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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端의 追憶 #141, '이단의 추억' 10개 星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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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추억' 그 첫 기록을 남긴 것이 2013년이었고 올해가 벌써 2022년으로 접어들었으니 이제 10개 성상(星霜)에 이르게 되었다. 별은 일년에 한 바퀴를 돌고 서리는 매해 추우면 내린다고 했으니 벌써 10년에 이르렀다는 뜻일터... 10년이면 강신이 변한다고 했던가.
그동안 생각을 가다듬고 자료를 추적하여 일백사십여 회에 이르도록 '이단의 추억'을 꾸준히 기록해 왔다. 그리고 '세칭 동방교'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황당하고 허망했다. 그 짧았던 파장은 全 생애에 영향을 미칠 만큼 길고도 짙은 그늘이었다.
극심하게 어두웠던 터널은 다행히 짧았지만 긴 인생을 준비해야 할 학업의 시기는 놓쳤다. 그러나 배가의 노력으로 훗날 그것을 운좋게 잘 극복할 수 있었으니 불행중 다행이라 할만하다.
그렇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無知의 댓가는 고단하고 험난했다. 지난날을 회고해 보건데 대개 다음과 같은 경로를 거쳐 확정편향의 세계, 인지부조화적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인 세칭 동방교를 빠져나와 정상적인 인생길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1.盲從期(맹종기)를 헤매다가
2.脫出期(탈출기)를 지나서
3.回復期(회복기)를 보냈고
4.悔限期(회한기)를 거친후, 이제
5.追憶期(추억기)를 더듬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름대로의 긴 旅程(여정)이요 애환(哀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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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盲從期(맹종기)
어린 나이에 자칭 '좁은 길'이라 부르던 세칭 동방교에 함몰되어 그 似而非的 이단 사설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이다. 참으로 철없던 중2 때부터 징병 신체검사를 2년 기피한 후 軍 입대할 때까지의 기간이니 약 10여 년에 이르는 너무나 소중한 청소년 시기이다.
3년안에 세상이 불심판으로 멸망하고 지구가 불타고 뒤집어져 없어진다고 했으니, 또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으니 공부가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이며 어떻게 정상적인 학업을 이룰 수가 있었으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애석하고 안타까웠던 시절이다.
이 시기는 긴 인생여정을 가장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 학업성취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단사이비 종교집단 세칭 동방교에 함몰되어 거기에 맹종하고 있었으니 어찌 애석함과 안타까움이 절절히 사무치지 않으리요. 세칭 동방교에 맹종했던 상세한 내용은 '이단의 추억' 이라는 자전적 기록속에 세밀하게 남겨놓은 바와 같다.
2. 脫出期(탈출기)
세월속에서 점점 장성해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안목과 식견이 넓어지고 세칭 동방교의 그 似而非的 이단성에 대하여 차츰 눈을 뜨게 되므로 동방교에 대하여 회의가 짙어지게 되어 탈출을 꿈꾸던 시기이다.
당시 세칭 동방교의 본부 서울 용산의 수원정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동방교의 내부 사정에 접하게 되었고, 짙어오는 회의감과 軍 입대 기피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군대를 기피하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 자각을 하게 되고 탈출을 결행하게 되는 시기이다.
軍 입대는 그야말로 세칭 동방교를 탈출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였고 군 복무기간 3년은 동방교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제대하고 바로 입사시험을 치르고 취업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하였고 얼마후 결혼했다.
가끔 옛 세칭 동방교의 지인들로부터 연락과 권유가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사회생활에 전념했다. 옛일을 잊기 위해 의식적으로 동방교를 멀리했다. 이단 사이비 세칭 동방교의 세뇌가 깨끗하게 청소되고 탈출하게 되는 이 시기는 아마도 십수 년이 걸린것 같다.
입만 굳게 다물고 있으면 구원은 받는다고 했는데... 등의 세칭 동방교를 떠나더라도 듣고 보고 알게된 것을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도록 깊게 뿌리박혀 세뇌된 동방교의 이단 사설은 십여 년도 더 지난 30대의 중반에 이르러서야 끝이 났다.
그동안 직장의 배려와 지원으로 늦은 나이에 4년 학부를 마치고 경영대학원을 수료했으니 더 이상 이단 사설에 사로잡히지 않을 만큼 知的으로도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다. 참으로 질긴 악연이었고 그것을 완전히 벗어나는 데는 십수 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3. 回復期(회복기)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 세칭 동방교에 패인 상처는 깊었고 회복의 시기는 길었다. 40대 중년의 그 활달하던 시기에 가정을 건실하게 지키고 직장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소중히 함으로 인간적 성숙과 사회적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 세상이든 종교든 그것에 대하여 합리적 의심을 가지지 못하고 대책없는 광신자가 되면 종교나 세상을 올바르게 바로 볼 수가 없게 되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시기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은 어쩌든지 자기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포장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는 시기였다.
젊은 시절의 청춘을 다 빼앗기고도 모자라 가장 왕성하게 삶을 구가해야할 중장년의 시기에 이르도록 세칭 동방교라는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에 발이 묶여 헤어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동료및 후배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 아파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세상에 무슨 조직이든, 그것이 종교든 무엇이든...
돈이 없으면 운영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이비 이단 종교집단들의 그 내밀한 운영과 내막을 관심있게 추적해보고 了解(요해)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했었다.
어쨌던, 前後를 살피고 내공을 키우며 삶을 진지하게 숙고하고 가정과 사회에 충실하고 나에게 주어진 旅程에 전력투구했으므로,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 세칭 동방교로 인하여 짙게 드리워졌던 어둠의 그늘 밖으로 완전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회복하게 되었다.
