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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기어에 대한 성찰
이 홍사
바고를 가야 한단다.
양곤에는 부품이 없단다.
양곤에서 오십 마일이라고 했으니 거의 팔십 킬로미터다.
길은 안다. 승용차로는 여러 번 가보았지만 오토바이로는 처음이었다. 바고를 갈 수는 있는데 부품을 어디서 사야하는지 모른다. 부품을 빼서 준다면 그걸 들고 오토바이부품가게를 돌아다니며 보여주고 같은 것을 사오면 되지만 말로서는 아무래도 설명이 어렵겠다.
바고는 미얀마에서 오토바이 천국이다.
꼭 베트남의 호찌민처럼 오토바이 물결이 흐르는 곳이다. 양곤은 메인로드에서 오토바이 통행을 금지시켰지만 바고는 아니다. 큰길에서도 오토바이 통행이 허용되는 곳이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족 수 대로 오토바이가 한 대씩 다 있는 곳이다. 식구가 넷이면 오토바이가 네 대라는 말이 있다. 학교가면서 타고 가고, 논에 물길을 보러 타고 가고, 장보러가면서 타고 가는 곳이다.
차를 끌고 거기에 가면 오토바이가 어지간히 성가신 존재이고 조심을 해야 하는 대상이다.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 같은 고을인데 미얀마에서 오토바이 대리점이 가장 많은 곳이다. 오토바이 부품 또한 거기를 거쳐서 이 나라의 전국으로 퍼져나간단다.
또아매?
갈래? 라고 물었다.
상대는 키가 훤칠한 인도계의 오토바이 고치는 수리공이다.
부품을 신청하면 이틀이 걸린다는 말에 홍랑은 농담으로 물었다. 헌데, 이 녀석은 가겠단다.
정말?
그렇다고 했다. 오토바이 가게 앞에는 수리하러 들어온 오토바이가 별로 없었다. 고치는 기술자는 셋인데 고작 한 대를 뜯어놓고 한 놈이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또아비!
가자고 했다. 시간은 오전 열 시 경이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설마, 했다. 헌데 이 녀석은 기름이 묻은 론지를 갈아입고 바람막이 점퍼를 하나 걸치고 헬멧을 찾아 쓰고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 진짜네! 홍랑은 상관이 없다. 오늘 할 일은 인부들에게 시키고 나왔고, 또 성질이 급해 부품을 신청하고 이틀을 기다릴 자신이 없을뿐더러, 가서 확인하고 사야지 정확한 부품을 사는, 최선의 방법이지.
오토바이가 문제를 일으켰다.
양곤사람들이 많이 타는 작은 오토바이라면 웬만한 부품들은 양곤의 오토바이 가게에 다 있지만 홍랑의 것은 대형 오토바이다. 그래서 부품이 귀하다.
일본제 혼다에서 나온 쉐도우Shadow, 그림자라는 모델인데 사백시시 급이다. 중후한 게 일단 무게감이 있어 보이고 펑퍼짐한 게 어디를 가나 눈길을 받는 오토바이다. 가격으로 따지면 미얀마에서 웬만한 월급쟁이 일 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고 중고를 구입한 홍랑의 백마인데, 이리 견주어보고 저리 견주어보다가 큰마음을 먹은 것이다.
홍랑은 이 동네 오토바이 가게를 다 안다.
홍랑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 어디서나 소리친다.
헤이! 마이프렌드!
홍랑은 이 동네에서 마이프렌드로 통한다. 스무 살 처먹은 놈도 마이프렌드고 육십을 먹은 작자도 마이프렌드다. 코리아 마이프렌드라면 이 동네에서는 다 안다. 적어도 이 동네에선 유지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 홍랑은 손을 흔들어주고 기분 좋게 골목길을 질주 한다.
헌데, 이놈을 타면 어디선가 소리가 난다. 기어박스에서 베어링이 나간 소리처럼 가속 액셀레이더를 당기면 콸 콸 콸, 쇠를 깎아 먹는 듯, 아주 듣기에 거북하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골목에서 잠시 탈 때는 모른다.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소리가 나는 것이다. 옆에서 듣는 사람은 모른다. 타는 사람이 진동이나 감으로 느끼는 것이지. 보통 신경이 거슬리는 소리가 아니다.
