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유럽 오케스트라가 아시아를 지나칠 수는 없다. 문화교류의 방향이 지난 세월 동안 바뀌었다: 몇몇 재능있는 음악인들이 극동의 먼 고향을 떠나 유럽에서 자리잡고 있다. 2009년 반 클라이번 콩쿨 우승자인 젊은 중국 피아니스트 Haochen Zhang은, 지난 가을 상하이에서 Lucerne Festival Orchestra (LFO)와 솔리스트로 협연했다. 그 후 바로 루체른 피아노 페스티벌의 리사이틀에서 리스트 B플랫 단조 소나타와 드뷔시, 야나체크, 불레즈를 연주하여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국에서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서양의 클래식 음악은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었었다. 그렇지만 오래전에 그런 장식의 의미에서 벗어나 지금은 참된 열정으로 성장했다. 바이올리니스트 Manuel Kastl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청중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감동에 찼는지 경험했다. 그는 일년 전, 그곳에서 Riccardo Chailly가 지휘하는 LFO의 아시아 투어와 함께 했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인 Kastl은 그 친밀한 기질을 매우 잘 느낄 수 있었다. 그 나라에서 음악은 거대한 쇼핑몰 -그 안에 롯데콘서트홀이 있다- 의 상품처럼 열심히 소비되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음악지식이 풍부한 젊은 청중들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우승자의 길
그곳의 콘서트 관객들이 오늘날 스위스나 독일의 동년배들처럼 모차르트나 베토벤, 쇼팽에 친숙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많은 가정들은, 검소한 생활 가운데에서도 아이들을 악기나 노래 수업에 보낸다. 그 씨앗이 특별히 기름진 땅에 떨어진 것 같다. 그 새싹들은 지난 세월동안 국제 경쟁의 많은 곳에서 이기고 있다.
Bozen에서 2년마다 열리는 부조니 페스티벌과 콩쿨에서 이번 여름 한국의 재능있는 음악인들이 참가하는 것이 놀랍다. 이 콩쿨의 우승자와 입상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Alfred Brendel, Martha Argerich, Maurizio Pollini 이름을 들 수 있다. 올해 4명의 한국인이 2019년 파이널에 올랐다. 이 페스티벌은 지난 해 유명 콩쿨에서 우승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초대했다.
이러한 한국의 성공은 교육과 장인정신에 대한 - 이 둘은 종종 반작용과 진부한 논리로 설명되지만 - 서로 다른 이해로 설명될 수 없다. 세계에서 제일 어렵고 동시에 의미있는 바르샤뱌 쇼팽콩쿨의 2015년도 우승자 조성진은 Bozen에서 향후 취리히 음악총감독이 될 Gianandrea Noseda 지휘의 European Union Youth Orchestra와 매우 개성있고 매혹적인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자주 연주되는 이 작품에 그는 극도로 섬세하고 개성있게 접근하여 찬란하고 다감한 뉘앙스를 살려냈다. 그 후 그의 새 거주지 베를린의 Festival Young Euro Classic에서도 환호를 받았다.
문지영은 2014년 제네바 콩쿨, 그 일년 후 Bozen에서 열린 부조니 콩쿨에서 우승했다. 시대건축 상공회관에서의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슈만의 소나타 F#단조와 C장조 판타지에는 뛰어난 테크닉과 동시에 영혼이 들어있었다. 슈만의 또 다른 자아로서, 방종한 열정가 플로레스탄과 내적 존재로서의 몽상가 오이제비우스를 강렬하게 대조시켰다. 2017년 반-클라이번-콩쿨 우승자인 선우예권은 브람스 소나타와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D935를 흠잡을 데 없이 연주했다. 지난 해 ARD-콩쿨 우승자인 손정범은 모차르트 판타지 KV 397 에서부터 프로코피에프의 대단히 어려운 피아노 소나타 7번의 프로그램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적의 땅»?
음악적 «기적의 땅» 한국의 비밀에 대해 2012년 벨기에의 다큐멘터리 필름이 나왔는데, 올해 부조니 페스티벌에서 다시 상영되었다. 그 관찰에 따르면: 1990년 중반까지는 한국인이 파이널 라운드까지 오르는 일이 드물었다 - 그러나 2011년에 총 10개의 큰 콩쿨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 후 더 상승하고 있다.
«한국 음악인 미스테리»의 감독 Thierry Loreau와 Pierre Barré는 그들의 나라에서 집중적인 지원을 받는 몇몇 젊은 음악인, 성악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14살이었던 바이올리스트 강유경은 매일 9시간씩 연습했다. 그녀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Kniga)에서 수업을 받았는데, 그곳은 10년 전 창설된 기관이다. 영재들이 초등시기부터 그곳에서 무료로 수업을 받으며 대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1993년 개교하여 음악 뿐 아니라 연극, 무용, 미술, 영화연출을 공부할 수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K-Arts) 부속기관이다. 새천년에 들어섰을 때 정부는 예술을 «미래의 자산»이라 설명했다고 한예종의 박종원 전 총장은 말한다.
성공요인
전세계 하이테크-산업으로 유명한 이 나라의 음악교육에서는 무엇보다 테크닉적 능력에 여전히 집중하고 있다. 신진 음악가들은 스승의 지도를 그대로 따르며, 세계 일류의 콩쿨에서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자신의 고유한 판타지와 개성으로 레퍼토리에 접근하는 힘을 기르는 일은 외국 유학이나 매스터클래스에서 처음 배우는 경우가 많다. 많은 한국 예술가들이 국제콩쿨에서 우승하는 것이 더 놀라운 이유이다.
기존에 받아온 교육과 그 속박에서 벗어난 창조력, 이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이 성공요인으로 보인다. 소프라노 홍혜란은 2011년 유명한 퀸 엘라자베스 콩쿨에서 우승했다. 그녀는 음악 덕분에 일찍 엄격한 관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음악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내적 자유를 발견했다: «저는 집에서 항상 착하게 굴어야했고, 상냥한 소녀여야 했어요» 라고 이야기한다. «큰 소리로 웃거나 울면 안됐어요. 그래서 내 안에만 불꽃이 있었죠. 노래할 때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