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실인기의(室人寄衣)」 아내가 보낸 옷을 입어보고>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아내가 보낸 옷을 입어보고’ 「실인기의(室人寄衣)」는 거제도 유배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가 유배 첫해인 1689년 초겨울에 거제면 동상리 배소(配所)로, 한양의 아내가 보내준 옷가지와 편지를 받아 들고, 지난날 아내의 충만했던 사랑을 기억하며 잠 못 이룬다는 내용이다. 이 글은 그의 시문집 『죽천집(竹泉集)』 권2(卷之二)에 여러 거제도 유배 작품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는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공간, 생과 사가 교차하는 공간이 바로 유배지다. 유배는 그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한다. 익숙한 모든 것과의 이별 후에 마주한 유배지는 그야말로 고통과 시련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한양집에서 아내가 보낸 상자가 도착한다. 그 속에는 아내가 손수 지은 옷가지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한편 선생은 거제에서 슬픔과 어려움과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이를 억제하려고 노력하되, 유배현실을 개인의 일로 한정하지 않고 국가와 가족의 문제와 연결시켜 범주를 확장하고자 했다. 현실적인 층위에서 일어난 가족 전체의 일과 내면화의 방법을 가족으로 정서를 전환한 것이다. 거제에서 적은 많은 시편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매개 대상을 통한 내면화로 남긴 많은 유배문학의 바탕이 가족의 유리로 인한 번민이 깔려 있다.
◉ 죽천 김진규(竹泉 金鎭圭, 1658~1716) 선생은 1689년 7월~1694년 4월까지 거제도 귀양살이를 했다. 그는 유배 생활동안 형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물론이거니와, 아내와 자식의 사랑을 구구절절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선생이 유배지 거제시 거제면에서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을 보며 아내를 떠올려 지은 또 다른 유배시(流配詩) 즉, ‘옛 격식에 맞추어’ 지은 <의고(擬古)> 中 일부 시편을 감상해 보자.
"고운 아내가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데, 알고 보니 눈물에 치마가 젖었다. 가련토다, 하늘에 뜬 맑은 보름달, 선명하게 빛나네[嬋媛夜夜夢 覺來淚盈裳 可憐天上月 三五澄淸光].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난 북쪽지방, 빼어난 자태, 부인 침실의 끈인가. 고운 눈썹은 세상에 다시없고 아름다운 얼굴엔 절로 향기나구나"[佳人出北方 秀色絙洞房 蛾眉絶代無 玉顔自生香].
"아내여 아내여~ 함께 머리 묶어 언약했는데 백년언약 깊은 정이 천리에 떨어졌구나. 남편을 받들면서 함께 굶주리고 목마를 그 언제였던가? 부러워라~ 저 작은 새들도 모두 짝지어 살고나"[有妻有妻共結髮 百年深情千里別 /何時擧案同飢渴 羨彼鳥雀皆雙栖].
"장기 낀 바다에서 먼 이별 중인데, 화장대를 엿보는 자 누구인가? 미인의 눈썹에 이미 스산한 바람 소리 일어, 이 모습 바라보니 다만 슬픔만 더할 뿐"[瘴海遠相別 粧奩誰爲窺 雙蛾已蕭颯 對此秪添悲].
"기다리는 편지는 오지 않고 푸른 구름만 서로 어울리는데, 집사람 소식 어이 그리 아득한고? 미천한 이 몸에 박명한 여자팔자, 감히 원망스러우나 작은 성의(誠意) 바라건대, "그대여 무탈하시라"[靑鳥不來碧雲合 美人消息何茫茫 微軀敢怨妾薄命 寸誠庶幾君無病].
● 다음 김진규(金鎭圭)의 「실인기의(室人寄衣)」는 저자의 오언율시 3편을 연속해 전개해서 이야기를 차례로 구성해 놓았다. 아내가 보내준 옷을 입고 지난날을 회상하고 그리운 아내와의 애달픈 그리움과 사랑을 드러낸다. 밤새도록 아내가 보낸 충만한 사랑에 느끼며 잠 못 이룬다는 내용이다. 첫 번째 율시는 ‘眞’ 운목(韻目)의 압운자는 人 身 顰 筠이며, 두 번째는 ‘侵’ 운목(韻目)의 압운자는 深 針 衾 心이고, 세 번째는 ‘灰’ 운목(韻目)의 압운자는 來 開 催 埃인 오언율시(五言律詩)로 모두 측기식이다.
첫번째 율시에선, 아내가 보낸 옷(室人寄衣)을 입어보며 아내와 함께 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본다. 가물대는 등불 심지를 돋우며 외로운 타향살이의 두려움에 괴로워 한다. 그리곤 달빛에 “다듬잇돌이 차다”면서 소매 자락을 풍로(風爐) 가까이 가져가 본다. 다듬잇돌은 옛날 우리네 어머님과 아내의 희생의 상징이다. 내 옷의 주름이 펴질수록 아내의 손은 점점 거칠어간다. 다듬잇돌의 겉은 차갑지만 그 속에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또 “눈썹먹에 눈살 찌푸리듯 하네.”는 애달픈 아내의 눈물을 형상화한 멋진 시구이다.
