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쇼 미 더 머니!
차원 문을 통해 정령의 세계로 넘어가면 언제나 그렇듯 벌 정령이 날 맞이했다. 아무래도 차원 문이 열리는 것을 정령들이 감지하는 것 같다.
- 오셨나이까? 주군!
“어, 그래. 필요한 것이 있다.”
- 하명하시옵소서.
“구약나물 화분(花盆:꽃가루) 경단이 필요하구나.”
- 고기 맛이 나는 화분 말씀이시옵니까?
구약나물 또는 구약감자라 불리는 이 식물은 누구나 한 번쯤 먹어봤을 곤약의 주원료가 되는 식물이다.
곤약이 무엇인가? 과장을 조금 보태면 다이어트의 최고봉이다.
곤약은 물과 만나 팽윤하고 점도가 높아지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위에서 흡수되지 않고 췌장에서 분비하는 만나아제에 의해서만 분해, 소화되기 때문에 느리게 소화되어 만복감을 준다.
저칼로리에 저당 식품. 거기다 식이섬유가 많아 장내 유독물질과 콜레스테롤을 흡착하여 배설하기 때문에 변비에도 큰 도움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당질의 소화 흡수를 늦춰 혈당 상승을 억제하고 발암성 유해 물질의 배설을 촉진하기까지 한다.
변비와 암을 예방하는 신이 내린 다이어트 음식, 그게 바로 곤약이다.
이런 곤약의 주원료인 구약나물의 꽃은 시체꽃이라 불리는 타이탄 아룸과 흡사하게 생겼다. 검붉은 자줏빛의 이 커다란 꽃은 지독한 고기 썩은 내를 풍긴다.
물론, 이는 현실에서 얘기고 정령 세계에서는···. 정반대로 구운 고기 향이 난다.
삼겹살이 뜨거운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군침이 도는 향.
꿀, 화분, 로열젤리 그리고 프로폴리스만 먹어온 나에게 구운 고기향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입안 가득 침이 고였고 급격한 허기짐이 엄습했다. 구약나물꽃의 향기는 나에게 있어 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약나물꽃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 정령들이 날 뜯어말렸다.
- 주군! 저 꽃에는 독성이 있나이다.
- 드시면 깨어나지 못할 수 있사옵니다!
- 어찌하여 저런 독을 드시려 하시나이까!
그렇다.
구운 고기향을 풍기는 구약나물꽃에는 독성이 있다. 그럼, 그렇지. 군침을 흘리며 당장이라도 뜯어 먹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는 꽃이 정상은 아니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저걸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으면 육즙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풍미 가득한 육즙이 입안과 식도 그리고 위장까지···. 군침이 넘어간다.
“저것을 먹어야겠다.”
- 주구우우운!
벌 정령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난 구약나물꽃을 거칠게 뜯었다. 그러자, 벌 정령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 주군! 저희가 주군께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들겠나이다!
- 정신 차리시옵소서! 이대로 드시면 옥체를 보존할 수 없사옵니다!
- 저희가 향을 유지한 채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 수 있사옵니다.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고기 향을 유지한 채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입에 넣었던 꽃을 빼냈다.
“이 향을 그대로 유지한 채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정녕 가능하단 말이냐?”
- 가능하옵니다!
- 꽃의 향은 대부분 꽃가루에서 나옵니다.
- 화분만 채취한다면, 꽃잎에 있는 독성 없이 먹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당장! 시작하라.”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고기 맛 화분 경단이었다.
구운 고기향과 식감 덕분에 미트볼을 먹는 듯했지만, 육즙은 나오지 않았다. 최대 단점이었지만, 고기를 먹는 것과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감탄할 만했다.
물론, 진짜 고기를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옛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벌 정령들이 건네준 구약나물 화분 경단을 꿀단지에 담고 주문을 외웠다.
“열려라, 참깨.”
#
회식 자리는 여전히 왁자지껄했다. 물론, 주리는 토끼처럼 상추만 오물오물 씹고 있었지만···.
내가 꿀단지를 들고 돌아오자, 이동현 실장과 김현수 매니저를 비롯한 핑크허니 멤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그게 뭐예요?”
호기심에 가득한 그들의 눈빛을 미소로 받아넘기며 말했다.
“신이 내린 다이어트 식품.”
“다이어트 식품?”
동그랗던 눈이 더욱 커졌다. 특히 주리의 눈이 유독 반짝였다. 고양이가 추르를 원하는 눈빛이랄까? 수현이도 관심이 가는 듯 꿀단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뚜껑을 열자, 평소에 맡을 수 없었던 숙성된 듯한 진한 고기 향이 퍼졌다.
