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스터 시험(the Master of Wine exam)을 치르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서는 것과 같다. 험난하지만 일단 등정에 성공하면 그 성취감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영국의 와인평론가인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이 자신의 회고록(Confessions of a Wine Lover, 1997)에서 술회한 소감 가운데 한 대목이다. 그녀는 1984년에 비업계 인사로는 최초로 ‘와인 마스터’(MW : Master of Wine) 타이틀을 취득했다. 1953년 영국에서 시작된 와인 마스터 시험은 1983년까지 와인업계 내부의 수입, 도매, 소매 등 거래상들만이 응시할 수 있었다. 그 후 1984년부터 업계 바깥의 인사들에게도 응시가 허용됐고, 1988년부터는 영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국제적으로 일정한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게 문호가 개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 마스터 타이틀은 서양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시험문제가 영어로 출제되고 오랜 와인문화의 역사와 전통이 동양과는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독차지하던 그 관행 아닌 관행을 깬 최초의 동양인은 다름 아닌 한국 출신의 지니 조 리(Jeannie Cho Lee). 원래 한국 이름은 이지연(李志延)이지만 홍콩에 거주하는 이씨는 ‘지니 리’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린다. 지니 리는 지난 2008년 9월 5일 와인마스터협회에서 발표한 15명의 2008년 MW 자격 취득자 명단에 포함돼 아시아 사람으로는 최초로 와인 마스터가 되는 영예를 안았다.
2008년 9월 현재 전 세계 와인 마스터의 숫자는 278명. 그 중에서 여성은 약 70여 명에 달한다.필자는 지난 2006년 6월 일본 도쿄의 한 와인 관련 모임에서 지니 리를 처음 만났는데 그녀가 와인 마스터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MW시험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9월 초 와인 마스터 시험(MW Exam)을 본 지니 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이론과 실기 모두 패스하여 와인 마스터가 되기 위한 관문의 마지막 단계인 논문(dissertation)을 쓰게 되었다고. 사실 지니 리 자신은 시험이 너무 어려워 크게 기대를 안했는데 협회로부터 패스했다는 통보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다시 1년 뒤인 2008년 9월, 논문이 통과되어 공식적으로 MW 자격을 거머쥔 지니 리가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 인터뷰를 통해 지니 리가 체험한 와인 마스터 시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MW 타이틀에 도전하는 한국의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들어본다. |
MW 시험과 ‘와인 마스터’로의 공부길
서울에서 태어난 지니 리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가서 공부했고 대학 다닐 때 와인에 조금 관심은 있었지만 와인과 관련된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1986년 스미스 칼리지(Smith College)에 들어가 국제관계를 중심으로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죠. 1992년에는 하버드대학원에서 국제관계를 중심으로 공공정책학 분야의 석사를 받았습니다. 이후 몇 년간은 기업 홍보 및 커뮤니케이션 쪽의 일을 해봤고, 결혼 후 남편 직장이 아시아 지역이라 홍콩과 말레이시아에서 주로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했어요.” 그녀가 본격적으로 와인 마스터 과정에 도전하게 된 것은 1999년 잰시스 로빈슨을 미국에서 만나 권유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지니 리는 영국의 와인 관련 교육기관인 WSET의 디플로마(Diploma) 과정을 끝낸 상태였다. 와인 마스터 과정을 공부하고 MW 시험을 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요구된다. WSET의 디플로마 또는 보르도대학교, UC 데이비스 등 협회가 인정하는 대학에서 와인 관련 학위를 받아야 한다. 적어도 5년 이상의 와인 관련 업계 경력도 필요하다. 또한 ‘스폰서십’(Sponsorship)이라는 제도가 있어 MW 지망생은 기존의 와인 마스터 한 명으로부터 일종의 멘토(mentor) 형식의 지도와 후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잰시스 로빈슨이 멘토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지니 리의 MW 타이틀 도전은 2001년에 가서야 가능했다. 