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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짧은 경(M27) Cūḷa-hatthipadopama Sutta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649-669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1)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2. 그때 자눗소니 바라문(*2)은 한낮에 백마가 끄는
온통 흰색으로 장엄한 백마차(*3)를 타고 사왓티를 나가고 있었다.
바라문 자눗소니는 삘로띠까 유행승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삘로띠까 유행승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왓차야나(*4) 존자는 이런 한낮에 어디를 다녀오는 길입니까?"
"존자여, 나는 사문 고따마께 다녀오는 길입니다.”
“왓차야나 존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문 고따마는 통찰지가 탁월하십니까?
그는 지자이십니까?”
"존자여, 내가 누구라고, 내가 어찌 감히 사문 고따마의 통찰지가 탁월한지를 알겠습니까?
그분과 동등한 자라야 그분의 통찰지가 탁월한지를 알 것입니다."
"참으로 왓차야나 존자는 사문 고따마를 크게 칭송하시는군요."
"존자여, 내가 누구라고, 내가 어찌 감히 사문 고따마를 칭송한다는 말입니까?
고따마 존자는 신과 인간 가운데서 최상이라고 칭송이 자자합니다.“
"왓차야나 존자는 어떤 이익을 보기에
사문 고따마 이렇게 깊은 신뢰를 갖고 있습니까?
3. "존자여, 예를 들면 능숙한 코끼리 사냥꾼이 코끼리가 사는 숲에 들어가서
그 코끼리 숲에서 길이도 길고 폭도 넓은, 큰 코끼리 발자국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는 '참으로 큰 코끼리로구나.'라는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네 가지 족적(*5)을 보았기 때문에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4. "존자여, 여기서 나는 학식 있고 영리하고 다른 자들과의 논쟁에 뛰어나고
머리카락조차 꿰찌르는 명사수와 같은 어떤 끄샤뜨리야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통찰지로 다른 이들의 견해들을 단번에 논파하면서 돌아다닙니다.(*6)
존자여, 그들은 사문 고따마가 어떤 마을이나 성읍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으면 그들은 질문을 미리 준비합니다.
'우리는 사문 고따마에게 가서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이같이 우리의 질문을 받으면 그는 이같이 설명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이같이 논파할 것이다.
다시 이같이 우리의 질문을 받으면 그는 이같이 설명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또 이같이 논파할 것이다.'
그들은 사문 고따마가 어떤 마을이나 성읍에 도착했다는 소문을 들으면 사문 고따 마를 만나러 갑니다.
사문 고따마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여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그들은 사문 고따마의 설법으로 가르침을 받고 격려를 받고 분발하고 기뻐서
사문 고따마에게 아무런 질문을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논파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사문 고따마의 제자가 됩니다.
존자여,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이런 첫 번째 족적을 보았을 때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도를 잘 닦는다.'라고."
5. "존자여, 여기서 나는 학식 있고 영리하고 다른 자들과의 논쟁에 뛰어나고
머리카락조차 꿰 찌르는 명사수와 같은 어떤 바라문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통찰지로 다른 이들의 견해들을 단번에 논파하면서 돌아다닙니다.
존자여, 그들은 ··· 사문 고따마의 제자가 됩니다.
존자여,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이런 두 번째 족적을 보았을 때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고."
6. "존자여, 여기서 나는 학식 있고 영리하고 다른 자들과의 논쟁에 뛰어나고
머리카락조차 꿰 찌르는 명사수와 같은 어떤 장자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통찰지로 다른 이들의 견해들을 단번에 논파하면서 돌아다닙니다.
존자여, 그들은 ··· 사문 고따마의 제자가 됩니다.
존자여,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이런 세 번째 족적을 보았을 때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고."
7. "여기서 나는 학식 있고 영리하고 다른 자들과의 논쟁에 뛰어나고
머리카락조차 꿰찌르는 명사수와 같은 어떤 사문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통찰지로 다른 이들의 견해들을 단번에 논파하면서 돌아다닙니다.
존자여, 그들은 사문 고따마가 어떤 마을이나 성읍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으면
그들은 질문을 미리 준비합니다.
'우리는 사문 고따마에게 가서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이같이 우리의 질문을 받으면 그는 이같이 설명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이같이 논파할 것이다.
다시 이같이 우리의 질문을 받으면 그는 이같이 설명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또 이같이 논파할 것이다.'
그들은 사문 고따마가 어떤 마을이나 성읍에 도착했다는 소문을 들으면 사문 고따마를 만나러 갑니다.
