함께 팔공산의 가장 남쪽을 이루는 산으로 환성산의 북쪽은 관봉(852.9m, 갓바위)으로 이어지고, 동쪽은 무학산과(588.4m)과 연결된다. 정상에는 기반암이 노출되어 형성된 토르(Tor) 지형이 나타나며, 사각기둥 형태의 바위는 마치 감투처럼 생겼다. 환성산의 북동쪽에는 불굴사골을 흐르는 하천이 능성재에서 발원한 박사천으로 흘러들고, 동쪽에는 환성사골을 흐르는 하천이 동으로 흐르다가 조산천에 합류한다. 또한 환성산의 북서쪽 기슭에는 도림사가 있으며, 동쪽 기슭에는 환성사와 불굴사 등이 있다.
○[환성산 등산 코스] 여기 환성산은 대구 북동쪽을 에워싼 100리(40km) 팔공 산줄기가 동남쪽으로 돌아 원형으로 안기는 마지막 지점이다. 보통 사람이 100리 산길을 두고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산행 거리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①‘남북 횡단 편도 코스’인 능성고개(또는 도림사)에서 출발하여 - 환성산 능선 - 낙타봉 – 초례봉 – 경북대 대구학술림(매여동) 산행(약10km, 7시간)을 산악인들이 별도로 즐긴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이마저도 힘든 거리다. 그래서 ②우리 팀은 환성사(사찰)에서 출발하여 다시 둘러 돌아오는(왕복) 최단 코스를 택했다. 약 7.5km에 4시간 정도로 예상했다. 또 다른 ‘환성산 산행’은 환성사에서 출발, 서북쪽 계곡 길을 따라 3km 정도 올라가면 고갯길 이정표를 만난다. 거기서 조망바위를 거쳐 약 900m를 더 가서 환성산을 등산하면 된다[총6km, 총3시간]. 이 외에도 ③ 불굴사에서 출발하여 환성산을 등반하고 돌아오는 길에 환성사 사찰을 경유해 오는 약10km 6시간 30분 코스도 있다. ④무엇보다, 최단거리 산행은 ‘팔공산 도림사 추모공원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약 2.2km만에 환성산에 오를 수 있다. 좀 가파르긴 해도 왕복 약 4.5km 정도다. 참고로 어렵긴해도, 환성산 남쪽 새미기재 고개에서 출발하면 왕복 약 1.7km만에 등반이 가능하다.
<이번 33차 산행 코스 안내>
① 등산 코스 : 경산시 환성사 주차장- 성전암- 전망대- 환성산- 조망바위- 환성사 주차장. 원점회귀
② 등산할 거리 : 총 약 7.5Km, 총 4시간 25분(4차례 휴식 포함).
③ 산행 참가 인원 : 총 6명. 중산, 영산, 만산, 운산, 성산, 해산.
●[33차 환성산 산행] 우리팀 청동회(靑同會) 6명은 5월 1일(금) 오전 10시 10분에, 환성사 주차장에서 <33차 산행>을 시작하였다. 아침까지 비가 온 뒤의 화창한 봄날이라 그런지 파아란 하늘과 눈부신 백설 구름이 초록빛 산야와 더불어 깨끗한 수채화로 그림을 그린 듯 신록이 맑고 아름다웠다. “아, 靑春이여~” 이어 올라간 부속 암자 성전암(聖殿庵)에서 처음 간식 타임을 가진 후 다시 등산하여, 약50분 정도 걸려 620m 능선에 도착했다. 나중에 뒤돌아보니 여기 50분간의 능선 합류 지점까지의 처음 등산이 가장 경사가 가파르고 힘든 구간이었다.