“오오?”
진한 고기 향에 다들 눈을 크게 뜨며, 꿀단지 앞으로 몰려들었다.
“미트볼?”
“미트볼이 어떻게 다이어트 식품이에요?”
다들 황망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빨리 설명하라는 그들의 눈빛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구약나물이라고, 곤약의 주원료인데, 그 식물의 꽃가루로 만든 경단입니다.”
“꼬, 꽃가루라고요? 고기향이 나는데···?”
“구약나물꽃에는 특유의 향이 있죠. 그게 고기향과 아주 유사합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썩은 고기 냄새지만, 어쨌든 고기향이긴 하니까···.
먼저, 주리에게 꿀단지를 내밀었다. 주리는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화분 경단을 바라보던 주리가 입맛을 다시더니 이동현 실장과 김현수 매니저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나, 먹으면 안 되는데···.”
말과 달리 눈빛은 간절했고 손은 본능에 따라 꿀단지를 향했다. 이동현 실장은 그런 주리를 막지 않고 물었다.
“수찬 씨. 이게 정말 꽃가루로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두 눈에 의심이 가득했다. 그럴 만도 하지···. 향만큼은 고기니까.
“꽃가루에서 구운 고기향이 나는 겁니다. 지방이 없고, 곤약과 성질이 같죠. 몸속의 수분을 흡수해 팽윤하여 만복감을 주죠.”
설명하는 사이, 주리가 경단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이 모두 눈을 빛내며 주리를 바라봤다.
- 오물오물.
경단을 씹던 주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신음했다.
“으으음!”
주리의 신음에 다들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주리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어때?”
“먹을 만해?”
“말 좀 해봐!”
주리는 눈을 지그시 감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맛을 음미하더니 경단을 삼켰다.
“와!”
다들 군침을 삼키며 주리의 평가를 기다렸다.
“진짜 고기 같아. 그런데 고기가 아니야.”
주리의 평가가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난 피식 웃었지만, 일행들은 버럭 화를 냈다.
“아, 그게 무슨 소리야!”
“진짠데···. 고기 같지만, 고기가 아니야. 그리고 맛있어.”
주리의 말에 다들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품에 있는 꿀단지로 말이다.
“오빠, 빨리 줘 봐.”
“수찬 오빠아앙!”
“지금, 제게 그 경단을 하나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수현이야 그렇다 치고, 나머지 멤버들의 성격이 하나같이 특색있다. 라니의 애교, 한없이 진지한 제이나의 어투 그리고 꿀단지를 쳐다보며 손가락을 빠는 주리.
다들 각자의 매력이 살아있다.
난 눈웃음을 지으며 꿀단지를 내밀었고, 누구랄 것 없이 화분 경단을 들어 입에 쏙 넣었다.
- 우물우물.
그리고 곧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와. 뭐야 진짜 고기 같잖아?”
“오우! 마이 갓!”
“이, 이건! 2% 부족한 고기군요. 하지만, 맛있습니다.”
이동현 실장과 김현수 매니저도 경단을 맛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이, 이게 정말 다이어트 식품이란 말이죠?”
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네. 효과도 확실합니다. 3개째 먹고 있는 주리 씨를 보면 확실하죠.”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돌려 주리를 쳐다봤다. 주리 흡족한 표정으로 배를 살살 문지르더니 탄식했다.
“아이고, 너무 배부르다.”
“···!”
여태 상추 쪼가리만 먹었던 주리가 겨우 메추리알 크기의 작은 경단 3개를 먹고 배가 부르다고?
의아한 눈으로 주리를 바라보던 일행이 하나둘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진짜 배가 부른 느낌인데?”
“힝! 아직 고기 많이 못 먹었는데!”
“느낌이 아니라 진짜 배가 부르다.”
구약나물 화분 경단의 효능을 몸소 느낀 그들이 놀라고 있을 때, 주리가 황급히 말했다.
“수찬 오빠. 이 경단 저한테 파세요.”
“음? 팔아요?”
“네, 이건 제게 꼭 필요한 식품인 것 같아요. 꼭 팔아주세요.”
주리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도 정신을 차린 듯 눈에 힘을 주며 내게 상체를 기울이며 소리쳤다.
“오빠아! 나도 주문할래요.”
“저도 주문하고 싶습니다.”
심지어 이동현 실장과 김현수 매니저마저 팔라며 사정했다.
역시 모두의 관심사, 다이어트.
