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불교신문 800호 유일, 명실상부한 불교정론지로 자리매김
제주불교신문이 창간 23년을 맞아 어느덧 지령 800호를 맞았다.
지난 1989년 제주불교 정론지로서 ‘한라에서 백두까지 불법정론 불국정토’라는 기치를 내걸고 ‘제주법보’로 창건된 이후 ‘한라불교’ ‘정토신문’ ‘제주불교’로 제호를 변경하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역신문으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동안 월간 발행에서 격주간 다시 주간으로 발행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한라불교시절의 100․200호 그리고 정토신문의 300호 이어 제주불교로 변경 후 400․500․600․700호의 주요내용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봄으로써 불교정론지로서의 정체성과 초발심을 굳건히 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라불교 100호(1994년 8월 1일자)지난 1989년 8월 1일 ‘제주법보’가 창간한 후 당시 월간 4면에서 1991년 11월 21일자가 제42호부터 ‘한라불교’로 제호를 변경했고, 그 이후 격주간 8면 발행에 돌입하면서 1994년 8월 1일 지령 100호를 맞게 됐다. 100호는 전국불자들의 제주사찰 참배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을 1면으로 다뤘다. 이에 따라 도내 사찰을 찾는 참배객이 하루 200여명 이상이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과 전문안내원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눈에 띄는 기사는 ‘제주불교, 달라져야 한다’에서는 사찰 운영의 공개에 따른 문제점과 대책을 진단했다. 당시 신도들의 운영참여나 재정공개 사찰은 도내에서 애월읍 상귀리 극락사(주지 월명 스님), 표선 관통사(주지 혜연 스님), 삼양 문강사(주지 문구 스님), 김녕 백련사(주지 우경 스님) 등이 거론됐다.
또한 지령 100호를 맞아 ‘지역불교 신문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특집 좌담회를 개최한 했다. 좌담회에는 금담 스님(보림사 주지), 오영호(거사림부회장), 오성 스님(한라불교신문 편집주간)이 참석했는데 금담 스님은 “신문이 도내 사부대중이 부처님 뜻에 역행시기에는 소신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비판만을 강조하다보면 이해 당사자와 마찰을 지혜롭게 승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스님은 “타 종교에 대처하는 방안을 찾아 타종교와의 관계 등에 신문이 빠른 정보와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라불교 200호(1999년 1월 15일자)1999년 1월 15일자로 200호를 발행한 한라불교는 창간 10주년을 앞두고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한라불교 200호는 주간발행과 12면 증면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지면으로 구성됐다.
1면에는 제주교원불자회의 조직이 확대 개편되면서 청소년 포교의 전망을 밝다고 보도했고, 지금은 사라진 ‘제주 자비의 전화’ 통계 자료를 분석해 IMF이후 가정폭력에 상담이 늘었다는 기사를 냈다. 또한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각 사찰과 신행단체에서 봉행하는 성도재일 행사가 예년에 비해 축소된 것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지면을 채웠다.
정토신문 300호(2002년 6월 28일자)한라불교는 지난 2002년 3월 15일부터 ‘정토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해 불교 이외에 사회 각 분야의 현안들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제2의 창간을 선언하게 된다.
이에 따라 2002년 6월 28일 주간 16면 발행된 지령 300호에는 하안거 정진 한 달째인 서귀포시 남국선원 선방을 찾아 30여명의 스님들이 용맹정진하는 수행의 현장을 1면 머릿기사로 다뤘다. 특히 건강을 주제로 한 테마기획물과 도내 폐사지의 훼손실태를 파헤친 ‘고대 폐사지를 찾아서’, 사찰 순례기획물인 ‘내 마음속의 부처님을 찾아’ 등이 실리기 시작했다.
제호를 변경하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논설위원과 외부필진을 통해 지금의 ‘정토의 아침’과 ‘제주불교시론’의 토대가 마련됐다.
제주불교 400호(2004년 7월 9일자)정토신문은 지난 2004년 5월 28일자 부처님오신날 특집호를 발행하면서 ‘제주불교’의 제호를 다시 변경, 명실상부한 불교 홍포지로서의 역할을 확고히 해 나갔다.
