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순명의 성모님> 대림 제4주일(루카1,26~38)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대림초에 불이 모두 환하게 밝혀졌습니다.
우리도 이 촛불들처럼 자신을 태우고 비우며
하느님 앞에 순명하는 맑은 영혼이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 복음은 성모님께서 믿음의 순종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 사실을 전해줍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수태고지(受胎告知)에 성모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응답합니다.
이 응답에는 성모님의 일생일대의 결단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천사가 말하는 내용을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해도,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능력을 믿고 자신의 미래를 그분께 온전히 맡겼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자신에게 닥쳐올 수치스럽고 무서운 일을 감수하시면서
자신의 운명을 오롯이 하느님의 뜻에 맡기심으로써
성모님께서는 신앙의 순명을 결단하여 실로 신앙인의 귀감이 되셨습니다.
마리아의 이러한 신앙의 순종으로 인해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오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응답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그 당시의 관습으로는 처녀가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유대 율법에 의하면, 혼전 잉태는 돌로 쳐 죽여야 하는 용서받지 못할 죄악입니다.
마리아의 동의는 죽음의 돌팔매를 각오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고 합니다.
신앙행위는 이성(理性)이 빠진 맹목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성모님께서는 영웅적인 ‘신앙의 순종’ 이후에도
인간적인 고뇌로 스스로 곰곰이 사유(思惟)했을 것입니다.
어린 마리아는 의심과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다니?
과연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약혼자 요셉이 믿어줄 것인가?” 등등의 여러가지 상념에 잠겼을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믿음이 흔들릴 때가 가끔 있습니다.
넘어지지 않아서 위대한 성인이 된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기 때문에 성인이 되신 것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신앙생활이란 문득 문득 계속 공격해 오는 의심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워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지나간 과거에 언제가 한 번 믿었던 것으로 충분한 지나간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hic et nunc. 라틴어)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이 흔들릴 때 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떠올리고
성모님을 본받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두 가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라는 천사의 아룀이고,
둘째는 믿음의 복종으로 고백한 성모님의 응답,
즉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입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부르심에 멈칫거리거나 주저하지 맙시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성모님께 두 가지를 권고합니다.
한 가지는 ‘하라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하지 말라는 것’,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천사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성모님께서 기뻐할 것을 권고합니다.
그 다음에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라고 하면서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해야 하는 것은 기뻐하는 것이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의 핵심 키워드는 ‘기뻐하라’와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대림절에 우리가 가져야 하는 ‘신앙의 복종’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믿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어떤 마음이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응답하는 마음의 자세입니까?
그것은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신앙인답게 사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laeto animo. 라틴어) 사는 것이고,
어려운 일이나 무서운 일이 생기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은총을 가득히 받은 주님의 자녀들답게
그리고 하느님의 총애를 받은 사람들답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