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진정한 행복의 원리
07/20목(木)마 5:1-12
세상사람 모두 다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정작 행복 하느냐고 물어보면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행복에 대한 영원불변의 진리를 말씀하십니다(마 5:3-8).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원어를 해석하면 복이 있도다. 그 영이 가난 한 자는,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팔복은 “복이 있도다(마카리오스)”로 시작합니다. 팔복을 통해 인간의 진정한 복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의 원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존재(마음)에서 옵니다.
인간의 진정한 복의 원리는 우리가 무엇을 가졌느냐? 하는 소유(to have)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to be)인가? 내가 누구인가? 에 있다는 것입니다(마 5:3-8).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그 존재의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첫째 복은 마음이 가난한 자, 둘째 복은 애통하는 마음의 상태, 셋째 복은 온유한 마음의 상태, 넷째 복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의 상태, 다섯째 복은 마음이 청결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행복의 조건은 외적인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존재에 의해 마음이 어떻게 다스려지는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차, 좀 더 높은 지위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속은 것입니다. 환경은 잠시 행복을 줄 수 있지만 금새 변해 또 다른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프토코스’, 절대 빈곤으로 이 세상에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천국이 저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소유할 때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복이 있도다.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해피(happy)가 아니라 블레스드(blessed)입니다. 해피는 고대어의 ‘우연한 기회(happen)’ 에서 온 말입니다. 진정한 복 ‘마카리오스’는 우연히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블레스드’의 어원은 ‘브리드(bleed)’ ‘피흘리다’ 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즉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주님과 마음이 연결될 때 ‘마카리오스’, 진정한 행복이 이루어진다는 어원적인 뜻으로 해석됩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마음에 있고, 그 마음을 주님이 지배할 때 ‘마키리오스’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내 마음속의 죄를 피로 구속하시고 하늘의 평강을 주심으로 참 평강과 행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진정한 행복은 우리의 마음이 영원한 천국과 연결 되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행복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온전해 집니다. 진정한 행복은 천국의 것이지 이 땅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상급이 있다면 심령이 가난해도 좋고, 욕을 먹어도 좋고, 악한 말을 들어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얻은 성공, 행복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꿈같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현실은 천국과 지옥 뿐 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늘 이 땅에 살지만 천국에 연결된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스데반은 비록 돌에 맞아 죽어갔지만 그의 마음은 주님이 계신 천국에 연결 되어 있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고 천사의 얼굴을 한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어 그 마음이 천국과 연결되어 천국의 행복을 여기서 맛보는 진정한 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And...
유대인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을 찾아 평생 열심히 일을 해서 돈도 벌고 사회적 지위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삶의 행복을 찾지 못하고 허무에 빠져 마음에 중병이 들었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랍비는 한참 생각하더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찾아가 그 사람의 외투를 빌려 아버지께 덮어 드리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찾아 다녔지만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수도원을 방문했다가 굴속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정말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오늘도 쉴 수 있는 참 안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기뻐서 그를 찾아가 외투를 빌려 달라고 하자 수도사가 난감하여 쳐다보며 “아, 미안합니다. 나는 외투가 없습니다. 이 산속 동굴에서 사는 내가 무슨 외투가 필요하겠습니까?”하였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외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명화 중 우리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은 19세기 작품인 프랑스의 화가 밀레의 ‘만종’이라 할 것입니다. 한 젊은 부부가 하루 종일 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다 황혼이 될 무렵 하던 일을 멈추고 엄숙하고 경건하게 기도드리는 모습은 인간의 숭고한 사랑과 노동과 종교가 혼연일체가 된 성스러운 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가정도 원만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세 가지의 요소가 반드시 구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노동을 떠나서는 생명을 유지, 보존할 수 없고 사랑이 없는 노동은 고역스러울 뿐인데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식민 정치가였던 ‘쎄실 존 로즈’는 건강 문제로 남아프리카로 이주하였다가 그곳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고 600만 파운드의 다이아몬드를 옥스퍼드 대학의 장학기금으로 기증할 만큼 큰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잠시 영국으로 귀환하였을 때 구세군 2대 대장인 부드 장군과 기차로 여행 하던 중 부드 대장이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아니 행복하다고 생각되십니까?” 라고 묻자 로즈는 침울한 표정으로 “행복이라니요?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단 말입니까?”하고 반문했습니다. 부드 대장이 “천하에 진실로 행복한 곳은 오직 한곳뿐인데 그곳은 주님의 십자가 슬하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만 우리의 죄가 사유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전도하였습니다. 아무리 소유가 많아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인생일기’란 책에는 프랑스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속세적인 행복을 찾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기진맥진 한 두 팔을 그리스도 앞에 내놓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했고,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으로 이전에 바라고 따르던 것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행복을 찾지 말고 주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