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전일념(現前一念)>
눈앞의 한 순간에 충실하라는 밀이다.
현전(現前)은 눈앞이고,
일념(一念)은 짧은 순간,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니,
눈앞의 한 순간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현재 상황에 네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라는 말이다.
행복해지려면 내일이나 10분 후가 아닌 바로 지금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삶의 모든 문제를 용해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은 바로 이 순간이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지금 얼굴을 맞대고 있는 그 사람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현재 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라는 말이다.
『우주가 생기기 이전의 자기를 항상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불교는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런 근본 자기마음,
본래 우주가 생기기 이전,
내 몸 받기 전에 있는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밝히자는 것이다.
그 본래면목을 알면 항상 그 자리이다. 시간이 수억만 겁 흘러도 다름이 없다.
지나간 과거나 미래에 다가오는 것보다
바로 ‘현전일념(現前一念)’, 눈앞의 한 생각,
그 한 생각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무엇을 하든 바로 눈앞의 한 생각,
현전일념을 내놓고는 없다.
과거는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안 왔고,
그 현전일념을 우리가 살피며 살아가는
그것이 자기 인생을 충실히 살아가는 태도이다.
현전일념(現前一念)은
흐르지 않은 본래 자리를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현전일념에 묶여 있다.
무슨 과거나 미래가 따로 따로 조각난 것이 아니다.
현전일념이 바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기의 본래면목이다.
현전일념, 그 자리만 한번 집중해 본다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바로 눈앞에 있는 그 자리에
과거, 현재, 미래가 일어나는 핵심이 있다.
슬픈 생각이 일어난다 하지만 슬픈 생각이란 것이 도대체 없는 것이다.
참선하면 온갖 번뇌 망상의 불꽃이 일어나다가도 꺼져버린다.
원수를 미워하다가도 가만히 앉아서 미워하는 생각이 어디서 일어나느냐 돌이켜 보면,
헛것에 속아서 울고 칼부림이 나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다.
흔들림 없는 근본자기,
본래자기가 본시 갖추어져 있는데,
자꾸 그 자리를 놓치고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정진하고 참선하고 염불하고 기도하는 것이
제 본래자리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 서암 스님
결국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즉, 현전일념(現前一念)에서 현전(現前)은 눈앞이고,
일념(一念)은 짧은 순간이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온갖 잡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잡념,
혹은 번뇌라고 말한다.
그 잡념,
즉 번뇌란 것이 대부분이 지나간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때 그 일만 생각하면 부끄럽고 후회된다든지,
아! 그때 이렇게 했었더라면, 하는 그 따위,
이미 지나간 일을 떠올려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로 허덕이는 것이다.
아니면 아직 오지도 않은 일로 지레 고민을 한다든지,
쓸데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나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을 잘 관찰하라”는
경전의 말씀을 당나라 현장(玄奘, 602?~664) 법사는 “이현법중(以現法中)”이라 옮겼다.
우리는 매순간 지금 여기를 살고 있지만 끊임없이 과거로 미래로 관심을 가져가고 있다.
불교 특히 불교수행의 시작이자 마지막은 바로 지금 여기라는 말이다.
이 순간이야말로 삶의 모든 문제를 용해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고통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
지나간 과거나 미래에 다가오는 것보다
바로 ‘현전일념(現前一念)’, 눈앞의 한 생각,
그 한 생각을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과거는 흘러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 여기 있다. 따라서 행복도 여기 있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지나간 과거의 행복은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고,
아직 오지 않은 행복이야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 행복해야 하고, 지금 행복하도록 처신해야 한다.
행복도 즉시현금(卽時現今;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그래서 <온천림천경(溫泉林天經)>의 말씀도 있는 것이다.
신막념과거(愼莫念過去) -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역물원미래(亦勿願未來) - 또한 미래를 원하지 말라.
과거사이멸(過去事已滅) - 과거의 일은 이미 멸했고,
미래복미지(未來復未至) -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 <중아함경(中阿含經)> 제43권.
현실로 보면 즐거움보다 잘못 연결된 인연이 더 많다.
보기 싫은 상사,
비리 투성의 이 사회,
희망 없는 정치,
집에 오면 잔소리만 해대는 마누라,
도대체 무간지옥(無間地獄)이다.
그러나 살아서도 극락인 사람이 죽어서도 극락이다.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고마운 생각을 앞세워야 한다.
그 짧은 기간에 이렇게 잘 살게 되지 않았는가. 한 생각의 차이이다.
내 생각부터 바꾸어야 거기에 행복이 있다. 내 소임에 적극적이고,
집에선 마누라 다독여줄 때, 행복은 거기에 있다.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이다.
그리하여 얻어지는 환희가 극락이지 번뇌 망상에 사는 것은 중생심이다.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인데도 망상 때문에, 업장 때문에,
먹구름처럼 태양을 가린 내 마음 때문에…,
불행은 거기에 있다. 복(福)과 재앙(災殃)은 모두 자신의 업력이 끌어들인 결과이다.
중국 당나라시대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선사 어록 <임제록(臨濟錄)>의 가르침에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今 更無時節)”이라는 말이 있다.
한번 지나가 버린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기대를 두지 말며,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자신의 주인답게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이다.
지금이 바로 실행할 때이고, 지금 하지 않으면 그 기회는 다시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한번 지나가 버린 과거를 가지고 되씹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기대를 두지 말고,
바로 지금 그 자리에 최대한으로 살라”고 하셨나 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인데, 그 한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의 빛깔이요 무게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이 돼가고 있는가.
“바로 지금 현재만 있을 뿐, 또 다른 시절이란 없다.”
이처럼 자신답게 산다면 지금 이 순간 성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천신(天神)이 세존께 여쭈었다.
“저들 부처님 제자들은 숲속에 거주하면서도 평화롭게
청정범행(淸淨梵行)을 닦고 있으며,
하루 한 끼만 먹는데도 왜 안색이 맑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게송을 읊어 답했다.
“지나간 것에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에 얻은 것으로만 삶을 영위하나니, 그들의 안색은 그래서 맑도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동경하는 자, 이미 지나간 것을 두고 슬퍼하는 자,
어리석은 그들은 꺾인 갈대처럼 시들어가듯 한다.” ― <상윳따 니까야>
내일은 늘 있다. 내일내일 하다가 '생전에 못다 한 효도'에 대한 후회만큼
바보스런 자식이 되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어느새 불효막심한 자식이 돼,
또 후회만 하고 산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자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하는 그런 생각,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어리석은 중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진실 된 마음이 아니면 백발이 되도록 앉아 있어도 무소득,
우리가 일생 동안 참선을 해도 안 되는 원인은 간절한 일념(一念)에서 구하지 않는데 허물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앉아있으면 온갖 쓸데없는 궁상, 망상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결국, 허송세월만 하게 되는 것이다.
‘금생에 결정코 이 일을 해결해야 겠다’는 각오로 간절한 일념으로 화두를 참구하면, 시간이 흘러도 흐르는 줄을 모르고, 옆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며,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것까지 잊어버리게
된다. 오직 화두 한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