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2025 KOREA/경주국립박물관 개관 80주년 특별전 「신라금관, 권력과 위신」 관람 후기
곽노연
12월 23일의 경주국립박물관은 인산인해다. 찾은 곳은 「APEC
2025 KOREA/경주국립박물관 개관 80주년 특별전, 신라금관, 권
력과 위신」 전시장이다. 전시를 10월 28일부터 12월 22일 가지였
으나 2개월 연장하여 2026. 2. 22까지이다. 80년만에 전시한 금관
진본이 앞으로 백년 후에 진본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30분 단
위로 150명씩 끊어 입장 인원을 조정하였는데도 전시장 안은 구름
인파로 복짝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금빛은 눈부시기보다 깊었다.
유리 진열장 너머의 금관들은 반짝이며 말을 걸기보다, 오랜 침묵 끝에 이제야 허락된 듯 수 많은 사람들 속이였지만 조용히 존재하고 있었다. <교동 금관>
가장 먼저 마주한 교동 금관(제작 5세기, 높이 12.8cm, 무게 50.4g)은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 존재였다. 화려함보다는 긴장감이 먼저 느껴졌다. 곧게 선 장식들은 아직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권위처럼 보였고, 왕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져 가는지를 묻는 물건 같았다. 수직으로 솟은 출(出)자형 장식은 과시보다는 균형에 가깝고, 장식 요소들도 비교적 단정하다. 이것은 이미 완성된 왕의 관이 아니라, 왕이 되어가던 시기의 흔적이었다.
두 번째 황남대총 금관(국보, 5세기, 27.3cm, 1062g) 앞에서는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장식의 밀도와 금판이 만들어내는 무게감은 단번에 공간의 중심을 차지했다. 이 금관은 개인의 장신구라기보다 국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권위가 제도화되고, 왕권이 더 이상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던 시기의 자신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말없이 서 있어도 모든 것이 정리되는 힘이 이 금관에는 있었다.
<황남대총 금관>
이어진 금관총 금관(국보, 5세기, 27.7cm, 692g)은 교과서에서나 사진으로
익숙한 형태였지만, 실물 앞에서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었다. 수목과 사슴장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왕이 인간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금관을 보며 신라의 왕은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제의의 중심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권력과 신성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의 사고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금관이었다.
서봉총 금관(보물, 6세기, 35cm, 803.3g)에 이르러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봉황 장식은 이전의 금관들과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금관은 내부를 다잡기 위한 상징이 아니라, 외부를 의식한 표식처럼 보였다. 신라가 자신을 더 넓은 세계 속에 위치시키기 시작했음을 조용히 말해주는 유물이었다. 권위 는 더 이상 혼자서 완성되지 않고, 타자의 시선 속에서 정제되고 있었다. <금관총 금관>
금령총 금관(보물, 6세기, 27cm, 356.4g)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상상을 하게
된다. 금판 아래 달린 작은 방울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울렸을 소리. 왕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소리로 퍼져나가며 존재를 알렸을 것이다. 이 금관은 보는 권위에 더해 들리는 권위를 만들어냈다. 침묵 속에 놓인 유물이지만, 오히려 가장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주었다. 옥이 많음은 ‘국제 <서봉총 금관> 성’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천마총 금관(국보, 6세기, 32.5cm, 1262.6g)은 묘하게 따뜻했다. 화려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았고, 상징적이지만 멀지 않았다. 천마도와 함께 떠올리면 이 금관은 삶과 죽음, 현실과 내세를 잇는 매개처럼 느껴졌다. 왕의 권위는 이승에서 끝나지 않고, 저 너머까지 이어지기를 바랐던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전시의 끝에서 이 금관을 만난 것은, 권위의 서사를 인간의 이야기로 되돌려 놓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금령총 금관>
<천마총금관>
전시장을 나오며 금관들을 다시 떠올렸다. 여섯 개의 금관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떤 것은 형성의 시간에 대해 말했고, 어떤 것은 완성의 순간을 보여주었으며, 또 어떤 것은 변화와 확장을 이야기했다. 함께 전시된 모관과 관식, 금허리띠는 이 금관들이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았음을, 또 권위란 수많은 요소가 맞물려 만들어진 구조였음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이 전시는 감탄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서서,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신라의 금관은 화려함을 넘어,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1,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 있었다. 30분만 보려던 것이 1시간을 훌쩍 넘겼다. 다른 관람객에게 죄송했다. 이제 카페에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