본사는 당시 어린이법회를 개최하는 사찰이 5개로 침체일로를 벗어나지 못하던 제주지역 어린이 포교의 활성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당시 관음사 교무국장 스님, 인성 스님(우리절 주지), 희정 스님(불탑사 스님)이 자리한 가운데 ‘어린이포교 활성화를 위한 긴급 좌담회’를 개최하며 어린이포교 활성화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 나가기로 합의한 내용을 1면 기사로 실었다.
또한 도내 신행단체와 불교대학 등이 여름철을 맞아 다양한 수련회 소식을 전하는 한편 당시 전법계사로 진행된 제주불교대학 15기 수계법회가 메인 포토뉴스를 장식했다.
기획기사로는 ‘강정효와 함께하는 제주땅 생태기행’이 제주 곳곳의 생물 다양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제주불교 500호(2006년 7월 7일자)도내 불교대학이 성숙단계에 이르면서 각 사찰․신행단체 경전 강좌가 잇따라 실시되는 등 불자들이 ‘불교 바로 알기’에 본격 앞장서는 시기다. 우리절의 ‘동연 간경회’, 월라사의 ‘불교아카데미’ 등의 내용을 1면으로 다뤘고, 제주지역 포교사 정기연수회가 열리면서 도내 포교사들의 제도화․체계화를 다지는 기사가 종합면을 장식했다.
또한 기획기사로서는 도내 제주불교문화대학 총동문회․제주불교대학 총동창회․서귀포불교대학 총동문회를 탐방, 2000년 초기 각 불교대학은 첫 졸업생을 배출 후 총동문회가 결성되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불교대학의 활성화가 곧 제주불교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임을 밝히고 있다.
이 밖에도 현재 ‘心 갤러리’를 연재하고 있는 희상 스님의 ‘불교로 그림읽기’, 토끼요가원의 도움으로 실렸던 ‘우리 몸 살리는 요가’, 장애인 등 도내 소외된 이웃을 찾아 불자들의 도움의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했던 ‘이웃사랑 나눔실천’, 사찰음식을 소개하는 제용 스님의 ‘소박한 밥상’ 등의 연재들이 독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제주불교 600호(2008년 7월 18일자)지난 2007년 관음사 사태로 제주불교가 시련을 딛고 일어선 지난 2008년 제주불교연합회가 다시금 본격 활성화를 위한 토대를 닦아나갔는데 600호 1면에서는 제주불교연합회의 조직 정비 기사가 1면을 장식했다.
당시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주지 원종 스님을 비롯해 상허 스님(태고종 제주교구 종무원장), 광수 스님(법화종 제주교구 종무원장), 영수 스님(일붕선교종 제주교구 종무원장), 혜전 스님(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장) 등 종단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불법 홍포를 위해 포교위원회 등이 구성됐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2면 톱기사로 여름철을 맞아 도내 사찰 및 신행단체들이 문화행사가 풍성하다는 소식을 실었다. 당시 산방산 보문사의 경로잔치, 죽림정사의 작은 음악회, 불광사의 한여름밤 콘서트 주요 내용을 다루면서 사찰이 일반인들과의 문호를 개방한다는 입장에서 사찰의 문화행사가 점차 늘어나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기획기사로서 도내 사찰의 신도회장을 찾아 도내 사찰마다의 신도회 구성과 신도회 발전방향을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었다.
700호(2010년 7월 9일자)여름철을 맞아 도내 사찰과 신행단체들이 무더위를 녹이는 수행열기 소식을 1면 톱기사로 뽑았다. 도내 불교대학을 비롯해 제주청교련, 제주차인회, 제주교원불자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제주지부동문회 등의 철야정진, 수련회 내용 등으로 꾸며졌다.
또한 3면 고정 코너로 도내 불자들의 정진 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는 ‘탐방’ 및 도내 불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불연을 생활화하는 모습을 담은 ‘내일터 우리불자’ 등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밖에도 아직도 초심자들에게 인기 코너인 ‘돈관 스님의 불교 바로 알기’, 다인들에게 인기리에 연재됐던 효월 이기영 선생의 생활 속의 ‘茶禪一味’가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