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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윤달로 9월이지만 이번 주에 입동이 있어선지 기온이 부쩍 내려갔다.
맑은 날의 공지천 의암동상을 둘러보았다. 그저 휴대전화 사진이다.
이 동상이 여기 세워진 것은 2003년이다. 지금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관리되며 옆에
자세한 내역을 전해주는 안내판도 있다. 그런데 그 옆 공원의 둘레에는 멋스런 바위들이 빙 둘러
정원석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름도 의암공원이다. 동상 좌측 가로는 '맥바위'란 것이 표석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옆의 동상 뒷면에 적힌 설명에 따르면 이 바위가 여기 자리한 것은 역시 동상과 함께 옮겨진
2003년이 맞다. 왜냐하면 이 바위가 처음 선보인 것이 1990년 시립도서관에 동상 옆에서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의암동상도 이리로 옮겨지고 도서관 뒤뜰엔 대신 윤희순 동상이 자리하고 있듯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끝에 이곳이 의암공원이 되면서 이 맥바위 또한 여기 자리를 잡은 것이다.
바위의 사방 모습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자.
바위는 우선 그 엄청난 크기에 묵직하고 듬직한 느낌을 준다. 설명문대로 발산리에서 온 돌이라니,
한희민 감사님의 말처럼 후동리 일대의 돌인 후동석이 맞단다. 후동석은 비석으로 쓰이곤 하는
견고한 돌로 잘라서 매끄럽게 갈면 검은색이 나고 흙 속에서 암괴형태로 그 동네에서만 나는 돌이다.
이 돌이 그 동네에서 이처럼 외출해 있는 걸 밝혀준 것은 생태학적으로도 봐도 온당하고 바른 처사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 동네에서도 역시 '맥바위'라고 불렸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설명문에는 '貊像'(맥의 형상)이라고 하였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남아메리카에나 있는 맥이란
동물의 이미지와는 그리 유사성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참고 1] 그럼 왜 이 바위를 '맥상'이라고
했으며 과연 누가 그런 발상을 또 의암선생과 연관지워 놓은 것일까?
늠름하고 굳건한 모습의 바위에다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은 분명 춘천의 고대 맥국이라는 유구한
역사/전설로부터 유추하여 끌어다 붙인 상상 속의 상징행위일 것이다. 어쨌건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바위에는 풍우에 마모된 표면에 마치 생명력을 불어넣기라도 하는 것처럼 힘줄이나
핏줄 같은 바윗결 무늬도 있다!
내가 늘 생각해온 바로는, 몇 번 밝힌 적이 있었던 것처럼 맥국 유적의 존재유무와는 별도로 우선
동북아시아의 맥이라는 고대 동물이 학술적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중국의 경전에
나오는 코끼리 같은 동물이 2000~2000년 전에는 북중국 일대에도 살았다가 점점 그 한계선이 남쪽
으로 내려가며 좁혀졌음이 고생물학에 의해 드러난 것처럼 말이다. 그 맥도 지금은 멸종한 동북
아시아의 고생물 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이다. 역사서나 경전에서는 맥이 말갈 부족의 이름
으로 나오지만 말이다.
샘밭 일대에서 맥의 유골이 발견되지 못한다는 보장도 없다. 하긴, 궁중에서 해 먹었다는 맥적도
맥국의 전설에 끌어다 붙이듯이, 맥인들이 맥을 다 잡아먹어서 생물다양성만이 아니라 맥국의 흔적
조차 남지 않게 됐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여하튼, 차라리 바위의 늠름하고 굳건한 모습 때문에 의암선생의 고향에서 동상 곁으로 옮겨와
시민들로 하여금 "우국충정의 높은 뜻과 비례부동의 숭고한 기품을 표상"해보는 분위기를 더한다고
말하면 훨씬 무난해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의암선생이 춘천사람임은 이제 누구나 알지 않는가.
설사 이 바위가 맥국인의 기상을 표상하는 맥바위라고 상상할 수 있을진 모르더라도, 거기다가
의암선생까지 끌어들인 사정은 많이도 튀어 보이는 것이다.
동상 양 옆으로는 청동 부조상이 하나씩 있다. 우측은 거의(擧義) 장면이고, "보(保)"란 글자는 여기서
의관제도를 보존한다는 '보형(保形)'을 말한다.
좌측은 강학(講學) 장면 같다. 여기엔 "명도(明到)"라는 휘호도 보인다. 이런 조상은 동상과 함께 우리
지역의 미술가인 이길종 선생의 작품이다. 다시 봐도 소박한 기량이 잘 발휘된 조상으로 보인다.
뒷면에는 이은상의 사적기가 서예가 일중 김충현의 글씨로 적혀 있다.
동상의 제호(題號)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다.