4. 悔限期(회한기)
- 헛된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 ‘세칭 동방교’에 대한 종교적 관념의 노예로 살아온 어리석었던 과거를 돌아보라, 인간은 잘못된 길을 들어서고 과오를 범했을 때는 유순하게 그 길을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진실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 죄송함의 용서를 하늘에 구해야 한다. 그런 용기가 없어서는 아니 된다.
'세칭 동방교'에 아직 몸담고 있는 개인 개인들에 대한 잘잘못을 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떻게 보면 그들도 선량하고 가련한 피해자들일 뿐이다. 그 개인 개인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단체를 결성하여 움직이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이권이 개입하고 그곳에 빨대를 꽂아 먹고 사는 목줄을 달게 되고 소집단의 영웅심리에 함몰되어 자기가 처한 현실의 여건에 현혹되고 급기야는 개인 영혼의 근본까지 타락의 길에 접어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되어 스스로 오만해지고 그 어떤 비판도 비난으로 들리고 그 어떤 잘못도 소신이나 신앙으로 착각하게 되어 독선에 빠지게 된다.
종교의 탈을 쓰고 이단 사이비 요설로 인간의 영혼을 사냥해서 영원한 파멸로 이끌고 들어가는 우주적 공해인 ‘노광공, 세칭 동방교’의 실체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는 원망(願望)이 늘 깊은 심연(心淵)의 저변(底邊)에 도사리고 있었다.
내 개인의 소싯적(少時的) 어리석음은 과거속에 묻어버리되 결코 잊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반드시 그 미망의 시절을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에 빠진, 또는 빠질 우려가 있는 후세대의 교훈을 위하여 거짓없는 기록으로 남겨 두리라... 나의 가슴속에 숨겨진 비수였다.
경험자는 진실을 말한다고 했던가, 경험했던 진실과 알고있는 내막을 6년여에 걸쳐 기억을 가다듬고, 기록을 찾아내고, 사연을 청취하고, 머리위에 맴도는 생각의 단초들을 놓치지 않고 끌어당겨 그 실타래를 풀어헤쳐 숨김없는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지금의 내가 그곳을 떠났다고 하여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듯 폄하하고 비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한 행위는 나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비열함이기 때문이다. -
위의 글은 '異端의 追憶 #132, 동방교는 참회하라' 편에 기록된 글이다. 나는 이렇게 비수를 가슴에 품고 회한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5. 追憶期(추억기)
그것도 추억이라고... 뒤를 돌아다 보고 기록을 남긴다.
정의와 진실, 양심과 상식 그리고 염치를 아는 인간들이라면 가슴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보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직도 세칭 동방교에 빌붙어 목줄을 달고 있는 정신이 나가도 한참이나 나간 사람들이여,
뒤를 돌아보아 과거를 반추하고 다시 생각해 보라...
나는 진정 올바른 길을 걸었으며 세칭 동방교는 과연 인간을 살리고 영혼에 유익을 주는 올바른 종교이며 '이래 노광공'은 창조주요 재림주며 심판주인가... '아브넬 노영구'는 하나님의 아들이던가...
양심적이고 착한 사람과 양심이 없는 나쁜 놈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어릴때는 무조건 착한 사람이 이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양심없고 나쁜 사람들에게 웬만해선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현실세계에서 종종 경험하곤 한다.
세상에 정의와 상식이 파괴되고 이단 사이비가 준동하면 과연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보통 사람들이라면 '양심없는 나쁜 사람들이나 이단 사이비 집단들과 싸우느니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심정으로 피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양심적이고 착한 사람이 화가나서 모든 것을 내 던져 버리고 나쁜 사람들이나 이단 사이비들과 처절하게 맞붙을 때는 상황이 좀 달라진다. 감히 양심없는 나쁜 사람들과 사이비들이 영원히 판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이 어려운게 바로 이런것에 있다.
양심적이고 착한 사람은 대게 순둥이에 해당한다. 순둥이들의 특징은 너야 씨부려라 하고 피해버리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착한 사람들이 내 한몸 희생해서 이땅에 정의와 상식을 복원시키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고 과감하게 나설때 그들은 멈칫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를테면 이것이 '이단의 추억'을 기록하여 세상에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기록을 시작한지가 벌써 10개 星霜에 이르렀으니... 그동안 짧지않은 세월에 벌써 유명을 달리한 朋友들도 있다. 그러므로 닥아오는 감회가 새롭고 세웠던 다짐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단의 추억', 이 기록을 통하여 단 한사람 만이라도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 세칭 동방교의 과거와 현재의 실체를 알고 미래를 가늠하는 혜안을 가지고 올바른 길을 가게 된다면 더할 수 없는 보람이 될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은 천하보다 귀중하므로...
첫댓글 참으로 귀중한 일을 하셨습니다. 저도 고 1때 동방교에 빠졌다가 40대 중반이 되어서 빠져나온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금도 내 친구들, 선, 후배들이 그곳에서 심판날만 기다리면서 고리타분한 사상에 빠져 있는 게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다행히 이런 카페가 있어서 내가 동방교를 빠져나온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당위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카페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묻어뒀던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기도 합니다. 암튼 건강하시고 옳은 일에 더욱 정진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세칭 동방교의 진실을 알고 영혼의 자유와 구원에 이르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옛일을 까마득히 모르는 신세대들에게 좋은 정보와 참고 자료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