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방앗간 주인 기자(記者) 되다
강 동 구
‘살다 보면 참 별일이 다 많다고’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간혹 들은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의 의미도 모르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겠거니 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보니 정말 살다가 별일을 다 겪는다. 몇 년 전 수필 작가가 되었을 때 ‘떡방앗간 주인 작가 되다’라는 제목의 수필 한 편을 쓴 적이 있는데 지금은 ‘떡방앗간 주인 시니어 시민 기자 되다’라는 수필을 쓰고 있으니 별일을 다 경험하고 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떡방앗간 종사자들이 대부분 저학력의 육체 노동자이기 때문에 문학을 취미로 삼거나 사회봉사를 통하여 삶에 보람을 얻는 것하고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있다. 나 역시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왔고 지금은 떡방앗간 주인으로 살고 있다.
인생은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어릴 때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여자 동창 친구가 떡을 하러 왔고 떡이 익어가는 동안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시인이고 수필가이며 아동문학 작가이기에 저절로 이야기가 문학으로 옮겨간 것 같다.
군대 생활하면서 한두 편 써 놓았던 내 글을 읽어본 친구는 수필 공부를 해보라는 권유를 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떠올라 친구를 따라다니면서 수필 공부를 시작하였고 열심히 글을 쓰다 보니 문예지에 수필 작가로 등단도 하게 되었다. 여러 문학인 단체에도 가입 하게 되었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작품을 발표하며 수년 후에는 수필집도 출간해 볼까 계획하고 있다.
글쓰기에 입문한 것이 연결 고리가 되어 춘천 세대 공감 사회적 협동조합이 강원 도민 일보와 협력하여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신문을 창간 하게되어 ‘시니어 시민 기자’로 선발되었다. 나에게 수필 공부를 권유한 친구도 시니어 시민 기자로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친구와 함께하는 것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지만 내 부족함을 살펴주고 채워 줄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친구를 생각하면 정말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나의 살아온 삶과 지금의 생활을 잘 아는 친구가 아무런 편견 없이 선뜻 수필 공부를 권유했을 때에는 잠시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속된 말로 주제 파악도 못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상의하니 아내가 적극적으로 힘과 용기를 주어서 수필 작가란 호칭을 얻게 되었다. 사람은 스스로 혼자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로 인하여 누군가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봉사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 취재할 때 지참할 기자증을 목에 건 기자가 되었다. 책임감 있는 기자로서 모든 세대가 공감하는 기사를 써야 하는데 앞이 캄캄하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육하원칙(六何原則)에 근거하여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은 알지만 막상 기사를 써 보려니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십 년을 매일같이 신문을 읽었지만, 신문기사를 내가 쓰게 될 줄은 언감생심 감히 상상이나 했으랴?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으니 이제부터라도 신문을 꼼꼼히 읽고 신문을 스승 삼아 신문에서 답을 얻어야겠다.
어느 농촌 교회에 목사님 한 분과 장로님 한 분이 계셨다. 교인이라야 아이들까지 합쳐도 칠팔십 명에 불과한 전형적인 농촌 교회다. 이 교회 장로님은 평소에 목사님의 설교가 마음에 차지 않아 불만이 많았는데 마침 목사님이 교회 일로 출타를 하시게 되어 수요일 저녁 설교를 장로님께 부탁드렸다. 장로님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이번에 잘 준비하여 목사님보다 설교를 더 잘해야지 야무지게 작정하고 강단에 섰는데 너무 긴장하고 목사님보다 설교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원고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겨우 진정하고 원고를 읽는데 이번에는 눈으로 읽은 원고가 혀가 굳어 입에서 음성으로 나오지 않으니 얼굴은 붉어지고 식은땀은 온몸을 적신다. 장로님은 겨우 입을 열어 한마디 하셨는데 ‘목사 봉급이 너무 싸다’였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남이 하는 일이 쉬워 보여도 막상 내가 해보면 보기보다 다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막노동 일도 해 본 사람이 잘 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베테랑 기자들도 수습 기자 시절에는 선배들로부터 많은 지적도 들었을 것이다. 시니어 시민 기자도 기자이기에 독자들이 주목하는 기사를 쓰고 싶은 욕심은 전문기자 못지않다.
그러나 의욕과 욕심만으로 특종을 건질 수 없다. 과욕을 버리고 차근차근 기초부터 배우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겠다. 시니어 시민 기자로 선발되면서 각자의 각오를 발표하는 시간에 ‘펜으로 세대 간의 거리를 좁히겠다’라고 다짐하였다.
내가 쓴 기사가 내일 도민 일보에 실린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과 민망한 마음이 교차한다. 여러 면으로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지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마음을 활짝 열어 세대 간의 다양한 목소리를 펜으로 지면에 옮겨 보리라.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친구의 역할처럼 나의 기사도 어느 사람인가에게 길을 열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첫댓글 저도 수년간 도민일보 기고 칼럼을 썼습니다. 정권이 바뀌고나니 제 주장이 정치적으로 훼손 당할수 있어서 기고를 중단했다가 얼마전 8/31일자 제 기고 칼럼이 다시 실리게 되었지요. 옳곧은 글을 계속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