사문 고따마는 그들에게 법을 설하여 가르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그들은 사문 고따마의 설법으로 가르침을 받고 격려를 받고 분발하고 기뻐서
사문 고따마에게 아무런 질문을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논파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사문 고따마에게 자신들의 출가를 허락해줄 것을 청하고,
사문 고따마는 그들에게 출가를 허락합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출가하여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냅니다.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 이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거의 망할 뻔했다.(*7) 우리는 거의 망할 뻔했다.
우리는 이전에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고 선언했고,
바라문이 아니면서 바라문이라고 선언했고, 아라한이 아니면서 아라한이라고 선언했다.
이제 우리는 참으로 사문이고, 참으로 바라문이고, 참으로 아라한이다.'(*8)
존자여,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이런 네 번째 족적을 보았을 때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고.
존자여, 이같이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네 가지 족적을 보았을 때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고."
8. 이같이 말하자 자눗소니 바라문은 백마가 끄는 온통 흰색으로 장엄한 백마 차에서 내려
한쪽 어깨를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 세존을 향해 합장한 채 세 번 감흥 어를 읊었다.
"그분 세존, 공양받아 마땅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그분 세존, 공양받아 마땅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그분 세존, 공양받아 마땅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참으로 언제 어디서든 그분 사문 고따마 존자께 가서 어떤 대화라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스리랑카의 연대기인 『마하왐사』(Mahāvaṁsa, 大史)와
『사사나왐사』(Sāsanavaṁsa, 교단의 역사)에 따르면
본경은 아소까 대왕의 아들이요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마힌다(Mahinda) 존자가
스리랑카에 도착하여 처음 설한 경이라고 한다.(Mhv.xiv.22; Sv(Sāsanavaṁsa) 21)
여기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대왕의 아들이요 큰 지혜를 가진 [마힌다] 장로께서는
현자라고 안 뒤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짧은 경」을 설하셨다.“(Mhv.xiv.22)
(*2) 자눗소니 바라문(Jānussoṇi brāhmaṇa)에 대해서는
본서 「두려움과 공포 경」(M4)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3) "'흰 말이 끄는 온통 흰색으로 장엄한 마차(sabbasetena vaḷabhīrathena)'라는 것은
"참으로 그것은 흰 장신구를 단 흰 말에 흰 멍에를 얹었으며, 흰 장식을 한 흰 수레에,
흰 고삐에, 흰 몰이 막대에, 흰 일산에, 흰 터번에, 흰옷에, 흰 신발을 신고 있었으며,
흰 부채로 부채질을 받고 있었다."(『상윳따 니까야』 제5권 「바라문 경」(S45:4/v.4))라고 설한
온통 흰 네 마리의 말이 매어져 있는 마차를 말한다."(MA.ii.194)
(*4) "왓차야나(Vacchāyana)는 삘로띠까 유행승(Pilotika paribbājaka)의 부족 이름이다.
그는 젊은 유행승이었고 초년기에는 황금색 피부를 가졌으며 부처님을 시봉하고는 했다.
이른 아침에 여래와 큰 장로들을 시봉한 뒤 제따와나를 나와 도시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자눗소니 바라문이 그가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MA.ii.195)
(*5) "'네 가지 족적(cattāri padāni)'이란
네 가지 지혜의 족적(ñāṇa-padāni), 지혜의 발자국(ñāṇa-valañjāni)을 말한다."(MA.ii.197)
(*6) "'단번에 논파하면서 돌아다닙니다(bhindantā maññe caranti).'라는 것은
명사수(vāla-vedhi)가 아주 사소한 머리카락조차도 꿰찌르듯이,
다른 사람의 견해가 아무리 정교해도 자신의 통찰지로 논파하면서 돌아다닌다는 말이다."(MA.ii.197)
(*7) 그리고 '망할 뻔했다.'로 옮긴 동사 anassāma는
기본형 nasāti(√nas, to perish, 멸망하다, 잃어버리다)의 불확정 과거(Aorist) 1인칭 복수형이다.
문맥에 따라서 이렇게 옮겼다.
본서 제3권 「사꿀루다이 짧은 경」(M79) §26에서는 '망했다.'로 옮겼다.
(*8) '오히려 그들은 ··· '부터 여기까지는
본서 제3권 「법탑 경」(M89) §17에 도 나타나고 있다
9. 그러자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을 뵈러 갔다. 세존을 뵙고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자눗소니 바라문은 삘로띠까 유행승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를 모두 세존께 말씀드렸다.
