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마지막 싸움 3
샤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온몸에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들 안타까
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때 카이젤이 능글맞은 웃음으로 말했다.
"왜 그러시죠?"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왜 저러는지 이유를 묻고 싶은 어린아이의 표정을 한 카이
젤은 정말 사악하게 보였다. 샤이의 입이 떨리며 열렸다.
"카...... 이제...... 엘!"
그녀의 힘이 사방으로 퍼졌다. 이제는 샤이와 라이샤의 대결이 아닌 샤이와 카이젤의 대결로 변하는 순간이
었다. 하지만 카이젤은 샤이가 화를 내건 말건 자신은 웃을 뿐이었다. 마치 화를 내는 샤이가 이상하다는 듯
이.
라이샤가 슬픈 얼굴을 하고 샤이를 바라보았다. 샤이는 그의 얼굴도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미안하다. 너를 나의 원수로 착각해서......"
샤이의 작은 몸이 떨리고 있었다. 샤이의 말은 이어졌다.
"왜...... 말하지 않았니?"
"......너의 표정은...... 너무 슬퍼보이기에...... 이용당한 것을 알면 더 슬퍼질까봐......"
샤이는 자신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미안해. 그때 말해야 하는건데...... 너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구나."
라이샤의 얼굴에서는 슬픈 표정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샤이는 고개를 숙인채 라이샤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원수로 새, 생각한 것...... 미, 미, 미안하다!"
굉장히 어설픈 사과. 하지만 라이샤는 그 사과가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애써 슬픈 표정을 지우며 웃음지어주
었다.
"아니, 괜찮아."
샤이는 끝내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카이젤을 향하여 한발한발 내딪었다. 샤이가 다가옴
에도 카이젤은 절대 그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표정...... 그것은 보는 사람으
로 하여금 치를 떨게 할 정도의 사악함이 담긴 표정이었다.
샤이의 힘이 또 다시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카이젤의 옆에 있던 이들은 멀리 물러서준 후였다.
그들도 이제는 카이젤과 샤이의 싸움을 원하고 있었다. 카이젤은 웃고만 있다가 샤이의 대검이 날아오자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말했다.
"어라? 왜 이러시는 거죠?"
"이유는 네가 더 잘 알거다. 죽어!"
샤이의 대검이 빠르게 카이젤의 몸을 지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카이젤은 검을 맞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농
락하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모르겠는데요?"
저 표정, 저 웃음! 샤이의 분노는 점차 커져나갔다. 참을 수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왜 이때까지 몰
라왔는가! 왜 저런 녀석에게 이용당해왔는가! 샤이의 뒤늦은 후회는 이미 소용없었다. 샤이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크아아아아!"
괴수의 괴성소리. 그리고 아까 라이샤에게 휘둘던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될정도의 정말 빠른 속도로 카이젤을
노리고 들어갔다. 하지만 카이젤은 요리조리 샤이의 검을 다 피해내고 있었다. 샤이가 온 힘을 다해 공격을 하
건만 카이젤의 옷깃조차 스칠 수 없었다. 그것이 샤이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이때까지의 수련은 무엇인가! 민트를 죽인 자를 죽여 복수하기 위해 수련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런
데 왜! 왜 복수하지 못한다는 건가! 수련이 부족한가?'
"크아아아!"
바람을 가르는 소리. 아니 이제는 바람을 가리고 공간계하나를 가르고 있었다. 샤이의 검이 지나간 곳이 잠시
지직거리더니 갈라졌다. 그리고 그 뒤로 이상한 풍경이 보였다.
"!"
"저, 저건......"
크르르르르.......
마족이었다. 갈라진 공간계 틈으로 마족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아니 마족이 아닌 마족몬스터화 되어버
린 마족이었다. 그들의 온몸은 붉게 물들어져 있었고 그 앞에는 하얀 날개를 뜯긴채 죽어있는 여러 천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라이샤의 입에서는 괴성이 튀어나왔다.
"안돼!"
커크리스 산 정상 전체가 흔들렸다. 흔들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점차 모든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모
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카이젤조차 그것에 놀란 것 같았다.
"이렇게 넓은 공간을 일그러뜨릴 줄은 몰랐는걸요?"
후웅.
여전히 피해버리는 카이젤. 샤이는 이제 힘을 다해 쓰러지려고 하건만 카이젤녀석은 숨도 차지 않았다. 오히
려 더 힘이 나는 듯이 샤이를 갖고 놀고 있었다. 라이샤의 괴성이 이어졌다.
"카이젤, 이노옴!"