처음 1976에 세울 때였으니 유신정국이 한껏 얼어붙아갈 즈음이었다. 군인 출신으로 상무정신을
높이 샀던 대통령 답게, 이 의병장 동상에까지 휘호를 내려준 것이다. 지금은 세종로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들어와 앉아 계시지만 당시에 생각있는 사람들은 종종 광화문통에 들어서 있던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보면서 짓눌린 시대정신을 비꼬아 말하곤 하던 때였다. 그게 박정희식 민족주의였고,
전국에는 애국자 동상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기도 하였다. 하긴 이때 성균관대 유학 교수도 춘천
가정리에 답사랍시고 다녀갔다지만 누구도 의암선생의 문집을 읽고 알리려던 모습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가정리에서도 그리 반가울 게 없었을 것이다.[참고 2]
이 시대에는 이 시대에 맞게, 있는 그대로의 의암선생을 아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선생의 동상 앞에서 보라보니 주변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새로 짓는 고층아파트가 대룡산
능선을 가려버린 것이다. 전보다 훨씬 답답해 보였다.
[참고 1]
동물로서의 맥(貊)은 한자로 달리도 쓰는데, 자세히 찾아보면 아시아대륙과 아메리카대륙에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우선 그 설명을 들어보자.
"영어권의 일반 명칭 테이퍼(Tapir)는,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에서 모두 맥(貘)으로 표기된다. 중국
에선 貘(무아mò)로, 일본에서는 貘, バク(바쿠Baku)로 발음된다.
맥은 바로 타피루스속(Tapirus)으로 분류 되는데, 오늘날 총 5가지 종(種)이 존재하고 있다.
각각의 종(種) 일반 명칭은 베어드맥, 브라질맥, 캄보마니맥, 말레이맥, 마운틴맥이다.
일부 국내 백과사전에서는 맥을 1속 4종으로 소개하기도 하지만, 맥은 타피루스속이며 1속 5종이다.
맥은 코뿔소, 말(馬)과 함께 기제목에 포함 된다. 홀수개 발굽의 분류군인 오늘날의 기제목에는 코뿔소,
말, 그리고 맥 밖에 없고 포유강(哺乳綱, Mammalia) > 기제목(奇蹄目, Perissodactyla) > 맥과(Tapiri
dae)로 분류 된다.
맥은 멧돼지를 닮은 듯한 체형(體形)에, 코가 길어서 코끼리도 연상시키는 외모(外貌)를 가지고 있다.
위 5종(種)의 맥 중에서는 동남아시아, 특히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에 서식하는 말레이맥(말레이
테이퍼)이 가장 크다.
3~ 5살에 성적(Sexual)으로 성숙하며, 수컷 보다 암컷의 성적 성숙이 더 빠른 편이다.
체격과 체중은 종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맥은 대략 몸길이 2m, 어깨높이 1m에, 150~ 300kg
이다."(이 내용은 http://blog.naver.com/nofake119?Redirect=Log&logNo=120208140658 참조! 여기에는
브라질맥이 물에서 노는 장면이 있고 더구나 몸집이 더 큰 하마를 공격하는 동영상도 볼 만하다!)
맥 사진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참고로 올린다. 먼저 말레이맥이다.
아래는 앞발 뒷발 굽의 수가 다른 모습이다.
아래는 목에 융기가 보이는 브라질맥!
[참고 2]
가정리의 의암선생 후손이신 유연창 님이 늘 말하시듯이 의암선생의 둘째 아드님이었던 유제춘(柳濟春:
1891-1981년)은 성균관대학교에 재직한 적이 있었다. 이 분은 의암선생에게 아들이 없자 스승인 성재
유중교 선생의 아들 유의석의 아들인 유제함을 양자로 들인 뒤에 태어나신 분이었다. 다른 이름으로
유해동(柳海東)이란 이름을 쓰셨는데, 현재 백과사전 등에서는 주로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유해동은 성균관대가 해방 뒤에 다시 창설될 당시 일을 하셨다고 전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아직 모른다.
다만 당시 초대총장을 맡았던 심산 김창숙 선생의 견해가 많이 반영되었으리라고 짐작되며, 그만큼
화서학파와 의병에 나섰던 의암선생의 후손이란 점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조선 유학의 본산인
대학이었기 때문이다. 유해동 선생이 강의도 하셨다고 전해 듣기는 하였으나, 선생은 의암선생의 사후
박장호의 대한독립단 일을 하여 총재비서직을 맡으며 무장 독립운동에 나섰던 분이다. 부친의 의병
활동과 연이은 망명과 독립운동의 회오리 속에서 유학을 기본소양으로 갖추신 분이긴 하지만, 깊이 연찬
한 분은 아니었다. 당시의 이승만 정권 아래 대학체제란 것도 지금 보면 미비한 점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만, 특히 인문학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다 아다시피 전래의 한학을 이어 신학문과의 연결을
모색한 첫 세대 가운데 가히 인문학계의 태두로서 원로였다고 할 벽초 홍명희 같은 분이나, 주시경의
제자로 대표적인 한글학자였던 김두봉 같은 인물들이 다 북으로 가고 없었다. 철학계의 신남철이나
한문학계의 김태준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아나키스트로 독립운동을 하였던 이정규 같은 분이 60년대
초에 총장을 맡았다든지, 문학 분야에서 월탄 박종화 같은 분이 성균관대에 계셨던 점을 들어볼 만하다.