그와 같이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자눗소니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이것으로는 아직 코끼리 발자국에 비유한 가르침(*1)이 상세하게 설명된 것이 아닙니다.
바라문이여, 이제 나는 이 코끼리 발자국에 비유한 가르침을 상세하게 설하리니 그것을 듣고 마음에 잘 잡도리하십시오.
이제 설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대답했다.
10.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면 코끼리 사냥꾼이 코끼리가 사는 숲에 들어가서
그 코끼리 숲에서 길이도 길고 폭도 넓은, 큰 코끼리 발자국을 보았다고 합시다.
그가 능숙한 코끼리 사냥꾼이면 '참으로 큰 코끼리로구나.'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바라문이여, 코끼리 숲에는 큰 발을 가진 난쟁이 암 코끼리들(*2)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발자국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을 계속 따라갑니다. 따라가다가 코끼리 숲에서 길이도 길고 폭도 넓은,
큰 코끼리 발자국과 위쪽이 마찰된 어떤 흔적(*3)을 봅니다.
그가 능숙한 코끼리 사냥꾼이면 '참으로 큰 코끼리로구나.'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바라문이여, 코끼리 숲에는 큰 발에 돌출된 이를 가진 큰 암 코끼리들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발자국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을 계속 따라갑니다. 따라가다가 코끼리 숲에서 길이도 길고 폭도 넓은,
큰 코끼리 발자국과 위쪽이 마찰되고 상아에 의해 부러뜨려진 어떤 흔적(*4)을 봅니다.
그가 능숙한 코끼리 사냥꾼이면 '참으로 큰 코끼리로구나.'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바라문이여, 코끼리 숲에는 큰 발에 큰 상아를 가진 큰 암 코끼리들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발자국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것을 계속 따라갑니다. 따라가다가 코끼리 숲에서 길이도 길고 폭도 넓은,
큰 코끼리 발자국과 위쪽이 마찰되고 상아에 의해 부러지고 가지가 꺾여 있는 것을 보고,
또 그 코끼리가 나무 아래에 있거나 노지에 있거나 걷거나 서 있거나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을 봅니다.
그제야 그는 '참으로 큰 코끼리로구나.'라는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11. "바라문이여, 그와 같이(*5)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합니다.(*6)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번뇌를 완전히 여의신 아라한(Arahaṁ)이시며,
완전히 깨달으신 분(Sammmāsambuddho)이시며,
지혜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Vijjācaraṇa sampanno)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Sugato)이시며,
모든 중생계와 인과계를 잘 알고 계신 분(Lokavidū)이시며,
교화 받을 가치가 있는 자를 교화함에 비할 데 없는 분(Anuttaro Purisadammasārathi)이시며,
천신과 사람들의 스승이신 분(Satthā devamanussānaṁ)이시며,
사성제를 스스로 깨달아 가르치신 분(Buddho)이시며,
모든 공덕을 갖추신 분(Bhagavā) 이시며,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냅니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법을 설하고, 범행(梵行)을 드러냅니다."(*7)
12.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습니다.
그는 이 법을 듣고 여래에게 믿음을 가집니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합니다.
'재가의 삶이란 번잡하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둥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든 많든 간에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합니다."
(*1) '코끼리 발자국에 비유한 가르침'은 hatthi-pad-opama(코끼리 발자국 비유)를 옮긴 것이다.
이 문구에는 '가르침(dhamma)'이란 단어가 나타나지 않지만 주석서에서 이 합성어를
"코끼리 발자국에 비유되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코끼리 발자국 비유라 한다
(hatthipadaṁ upamā assa dhammassāti hatthipadopamo)."(MA.ii.198)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2) "'난쟁이 암 코끼리들(vāmanikā nāma hatthiniyo)'이란
길이도 길지 않고 배가 큰 난쟁이 암 코끼리들을 말한다."(MA.ii.198)
(*3) "'위쪽이 마찰된 어떤 흔적(uccā nisenita)'이란
그 키가 일곱 완척 혹은 여덟 완척이나 되는 무화과나무 등의 수간에다 비벼댄 흔적을 말한다."(MA.ii.198)
(*4) "'상아에 의해 부러뜨려진 어떤 흔적(dantehi ārañjitāni)'이란
마치 나무의 수간을 도끼로 찍은 듯이 상아로 부러뜨려진 부분을 말한다."(MA.ii.199)
(*5) 이하 본경의 §§11~18은 『디가 니까야』 제1권 「사문과경」(D2)의 §§40~74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단 「사문과경」에 자세하게 나타나는 중간 길이의 계(majjhima-sīla, §§46~55)와
긴 길이의 계(mahā-sīla, §§56~62)와 다섯 가지 장애에 대한 비유부분(§§69~74)은
본경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하 본경의 §§11~26은 본서 제2권 「깐다라까 경」(M51) §§12~27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22의 4선의 구족까지는 본서 제2권 「갈애 멸진의 긴 경」(M38) §§31~40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6) "'세상에 출현한다(loke uppajjati).'에서 세상은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器世間, okāsa-loka], 중생 세상[衆生世間, satta-loka], 형성된 세상(saṅkhāra-loka,
오취온, 북방 『대지도론』(大智度論)의 오중세간(五衆世間)에 해당함)이 있는데 여기서는 중생 세상을 말한다.
