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MJzUOMR8Fs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에서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공부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177번째 강의입니다. 오늘의 연구 제목은 '현대 진리' 또는 '이미 있는 진리'로, 영어로는 'The Present Truth'입니다. 이 말이 많은 분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일 것입니다. 성경에 딱 한 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어떤 번역에서는 이를 '현대 진리'라고 번역하여 그 뜻이 아주 애매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의 'Present Truth'를 언뜻 보면 'Present'가 '현재의'라는 뜻이니 '현대 진리'라고 한 것 같은데, 현재와 현대는 아주 다릅니다. 현대는 지금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보통 19세기나 20세기 이후부터 21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대적 개념입니다. 역사적으로 고대, 중세, 근대, 현대처럼 분류할 때의 현대는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성경 본문을 보면 아시다시피, 성경은 그렇게 넓은 시간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진리' 또는 '현대 진리'라고 번역된 이 말의 출처는 베드로후서 1장 12절입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쓰신 두 번째 편지 1장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노라." 즉, 성도들이 지금 자신들에게 중요한 그 진리에 굳게 서 있지만, 항상 그것을 생각나게 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미 있는 진리'는 신약을 기록한 헬라어로 '테 파루세 알레테이아(τῇ παρούσῃ ἀληθείᾳ)'라고 되어 있습니다. '테'는 정관사 역격이며, '파루세'는 '파레미(πάρειμι)'라는 동사의 분사로 '곁에 있다', '내게 있다', '현재 존재하다'라는 뜻입니다. 명사인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 진리)'가 여성 명사이기 때문에 주격으로 쓰면 '헤 파루사 알레테이아(ἡ παροῦσα ἀλήθεια)'가 되며, 이는 영어로 'The Present Truth'를 의미합니다. 즉, '현재 있는', '지금 있는', '현존하는' 진리라는 뜻입니다. 이를 '현대 진리'로 번역하면 지금 존재하면서도 오랜 시간적 범위를 뜻하게 되어 본래의 의미와 어긋나게 됩니다.
이 베드로후서 1장 12절의 '이미 있는 진리'를 한글 킹제임스 번역이나 킹제임스 흠정역은 똑같이 '현재의 진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현대'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 번역입니다. 영어 성경인 킹제임스 버전(KJV)과 뉴킹제임스 버전(NKJV) 역시 "established in the present truth" 즉, "현재의 진리 안에서 굳게 서 있으나"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영어 번역본인 뉴 인터내셔널 버전(NIV)은 이를 풀어서 "in the truth you now have" 즉, "당신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진리"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으며, 뉴 아메리칸 스탠다드 바이블(NASB)은 "in the truth which is present with you" 즉, "당신들과 함께 지금 있는 그 진리 안에서"라고 번역했습니다. 모두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알맹이는 같습니다. 바로 '현재 네가 갖고 있는', '지금 있는' 진리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에서도 '현재의 진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그 당시의 진리, 즉 그 시대를 위한 당대의 진리에 성도들이 굳게 서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분명합니다. 루터와 여러 현대 번역본도 모두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미 있는 진리'나 '현대 진리'보다는 '현재의 진리' 혹은 '현재 진리'로 번역하는 것이 의미상 훨씬 적절합니다. 라틴어의 '히크 에트 눙크(Hic et nunc, 여기 그리고 지금)'처럼,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진리입니다. 즉,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있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해당하며 꼭 필요한 기별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쓸 당시에 '지금 있는 진리'는 바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고 유대인들이 배척했지만, 이제 사도들을 통해 전파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시대의 '현재 진리'였습니다.
이 표현이 재림 교회 안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엘렌 화잇 여사가 1849년에서 1850년 사이에 발행한 편지 묶음의 제목을 'The Present Truth(현재의 진리)'라고 붙이면서부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이 '현대 진리'로 번역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들은 특정한 시대적 범위 전체를 아우르는 현대의 진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1849년과 1850년에 걸쳐 당시 사람들에게 꼭 필요했던 일곱 통의 편지를 묶어 팜플렛으로 낸 것이며, 그 내용을 보면 당시 성도들에게 주는 구체적인 권면과 기별들이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1849년 8월 1일자와 9월 1일자에는 형제자매들을 격려하는 편지를 보냈고, 12월 1일자에는 로즈(Rhodes) 형제가 선지자의 말을 임의로 기록하여 퍼뜨린 일에 대해 교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쓴 권고의 편지가 있습니다. 또한 1850년에는 남은 무리에게 보내는 권면과 커티스(Curtiss) 형제에 관한 편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의 특정한 무리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던 기별들을 모아 낸 책이 'The Present Truth'입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권면과 주의사항을 담은 '현재의 진리'였는데, 이를 후대 교인들이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여 19세기나 20세기의 진리라는 의미로 '현대 진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영원불변한 진리로서 시간에 제한되지 않는 '무시성(Timelessness)'을 가지는 동시에, 특정한 시대에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적용되는 '적시성(Timeliness)'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성경은 'Timeless'하면서도 'Timely'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영원에 계시지만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있는 인간들에게 꼭 필요한 기별과 권면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지만, 그것이 적용되는 방식은 시대와 장소, 대상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나의 현재'에 필요한 기별을 찾아야 합니다. 단순히 성경을 통독하는 데 그치고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의 필요를 채우지 못한다면 성경은 한낱 옛날 책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진리와 기별을 찾아서 실천하고 증언해야 합니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진리, 즉 당대의 '현재 진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랜디 로버츠(Randy Roberts) 목사님도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성경의 원칙들을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지 깨닫도록 성령께서 도우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영원한 진리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무시간적이지만, 구체적인 상황 속의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기별을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 적시적입니다.