여기부터는 산 능선을 따라 환성산 정상까지 가는 동안은 비교적 평탄하고 가벼운 구간(2.9km)이었지만, 2차례 휴식과 더불어 간식 타임을 가진 관계로 약 1시간 30분이나 걸려 오전 12시 30분에 도착했다. 그런데 환성산(811m) 정상 前, 약 400m 전부터 약간 경사가 급하긴 했지만, 산행에 문제가 될만큼의 그다지 험한 길은 아니었다. 막상 정상에 도착해보니 통신 철탑이 먼저 반겨 주었고, 이어 환성산 정상석이 보였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사진 찰영과 함께 휴식 시간을 가졌다. 토르(Tor) 지형의 산정상 바위 위에 올라 서보니 남쪽으로는 초례봉도 보이고 서남쪽엔 몇 달 전에 가봤던 옻골 마을도 보였다. 이내 하산을 시작하여 약2.2km를 내려오다 보니 임도길에 이르렀다. 여기 합류지점에서 잠시 쉬었다가 임도길을 따라 약1.2km 정도를 더 걸어내려와 환성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은 총 7.5km에 약 4시간 25분가량 소요되었다. 대체로 가볍고 즐거운 靑春의 산행으로 마무리했다. 이어 대구시 수성구 욱수동, ‘욱수골 할매묵집’에서 막걸리와 해물파전, 그리고 묵무침 등을 먹고 바로 옆 ‘슬로우 라이프’ 카페에서 차를 한 잔씩 마시고, 헤어져 귀가하면서 이번 33차 산행을 끝마쳤다. 세월이 흘러도 좋은 사람들과 오래된 인연을 함께하는 시간은 늘 짧게 느껴졌다. 오늘도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며 또 다른 우리의 인연을 이어간 하루였다. 우짜던지 건강하여 오래오래 보길 기원하며, 산행 후기를 끝맺는다.^^
○ [환성산(環城山) 명칭 유래] ①환성산(環城山)은 동쪽의 무학산과 북쪽의 팔공산을 끌어당기는 고리(環)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②신라 헌덕왕(憲德王)의 왕자인 심지왕사(心地王師)가 환성사(環城寺)를 이곳에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에 주변의 산들이 사찰을 성처럼 둥글게 둘러싸고 있어 '環城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더하여, 환성사 대웅전의 주련은 다음과 같다.
廣說妙法與義利(광설묘법여의리) 널리 묘한 법을 말씀하시어 의로운 이익을 주나니
普遍十方諸國土(보편시방제국토) 널리 두루하여 시방 국토에 다 계시네.
爲救世間而出現(위구세간이출현) 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하여 출현하시도다
寂滅無性不可取(적멸무성불가취) 고요하고 성품없어 가히 취할 수 없지만
充滿法界無窮盡(충만법계무궁진) 법계에 충만해서 끝까지 다함이 없다
+佛身普遍諸大會(불신보변제대회) 부처님의 몸은 여러 큰 회중에 두루 계시고
+其中衆生不可量(기중중생불가량) 그 가운데 있는 중생은 한량없으나
+現大神通悉調伏(현대신통실조복) 큰 신통을 보이시어 모두 조복 받으시네.
○ [천년 사찰 환성사(環城寺)] 환성사는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 팔공산에 있는 천년 사찰로 은해사의 말사이다. 절 주위의 산들이 마치 성처럼 둘러싸고 있다고 하여 '환성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신라시대 835년(흥덕왕 10)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로 고려말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 뒤 중창했다. 1635년(인조 13) 신감대사가 중건하고, 1898년 긍월대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월루 밑을 지나면 석탑이 있는 안마당에 이르는데 정면에는 마당보다 한 단 높은 터 위에 대웅전(보물 제562호)이 세워져 있으며, 서쪽에는 심검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이 있고, 맞은편에는 요사채가 있다. 이밖에 성전암과 산신각이 있다. 그리고 1728년(戊申年) 1월 하순에 하양현(河陽縣)에서 건립한 환성사 유공비(環城寺 有功碑)가 있다. 덧붙여 숭유억불 정책을 폈던 조선 시대는 사찰이 왕실의 원당(願堂)이나 서원의 속사로서 기능을 하였던 까닭에 환성사도 인근 영천의 임고서원 속사였다가 1724년 하양향교(河陽鄕校)로 이속되었다.