중생 세상에 태어나시더라도 세존은 천상이나 범천에 태어나지 않고, 오직 인간 세상(manussa-loka)에 태어나신다.
인간 세상에서도 다른 세계(cakka-vāḷa)가 아닌 이 세계(지구)에 태어나신다.
여기서도 모든 곳이 아니라, 길이가 삼백 요자나이고, 폭이 이백오십 요자나이고,
둘레가 구백 요자나인 이 (지구)의 중앙에 위치한 나라[중앙나라, majjha]에 태어나신다.
여래뿐만 아니라 벽지불, 상수제자, 80명의 큰 제자, 부처님의 어머니, 부처님의 아버지,
전륜성왕, 정수를 얻은 바라문과 장자들도 오직 이곳에 태어난다."(MA.ii.200)
(*7)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법을 설하고, 범행(梵行)을 드러냅니다.'로 옮긴
이 마지막 문단은
'so dhammaṁ deseti ādikalyāṇaṁ majjhekalyāṇaṁ pariyosānakalyāṇaṁ
sātthaṁ sabyañjanaṁ kevalaparipuṇṇaṁ parisuddhaṁ brahmacariyaṁ pakāseti'를 옮긴 것인데,
여러 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내용이다.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kevala-paripuṇṇaṁ)'는
모든 교법(sakala-adhivacana)이 모자람도 더함도 없이(anūna-adhika-vacana)
완전하다, 어떤 가르침도 완전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지극히 청정한(parisuddhaṁ)'은 오점이 없다(nirupakkilesa)는 말이다.
이 법을 설하여 이득과 명성을 얻으리라는 생각으로 설하는 자의 가르침은 청정하지 못한 것(aparisuddhā desanā)이 된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세속적인 이익에는 관심이 없고 자애 수행(mettā-bhāvanā)을 통한 온화한 성품(mudu-hadaya)으로
오로지 그들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법을 설하시기 때문에 지극히 청정한 법(parisuddha dhamma)을 설하신다고 한다.
'범행(梵行)을 드러낸다(brahmacariyaṁ pakāseti).'에서 청정한 범행은
삼학에 포함되는 모든 교법(sikkhattaya-saṅgaha sakala-sāsana)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가 법을 설하여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하게 법을 설하면서
또한 삼학에 포함되는 모든 교법인 청정범행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MA.ii.203~204)
이 문장에는 두 개의 동사와 여러 개의 목적어가 나타나는데,
그중에서 맨 마지막 목적어인 청정범행(brahma-cariya)을 제외한 모든 목적어는
처음에 나타나는 법(dhamma)을 수식하는 형용사로서 '설하다(deseti)'라는 동사에 걸리고,
마지막 목적어인 청정범행은 '드러내다(pakāseti)'라는 동사와 관련된다고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디가 니까야』 제3권 「십상경」(D34)과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거꾸로 놓은 항아리 경」(A3:30) 등
여러 곳에서는 'ye te dhammā ādikalyāṇā majjhekalyāṇā pariyosānakalyāṇā sātthā savyañjanā
kevalaparipuṇṇaṁ parisuddhaṁ brahmacariyaṁ abhivadanti'라고 문법적으로 다르게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ādikalyāṇā majjhekalyāṇā pariyosānakalyāṇā sātthaṁsabyañjanā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여)'는
법(dhamma)을 수식하는 형용사인 주어로, 'kevala-paripuṇṇaṁ parisuddhaṁ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은 청정범행(brahmacariya)을 수식하는 형용사인 목적어로 나타난다.
「거꾸로 놓은 항아리 경」(A3:30)에서 역자는 이렇게 이해하여 옮겼다.
13.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비구들의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그것과 더불어 생활합니다.
