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
<시> 시내버스 외 2편 / 정혜
<동시> 점자블록 외 2편 / 옥인정
l 제8회 《미당문학》신인작품상 시부문 당선작 l
시내버스 외 2편
정혜숙
시간이 되어
초조감이 몰려오면서
자꾸 고개를 내민다
버스에 타면
안도감이 생기면서
의자에 앉아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굽이를 지날 때면
몸이 흔들리고
턱을 넘을 떄면
몸이 튀어 오른다
난 의자를 잡고
흔들림을 막으려고 애를 쓸 뿐
결국 버스의 움직임대로
흔들린다
그러나 멈출 수 없고
놓을 수 없다
버스에 같이 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밖을 보며
같이 흔들린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일 년이 가고
흔들림에도
동요되지 않으려
고요의 중심을 찾아 몸을 앉힌다
차거운 영혼
제 시간이 지나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러갔다
노란 고양이가 왔다 갔는지
밥그릇이 밀쳐져 있다
차와 차 사이를 비켜가며
황급히 왔을 가쁜 숨결
너무 작고 조용해서
표 나지 않는 발자국 소리
밥을 먹으러 찻길에 뛰어드는
고양이를 두고
‘고양이는 원래 그렇게 사는 거야’
무심히 말하는 사람들
‘원래’라는 게 처음부터 있었을까
나는 고양이의 당연함이 가여워
‘씩씩하게 살아라’ 혼자 말을 한다
한밤 중
어둠 속에 앉아
차가운 영혼을 가진
사람의 기억을 천천히 꺼낸다
산길
산속에 들어가면
나뭇잎 속살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서로 맞닿은 잎들끼리
하늘거리며
사는 게 힘든 사람들과
하루하루가 아쉬운 사람들
시간에 따라 그림자를 달리했다
평생 제 자리에 서서
제 주어진 몫을 다하는
나무와 들꽃들
끝없이 외지로 떠나고
끝없이 밝음만을 찾아
헤매던 때
제 자리에 머물던 어둠도
떄로는 희망이라는 것을
산을 다 벗어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l 제8회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동시부문 당선작 l
점자블록 외 2편
옥인정
길마다
아빠에게는 노란색 전용도로가 있다
톡톡, 톡톡,
거기에서 아빠는
하얀 지팡이로 땅을 노크한다
톡톡, 톡톡
손가락보다 예민해지는 아빠 발바닥
톡톡, 톡톡
쭉 가라는 줄무늬블록
길가에 시설물이나 돌기둥이
툭 나와 있으면
멈추라는 동그랑무늬 블록
지팡이를 쭉 길게 빼서
책을 짚으며 간다
톡톡, 톡톡
노란색 전용도로
두 번씩 점자를 노크하는 하얀 지팡이
톡톡, 톡톡
휠체어를 위하여
그렇게 작은 줄 몰랐어
네 앞바퀴
그 낮은 계단도 오를 수가 없었어
걸음마 아기도 건너는
문턱도 넘어갈 수 없었어
이제껏 너의 커다란 뒷바퀴만 보였어
현관마다
빙빙 도는 경사로를 돌고돌아 올라간다 한들
실내 통로
비좁아서 지나기도 힘든데
이젠 네가 갈 수 없는 곳이 더는 없기를
그렇게 세상이 높은 줄 몰랐어
네 앞바퀴
아빠의 일과
월요일엔 킥 보드 탄 듯 앞만 보고 달리고
화요일엔 자전거 보조바퀴처럼 덜렁거리고
수요일엔 공원의 회전목마처럼 빙빙 헛돌고
목요일엔 포클레인처럼 오르락 내리락
금요일엔 박물관 티라노사우루스처럼 거칠어지고
토요일엔 마을회관 구식 핸드폰처럼 방전되고
일요일엔 집에서 꺼진 자명종처럼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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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미당문학》신인 작품상 당선작
강명수
추천 0
조회 92
23.10.22 20:0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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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정헤숙 시인님
옥인정 시인님
신인 작품상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미당문학의 빛이 되시길 바랍니다
해피!
이구한 드림
옥인정 시인님 정말 축하드려요
앞으로 사랑받는 시인이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