● 다음은 조선시대 천년 사찰 환성사(環城寺)를 방문한 유학자들이 쓴 한시(漢詩) 3편을 소개하겠다.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1545~1609) 선생과 함계(涵溪) 정석달(鄭碩達 1660~1720) 선생의 「환성사(環城寺)」 시편을 감상해 보자.
1) 다음 ‘麻’ 운목의 칠언절구(七言絶句) 「환성사 방 송운 상인(環城寺 訪松雲上人)」은 조선시대 대구부사·성주목사·안주목사·성천부사·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였던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1545~1609)의 측기식 한시다. 또 그는 이황(李滉)의 제자이자 경북 영천 출신 문인으로, 임진왜란이 터지자, 목숨을 내놓고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내용인즉 석달 동안 병중에 지내다가 때맞추어 환성사의 송운(松雲) 고승(高僧)을 찾아갔다. 그런데 저물도록 출타한 스님이 돌아오지 않자, 혹여 저녁 구름이 흩어져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면 함소화(含笑花)가 자신을 보고 신선을 찾는다고 비웃을까 걱정되어 돌아간다고 읊었다.
<환성사(環城寺)로 송운(松雲) 고승(高僧, 上人)을 찾아가다.[環城寺 訪松雲上人]> 조호익(曺好益 1545~1609)
九十韶光病裏過 구십 일 석 달 봄을 병중에서 지내다가
有時來到法王家 때맞춰 법왕가를 찾아서 내 여기 왔네.
宿雲未散還歸去 저녁구름 흩어지기 전에 미리 돌아감은
恐有山中含笑花 산속에 함소화가 있을까 싶어서네.
[주1] 법왕가(法王家) : 법왕, 즉 부처가 사는 집으로, 절을 가리킨다.
[주2] 함소화(含笑花) : 목란과(木蘭科)에 속하는 나무로, 여름철에 향기가 몹시 진한 꽃을 피운다. 소동파의 〈광주포간사(廣州蒲澗寺)〉 시에, “그러나 지금은 함소화만 피어 있어, 신선술을 배우려 한 진 시황을 비웃누나.[而今只有花含笑 笑道秦皇欲學仙]” 하였다.
2) 다음 ‘眞’ 운목(韻目)의 오언율시 「환성사독서 견인백투이서과 영이증지(環城寺讀書 見仁伯投以西瓜 詠而贈之)」는 경북 영천 출신 조선 후기 유학자인 함계(涵溪) 정석달(鄭碩達 1660~1720)의 평기식 한시다. 그의 본관은 영일(迎日) 정씨이며, 경상북도 영천(永川)의 선원마을 출신이다. 갈암 이현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실용적인 내용을 중시하는 학풍을 지녔다.
이 시는 정석달(鄭碩達)이 환성사(環城寺)에서 공부하던 중, 벗인 인백(仁伯)이 수박(西瓜)을 보내주자 그 고마움을 담아 지어 보낸 시다. 이 시는 단순한 감사의 인사를 넘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이 잘 드러난 수작이며, 저자가 수박(西瓜)을 소재로 하여, 단순한 과일의 생김새를 넘어 유교적 도리와 수양의 원리를 읊은 시다.
○ 내용인즉, 수박의 형상에서 성현의 가르침과 자연의 섭리를 발견했음을 의미한다. 수박의 푸른 껍질을 하늘에 비유했고 수박의 붉은 속살은 순수한 마음인 '적자지심' 혹은 유교의 핵심 가치인 '인(仁)'에 비유했다. 이어 수박씨를 대대로 이어지는 학문의 전수(傳授)로, 쓸모없는 껍질을 버리는 행위를 악을 제거하고 선을 도모하는 정치적 행위로 승화시켰다. 수박의 맛을 단순히 달콤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치로 이해한다면,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정석달은 수박의 푸른 껍질(하늘)과 붉은 속(인자한 마음), 그리고 씨앗(법도)을 통해 선비가 지녀야 할 덕목을 설명했다. 단순히 선물을 고마워하는 것을 넘어, 일상의 사물에서 도(道)를 발견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자세를 잘 보여주는 한시다.