엘렌 화잇은 『교회증언』 2권 693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 시험이 되는 현재 진리(The present truth)는 먼 옛날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시험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현재 진리는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당면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험이 됩니다. 또한 제임스 화잇도 "현재 진리는 현재 진리지, 미래의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등불이 우리가 서 있는 발밑은 밝게 비추지만 저 멀리 있는 길까지 다 비추지는 못하듯이, 우리에게 당면한 현재의 진리가 있는 법입니다.
성경 역사 속에서도 이처럼 특정한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현재 진리'의 예는 매우 많습니다.
첫째로, 노아 시대의 현재 진리는 '홍수가 올 것이니 방주를 지어 들어가라'는 기별이었습니다. 방주를 짓고 들어간 노아의 가족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기별은 구원의 원칙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문자 그대로 방주를 지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노아의 방주를 실물 크기로 재현하여 개장하고 관광지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교육적이고 관광적인 목적일 뿐 현대의 구원 방주가 아닙니다.
둘째로, 요나 시대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주어진 현재 진리는 '40일이 지나면 성이 무너지리라'는 멸망의 기별이었습니다. 비록 요나는 이방 민족이 멸망하기를 내심 바랐을지라도, 니느웨 사람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인간이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도 재앙의 뜻을 돌이키신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셋째로, 예수님 당시의 현재 진리는 구약의 수많은 율법 조문들을 넘어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참된 본질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613개의 하라와 하지 말라의 조문에만 얽매여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새로운 이해와 적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넷째로, 바울 시대의 현재 진리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차별 없이 하나라는 복음의 기별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 신자들은 비유대인 신자들에게도 할례를 행하고 자신들의 유전을 따르라고 강요했으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동등한 구원을 얻는다는 현재 진리를 확고히 전파했습니다.
다섯째로, 마르틴 루터 시대의 현재 진리는 면죄부나 고행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신칭의)'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시대의 현재 진리는 '세 천사의 기별'을 듣고 창조주를 기억하며 그의 안식일을 준수하고, 무너질 바벨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진리는 정체되어 있지 않으며,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끊임없이 확장되고 새롭게 적용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은 말씀의 심오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증언』 5권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현재의 빛에 만족하고 안일하게 지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증가하는 빛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현재 진리는 완전히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이미 성경에 있던 진리가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빛과 적용을 얻는 것입니다. 오직 기도하고 깊이 명상하며 연구하는 이들에게만 하나님께서는 이 새 빛을 열어 주십니다.
말씀의 참뜻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활발히 탐구하고 때로는 뜨거운 토론도 불사해야 합니다. 『교회증언』 5권에서는 교인들 사이에 아무런 논쟁과 토론이 없다는 것이 건전한 교리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참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치열하게 씨름하고 머리를 맞대었던 우리 초기 개척자들처럼, 진지하게 성경을 탐구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요약하자면, '현대 진리'라는 번역보다는 '현재 진리' 또는 '현재의 진리'가 가장 올바른 표현입니다. 현재 진리는 성경에 없던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이미 있는 진리를 바로 '여기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 맞게 올바르고 적시적으로 적용하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지만 시간 속의 인간들을 위해 적당한 때에 맞는 기별을 주시며, 성경 역시 무시간적 원칙과 함께 적시적인 적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하고,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졌던 말씀의 깊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열심히 찾아내야 합니다. 머리를 싸매고 밤을 지새우며 함께 기도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진지한 성경 학도들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 177번째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른 제목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현대 진리'와 '현재 진리'의 차이
현대 진리: '현대'라는 역사적이고 광범위한 시간대를 의미하여 성경 본문의 뜻을 모호하게 만듦.
현재 진리(The Present Truth): 베드로후서 1장 12절의 헬라어 '파루사 알레테이아'에 근거한 표현으로,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면하고 꼭 필요한 당대의 기별을 뜻함.
성경의 두 가지 성격
역사 속 현재 진리의 구체적 사례
노아 시대: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예비하라는 기별.
요나 시대: 니느웨 성의 임박한 멸망과 회개 촉구 기별.
예수님 시대: 자구적 율법 조문을 넘어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본질적 실천.
바울 시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철폐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기별.
루터 시대: 인간의 고행이나 면죄부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신칭의의 기별.
우리 시대: 창조주를 경배하고 안식일을 준수하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세 천사의 기별.
성도의 올바른 연구 자세
현재 진리는 완전히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 이미 말씀에 계시된 진리가 시대적 필요에 따라 새롭게 부각되고 해석되는 것임.
주어진 현재의 빛에 안주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밤낮으로 성경을 명상하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전진하는 탐구 정신을 가져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