두번째 율시에선, 귀양 떠난 온 후에 태어난 갓난아이를 돌보며, 남편의 겨울옷을 짓기 위해 애쓰는 바느질 장면을 상상한다. 상자 속 비단에 쓴 편지를 꺼내 읽고 애달픈 그리움과 사랑을 드러낸다.
세 번째 율시에선, 아내가 보낸 옷(室人寄衣) 입어보니 수초나 버들가지가 봄이 아닌데도 새로 피어나는 듯하다고 들뜬 심정을 드러낸다. 집 밖은 겨울 추위가 재촉하지만 방안은 아내의 사랑이 충만하다. 밤새 아내가 그리워 여기저기 비비고 만져보다가, 보내온 비단옷은 진작 만져보지 못해 먼지만 인다.
*「아내가 보낸 옷(室人寄衣)」*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秋氣生深閤 가을 기운이 깊은 누각에 밀려올 때
寒衣寄遠人 겨울옷을 멀리서 누군가 보내왔네.
依依出君手 휘청휘청 나가보니 임의 손이라,
戀戀着吾身 애끓는 그리움에 나도 몰래 입어보네.
映月應砧冷 달빛 들어와 "다듬잇돌은 차다" 하여
挑燈想黛顰 등불 심지 돋우니 눈썹먹에 눈살 찌푸리듯 한다.
偏憐淚痕染 눈물 흔적이 얼굴에 번지니 몹시도 애달파,
衫袖卽湘筠 소매 자락을 풍로(風爐) 가까이 가져간다.
又 나는 아이가 태어난 일을 몰랐는데 아내가 헤진 이불을 째서 아이 옷을 만들어 입혔다고 한다. 예전에 평상시 보았던 사실, 대여섯을 적어 본다.(余不識生産事 妻兒常衣破衾弊 五六記平日所睹實事)
想像裁衣苦 애써 옷을 고쳐 만든 일을 상상하니
慇懃托意深 깊은 뜻이 담겨 은근한 정이 느껴지네.
憂寒增着絮 추위 걱정에 솜옷을 겹쳐 입고
憶遠幾停針 기억해보니, 몇 번이나 바늘에 찔러 멈칫거렸다.
身冷無完帔 몸은 차갑고 온전치 못한 치마에다,
兒號擁弊衾 우는 아이를 헤진 이불에 끼고 앉았었지.
都將篋中帛 아~ 문득 상자 속 비단에 쓴 글을 보니
聊寄枕邊心 애오라지 베갯머리에다 마음을 보내왔네.
又
楚澤非邊戍 가시나무 울타리는 변경의 수자리가 아닌데도
秋衣亦遠來 가을철 옷이 멀리서도 왔구나.
芰荷那復製 수초들이 어찌 다시 자라는가?
篋笥爲親開 버들가지도 새로이 피어난다.
燈火閨中暗 등불은 안방 깊이 숨고
風霜海外催 바람과 서리가 섬을 재촉한다.
摩挲更惆悵 몸을 비비다 보니 다시 마음 서글퍼져
綵服想生埃 떠올린 비단 옷에 먼지만 인다네.
○ 마지막 율시에서 비단옷을 아내로 비유해, 떨어져 있어 안타까운 사랑을 드러냈다. 읽는 독자도 서글프게 한다. “버들가지도 새로이 피어난다(篋笥爲親開)”에서 버들가지는 고전시에서 이별의 정표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인데, 버들가지를 심으면 뿌리가 다시 내려 새잎이 돋아난다. 헤어졌지만 훗날 재회하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말이다. 부인을 생각하며 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그려냈으며, 눈앞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그리운 사랑을 표현한 명작이다.
◉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는 조선후기 노론의 대표적 정객으로 스승 송시열(宋時烈)의 입장을 고수했던 인물이다. 문장에 뛰어나 반교문·교서·서계 작성을 많이 했으며, 전서·예서 및 산수화·인물화에도 능했다. 그는 거제반곡서원 터에서 귀양살이를 5년간 했다. 문집으로 『죽천집(竹泉集)』, 편저로 〈여문집성(儷文集成)〉이 있다. 거제 반곡서원(盤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청이다. 그는 1679년에 거제면 반곡 골짜기로 유배 온 스승 송시열(宋時烈)과 같은 곳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복권되어 서울로 올라갔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전서·예서와 산수화·인물화에 모두 능하였고 거제의 반곡서원(盤谷書院)에 배향되었다. 그는 거제도 3대 유배문인으로, 그의 『죽천집(竹泉集)』에 약 240여 편의 유배문학작품을 남겼다.
○ 또한 남해도로 유배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저자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김진규의 삼촌이다. 그리고 누이동생은 숙종의 비였던 인경왕후(仁敬王后 1661~1680)이다. '당시에 김만중 뿐만 아니라 김만기의 큰아들 김진구는 제주에 유배되었고 둘째 조카 김진규는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셋째 조카 김진서도 진도로 유배가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한 집안이구나 하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 그네들에게 두려운 것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불의를 보고도 못 본척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이야 이렇게 의지가 강한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