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유학자, 명계(明溪) 김계윤(金季潤)의 만시(輓詩)> 해암(海巖) 고영화
● 명계(明溪) 김계윤(金季潤 1875∼1951) 선생은 만사(輓詞), 만시(輓詩)를 참으로 많이 남겼다. 그의 스승과 집안 어른, 그리고 아는 지인들의 수많은 죽음을 애도했다. 만시 속에는, 평소에 다정하게 지냈던 일이나 특별한 일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담담히 자신의 소회를 읊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 연초면 장목면 하청면의 수많은 지인들의 초상에는 김계윤 선생의 만시(挽詩)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 만시(輓詩, 挽詩)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은 시를 말한다. 만사(輓詞)나 만장(輓章) 등과 함께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동양의 전통적인 문학 형식으로 그 유래가 아주 오래 되었다. 일반적으로 만시(輓詩)라고 하면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문학 양식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와 같은 평가가 일면 타당한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문학 양식으로만 치부해 버리기는 어렵다. 사람의 죽음이 주는 결핍의 정서, 살아남은 자의 비통함을 노래는 절대적 결핍이기에 이를 그냥 지나치기에 창작동기가 너무 본질적이다.
만시가 대량으로 창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조, 특히 조선 중기 이후에 들어선 다음이라고 보이고, 조선 중기 이후에 와서 만시가 시의 중요한 형식 중 하나가 된 까닭은 조선 중기 이후 정착된 상례의 보편화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상례에서 만시를 적은 만장의 사용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만시의 창작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 후기로 가면서 대인만(代人挽)이라는 제목의 만시를 많이 보게 되는데, 이와 같은 만시의 경우 죽은 사람을 자신이 알지 못하지만, 주변에서 그를 위해 만시를 지어달라고 청하여 쓴 시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제목의 만시는 주변 사람들에게 문명(文名)을 인정받은 문인이 창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대인만(代人挽)이라는 제목의 만시까지 창작되었다는 것은 만시의 창작이 관습화․의례화 되었음을 의미한다. 상례(喪禮)의 정착과 보편화로 인한 결과라 짐작되지만, 만시의 창작이 관습화․의례화 되면서 만시에 담기는 내용도 죽은 사람을 통해 느끼게 되는 살아남은 사람의 슬픔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칭송(稱頌)으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만시의 내용이나 만시 속 정서의 변화는 관습화된 만시의 창작이 인간 본연의 정서를 읊어내는 자연스러운 문학 활동이 아니라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의식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한 작가의 만시 전체가 그와 같은 의식적인 상투성을 넘어섰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은 사람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정서를 담고 있는 문학적으로 뛰어난 만시가 창작되어 아직까지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렇게 본다면 대상의 죽음에 대한 작가의 진정어린 슬픔이 진솔한 문학적 표현으로 구상화 된 만시가 문학적으로 뛰어난 만시라고 할 수 있다.