뒷바퀴의 베어링이 나갔나?
처음에는 오토바이 센터에 가서 뒷바퀴를 분해하고 베어링을 확인했다. 멀쩡했다. 오토바이 수리공은 체인에 기름을 발라 주었다. 그러니 소리가 좀 덜한 것 같기도 하고, 헌데 타다보면 또 소리가 나는 것이다. 오토바이 수리공에게 직접 타보라고 했다. 한 바퀴 테스트를 하고 와서는 체인의 유격을 조금 팽팽하게 조정해주었다.
그래도 소리가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날은 다른 오토바이 가게에 갔다. 거기서도 체인 유격을 조정해주었다. 분명히 기어박스 쪽에서 나는 쇠를 갉아먹는 소리인데?
어제 간 다른 오토바이 가게에서 정확한 진단을 내렸다. 뒷바퀴에 붙은 기어와 체인을 당겨보더니 체인과 기어가 너무 닳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 말이 제일 믿음이 갔다. 홍랑이 생각해도 그 말에는 이치상 신빙성이 있었다. 그 자식이 바로 오늘 바고를 가겠다고 나선 이 인도계의 검둥이 녀석이다.
타고가면서 소리를 테스트하고 적절한 부품을 사서 오면 되겠다. 양곤의 오토바이 가게, 수리공들은 오토바이가게 소속이긴 한데 월급을 받는 직원이 아니다.
오토바이가게에서는 부품만 팔고 수리비는 수리공이 따로 받는다. 그러니 근무시간에 바고를 가더라도 오토바이 가게에서는 할 말이 없다.
이 자식들은 근무처를 자주 옮기는 편이다. 이쪽 오토바이가게에 손님이 적으면 다음날 보면 같은 동네 다른 오토바이가게 앞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홍랑도 처음에는 멋모르고 오토바이를 고치고 나서 오토바이가게 주인이 요구하는 금액을 주고 와버린 적이 있다. 다음날 지나가다가 불러서 갔더니 수리비는 따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날 준 것은 순전히 부품 대금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파악하니 그런 시스템이었다. 오토바이가게가 수리공과 동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수리 기술이 좋아야 오토바이가게도 잘되는 게 당연한 이치.
일단 인도계 검둥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서 오라고 하고는 고물 오토바이를 끌고 앞장을 섰다. 그 오토바이는 정말이지 오토바이 수리공만 타는 오토바이다. 뼈대밖에 없는 것이다. 오토바이가 달릴 수 있는 기본 기능, 그것만 여기저기 헌 오토바이 것을 뜯어다 붙여 개조하여 만든 것이다.
검둥이가 앞장을 서서 골목으로, 골목으로 따라가니 제 집인 모양이었다. 함석으로 만든 보잘 것 없는 미얀마의 주택이었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집에 들어가서 무얼 찾아서 작은 가방에 넣어 메고는 그 위에 바람막이를 걸쳤다. 그리곤 바로 나와서 홍랑의 오토바이 뒤에 탔다. 자신이 없다. 이 자식을 태우고 바고까지 가기에는 자신이 없는 것이다. 가다보면 경찰도 있을 것이고, 양곤은 대로에 나가지 않고 골목으로 빠져 나가야 하는 일이다. 골목을 다 모른다.
-네가 운전해, 인마!
오토바이를 녀석에게 넘겨주고 뒷좌석에 올라앉았다.
드디어 출발이다. 꽁무니에 실려 조금 달리다보니 녀석에게 믿음이 갔다. 기술자를 직접 데리고 가니 정확한 부품을 사서 정비가 될 것이고, 녀석은 뒤에 외국인을 태웠다고 과속을 하지 않고 안전운전을 했다. 바고를 가려면 국도지만 톨게이트가 세 곳이나 있다. 일종의 유료도로이다. 물론 하이패스 차선은 없다. 하이패스 차선이 있다면 오토바이 통로다. 오토바이는 매표소에서 갓길로 그대로 통과다. 시내를 벗어나서 한참을 달리다가 녀석은 연료를 넣어서 가자고 했다.