어린 두 딸의 육아문제로 시험공부에 몰두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니 리는 MW 과정에 등록한 뒤 얼마 안 되서 또 쌍둥이 딸의 임신으로 공부가 늦어졌고 2005년에는 딸 둘이 다치는 사고가 나서 또 시험을 못 보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와인 마스터 과정과 시험은 단순히 일회적 시험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연속적인 이론 공부와 테이스팅을 통해 사고력을 단련시켜야 한다. “협회에서는 와인 마스터 과정을 ‘MW Education Programme’으로 부르지요. 세 단계를 거쳐야 최종적으로 MW 자격을 땁니다. 첫 단계는 1차년도 과정이죠. 협회가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가하고 자기 주도의 공부를 전개해 1년차 역량 평가(First Year Assessment)를 받습니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 많이들 패스합니다. 둘째 단계는 2차년도 과정인데 세미나와 멘토의 지도를 받는 논문 작성 공부를 주로 하게 됩니다. MW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이죠. MW 시험은 매년 6월에 나흘, 정확히 말하면 사흘과 반나절 동안 이론(Theory Exam)과 실기(Practical Exam)로 나누어 집중적인 테스트를 받습니다. 이론과 실기 모두 주관식으로 답안을 작성합니다. 수험생의 창의적 논리전개가 중요하죠. 이론 시험은 포도재배, 와인의 양조, 와인 비즈니스, 와인과 관련된 현대적 이슈(Contemporary Issues)의 네 가지 분야로 나뉘어 출제됩니다. 앞의 세 가지는 각각 여섯 문항 가운데 3개를 골라 답안을 작성하고 마지막 현대적 이슈 문제는 다섯 문항 가운데 2개를 고릅니다. 모두 하루에 3시간씩 4일 동안 답을 쓰는데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의 표현이 관건이죠. 실기 시험은 3일간 오전에 2시간 15분씩 치르는데 12가지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주어진 질문에 따라 주관식으로 답안을 작성하죠. 와인의 품종, 빈티지, 산지 등을 알아맞히는 것뿐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개진해야 합니다. 따라서 품종이나 산지 등이 틀렸더라도 논지가 타당하면 점수를 줍니다. 대체적으로 하루는 화이트 와인, 다음 날엔 레드 와인, 마지막 날엔 디저트 와인, 강화 와인, 샴페인 /스파클링 와인을 다룹니다.”와인 마스터 자격을 따는데 가장 혹독하고 어렵다는 2차년도의 MW 시험. 지니 리는 2007년 6월 5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시험을 봤다. 이론과 실기 모두 7가지 분야를 합쳐 18시간 45분에 달하는 고행의 시간이다. 참고로 2007년 이론과 실기분야에 실제로 출제됐던 문제를 각각 한 가지씩 골라 그 난이도를 가늠해보자. 먼저, 첫날 이론 시험(Paper 1) 문제. 두 가지 섹션으로 나뉘는데 Section A에서 두 문항 가운데 하나를 골라 답하고, Section B의 4문항 중 2개를 골라 주관식으로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다. Section A의 두 문항. ①포도밭 관리자로서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데 요구되는 핵심 요건에 관해 논하라. ②포도밭에서 포도의 생산량과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상이한 토양 관리방식에 대해 논하라. 이어지는 Section B의 네 문항. ③포도 재배자들이 한 해의 상이한 시기에 포도나무 프루닝(pruning)을 하는 방식과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라. ④젖산발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해 기술하고, 와인메이커가 와인의 바람직한 산도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처방에 관해 논하라. ⑤포도 수확이 끝난 후, 온도(temperature)가 와인생산에 미치는 역할에 대해 논하라. ⑥와인메이커가 선택할 수 있는 엑스트랙션 방법(extraction methods)에 대해 기술하고 그것이 와인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논하라.이어서 실기 시험의 마지막 세 번째 문제(Paper 3)를 보자. ①와인 1-6 까지는 모두 강화와인이다. a)생산국과 산지를 정확히 답하고 그 이유를 기술하라. b)각 와인의 생산방법(method of production)에 대해 기술하라. c)각 와인의 알코올 함량을 퍼센티지로 표현하라. d)각 와인의 품질에 대해 평가하고 숙성 정도를 예측하는 코멘트를 하라. ②와인 7-10은 스파클링 와인들이다. 7-8과 9-10의 짝(pair)은 각각 유럽 와인과 뉴 월드 와인으로 구성돼 있다. 각 와인에 대해서, a)생산국과 산지를 정확히 답하고, 그 이유를 기술하라. b)사용된 포도 품종에 대해 설명하라. c)각각의 짝에 대해 품질을 서로 비교대조하고 그 이유를 기술하라. ③11-12 와인은 대량 생산되고 있다. 각 와인에 대해, a)생산방법에 대해 기술하라. b)품질에 대해 논하고 각각 겨냥하는 시장(target market)에 대해 기술하라. 여기서 블라인드 테이스팅 문제로 제시된 와인 리스트는 번호 순으로 다음과 같다.