1) 만사(輓詞) 이춘서(덕재)[挽李春瑞 德材] 연초면 이곡(梨谷)
累處轉搬竟首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何曾分外有營求 어찌 일찍이 분수 밖의 이익을 추구하려 했느냐
紛紜天下忘榮辱 천하가 복잡하고 어지러우니 영욕을 모두 잊고
俯仰人間不怨尤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인간을 원망하지 마시게
梨谷新春超俗染 이곡리(梨谷里)의 새봄은 속세에 물들지 않아서인지
玉京明月伴仙儔 옥황상제의 천궁에서 밝은 달이 신선의 무리와 벗하누나
長房逆理當年事 장방(長房)에서 있었던 그 해의 일은 이치에 맞지 않았으니
進看方今豈獨愁 방금 나아가 바라보니 어찌 홀로 시름겨울까
[주] 장방(長房) : 조선 시대 서리(書吏)들이 집무하거나 거처하던 방. 예전에,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함께 거처하던 긴 방
2) 만사(輓詞) 윤참사[挽尹參事] 1920년(庚申) 거제시 하청면 하청리
書面無緣久未傳 서면(書面)으로 인연이 없어 오랫동안 전하지 못했는데
爾來屈指幾經年 근래에는 손꼽을 만큼 오고 간지 몇 해나 지났던고
猶聞氣力多康健 오히려 기력이 더욱 강건해졌다고 들리더니
誰意儀形永邈綿 그 모습을 영원히 못 볼 줄 누가 생각했으랴
豪邁高風無復望 늠름하고 고상한 풍채 다시는 볼 수 없지만
鄕閭舊跡尙依然 향리 마을의 옛 자취 더욱 의연하리라
一千休運河淸里 일천년 아름다운 운수 하청리(거제시)에
人降人歸感涕漣 사람이 내려왔다 돌아가니 감회어린 눈물만 나오네
3) 만사(輓詞) 윤찬흥[挽尹贊興] 하청면 유계리(柳溪里)
鶯山東麓柳成村 앵산의 동쪽 산기슭에 버드나무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는데
百壽閒翁聽子孫 백수(百壽)의 한가한 늙은이가 자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네
心靜身安忘寵辱 총애와 수모 모두 잊고 마음이 고요하고 몸이 편안하여
春耕秋穫樂面園 봄에 밭 갈고 가을에 수확하니 즐거운 얼굴이 정원에 가득했다
亂邦誰解仙凡理 어지러운 나라에서 뉘가 선계와 속계를 통달해 다스리랴
隔日連招舅婦魂 며느리는 격일로 시아버지 넋을 잇닿아 부르네
所以家庭雖暫窘 아무리 가정이 잠시 군색하다 할지라도
回看時局肯深論 시국을 심도 있게 논(論)하며 되돌아본다
4) 만사(輓詞) 옥원백(석청)[挽玉元伯 石淸 三絶] 연초면
早年失怗侍重堂 젊은 나이에 조부모를 모시다가 후에 잃었는데
不墜靑氈保百方 푸른 모전(毛氈)이 손상치 않게끔 온갖 방법으로 지켜냈다
繼繼家聲泉上里 천상리(泉上里)에서 집안의 명성을 대대로 지켜왔고
謀農敎子克流芳 농사를 자식에게 가르쳐 향기가 대를 이어 흘러갔다
平時如智亂時愚 평시에는 지혜로운 것 같지만 어지러운 때에는 어리석으니
其智其愚不異途 그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의 길이 다르진 않다네
家政有傳身亦老 신체 또한 늙어가니 집안을 다스리는 일도 물려줘야하는데
休令塵俗每驚吾 속된 세상이여~ 매번 나를 놀라게 하지 말라
怪瘇彌年足上浮 괴이하게도 한해가 지나도록 발 위로 다리가 부었는데
泉聲一夜不平流 하룻밤 샘물 소리가 불규칙하게 쫄쫄 흘러가네
林巒猿鶴如相怨 숲 우거진 산에는 원숭이와 학이 서로 원망하며 맞서지만
九月黃花亦晩秋 구월에 황화(黃花)가 활짝 핀 것은 가을이 저문 때문일세
5) 만사(輓詞) 정재률[挽丁在律] 한 달 후 무덤에 들러. 연초면
生長明村性得天 명상리(明上里)에서 나고 자라 성품은 하늘을 닮았고
人間八十壽斯年 이 해(年)까지 인간 팔십 살로 장수했다
餘榮蘭室春三實 향기로운 집에 춘삼월 자취가 죽은 뒤에도 영화로운데
偕老荊闈月再圓 해로하던 아내의 안방은 벌써 한 달이 지난 뒤구려
想像居隣心宛在 살던 이웃에서 뚜렷이 마음속에 산다고 상상하다가
尋眞歸處路何邊 돌아가는 곳 어느 길 끝자락에 있으려나 찾아본다
不能臨壙吾私哭 뫼 구덩이에서 나는 사사로이 곡(哭)할 수가 없었는데
怊悵新阡結暮煙 초창한 새 무덤이 저물녘 안개로 엉겨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