-그러자.
바고까지 갔다가 오려면 아무래도 휘발유가 모자랄 것이다. 레구읍을 지나다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그게 마지막 주유소다. 다음 주유소는 바고에 거의 다 들어가야 있는 것이다. 기름을 넣으면서 녀석에게 기어박스에서 소리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까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제 체인에 기름을 잔뜩 발라 놓았으니 소리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갔다 오는 게 번거롭고 성가시지만 라이딩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이 편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그냥 바람을 쐬러 가는 것이다.
그래! 달려라 백마야! 아니, 검둥아!
검둥이라고 하지만 이 자식은 인도계 중에서도 참 순진하게 생겨 정감이 갔다. 버마족은 인도계 좋아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평화롭게 사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종족 갈등이 있는 나라다. 인도계는 태생부터 하도 약아빠진 행동을 해서 버마족이 깔라라는 별명으로 멸시하며 부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을 두고 쪽빠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내의 떼인지제라는 곡물시장에 가면 반은 인도계인데 상술과 이문에 엄청 밝아서 가급적이면 버마족이 하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며 인도계를 좀 경멸하는 투다.
헌데 검둥이는 인도계 중에서도 약아빠진 게 아니고 순진하게 생겨 먹었다.
두 시간을 달렸다.
바고에 도착하니 엉덩이뼈도 아프고, 허리를 비롯하여 온몸이 뻐근했다. 뒤에 타는 게 의자가 불편해서 더 힘들었던 모양이다. 시간은 점심나절이 훌쩍 넘었다.
거의 두 시간을 달려왔는데 중간에 먹은 거라고는 길가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잠시 쉬어면서 커피를 한 잔 마신 것과 비스킷을 커피에 찍어서 먹은 것이 고작이었다.
녀석은 바고에 도착하면 바로 부품가게를 찾아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고에 도착하여 서행을 하면서 길가의 부품가게를 살피더니 짜익띠오 빠지는 길 끝까지, 시내를 벗어나는 곳까지 갔다가 오토바이를 돌려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한참을 통화를 하고는 감을 잡았는지 시내에 다시 들어가서 신호등 앞에서 좌회전을 했다. 전화에 베베초, 라는 말을 홍랑도 들었다. 왼쪽이라는 말이다.
드디어 찾은 모양이다. 어느 부품 가게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헌데 사는 것이 절구의 오토바이 부품이 아니었다. 그건 여기에 없다고 하면서 제가 바람막이 안에 걸치고 있던 손가방에서 꺼낸 카브레이더 부품을 사는 것이었다. 어느 기종에 들어가는지는 몰라도 조막만한 게 상당히 복잡하고 정밀한 부품이었다.
-음, 그래서 그렇게 쉽게 바고에 가겠다고 했군!
검둥이가 집에 들렀다가 온 이유는 그 부품을 가지러 갔던 모양이다. 검둥이는 헌 부품과 새 부품을 이리저리 재어보고 맞추어 보더니 샀다. 그 다음은 홍랑의 부품을 사러 가야하는 것이다. 거기서 물어서 어디로 갔는데 양곤으로 나오는 길 입구였다. 불법유턴을 해서 어느 부품가게에 가니, 무시부! 없다고 했다. 거기서 물어서 또 다른 부품가게에 갔는데 거기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거 낭패다. 무조건 찾아 인마!
바고에 오면 쉽게 구할 줄 알았는데 아닌 것이다. 불법유턴을 몇 차례, 몇 군데를 물어보고 한 군데를 찾아냈다. 점원은 아가씨였는데 나오더니 홍랑의 오토바이 체인을 보고 기어를 자로 재어보고 들어가 비닐에 포장된 기어를 꺼냈다.
홍랑은 기어를 보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검둥이 녀석은 기어를 받아서 포장을 벗기고 밖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기어를 맞추어보고 홍랑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기어는 정말이지 위대한 인류의 개발품이다.