<환성사에서 독서할 때 인백이 수박을 보낸 것을 보고 읊어서 주다.(環城寺讀書 見仁伯投以西瓜 詠而贈之)> 정석달(鄭碩達 1660~1720)
高山見此物 높은 산에서 이 물건(수박)을 대하니
吾道未全淪 우리의 도(道)가 아직 다 없어지지는 않았구려.
外得靑天狀 겉모습은 푸른 하늘의 형상을 얻었고
中藏赤子仁 그 안에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인(仁)을 감추었네.
種如傳授法 씨앗은 도를 전해주는 법도와 같고
棄若暴安民 껍질을 버림은 사나운 것을 제거해 백성을 편안케 함과 같네.
世有能知味 세상에 참된 맛을 아는 이가 있다면
宜其必反身 마땅히 스스로의 몸을 돌이켜 살펴야 하리라.
[주1] 적자(赤子) : 갓 태어난 아이를 뜻하며, 수박의 붉은 속살을 비유함과 동시에 사람의 순수한 본성을 상징한다.
[주2] 반신(反身) : 자기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유교적 수양 태도를 의미함.
[주3] 청천(靑天) : 수박의 푸른 껍질을 하늘에 비유했다.
[주4] 적사지인(赤子仁) : 수박의 붉은 속살을 순수한 마음인 '적자지심' 혹은 유교의 핵심 가치인 '인(仁)'에 비유한 절묘한 표현이다.
3) 다음 16구(句)의 고시(古詩) 「유정(惟政, 사명당)에게 주다[贈惟政]」는 조선시대 대구부사·성주목사·안주목사·성천부사·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였던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 1545~1609)의 측기식 한시다. 또 그는 이황(李滉)의 제자이자 경북 영천 출신 문인으로, 임진왜란이 터지자, 목숨을 내놓고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내용인즉, 대구 팔공산 환성사(環城寺)에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이 1578년(선조11) 이후에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때 저자 조호익이 찾아가 이 글을 써서 건네주었다. 단풍이 물든 가을 산속의 환성사에는 고관대작도 찾아볼 수 없고 생사를 초월한 고승(高僧)도 없다. 하지만 그대가 나를 찾지 않아도 어찌 내가 그대(惟政)를 찾지 않으랴. 이제껏 내가 찾아가 보질 못하였지만 귀한 그댈 만나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불교의 최고 거사(居士) 유정이 높은 뜻을 품고, 학문이 박식한 나를 염려하여 불경의 뜻을 말해 줄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곤 “산신령의 뜻을 따를까? 설법에 통달한 돌의 말을 들을까?” 라며 유정의 설법을 듣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유정(惟政, 사명당)에게 주다[贈惟政]> 조호익(曺好益 1545~1609)
楓岳之高在雲間 높고 높은 풍악산(가을산) 구름 속에 솟아 있고
環城之山接塵區 환성사의 산은 속세 세상과 접하였네.
雲間本無金章紫綬之貴人 구름 속엔 금장 자수 찬 귀인은 본디 없고
塵區安有五通六通之道流 속세에 오통 육통 도사 어찌 있으리오.
偶然得遇不我捨 우연스레 서로 만나 나를 아니 버렸지만
本自無之寧我求 본디 절로 없는 건데 어찌 나를 찾아오리.
彼不求此不捨 그댄 나를 안 찾아도 난 그대를 찾으려나
造物從令馬虺隤 조물주가 나의 말을 비루먹게 하였구나.
吾聞大觀不在物 내 듣건대 대관은 외물에 아니 있어
秋毫太山同崔嵬 터럭이나 태산이나 똑같이 크다 하네.
靑蓮汚泥有何妨 청련이 진흙 속에 있은들 뭐 해롭나
須信維摩住城裏 모름지기 유마가 성안에 머문 것을 믿으랴.
