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어떨까. 더 나쁜 건 새로운 기억을 전혀 만들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영국의 클라이브 웨어링이 1985년 이후 겪고 있는 악몽이다. 피부에 물집만 일으키는 단순 포진 바이러스가 해마(기억이 저장되는 뇌 영역)를 공격해서 생긴 일이다. 그는 자신이 악몽 속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기억은 지난 30초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아내를 알아본다는 것이지만, 아내가 방을 나갔다가 1분 후에 돌아오면,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인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병에 걸리기 전 저명한 음악가이자 지휘자였던 그는 여전히 악보를 읽고 연주하는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웨어링의 사례는 매우 드물고 어쩌면 유일무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화에 따른 기억력 저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흔하게 나타난다. 이를 예방하려는 바램은 수많은 연구를 촉진했는데, 동시에 효과가 매우 의심스러운 ‘뇌건강 보충제’라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도 만들어냈다. 특정 음식과 식단이 노화에 따른 기억력 저하를 막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쏠려 있다.
보충제의 경우, 근거가 약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과장된 홍보는 넘쳐난다. 이름 대신 이니셜만 쓰는 사람들의 개인 후기에는 정신이 맑아졌다는 장밋빛 이야기와 모호한 임상시험이 가득 언급되어있다. 그러나 임상시험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실제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대부분은 실험실의 세포나 미로를 탐색하는 쥐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규모가 작고, 실제로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중에는 수백 가지의 뇌 보충제가 있지만, 대부분 약 20가지 정도의 성분을 조합해 사용한다.
이들 성분의 사용 근거는 그럴듯하게 들린다. 예컨대,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을 증가시키거나(후페르진, 콜린, 레시틴, 알파-GPC, 바코파), 신경전달을 방해하는 타우 단백질이나 베타 아밀로이드 형성을 줄이고(노루궁뎅이버섯, 강황, 아슈와간다, 계피), 신경을 보호하는 수초를 강화하거나(포스파티딜세린), 세포막의 유동성을 높여 신경전달을 개선하거나(오메가-3 지방), 세포사멸을 억제하거나(생강), 막연한 신경 보호 효과를 주장하거나(빈포세틴), 뇌 내 칼슘 수준을 조절하거나(아포아에쿼린), 항산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은행잎, 코엔자임 Q10, 차·코코아·과일의 폴리페놀 등). 많은 성분이 이런 효과를 동시에 가진다고 주장한다.
산소 대사 과정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가 산화 스트레스를 통해 신경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고, 항산화제가 이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신경전달이 인지 기능에 중요하고,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이 기억을 저해한다는 사실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뇌 기능 향상제’가 이런 과정에 실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 보충제들은 대체로 안전해 보이지만 무작위 이중맹검 시험에서는 효과가 없거나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은행잎, 오메가-3, 강황, 녹차 및 코코아 추출물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장 인기 있는 성분인 아포아에쿼린은 임상시험으로 뒷받침된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그 ‘근거’는 데이터 해석을 매우 억지로 끌어낸 결과다. 회사 스스로도 전체 참가자 집단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일부 하위 집단에서 나타난 미미한 효과를 강조한다. 이는 통계적 우연일 가능성이 큰데, 아포아에쿼린은 단백질이기 때문에 소화 과정에서 분해되어 뇌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성분이 해파리에서 자연적으로 유래했다는 점도 강조되지만, ‘자연적’이라는 말이 안전성과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시판 제품에 사용된 아포아에쿼린은 해파리에서 추출된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효과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며, 부작용 보고와 미국에서 소송까지 제기된 바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 음식이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연구도 많다. 한 연구에서는 하루 60g의 호두, 피스타치오, 캐슈, 헤이즐넛을 섭취한 그룹이 대조군보다 뇌 혈류가 증가하고 언어 기억 테스트에서 16% 더 좋은 성과를 보였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하루 13g의 딸기 분말을 섭취한 사람들이 단어 테스트에서 오류가 줄고 우울 증상이 감소했다. ‘키위를 더 먹으면 며칠 만에 정신 건강이 향상된다’는 식의 기사도 있지만, 이런 결과는 신뢰도가 낮다.
더 신뢰할 만한 연구도 있다. 코코아 보충제 및 종합비타민 연구(COSMOS)에서는 60세 이상 참가자 중 종합비타민-미네랄 보충제를 섭취한 그룹이 위약 그룹보다 인지 기능에서 약간의 개선을 보였다. 그러나 6,000명의 남성 의사를 12년간 추적한 다른 연구에서는 보충제와 위약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1984년부터 48,000여명의 간호사를 추적한 ‘간호사 건강 연구’에서는 중년기에 충분한 단백질, 특히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한 사람들이 노년기에 더 나은 건강(정신 건강 포함)을 보였다. 간식으로 견과류를 먹고, 콩·렌틸콩·완두콩·두부·통곡물 등을 포함한 식사를 주 몇 차례 하도록 권장했다.
같은 연구에서 식단과 인지 기능 저하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도 제시되었다. 핵심은 플라보노이드 섭취였다. 플라보노이드는 식물에 존재하는 화합물군으로, 항산화 작용을 하는 공통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연구에서는 식품 섭취 빈도 설문을 통해 플라보노이드 섭취량을 추정하고, “최근 일을 기억하기 더 어려워졌는가”, “짧은 목록을 기억하기 어려운가”, “대화나 TV 프로그램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운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주관적 인지 저하와의 관계를 분석했다.
이런 관찰 연구는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지만, 오렌지, 피망, 사과, 딸기, 블루베리처럼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한 음식을 매일 여러 번 섭취하면 인지 기능 저하를 최대 20%까지 늦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일까? 기억력 보충제가 기억력 저하를 늦춘다는 것을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는 없다. 그 돈으로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한 식품을 사는 것이 더 낫다. 또 체중 1kg당 최소 0.8g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중 상당 부분을 식물성 단백질로 채우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