그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고, 양심적이고 동정심이 있으며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뭅니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준 것만을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머뭅니다.
그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으며,
도덕적이고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여읩니다.
그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진실을 말하며 진실에 부합하고 굳건하고 믿음직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습니다.
그는 중상 모략하는 말을 버리고 중상 모략하는 말을 멀리 여의고,
여기서 듣고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고
저기서 듣고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그는 욕설을 버리고 욕설을 멀리 여의고,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 바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합니다.
그는 잡담을 버리고 잡담을 멀리 여의고,
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며,
가슴에 담아둘 만한 말을 하고, 이치에 맞고,
절제가 있으며, 유익한 말을 적절한 시기에 합니다.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하루 한 끼만 먹습니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여의고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춤, 노래, 연주,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화환을 두르고 향과 화장품을 바르고 장신구로 꾸미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높고 큰 침상을 멀리 여읩니다.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생고기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여자나 동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코끼리, 소, 말, 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사고파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하는 것을 멀리 여읩니다.
상해, 살해, 포박, 약탈, 노략질, 폭력을 멀리 여읩니다."
14. "그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합니다.(*1)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자구를 몸에 지니고 갑니다.
예를 들면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자기 양 날개를 짐으로 하여 날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비구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자구를 몸에 지니고 갑니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1) "'그는 만족한다(santuṭṭho hoti).'는 것은
본서 「역마차 교대 경」(M24) §2의 주해에서 설한
네 가지 필수품(catu paccayā)에 대한 열두 가지 만족(santosa)을 구족한 비구가
다시 여덟 가지 자구(資具, aṭṭha parikkhārā)를 갖추어서 [만족한다는 말이다].
여덟 가지 자구란 세 가지 옷[三衣, tīṇi cīvarāni], 발우(patta),
치목을 자를 칼(danta-kaṭṭha-cchedana-vāsi),
한 개의 바늘(ekā sūci), 허리띠(kāya-bandhana), 여과기(parissāvana)이다.
이것은 모두 몸을 보호하고(kāya-parihārikā),
위장을 지탱해준다(kucchi-parihārikā)."(MA.ii.211~212)
15. "그는 눈으로 형색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의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올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합니다.(*2)
귀로 소리를 들음에···
코로 냄새를 맡음에 ···
혀로 맛을 봄에···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
마노[意]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의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올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합니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2)본 정형구는 『맛지마 니까야』의 15단계 계·정·혜 정형구(이 둘은 본서 역자 서문 §8-(3)을 참조할 것.)
가운데 여덟 번째에 속하는데 니까야의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본서에서만 여기 M27 §15, M33 §20, M38 §35, M39 §8, M51 §16, M53 §8,
M107 §4, M112 §15, M125 §16 등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본 정형구는 『청정도론』 I.53~59에서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는데
본서 제2권 「소치는 사람의 긴 경」(M33) §20의 주해에
'표상(nimitta)'과 '부분상(anubyañjana)'의 설명이 인용되어 있으므로 참조할 것.
'표상(nimitta)'의 의미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 「보름밤의 긴 경」(M109) §13의 주해를 참조할 것.
16. “그는 나아갈 때도 돌아올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正知] 행합니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합니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합니다.
법의(法衣)·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합니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합니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합니다.
갈 때도 서 있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행합니다.”
17.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합니다.”
18.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1) 앉습니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2)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물고,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물고,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물고,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3)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물고,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극복하여 머물고,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심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1)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는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에 따르면 parimukhaṁ을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 번째는 abhimukhaṁ(향하다)의 뜻으로
'명상주제를 향하여(kammaṭṭhāna abhimukhaṁ)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나서'라는 말이고,
두 번째는 '입(얼굴) 주위에(mukha-samīpe)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나서'라는 말이다.(MA.ii.216)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위방가』(分別論)와 『무애해도』를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계속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위방가』는 말한다.
"이 마음챙김은 확립되었다. 코끝이나 입(얼굴)의 표상에 잘 확립되었다.
그래서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 뒤라고 하였다."(Vbh.252)
다시 『무애해도』는 말한다.
"parimukhaṁ satiṁ에서 접두어 pari는 철저히 파악한다는 뜻(pariggah-aṭṭha)이고,
mukhaṁ은 출구의 뜻(nuyyānattha)이고, sati는 확립의 뜻(upaṭṭhā-attha)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요약(saṅkhep)하면, '철저히 파악하여
[반대편의 법인 잊어버림(muttha-sati)으로부터의] 출구인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나서
(pari-ggahita-niyyāna-satiṁ katvā)'라는 뜻이다."(MA.ii.216)
(*2)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so abhijjhaṁ loke pahāya)'라고 하셨다.