1)Manzanilla de Sanlucar, Barbadillo/ NV/ 15.5% / Jerez, Sanlucar /Spain 2)Croft Original Pale Cream Sherry/ NV/ 17.5% / Jerez/ Spain 3)Sercial Madeira 10 Year Old, Barbeito/ NV/ 19.0%/ Madeira/ Portugal 4)Quinta do Noval LBV Port/ 1999/ 19.5%/ Douro/ Portugal 5)Vintage Port, Quinta de la Rosa/ 2003/ 20.0%/ Douro/ Portugal 6) Muscat de Beaumes de Venise, Durban/ 2004/ 15.0%/ Rhone Valley/ France 7)Louis Roederer Brut Premier/ NV/ 12.0%/ Champagne/ France 8)Roederer Estate Quartet/ NV/ 12.0%/ Anderson Valley, CA/ USA 9)Billecart-Salmon Rose/ NV/ 12.0%/ Champagne/ France 10)Green Point Rose/ 2003/ 12.5%/ Australia 11)Blossom Hill california White/ NV/ 11.0%/ CA/ USA 12)Black Tower Rivaner, Kendermann/ 2006/ 9.5%/ Germany
지니 리는 MW 시험이 통과된 후 ‘홍콩 와인시장이 세계 고급와인의 허브(hub)로서 어떠한 잠재력을 지녔는가’를 논문 주제로 선택했다. “2차년도 과정을 끝내고 MW 시험을 통과하면 마지막 단계인 논문(Dissertation) 작성에 들어갑니다. 영어로 1만 단어 분량의 논문을 써야 하는데 독창적인 사고와 남의 것에 의존하지 않는 조사연구(first-hand research)가 중요하죠. 최종심사에서 패스가 안 되면 다시 써내야 하고 때로는 논문 주제의 변경도 요구받습니다.” 흔히 ‘와인 마스터’(MW) 자격을 와인 분야의 ‘박사학위’(Ph.D.)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MW 자격을 학문적 성취의 단위인 ‘학위’에 비유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와인 마스터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은 학문적(이론적) 성취보다는 업계의 전문성을 제고하려는 실용적 고려가 더 컸기 때문이다. 영국에 본부를 둔 ‘와인마스터협회’(IMW : The Institute of Masters of Wine)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첫머리에 “협회는 와인분야의 art(技), science(學), business(業)를 탁월하게 진흥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나와 있다. 때문에 와인 마스터 시험은 포도재배에서부터 와인의 양조, 유통, 마케팅, 서비스, 역사와 문화 등 와인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걸쳐 다양한 지식을 요구한다. 그것도 단순히 해박한 지식만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론과 실기시험으로 나누어 주관식 글쓰기로 응시자의 창의적 사고력을 테스트한다. 지니조리가 한국의 와인학도들에게 주고자 하는 어드바이스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적 덕목을 갖추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실패(Fail)를 겪어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마스터오브와인을 준비하면서 아무리 많은 준비를 거쳐도 고난의 과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일에는 실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겸손함이 생기더라는 것.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지속성(Persistence)이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단순히 혼자만의 지식으로 패스했다기보다는 도와주는 사람과 얼마만큼의 운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마치 도미노작용과도 같아서 최고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당부하고 싶은 것은 언어이다. 와인은 서구의 문화이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식도, 이름도 모두 타국어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영어, 불어를 기본으로 스페인어까지 탐구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오브와인의 타이틀을 따 낸 지니조리에게 수고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 전개될 그녀의 눈부실 활약에 미리 갈채를 보내는 바이다.
[출처] [이세용] 아시아 첫 MW 지니 조 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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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차라리 행정고시 패스가 빠르겠다.. ㅜㅜ
대단한분이네요. 동석씨고마워요 좋은자료 잘보앗음니다. 와인이뭐이리 어려워요 그냥먹으면되는데 !! 정말머리아프겠다.
할만 한데요? ㅋ
좋은 글 감사.. 또한명의 MW 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