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 김광림
나이 예순이면
살 만큼은 살았다 아니다
살아야 할 만큼은 살았다
이보다 덜 살면 요절이고
더 살면 덤이 된다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
宗三은 덤을 좀만 누리다 떠나갔지만
피카소가 가로챈 많은 덤 때문에
仲燮은 진작 가버렸다
가래 끓는 소리로
버티던 芝薰도
쉰의 고개턱에 걸려 그만 주저앉았다
덤을 逆算한 천재들의 밥상에는
빵 부스러기 생선 찌꺼기 초친 것 등
지친 것이 많다
그들은 일찌감치 숟갈을 놓았다
素月의 죽사발이나
李箱의 심줄구이 앞에는
늘 아류들이 득실거린다
누군가 들이켜다 만
하다못해 맹물이라도 마시며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
* 宗三: 시인 김종삼, 仲燮: 화가 이중섭
- 시집 <말의 사막에서>(문학아카데미.1989)
- 한국대표시인 100인 시선집 44, <들창코에 꽃향기가>(미래사, 1991)
김종삼(1921~1984), 63세
이중섭(1916~1956), 40세
조지훈(1920~1968), 48세
김소월(1902~1934), 32세
이 상(1910~1937), 27세
* 감상 : 김광림 시인.
1929년 9월 함경남도 원산부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忠男’입니다. 원산 공립중학교를 거쳐 평양종합대 역사문학부에 입학했으며 1948년 12월 한탄강을 거쳐 단신 월남했습니다. 그 해 ‘청포도’ 동인과 어울리다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을 만나 그의 권유로 당시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던 구상 시인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1948년 [연합신문]에 시 ‘문풍지’ ‘벽’ ‘석등’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경기도 여주군 북내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중 6.25가 발발하여 육군 소위로 9사단 29연대에 배속되어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광림은 필명(筆名)으로 김광균의 '光'과 김기림의 '林'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1957년 전봉건 김종삼 김광림 등이 합동으로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자유세게사, 1957)라는 시집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상재하였습니다. 1961년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2년에 한 권 꼴로 시집을 내면서 왕성한 시작활동을 펼쳤으며 1983년 장안대 교수, 한양대 시간 강사 등으로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1994년 장안대 교수로 정년퇴임하였습니다. 1992년 한국 시인협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시집으로 <상심하는 접목>(백자사, 1959), <심상의 밝은 그림자>(중앙문화사, 1962), <오전의 투망>(모음사, 1965), <학의 추락>(문원사, 1971), <갈등>(문원각, 1973), <한겨울 산책>(천문출판사, 1976), <언어로 만든 새>(문학예술사, 1979), <바로 설 때 팽이는 운다>(서문당, 1982), <천상의 꽃>(영언문화사, 1985), <말의 사막에서>(문학아카데미, 1989), <곧이곧대로>(문학세계사, 1993), <대낮의 등불>(고려원, 1996), <앓는 사내>(한누리미디어, 1998), <놓친 굴렁쇠>(풀잎문학, 2001), <이 한마디>(푸른사상, 2004), <시로 쓴 시인론>(푸른사상, 2005), <허탈하고 플 때>(풀잎문학, 2007), <버리면 보이느니>(시문학사, 2009), <불효막심으로 건져낸 포에지>(바움커뮤니케이션, 2014) 등이 있고, 합동시집으로 <본적지-문덕수 김종삼 김광림>(성문각, 1968)과 시선집 <소용돌이>(고려원, 1985), <멍청한 사내>(문학사상사, 1988), <들창코에 꽃향기가>(미래사, 1991) 등이 있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시인이 딱 육십이 되는 해에 쓴 시입니다. 시인이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예순보다 덜 살면 '요절'이고, 이보다 더 살면 '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에게는 예순이란 나이가 '요절'과 '덤'의 분기점이 되는 셈입니다. 삶의 감회와 아쉬움, 또는 서글픔과 같은 감정을 다른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이 느끼는 나이가 바로 예순이라고 시인은 본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업(詩業)을 하다가 먼저 간 절친 시인들을 하나하나 소환해 내면서 특유의 그의 익살스런 풍자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예순을 조금 넘어 살았고, 누구는 예순이 되지 못해 죽었음을 떠올리며, 그는 '나이'와 '삶'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요절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까지도 생각하는데 그가 언급한 시인 중에서 예순을 넘겨 산 시인이 의외로 한 명 밖에 없는 것도 그가 예순을 넘기면 ‘덤’이라고 생각한 근거일 듯합니다.
그는 '덤을 역산한 천재들의 밥상에는/빵 부스러기 생선 찌꺼기 초친 것 등/지친 것이 많다'는 표현으로 예술성이 뛰어날수록 더 ‘일찌감치 숟갈을 놓을’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를 놓치지 않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소월의 죽사발이나/이상의 심줄구이 앞에는/늘 아류들이 득실거린다'는 풍자적인 표현을 통해서 그들의 예술적 역량이나, 새로운 시도들이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이 나라의 예술 풍토, 거기다 작금의 시인들은 그 요절한 시인들의 시 정신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아류 시만을 쏟아내고 있는 시단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비판은 자신은 쏙 빼놓고 다른 사람들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이제부터’ 사는 것은 '덤'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지금까지 자신도 그러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들이켜다 만/ 하다못해 맹물이라도 마시며/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는 마지막 구절은 덤으로 사는 것이므로 이제 소박하게 살겠다는 소시민적인 고백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중섭, 지훈, 소월, 이상과 같이 요절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치열한 시 정신을 이어받아 더욱 시업에 매진하겠다는 다짐과 결기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순’을 맞는 김광림 시인이 바로 이 시를 쓴 목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시의 마지막 문장에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를 또 다시 배치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100세 시대가 되었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썩하고 요란스럽습니다. 실제로 광복 이후 우리 나라의 평균 수명은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남자의 기대수명은(출생아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년수) 80,3세이고, 여자는 86.3세였습니다. 그리고 기대여명(특정 연령자가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년수)은 예순을 기준으로 볼 때 남자는 82.3세, 여자는 86.9세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말한 ‘예순’을 맞은 사람들이 ‘덤’으로 평균 20년 이상은 더 살 수 있다는 통계 수치입니다. 그러나 그저 덤으로 주어진 삶이라고 흉내만 내는 ‘아류’로만 그 긴 세월을 살아간다면 더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시를 쓴 후, 그러니까 60 이후에 무려 10권의 시집을 더 상재하면서 치열하게 시업 외길을 달려 온 것을 보면 이 때 그의 다짐이 결코 허풍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어느 시인이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와인처럼 익어가는 것’이라고 노래했다고 하지요. 육체적인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신과 마음은 더욱 맑아지고 삶을 관조하는 통찰력은 더욱 깊어지는 것이 바로 ‘농익어가는 와인 같은 삶’이 아닐까. 올해로 시인의 나이 93세, 아마도 이 시를 읊었을 당시 이렇게도 긴 30년이란 ‘덤’이 그에게 주어질지는 미처 몰랐을 것입니다. ‘예순’이라는 의미 있는 나이를 맞아 더욱 열심히 열정을 쏟아 살아가야겠노라 일찌감치 선언했던 그에게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제 제 나이도 어느 덧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고 보니 ‘누군가 들이켜다 만/ 하다못해 맹물이라도 마시며/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고 부정을 통한 강한 긍정의 다짐을 했던 시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혜안과 따뜻한 마음으로 더욱 치열하게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다짐을 새삼 하게 됩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