여기서 무너진다는 뜻에서(lujjanaṭṭhena),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 pañc-upādāna-kkhandhā]를
'세상(loka)'이라 한다.
그러므로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들에 대한 욕망(rāga)을 버리고(pahāya),
감각적 욕망(kāmacchanda)을 억압한 뒤에(vikkhambhetvā) 라는 뜻이다."(MA.ii.216)
(*3) "'광명상을 가진다(āloka-saññī).'는 것은
밤에도 낮에 본 광명을 인식할 수 있고 장애가 없고 청정한 인식을 구족하는 것이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린다[正念·正知](sato sampajāno).'는 것은
마음챙김(sati)과 지혜(ñāṇa)를 구족한다는 말이다."(MA.ii.217)
19. "그는 마음의 오염원이고 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4)
이들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일러 여래의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표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제자는 아직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는 이런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4) "'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paññāya dubbalīkaraṇe)'이라고 하셨다.
다섯 가지 장애(pañca nīvaraṇāni)가 일어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세간적인 통찰지와 출세간적인 통찰지를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이미 일어난 여덟 가지 증득과 다섯 가지 신통지를 끊어버리고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통찰지를 무력하게 한다고 하셨다."(MA.ii.217)
20. "바라문이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일러 여래의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표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182] 성스러운 제자는 아직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는
이런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21. "바라문이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일러 여래의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표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제자는 아직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는
이런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22. "바라문이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일러 여래의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표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제자는 아직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23.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합니다.
그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합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합니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시 여기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일러 여래의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표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제자는 아직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는
이런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24.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합니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압니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말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말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압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일러 여래의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표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제자는 아직'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는
이런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25.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합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을 일러 여래의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표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제자는 아직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고
그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5)
(*5) "'그러나 성스러운 제자는 아직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na tveva tāva ariyasāvako niṭṭhaṅgato hoti.).'는 것은
앞의 선정과 신통지들은 외도들(bāhirakā)과도 공통적(sādhāraṅā)이고,
또한 도의 순간(magga-kkhaṅa)에도 그 역할(kicca)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결론에(niṭṭha) 이르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apica kho niṭṭhaṁ gacchati).'는 것은
도의 순간에, 마치 큰 코끼리를 본 코끼리 사냥꾼처럼,
정등각자이시고 세존이시라고 이런 측면(ākāra)에서
삼보에 결론을 짓게 된다는 뜻이다."(MA.ii.217)
26. "그가 이같이 알고 이같이 볼 때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에서 해탈합니다.
존재에 [184]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합니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합니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깁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압니다.(*6)
바라문이여, 이것을 일러 여래의 발자국이라고도 하고,
여래의 흔적이라고도 하며, 여래의 표시라고도 합니다.
바라문이여, 이제야 성스러운 제자는
'세존은 정등각자이시고,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라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7)
바라문이여, 이것으로 마침내
코끼리 발자국의 비유는 상세하게 완성된 것입니다."
(*6) 『맛지마 니까야』에 포함된 전체 152개의 경들 가운데서
삼명(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은
M4, M19, M27, M36, M39, M51, M53, M54,
M60, M65, M71, M76, M79, M100, M101, M125의
16개 경 정도에 나타난다.
그리고 육통(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은
M6, M12, M73, M77, M108, M119의
6개 경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가운데 삼명이 나타나는 13개 경의 누진통은 긴 누진통의 정형구로 나타나고,
그 나머지와 육통에 포함된 누진통은 짧은 누진통의 정형구로 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역자 서문 §8-(1)-2)
삼명-육통-8통과 누진통의 정형구를 참조하기 바란다.
(*7) "'이제야 성스러운 제자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ettāvatā kho ariyasāvako niṭṭhaṅgato hoti).'라는 것은
이와 같이 도의 순간에 결론을 지으면서 아라한과의 순간(arihatta-phala-kkhaṇa)에
모든 형태의 역할을 끝내었기(pariyosita-sabba-kiccatā) 때문에
모든 측면(sabb-ākāra)에서 삼보에 결론(niṭṭha)을 짓게 되었다는 말이다."(MA.ii.217)
27. 이렇게 말씀하시자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 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짧은 경(M27)이 끝났다. -
첫댓글 니까야(맛지마니까야) - 코끼리 발자국 譬喩의 짧은 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