쨔자자자자자컁
공간계가 깨졌다. 그리고 커크리스 산에 있던 모든 이들이 천상계로 가버렸다. 모두들 갑자기 어지러워지자
한참을 정신차리지 못하다 정신을 차렸을때는 그들의 옆에 마족몬스터화 되어버린 마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같은 마족이 아니면 다 죽여버리는 것 같았다. 카이젤에게도 달려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카이젤이 한숨
을 쉬며 말했다.
"이거, 귀찮아 졌는데요. 저는 라이샤님과 대결하며 시간을 끌어서 가이샤를 죽이려했는데 아직 가이샤님은
죽지도 않았고 커크리스 산에서 이곳으로 옮겨질 줄이야. 내 참...... 이렇게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군요."
카이젤에게 엄청난 불덩어리와 전기들이 솟구쳤다. 하지만 카이젤은 아무런 방비도 않은채 그것들을 맞았다.
그래도 카이젤의 옷 하나 그을린 곳이 없었다. 카이젤이 눈이 고양이처럼 세우며 말했다.
"저를 공격한 대가는 톡톡히 치를 겁니다."
그리고 카이젤을 공격했던 두 마족의 몸이 갈라졌다. 그리고 쓰러졌다. 각자 자신을 향하여 달려드는 마족들
을 향해 검과 마법을 날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군이고 적군이고 없었다.
한참 자신을 공격하던 마족들을 처리하던 카이젤이 갑자기 자리에 서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커질줄은 몰랐는걸요? 크리니스카이쳐님.
이제 직접 처리해주십시오."
자이커의 눈이 커졌다. 카이젤의 옆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어떤 것이 나타났을때 자이커의 입에서는 자신의
친구 이름이 튀어나왔다.
"드린!"
크리니스카이쳐는 자이커를 한번 쓱 보았을뿐 미동도 없었다. 카이젤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고 크리니
스카이쳐는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갑자기 크리니스카이쳐가 입을 열었다.
드래곤들의 제왕인 크리니스카이쳐의 드래곤피어.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소리가 있는 듯 하면서
도 없는 것 같았고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전해지는,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의 드래곤피어. 드래곤피어가 곳곳에
울려퍼지고 마족몬스터화 되어있던 모든 마족들은 피를 쏟으며 쓰러져버렸다. 크리니스카이쳐는 드래곤피어를
끝내고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을 뿐이다.
놀라운 힘이었다. 마이샤와 라이샤가 합동공격을 행해야 겨우 2,3마리 잡을 수 있을 정도였는데 드래곤피어
한번에 모두를 쓰러뜨러 버렸다. 너무나 강한 힘이었다. 카이젤이 굽신거리는 것도 이해가 갔다.
자이커가 비틀거리며 크리니스카이쳐에게 다가가 말했다.
"드린......"
하지만 크리니스카이쳐는 자신의 보라색눈으로 인간한명을 보았을뿐 외면해버렸다. 마치 모르는 사람을 만났
을때처럼. 하지만 자이커는 포기라는 것을 몰랐다.
"드린......"
『날 드린이라 부르지 마라, 인간꼬마여.』
굉장히 이질적인 목소리. 분명히 이 세계의 말이 아니었지만 모두에게 똑똑히 들려왔다. 자이커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크리니스카이쳐의 볼에 대고는 말했다. 마치 기다려왔던 장난감을 만지듯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드린......"
『인간꼬마여, 이 손을 치우지 않는다면 너의 목숨을 내가 가져가겠다.』
"드린...... 그러지 마렴. 너는 살인을 싫어했어. 특히나 친구였던 나를 네가 죽일 수는 없어. 그렇지 않니?"
『......난 인간처럼 미개한 생물을 친구로 두지 않는다. 게다가 나의 태어난 목적은 오직 살인이다. 착각하지
마라 인간꼬마여.』
"드린......"
자이커가 슬픈 눈으로 크리니스카이쳐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이미 자이커가 알고 있던 드린이 아니었다. 모든
드래곤들의 제왕인 크리니스카이쳐였다.
카이젤이 비죽 웃으며 말했다.
"이제 조용해졌으니 아까 싸움을 계속해 볼까요?"
갑자기 라이샤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계속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갑자기 외쳤다.
"샤, 샤이! 샤이는 어디 있어!"
모두들 당황해하며 샤이를 찾았다. 하지만 샤이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허둥대는 모습
이 즐거웠는지 카이젤이 웃음짓다가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그들의 앞에 내던졌다. 대체 언제 맞았는지 모를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샤이였다. 라이샤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샤, 샤이......"
