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인의 주류적 가치관과 인생관은 입신양명 명철보신(立身揚名 明哲保身)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 용어로 표현하면 출세주의(出世主義)와 보신주의(保身主義)입니다. 보신주의(保身主義)를 다른 말로 하면 기회주의(機會主義)입니다. 이 말의 유래를 살펴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입신양명은 유교(儒敎) 최초의 경전 효경(孝經)에서 유래한다.
身體髮膚 受之父母
신체발부 수지부모
사람의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不敢毁傷 孝之始也
불감훼상 효지시야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요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몸을 일으켜 도(道)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떨쳐
以顯父母 孝之終也
이현부모 효지종야
부모를 높이는 것이 효도의 끝이니라.
세번째 귀절에 나오는 '입신(立身)‘과 ’양명(揚名)'을 합쳐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이 된 것이다. 원래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행한다는 뜻이었으나 후대에 그 의미가 변질되어 ‘출세해서 이름을 세상에 날린다’는 출세주의를 뜻하게 되었다.
명철보신(明哲保身) 역시 유교의 경전인 시경(詩經)에서 유래한다. 대아(大雅)편 증민(蒸民)이라는 시(詩)가 출전이다. 선악(善惡)을 분명히 알고,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하여 위험을 멀리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세상일을 내다보고 처신을 잘함으로써 난세(亂世)를 무사히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대개 부귀를 탐하지 않고 재주와 학식을 숨긴 채 평범한 인물로 표 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을 가리켰다. 후대에는 무사안일로 자신만의 안전을 도모하는 태도라든가 현명한 처세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 네이버 백과사전 ]
원래 조선시대에는 두 줄기의 가치관이 이어져 왔습니다. 하나는 충절(忠節)과 대의(大義)의 신조이며 다른 하나는 입신양명(立身揚名)과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신조입니다. 조선의 기본 이념은 성리학이었기에 명분상으로는 전자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했지만 현실에서는 후자도 암암리에 이어져 왔습니다. 조선 왕조가 몰락하면서 충절대의파에서는 독립투사가 나왔고, 입신양명파에서는 친일부역자가 나왔습니다.
조선의 분단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은 이 글의 주제가 아니므로 생략합니다. 정부수립 후 국가와 사회의 각 분야에서 고위직을 차지한 친일부역자들은 식견과 인품이 훌륭한 인물로 둔갑하였고 그들의 부역행위는 지워지거나 은폐되었습니다. 동시에 친일부역 행위를 용인하는 교육이 수행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친일 문학가들의 시와 소설을 읽고, 친일 음악가들의 노래를 듣고, 친일 미술가들의 미술품을 보면서 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작가이며 예술가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또한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한국사 교육이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의 역사가 초라하고 구제불능이었다는 인식이 깊어질수록 친일부역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까지 식민사관 청산이 지지부진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친일부역자들을 추종하는 무리가 조직적으로 양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일신의 부귀영화가 행복의 척도라는 관념을 퍼트리는 동시에 충절과 대의, 명예와 의무 같은 신조를 조롱하고 경멸하는 풍조를 퍼트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출세주의와 기회주의가 한국사회의 주류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입신양명과 명철보신을 좌우명으로 삼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단지 귓속말로 소근거렸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부귀영화가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아서 출세하지 못했거나 부자(富者)가 못된 것은 그 자체가 무능의 증거입니다. 정의를 말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대꾸가 돌아옵니다. “비~응신 육갑하네. 억울하면 출세해라.”
사람의 기질이 대물림되는 것은 생물학적 유전인자와 함께 부모한테 보고 듣는 것도 한 구실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삶은 그 자체가 자녀들의 표상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돌이켜보고, 자손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할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