安知亦念孫儒仙 그 어찌 알겠는가 손유선을 염려하여
有時遠傳蓮經義 때때로 연경의 뜻 멀리까지 전해 줄지
不如俯循山靈意 산신령 뜻 따르는 게 더 나을 것이거니
山中亂石且有耳 산속의 어지러운 돌도 또한 귀 있다네.
[주1] 환성사(環城寺) : 대구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사찰로, 유정(惟政, 사명당)이 1578년(선조11) 이후에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주2] 금장(金章) 자수(紫綬) : 금으로 된 도장과 붉은색의 인끈으로, 고관대작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주3] 오통(五通) 육통(六通) : 오통은 오통신(五通神)으로, 당송(唐宋) 시대 강남(江南) 지방의 민간에서 신봉하던 신(神)인데, 본디 불가(佛家)의 노자(奴子)로, 푸른 옷을 입고 있으며 한쪽 다리가 없다고 한다. 그 형제가 다섯으로, 오성(五聖), 오현영공(五顯靈公), 오창(五猖)이라고도 칭한다. 육통은 삼승(三乘)의 성자(聖者)가 신묘불측(神妙不測)하고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여섯 종류의 지혜를 체득한 육신통(六神通)을 말한다. 육신통은 신경지증통(神境智證通), 천안지증통(天眼智證通), 천이지증통(天耳智證通), 타심지증통(他心智證通), 숙명지증통(宿命智證通), 누진지증통(漏盡智證通)이다.
[주4] 조물주가 …… 하였구나 : 찾아가 보질 못하였다는 뜻이다. 《시경》 주남(周南) 권이(卷耳)에, “저 높은 산 오르려나, 내가 탄 말 비루먹었네.[陟彼崔嵬 我馬虺隤]” 하였다.
[주5] 대관(大觀) : 크나큰 관찰을 말한다. 한(漢)나라가 가의(賈誼)의 〈복조부(鵩鳥賦)〉에, “작은 지혜 스스로 사사로이 여겨서 상대는 천하고 난 귀하게 여기나, 통달한 사람이 대관함이여, 상대에 불가할 게 없다네.[小智自私兮 賤彼貴我 達人大觀兮 物無不可]” 하였다.
[주6] 청련(靑蓮) : 푸른색 연꽃으로, 불가에서는 이를 불안(佛眼)에 비유한다.
[주7] 유마(維摩) : 인도(印度)의 유마힐(維摩詰)로,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제일가는 거사(居士)이다. 부처가 비야리성(毘耶離城)의 암마라원(庵摩羅園)에 있을 적에 이 성에 살면서 부처의 교화(敎化)를 도왔다고 한다.
[주8] 손유선(孫儒仙) : 진(晉)나라 때 사람인 손작(孫綽)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작자 자신을 비유한다. 손작은 어려서부터 높은 뜻을 품었으며, 학문이 박식하고 시문을 잘 지었는데, 〈천태산부(天台山賦)〉와 〈수초부(遂初賦)〉는 특히 유명하다.
[주9] 연경(蓮經) : 《묘법연화경(妙法蓮花經)》으로, 불경(佛經)을 가리킨다.
[주10] 산속의 …… 있다네 : 돌에게도 귀가 있어서 설법을 들을 수 있다는 말로, 도리(道理)가 투철하고 설복(說服)하는 힘이 강하여 다른 사람들을 능히 신복(信服)시키는 것을 뜻한다. 진(晉)나라 때 도생 법사(道生法師)가 호구산(虎丘山)에 들어가서 돌들을 모아 놓고 문도(門徒)로 삼은 다음 《열반경(涅槃經)》을 강론하면서 “내가 설법한 것이 부처의 마음과 들어맞는가?” 하니, 돌들이 모두 머리를 끄덕였는데, 열흘 만에 불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첫댓글 멋지십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인생 ᆢ별거 있나요
^^
네, 그렇죠^^ 짙푸른 봄날,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