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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보산림경제』 |
太醫로 中樞府知事를 지냈으며, 두창 치료의 1인자로 명성을 떨친 柳瑺의 아들이자 역시 내의를 지낸 柳重臨이 『산림경제』의 내용을 대폭 개정하고 보완하여 펴낸 것이 바로 增補山林經濟 이다. 『산림경제』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갖가지 이종 사본이 전해질 정도로 널리 쓰였지만, 정작 단한 번도 간인된 적이 없다. 오늘 소개할 자료는 버클리대학 동아시아도서관에 소장된 이른바 아사미문고로 알려진 조선판 고전적 가운데 하나이다.
비록 零本 1책에 불과하지만 烏絲欄에 淨寫本으로 보존상태가 뛰어나다. 현전본은 전11책 가운데 제7책으로 목록 및 권수제에는 본문 권차가 제11권으로 표기되어 있다. 해당 제11권에는 家庭 상편에 해당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擇居止, 先修身, 知國思, 孝父母, 兄弟和, 夫婦敬, …… 力農桑, 治財用, 防火災, 備盜賊, …… 戒酒色, 擇技藝, 時嫁娶 등의 소주제별로 분류되어 있다.
매 주제는 단문 위주의 몇몇 조문들을 권점으로 구분해 놓았다. 이 전본에 수록된 내용이 비록 전문의학적인 지식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의관이 집필한 것이고 은연중에 의약과 관련 있는 조문들이 적지 않으므로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그런데 며칠 전에 한국전통식에 쓰인 고추와 장류의 역사를 추적해 온 식품연구원의 권대영 박사를 만나보니 대뜸 이 책의 서명으로 쓰인 ‘산림경제’의 의미를 아냐고 물으신다. 산림처사의 의미에서 유래된 草野의 의미가 아니냐고 답변했더니, 영문으로 ‘forest book’이라고 오역한 경우가 있었다고 실소를 지으면서, 우리말 ‘살림’을 借音한 용어라는 새로운 주장이다. 이 해석에 따른다면, 이 책은 가정살림을 어떻게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실행방안이 제시되어 있는 살림백과전서라고 풀이할 수 있다. 학술적인 논의야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개연성도 있고 기존의 해석보다 의미가 훨씬 더 잘 통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본서는 가정편을 수록한 권이어서 더욱 이런 해설에 부합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첫 대목의 편명을 개괄하는 해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한 집안이 흥성하고 쇠퇴하는 것은 오로지 家長에게 달려 있으니 돌아볼수록 그 책임이 무겁지 않겠는가. 가사 일이 헤일 수 없이 많으나 모든 일은 반드시 순리에 따라 대응하고 살펴보아서 조금이라도 선대에 해 온 일에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라고 하였다.
이 말은 비록 가정사라 할지라도 한 사람, 한 가정의 일일 뿐만 아니라 누대로 이어져 내려온 연속선상에서 지속적인 책임성을 지니고 추진해야만할 작은 규모의 治家事임을 의미한 것이다. 특별히 첫 조문에 들어있는 擇居止는 주거지를 선택하여 정주하는 일로, 다시 말해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이 주제는 전서를 통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선결요소라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공간적 환경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사안이다. 典範이 되었던 洪萬選 원작의 『산림경제』에서는 제1권 첫머리에 ‘卜居’라는 항목을 두어 이 문제를 다루었다.
讀書人의 마음가짐과 건강관리법
소개 대상인 동아시아도서관 소장본『증보산림경제』에서 의약관련 조목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先修身의 七情 조문을 보면, “7가지 감정 가운데 갑자기 발동되어 제어하기 어려운 것은 분노이다. 마땅치 않은 곳에서 과도하게 화를 내어, 심하면 禍根이 되어 후회가 막급하게 되니 조심해야만 한다.”하였다. 그 아래 “喜怒憂思悲驚恐이 칠정이다.”라고 주석을 달았으니 이 말로 편찬자가 의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의서가 아닌 곳에서는 흔히 ‘喜怒憂思愛惡欲’으로 정의한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뒤 언어조에서도 “속담에 이르기를 병은 입을 통해 들어오고 화는 혀를 통해 나온다.”고 했으며, 또 “입은 화가 들어오는 대문이요, 혀는 자신을 베는 칼날이다.”라고 했으니 칠정 조문에 이어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화를 불러들이고 이윽고 자신의 몸에 해를 입게 됨을 寓言으로 경계한 말이니 참된 養生訓이라 하겠다.
음식조에는 식사습관과 관련하여 재미난 구절이 있어 되새겨 볼만하다. 곧 “음식을 앞에 두고 무릎 꿇지 말고 가부좌로 않지 말 것이며, 배부른 듯 몸을 너무 내밀지 말고 굶주린 듯 너무 구부리지 말 것이며, 식탐하듯 밥그릇을 퍼 나르지 말고 밥을 꾹꾹 뭉치지 말고 …….” 이 모든 것들이 기실 식사예절 때문만은 아니고 역시 밥과 국을 위주로 식사하는 한민족의 식사법에서 咀嚼과 소화에 도움이 되도록 규정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 이것으로부터 米食을 주로 하는 동아시아 여러 국가 가운데서도 유독 우리만이 밥그릇을 손에 들고 먹지 않는 관습이 비롯된 건 아닐까?
아울러 독서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간략하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천지 만물 가운데 벌레가 되지 않고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며, 이왕 사람이 되어서도 倫常의 도리와 古今의 일을 알지 못한다면 어리석게도 마냥 달리기만 하는 고기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니 힘써 부지런히 독서할 것이다.”
나아가 勤讀書조에 보면 독서하는 방법과 건강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잘 정리해 둔 구절이 있어 살펴볼 만하다. 여기에는 어린애로부터 학동기에 이르기까지 자질과 노력 여하에 따라 순차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이 드러나 있고 주의할 사항이 요모조모로 열거되어 있다. 그중 讀書雜戒에는 이런 말이 들어 있다.
“글 읽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병 막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니, 반드시 낮은 소리로 오래 읽어야 하고 고함을 질러서는 안 되니, 만일 높은 소리로 글을 읽으면 기운이 빠질 뿐만 아니라 오래 견딜 수 없다.” 하였고 나아가 야간독서(‘燈下讀’)는 학업에 정진하는 공력은 대단하지만 2시간을 넘지 말라 했으니, 너무 과도하면 정신소모가 많아 다음날 반드시 노곤하여 지치게 된다고 하였다.
더욱 중요한 점은 사람은 하루중 子時(11시~1시)에 잠들지 않으면 혈이 간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나중에 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였다. 이점이 오늘날 현대과학에서도 시행착오 끝에 뒤늦게 서야 도달한 수면과학의 효과인데, 이미 우리 선인들이 오래 전부터 경험지식으로 깨달았던 사실임을 직시해야만 한다.
독서과도로 인한 시력저하와 양생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이른 새벽이나 황혼녘에 어두운데서 억지로 책을 보다보면 눈의 정기를 크게 해치게 되어 아직 늙지 않았는데도 눈이 침침해지거나 혹은 근시를 얻게 되니, 독서를 마친 뒤에 가만히 앉아 두 눈을 감고 정신을 기르고 쓸데없는 곳에 神光을 허비하지 않도록 해야만 나이가 들어서 침침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고대하지만 몸을 아끼고 절제하는데는 무심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