유학 쪽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경학원을 드나들던 퇴계선생의 먼 후손인 이가원 같은 분도 계셨
지만 나중에 연세대로 옮겨갔다. 전통학문이었던 유학교육에 대해서는 내가 보기에 성균관대 유학대학은
아카데미시스템으로 당시까지 별로 이뤄낸 일이 없었다고 보이는 것이다. 오히려 한학교육은 재직하다
퇴임하여 지곡서당을 세워서 제자들을 길러낸 청명 임창순 선생 같은 분의 공적이 컸다고 보인다.
그런 게 유신정권 아래서의 사정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노력은 정작 우리 지역인 춘천에서 있었다.
1984년에 강대 선생들이 의암선생의 말년 대저인 <우주문답(宇宙問答)>의 번역서를 냈다(종로서적 간행).
당시 공역자로 여러 전공의 서준섭, 손승철, 신종원, 이애희 선생 4분이 올려져 있다. 그리고 그 책의 강독
에는 의암선생의 사위셨던 송헌 정해승 선생이 지도역할을 해주셨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송헌선생은
습재 이소응 선생의 제자였던 정해문의 족제로 1920년대 후반에 요동 땅으로 습재선생을 찾아가 배웠고
<습재집>에는 그에게 자를 지어준 자설(字說)이 실려 있다. 지금의 의암학회도 결국 이런 노력들을 이은
결과라 할 것이고, 따지고 보면 습재연구소 역시 그런 생각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댓글 전문위원님의 말처럼 맥 등줄기에 힘찬 동맥 핏줄인 것 같습니다.
맥이라는게 일본인들이 말하는 코마이누와 같은 의미의 동물일까요? 고구려 개,맥견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듯 하던데.. 맥국을 동물과 연관지어서 풀어가는것도 새롭네요..
고구려 개라고 알려진 코마이누가 맥견이라면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춘천신사에도 두기의 코마이누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의미가 크다고 봐야 겠지요..
맥은 멧돼지와 비슷한 초식동물로 육식인 개과가 아니라 맥과 동물이지요. 코마이누란 일본 전통일진 몰라도 우리 기록에는 없던 이름 아닌가요? 소시머리에 열광하며 춘천에 온 식민지 지배자들의 상상 정도!
재미난 건 치우천왕이 타고다닌 동물이 '식철수(食鐵獸:철을 먹는 짐승)'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중국사람들은 이를 '대웅묘(大熊猫:큰 곰고양이)'로 보아 반달곰(판다)이라 해석하고, 동이족의 고문화를 믿는 사람들은 맥(貊)이라 해석하는 게 보인단 거지요. 맥이란 동물은 다시 찾아보니 현재 4종류(혹은 5종)가 있는데, 3종류가 아메리카대륙에 있고 아시아대륙에도 '말레이맥'이란 동물이 현존하네요! 근데 사진을 찾아보니 너무 귀여워요! 동물원에 있어선가? 멧돼지처럼 어려서는 줄무늬가 있다 없어진대요.
강원대사학과 교수와 초대몽골학회장을 역임한 주채혁교수는 예맥의 맥(貊)=너구리라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펴왔습니다. ‘예’라는 수달(水獺)과 ‘맥’이라는 산달(山獺)이 통일되면 ‘예맥’(濊貊)=달달(獺獺: Tatar)이 된다는 게 주요골자입니다. 그는 블로그의 글을 통해 "이제 진실로 한국 '조전설' 유산의 태반인 유구한 전통의 ‘짐승왕국’ 춘천의 문화유산 맥(貊)국터의 장엄한 맥(脈)을 소생시켜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ㅎㅎ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타타르족은 말갈족과 달리 중앙아시아쪽 아닌가요? 뭐 초원에서야 거기가 거기겠지만요. 그래도 한자에서 貊과 獺이 엄연히 다른 글자인데, 그렇게 됐을지 한번 찾아 읽어봐야 겠어요!
좋은 공부하고 갑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 이렇게 의미가 있었네요. 모든 걸 새롭게, 다시, 자세히 바라보는 눈과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시간내서 저도 찬찬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