볼트와 너트도 옛날부터 존재하던 게 아니다. 누군가가 개발한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볼트와 너트의 개발은 아이언산업의 거대한 혁명이고 기어와 체인의 개발은 아이언기술의 대변혁을 가져왔다. 정말 위대한 개발이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걸 개발할 수가 있었을까? 모든 기술은 볼트와 너트가 기본이고 기어와 체인을 바탕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것이다. 볼트와 너트를 개발한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위대한 발명이다. 노벨상이 생기기 이전에 개발된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 부품가게에서는 엔진의 회전력에 붙은 구동기어와 뒷바퀴에 붙은 피동기어가 한 세트로 판매하고 있었다. 다음엔 체인이 문제였다.
-시레!
점원인 아가씨의 말인데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홍랑은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초오레!
예쁘다는 말이다. 힘들이지 않고 환심을 살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말이다. 하여, 홍랑은 미얀마에서 그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일단 그 말을 하면, 제 주제도 모르고, 모두가 웃으며 고맙다고 한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쁘다고 하고 잘 생겼다고 하면 어디를 가든, 뺨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부품가게 아가씨는 그렇게 많이 진열된 부품 중에서 체인을 금세 찾아냈다. 검둥이는 체인도 포장을 벗겨 기어에 맞추어 흔들어 보았다. 옆에서 홍랑이 보아도 유격이 없다. 꼭 맞는 것이다. 아가씨가 홍랑을 두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검둥이에게 묻는 모양새였다. 검둥이가 코리아! 라고 하자, 아가씨가 안녕하세요, 라고 홍랑에게 인사를 했다. 한국의 드라마가 미얀마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하여, 안녕하세요, 정도는 미얀마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말이다.
계산을 하면서 보니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일본제 순정부품이라면서 한국의 가격보다 비싸게 느껴졌다. 그래도 찾아냈으니 이게 어디냐? 좀 깎아달라는 농담을 하면서 계산을 했다. 양곤에 앉아서 배달하는 걸 받았더라면 훨씬 더 비싼 건 당연한 이치. 이곳에서 물건을 사다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턱도 아닌 것이 오지게 비싼 경우가 있고 얼마를 예상했는데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젠 밥 먹으러 가자.
검둥이도 배를 쓸어 보이며 배가 고프다고 했다.
가는 길에 식당을 찾아라. 둘은 오토바이를 타고 양곤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오다가 길가의 식당에 들렀다. 노천식당은 아니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일종의 기사식당이 되는 셈인데 식당 앞에 오토바이가 복잡했고 손님이 넘쳐나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세우자 검둥이 녀석은 기어박스에서 소리가 난다고 했다. 이제 기름기가 떨어지니 소리가 나는 모양인데 홍랑은 뒷자리에 타고 있어서 느끼지 못했다. 검둥이 녀석은 오토바이를 세우고 기어를 넣었다가 뺐다가하며 가속 핸들을 당겨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이상이 있는 거지?
검둥이 녀석은 그렇다고 했다.
미얀마에서는 가장 빨리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게 샨 카욱쉐다. 풀이하면 쌀국수인데 비빔국수로 금방 나오는 것이다. 검둥이에게 샨 카욱쉐를 먹자고 하니 검둥이가 시계를 보더니 좋다면서 그러자고 했다. 샨 카욱쉐를 먹고 그 자리에서 입가심으로 커피도 한잔 마셨다.
둘이서 그렇게 한 끼를 먹으면 가격이 한국의 김밥 한 줄 가격이다.
커피를 마시며 검둥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장가는 갔고 아들 하나와 딸이 하나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가 지금 임신 중이라고 했다. 부럽다. 이 나라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는다. 보통이 네다섯 명이다. 길을 가다보면 배가 만삭인 여자를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는 말은 검둥이에게 하지 않고, 내가 네 단골이 되어 줄게. 홍랑은 그 말을 잊지 않고 했다.
그 식당에서 홍랑이 자부심을 느낀 건 처마에 차양으로 드리워진 천막을 보고 난 뒤였다. 한국산이다. 홍랑이 이 나라에서 면밀히 관찰한 바에 의하면 천막은 어느 나라 것이든 한국의 제품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전부가 Made in Korea 이다. 우리나라 제품 중에서 휴대폰과 드라마를 빼 놓으면, 가격은 중국제에 밀리고 품질은 일본제를 따라 잡지 못하는, 어중간한 것이 태반이란다. 헌데, 세계시장에서 석권하고 있는 것은 바로 비닐천막이다. 저건 어디를 내놓아도 한국제품이 당연 일등이란다.
