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때가 곱게 익은 장독대 댓돌 위 가지런한 고무신 한 켤레 전혀 외롭지 않는 울도 담도 대문도 없는 우리집
초가 지붕 위에 둥근 박은 밤을 밝히고 별들 내려와 정담을 나누고 있는 불 켜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한
고개 너머 외딴집
2.) 보랏빛 유혹
새벽 운동 나서는 산책길 칡꽃 향기 부시시 내 손을 잡는다
오늘은 뉘 손발 묶으려고 닥치는 대로 초목목을 감고 죄는 힘센 줄기들
보랏빛으로 다가서서 자줏빛으로 유혹하고 슬그머니 목을 감는다 한번 휘감으면 끝장을 낸다
이제는 도로까지 내려와서 손을 흔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너의 끈질긴 생명력에 유혹 당한다
돌아오는 길에 칡꽃 한 줌따서 찻잔에 녹인다 보랏빛 유혹을 마신다
3.) 물빛 꿰매기
소슬한 찬바람이 산 그림자 밀고 내려와 호수 위에 치마끈을 풀고 있읍니다
물안개, 물안개는 흩어지고 서녘의 햇살 물결에 부서져 비단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무명치마 둘러 입고 화전밭 일구시던 우리 어머니 그 매운 삶 어찌 잊고 저 길을 걸어가셨을까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부모 은공 못다한 불효여식
호숫가에 앉아 회심가를 놓읍니다
4.) 바람의 색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냥 울긋불긋 걷고 있다
알수 없는 존재 잠시 스쳐갔을 뿐인데 악보 한장 걸어 놓고 갔네요
보이는 모습 없지만 보여주고 싶은 색깔 있어 기타를 치고 있는가
별들의 반짝임에도 꽃들의 몸짓에도 색깔이 있어 설레는데
숨기고 있는 너의 색깔은 무엇인가
5.) 비탈에 선 나무
산비탈에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횡혼이 내려앉은 들녘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나를 따라다닌다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있을까 두리번 두리번 해 보지만 얄미운 주름살만 거미줄을 친다
석양을 바라본다
남은 시간이 짧다는 걸 알기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지금까지 잘 견디어 온
비탈에 선 나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푸로필
'현대문학사조』 시부문 등단 한국여성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송파문인협회 회원 시성 한하운문학회 부이사장 한국비평가협회 이사 한국불교아동문학회 회원 한국창작문대상 수상 시가 흐르는 서울 월간문학상 수상 시집 <물빛 꿰매기> 《짚베옷에 흘린 눈물》 이메일 : sk4801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