그나저나, 이걸 팔 생각은 못 했었는데···. 정령 세계에서 고기를 그리워하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대체식품일 뿐이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경단을 맛본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꿀, 화분,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그리고 봉독이 주 수입원인데 구약나물 화분 경단이 상품군에 추가된다면 좋은 일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경단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령 세계를 오가는 오직 나만이 만들 수 있다. 시장을 독점할 수도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팔아봐?’
턱을 만지며 고민할 찰나, 수현이가 다가와 속삭였다.
“비싸게 팔아.”
“···.”
독한 것. 가족과 같은 멤버에게 비싸게 팔라니···?
역시, 내 동생이다.
당장이라도 팔고 싶지만, 확인할 사항들이 있었다. 구약나물 화분이 얼마나 확보되었는지 알 수 없고, 경단을 만드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난 미간을 좁히며 턱을 쓸었다.
고뇌하는 내 모습이 불안했는지, 일행 모두가 다그쳤다.
“제발, 파세요···. 혹시 양이 적어서 그러시는 거면 저한테만 파세요.”
“주리. 너 정말 이러기야? 오빠아! 우리한테 팔아요.”
“저도 꼭 필요합니다.”
“만들어둔 경단이 이것뿐이라···. 아직 팔 수 없습니다.”
내 말에 다들 실망한 눈초리였는데 주리가 눈을 부릅뜨더니, 꿀단지를 낚아채듯 뺏어갔다.
“그럼. 이거라도 파세요.”
“야! 이건 반칙이지!”
다들 혈안이 되어 화분 경단을 원하고 있었다. 희소성이 높아지니, 경쟁도 치열해진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쇼 미 더 머니!
심각한 분위기 속에 꿀단지를 두고 씨름하는 멤버들을 수현이는 팔짱 낀 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내 동생이라지만, 조금 얄밉다.
이 상태로 놔두면 멤버들간 우정에 스크래치가 갈 것 같다. 흥분한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어떻게요?”
“이번 경단은 무료로 드리겠습니다. 샘플 배포라고 해두죠.”
“정말요?”
멤버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네. 투자라고 생각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아해 주시니, 저도 경단을 본격적으로 만들어 봐야겠네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제이나가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꼭 부탁합니다. 우리가 전량 구매하겠습니다. 그렇죠. 실장님?”
제이나의 눈은 가뜩이나 사나웠는데 말투까지 저러니, 이동현 실장이 흠칫 놀라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동현 실장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입술을 달싹였다.
“얼마에 파실 겁니까?”
이동현 실장이 가격을 물어보자, 멤버들이 동시에 실눈을 뜨며 째려봤다. 멤버들의 표독스러운 눈빛에 이동현 실장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아니, 가격을 알아야 품의서를 쓰지···! 누가 안 산데?”
이동현 실장의 말을 듣고서야 멤버들의 표독스러운 고양이 눈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다이어트 식품에 핑크허니는 진심이었다.
“글쎄요. 아직 원가 계산도 해보지 않아서요. 고민 좀 해보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구두 합의를 마무리하는데, 주리가 다시 한번 이동현 실장을 졸랐다.
“실장님. 무.조.건! 사주세요. 네? 실장님도 효과 보셨잖아요.”
주리의 애절한 말에 이동현 실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그래. 알았다.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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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이 끝나고, 이동현 실장은 내게 명함을 건넨 후 택시를 타고 먼저 들어갔다.
김현수 매니저는 핑크허니 멤버들은 데리고 합숙소로 향했고 수현이를 배웅한다는 핑계로 나도 함께했다.
합숙소에 들어가기 전 수현이가 내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오빠. 들어가. 오늘 고마웠어.”
“그래, 수현아. 나도 오늘 너의 멋진 모습을 봐서 좋았다.”
내 말에 수현이의 볼이 상기됐고 입이 귀에 걸렸다. 수현이가 막 뒤돌아 합숙소로 향하는데 주머니 속에 있는 으름덩굴 꿀이 떠올랐다.
“수현아. 잠깐만, 줄 게 있어.”
“응?”
소량이지만, 파이널 점검은 문제없으리라.
“이 꿀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활력을 돌게 해주는 효과가 있거든? 파이널 점검 전에 꼭 먹어.”
“진짜? 꿀이 그런 효과도 있어?”
“꽃에 따라 효능이 다 다르거든.”
수현이가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웃으며 합숙소로 들어갔고, 난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주문을 웅얼거렸다.
“열려라, 참깨.”
이제 사업 준비로 바빠질 것이다.
시작해볼까?
쇼 미 더 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