다이아몬드. 화살표. 티티티. 얼른 생각이 나지 않지만 여러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 다양하게 들어와 있다. 홍랑이 마당에 세우는 오토바이를 덮는 천막도 사다보니 한국산이었다. 비닐천막 중에서 다른 나라 제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렇게 오토바이가 많은데, 그렇게 돌아다니며 한국제품은 단 한 대도 보지를 못했다. 한국도 오토바이를 생산하는 업체가 두 군데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헌데. 전부가 일본제 아니면 태국제품이다. 검둥이에게 저 천막이 한국산이라고 말을 했다. 검둥이 녀석은 한국제가 제일이라고 하며 엄지를 세워보였다.
천막하나에 자부심을 느끼다니?
말을 하고 생각하니 어지간히도 자랑할 게 없었던 모양이다.
우기의 절정이라 하루에 한두 차례 비가 오기 마련인데 희한하게도 비를 만나지 않고 양곤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비가 홍랑을 피해 다녔는지 홍랑이 비를 피해 다녔는지 모르겠다. 우의는 항상 오토바이 새들백에 넣고 다니는데 바고까지 갔다 오는 동안은 쓸 일이 없었다. 구름이 옅게 끼어 있어서 선선한 게 오히려 달리기에 좋았다. 이곳 사람들은 추위에 약하다. 홍랑은 선선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람막이를 입은 자식이 입술이 새파랗게 변해서 춥다고 했다. 양곤에 거의 도착하자 기어박스에서 나는 쇠를 갉아먹는 듯, 듣기 거북한 소리가 홍랑에게도 느껴졌고 들렸다. 양곤에 들어오니 또 골목으로, 골목으로 들어가 검둥이는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집 앞에는 만삭의 검둥이 아내가 나와서 빨래를 하고 있다가 반색하고 일어섰다. 정말 만삭이다. 홍랑은 갑자기 만삭인 그녀의 배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얼레? 내가 왜 이러지? 미쳤군!
항상 그렇지만 홍랑은 배가 부른 여자를 보면 그렇게 보기가 좋았고 식구가 많은 집이 항상 부러웠다. 검둥이의 아내 그녀 콧날이 오뚝한 인도계였는데 피부는 좀 검었지만 눈매가 선하게 보이면서 고왔다.
가장이 이방인을 뒤에 태우고 들어가니 빨래를 하다말고 반색을 하며 들어가서 차를 한잔 마시고 가라고 했는데 심리적으로 그럴 여유가 홍랑에겐 없었다. 오늘 중으로 고쳐야 한다. 그래야 꿈자리가 가뿐할 것이다.
집 입구에는 오토바이를 만들다가 만 것이 두 대나 서 있었다. 검둥이는 집에서 저렇게 오토바이를 만들어서 파는 모양이다. 폐차가 된 것을 여기저기 것을 뜯어다가 만들어서 파는 모양이다. 오늘 산 카브레이더 부품도 거기에 들어가는 것이지 싶다.
-먹고 사는 방법이 다양하군.
검둥이 보고 먼저 가 있겠다고 하고 오전에 출발했던 오토바이가게에 도착하니 검둥이가 뼈대만 앙상한 오토바이를 타고 금세 따라왔다.
-이젠 빨리 교환하자.
부품을 사러 왔다, 갔다하는 시간에 비하면 교환하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검둥이는 웃으면서 왜 그렇게 빨리 빨리, 독촉을 하며 외치느냐고 묻고는 오늘 중으로 다 마칠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놓고, 홍랑의 오토바이를 타고 붕, 쏜살같이 골목을 빠져 나갔다. 다시 테스트를 하는 모양새다. 홍랑은 오토바이가게 바로 옆에 붙은 노천카페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헌데, 검둥이가 좀체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중간에 빗방울이 좀 떨어지는가 싶더니 금세 소나기로 변하고 스콜로 변해 한 차례 뿌리고 지나갔다. 이 나라의 우기는 항상 이 모양이다. 검둥이는 오지 않는 것이다.