샤이의 두 몸을 안아들었다.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라이샤는 느낄 수 있었다. 슬퍼하는 라이샤를 보고 샤
이가 억지로 말했다.
"바보...... 그런 표정하지 마......"
샤이의 입에서는 피가 쉴새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라이샤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이었다. 오직 샤이만이 볼 수 있도록. 라이샤의 얼굴을 바라보던 샤이가 또 다시 힙겹게 말했다.
"바보...... 난 편안해...... 이제 민트님이 곁으로...... 쿨럭! 갈 수 있으니...... 쿨럭쿨럭! 걱정마...... 바보야."
샤이는 웃고 있었다. 라이샤도 안움직이려는 얼굴근육을 최대한 움직였다.
라이샤의 표정을 본 샤이가 비웃었다.
"바보...... 쿨럭! 그런 표정...... 쿨럭! 짓지 말랬지...... 쿨럭! 바보......"
환상이었을까? 순간 샤이의 얼굴과 민트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라이샤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샤이......"
그제서야 라이샤는 알았다. 왜 자신이 샤이에게 아무런 공격도 할 수 없었고 그녀가 아파하면 자신의 마음도
아팠는지. 샤이는 민트와 매우 닮아있었다. 왜 이때까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지 정말 닮아있었다. 라이
샤가 웃어주며 말했다.
"민트...... 의 곁에서 행복하길 바래."
"물론이지...... 쿨럭! 바보야......"
숨이 멈췄다. 모두들 긴장된 태도로 라이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라이샤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울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샤이의 죽은 몸을 안고 그저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라이샤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
다.
"에이, 지겨워. 해야, 지겹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날라왔다. 그리고 그것은 라이샤를 향하여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라이샤의 옆
에는 어느새 나미가 있었던 것이다. 해야의 그 큰 손을 나미의 자그마한 손으로 막은 것이 정말 신기하게 보
였다. 해야는 왜 자신의 손이 막혔는지 한참을 나미 얼굴을 바라보다가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니가 해야의 손을 막은거야?"
"......그래."
"해야, 화났다."
해야는 나미가 잡고 있는 다른쪽 손을 들어 나미를 공격했다. 나미는 다가오는 해야의 손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른 손으로 막았다. 바람을 가르던 해야의 손은 막혀버렸다. 해야는 더욱 의문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왜 너 같이 작은애가 해야의 손을 막는거지?"
나미의 이마엔 힘줄이 솟아 있었다. 그녀는 힘겹게 말했다.
"그거야...... 너랑 나랑 힘이 같으...... 니깐."
해야가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띄엄띄엄 말했다.
"나는...... 그것이...... 이해가...... 안간다. 너는...... 나보다 작다...... 그럼 너는...... 나보다 약해야 한다. 그렇지 않
아?"
"......시끄러."
나미의 몸이 사라졌다. 그녀는 어느새 해야의 뒤로 가서 그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이미 흰색
검이 들려있었다.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대로 나미의 공격이 통하는가 싶었더니 해야가 그 거대한 몸을 비틀면서 흰색검
을 잡아버렸다. 나미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저 거대한 몸으로 피한건지 정말 신기했다.
"헤헤...... 해야도...... 날쌔다. 너를...... 잡을 수...... 있다."
".......해 봐."
나미의 몸이 사라졌다. 여기저기서 발이 땅에 닿는 탁탁거리는 소리만 들려올뿐 나미의 몸이 완벽히 사라졌
다. 지금 나미의 모습은 카이젤에게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스피드하나 만큼은 그 누구도 쫓아올 수 없
었다.
해야는 갑자기 나미가 사라지자 주위를 둘러보며 나미를 찾았다. 하지만 나미의 모습이 보일리가 만무했다.
해야가 소리쳤다.
"어디간거야. 해야가 무섭나?"
탁!
"병신같은 소리!"
나미의 몸이 나타나더니 해야의 등을 치고는 다시 사라졌다. 하지만 해야는 별 타격을 입지 않는 듯 하였다.
"어디간거니? 해야가 무섭니?"
"닥쳐!"
나미의 발이 해야의 배에 꽂혔다. 해야의 거대한 배는 지방뿐이었는지 쑤욱 들어갔다. 해야가 나미를 발견하
게 손을 뻗었을때에는 이미 나미는 사라지고 없었다. 해야가 손을 휘둘면서 말했다.
"어딨니?"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런 휘두는 것 같았던 해야의 손이 정확하게 나미의 몸을 치고 붙잡았던 것이다.
해야는 바보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헤헤, 이제 도망 못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