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본 문: 요한복음 1:12-13
설교일: 2024. 8. 18(주일 낮 예배)
지금은 대개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이지만, 옛날에는 보통 다섯, 여섯 많으면 열 몇명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들이라고 해도 다 똑같지 않습니다.
얼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장성하면 직장이나 지위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법이나 형편도 다 다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고 항상 똑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가 열이든 스물이든 다 한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것입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보면 아버지 밑에 형제들의 이름이 차례 차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는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가족관계 증명서를 보면 하나님 아버지 밑에
우리의 이름이 다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서 권세라는 말은 힘, 능력이라는 뜻도 있지만,
합법적인 권리 또는 합법적인 자유라는 뜻이 더 강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는
어떠한 합법적인 권리와 자유가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에 들어가는 합법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아들 다섯을 둔 믿음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아들들을 불러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첫째 아들이 어머니에게 다가오자 어머니가 손을 잡고
“그래 첫째야! 너는 나에게 이렇게 인사를 해라" "엄마 ! 다시 만나요!"
어머니는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 똑같이 “엄마 다시 만나요!”하고 인사를 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섯째 막내가 오자 어머니는 “막내야 너는 이렇게 인사해라 “엄마 ! 잘 가세요”
막내가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엄마! 왜 형들에게는 ”다시 만나요!“ 하라고 하시고,
저에게는 ”잘 가세요!“하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그 어머니는 엄숙한 얼굴로
“막내야 네 형들은 이 엄마와 함께 예수님을 잘 믿었기 때문에 저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된단다. 그러나 너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어서 엄마와 천국에서 만날 수 없단다. 그러니 내가 세상을 떠나면 너와는 영원한 이별이 되니
”잘 가세요!“라고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막내는 엄마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엄마 나도 예수 믿고 엄마와 다시 만날거예요! 엄마 다시 만나요!”
하고 인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합당한 권리가 있습니다.
천국은 캐나다 이민가는 것처럼 전문기술이나 얼마의 재산이 있어야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키가 크고, 얼굴이 잘 생겨야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아들이 있는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영생)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느니라”
(요일 5:12)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단 하나인데,
그 하나는 바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자기 생애를 맡기고 예수님과 함께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 흔들리지 마세요!
‘내가 구원받았는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그분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고 있다면
우리의 구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합당한 권리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 13절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은 그 근원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모든 만물을 손에 넣으시고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 아니 온 우주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분의 손에서 움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로마서 8:17)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상속받는 상속자 되었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너무 따지고, 너무 계산하고 살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며 좀 높이 그리고, 넓게, 깊게
그리고 큰 아량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좀 양보해도 됩니다.
좀 나눠 주어도 됩니다. 좀 져 주어도 됩니다.
마귀에게는 절대로 이겨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좀 져 줘도 됩니다.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다 받습니다.
하나님의 상속은 우리가 양보한 것, 손해 본 것, 우리가 져 준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아멘
둘째, 하나님의 자녀는 참 자유를 누리는 합법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지난 주 우리는 광복절을 기념했습니다.
광복절은 말하자면 자유를 얻은 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8.15 광복을 맞아, 자유를 얻었다고 떠들석 하는 중에 우리는 다시 자유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북한 땅은 지금까지 자유를 잃고 바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남쪽에 사는 우리는 어떻습니다.
자유가 있다고 하나 참 자유는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다.
사람이 주는 자유는 한계가 있고, 제한이 있고, 기한이 있고, 불평등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여러 이유로 구속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자유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이기 때문에 한계도, 기한도, 제한도, 불평등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참 자유는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죄에서의 자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우리에게 이 자유를 주시려고 에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짊어 지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둘째는 죽음에서의 자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11:25-26)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죽어도 삽니다.
우리가 살아서 믿었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믿는 자가 세상을 떠나는 것은 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험한 풍파가 있는 세상에서, 아무리 오래가야 100년도 못가는, 그것도 수시로 고장나고 병드는 육신의 집을 버리고 슬픔도 없고,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고, 헤어짐도 없고, 다툼도 없고, 죽음도 없는 정말 영원히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하늘나라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죽음에서도 자유를 누립니다.
이런 자유는 세상의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의 자녀만이 합법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께 구할 수 있는 합법적 권리가 있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양육합니다.
말을 하기 전까지는 부모가 다 알아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옷을 입히고,
부모가 다 해줍니다.
그러나 자녀가 말을 하고 철이 들면 부모는 자녀의 요청에 따라 움직여 줍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받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요청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육신의 자녀가 아버지께 말을 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이면 다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 어떤 자녀에게 더 정이 가고, 어떤 자녀에게는 더 주고 싶은 것도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 똑같이 예수를 믿고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것은 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꼭 기도라는 그릇에 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했습니다. 감히 이유를 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자녀의 권위가 대단합니다.
자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버지가 대부분 집니다. 말하자면 사랑하기 때문에 져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져주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져주신 실례가 있습니다.
창세기 32장 22절 이하를 보면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져 주셨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시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끝까지 불들고 늘어지니까 “내가 졌다”하시고 야곱을 하나님과 더불어 승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에게 구할 합법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죄에서 자유를 누리고 죽음에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간 성도들이라면 세상에서 사람이 억압하는 모든 굴레에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에서도 해방을 받고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욕심에서도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욕심없는 자녀에게 더 풍성히 부어 주십니다.
물질에서도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돈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돈이 많다고 건강이 보장됩니까? 생명이 보장됩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큰 창고를 짓고, 아무리 많이 쌓아 놓았다 해도,
“오늘 밤에 내 영혼을 데려가면 그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물질에서도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법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는 죄에서 자유를 누리는 권리,
그리고 죽음에서 자유를 누리는 권리,
세상의 모든 얽매이는 사슬에서의 자유입니다.
이렇게 똑같은 권리를 가진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정도가 다 다릅니다.
누구는 은혜를 체험하고, 은사를 받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버지께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하시면 하나님이 져주시기도 합니다.
눈물로 간절히 애원하면 주님도 함께 우십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현장에 찾아 가십니다.
주님이 찾아오시니 각색 질병이 떠나가고, 죽은지 나흘 된 나사로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번 광복절을 기념하면서
우리 민족 모두 주님이 주시는 참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고, 나누고,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