-쩌노 오토바이 배말래?
내 오토바이가 어디 갔느냐고 작은 오토바이를 주물럭거리는 다른 녀석에게 물었더니 홍랑의 오토바이는 무거워서 리프트가 있는 곳이 가서 고쳐올 것이고 했다.
아! 그랬구나.
작은 오토바이는 스탠드가 두 개인데 반해 홍랑의 오토바이는 하나뿐이다. 작은 오토바이는 옆으로 삐딱하게 세우는 스탠드와 오토바이 무게 중심이 잡히게 똑 바로 세우는 스탠드가 달려 있어 리프트가 필요 없는데 홍랑의 오토바이는 아니었다. 바로 세우는 스탠드가 달렸다한들 혼자 힘으로는 세우지 못하니 무용지물이다. 뒷바퀴를 완전히 분리해야 하니 들어 올리려면 리프트가 있어야 한다.
그럴 줄 알았으면 따라갈 텐데, 쩝.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한차례 스콜이 지나갔으니 선선했다.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냥 앉아서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터덜터덜 걸어서 오토바이 시장으로 갔다. 바로 그 골목 끝에 있는 시장인데 노천카페 앞이다.
시장이라고 중고 오토바이에 가격표를 붙이고 형성된 게 아니고 중개인들이 여럿이 앉아서 노닥거리는 곳이다. 그런데 거기서 거래되는 오토바이가 하루에 스무 대도 넘는다. 얼른 지나가다 보면 그냥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전부가 중개인이다.
오토바이를 왕창 사놓고 파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옛날 시골 우시장 같다. 팔 작자가 끌고 오면 중개하는 작자들이 가격을 매긴다. 그리고 살 사람에게 가격을 절충해 준다. 거래가 성사되면 양쪽에서 구전을 얻어먹는데 한 대 거래되면 고작 몇 천원이다. 적은 돈 같지만 하루에 몇 대씩 하니 적은 수입이 아니다. 홍랑은 거기에서 중개하는 놈들을 다 안다.
거기에서도 홍랑은 코리아 마이프렌드로 통하고, 마이프렌드가 무슨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지 다 안다. 홍랑의 오토바이도 거기에서 흥정을 했으니 당연한 이치. 거기에 있는 놈들은 오토바이 시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동네 군데군데 산재해 있다가 홍랑이 지나가면 마이프렌드라고 소리를 치고 손을 흔들어 주는 놈들이다.
그곳으로 가니 마이프렌드라는 녀석들이 오토바이는 어쩌고 걸어왔느냐고 물었다. 오늘 바고에 가서 부품을 사고 지금 수리 중이라고 하고는 그 자식들 틈에 끼어 앉아 또 커피를 마셨다.
금세 날이 어두워졌다. 날이 어두워지고도 한참을 더 노닥거리고 있었더니 검둥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홍랑은 찾아 올라왔다. 흰 오토바이인데 온통 시커먼 기름으로 떡칠을 해놓았다.
기어는 갈았는데 체인은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검둥이는 뒤에 타라고 했다. 타고 오토바이가게로 가면서 들으니 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체인을 왜 못 바꾸었어?
홍랑이 묻자. 검둥이는 새로 산 체인을 꺼냈다. 검둥이 손에는 온통 기름칠이고 새로 산 체인도 얼마나 주물럭거렸는지 새 체인과 헌 체인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새로 산 체인의 길이가 짧다는 것이었다.
검둥이가 새로 산 체인을 오토바이에 걸어서 비교를 해 보이는데 서너 칸이 짧은 것이었다. 그대로 쓰도 무방하단다. 원인은 체인이 아니라 구동기어에 있다고 했다. 검둥이가 새들백에서 헌 부품을 꺼내서 보여주는데 보니 구동기어가 완전히 닳아 체인과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홍랑이 타면서 소리가 나는 부분을 감지하고 있었던 자리가 바로 구동기어의 자리였다.
검둥이의 진단이 확실하다.
그러나 새로 산 체인이 아깝다.
물릴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홍랑은 아까우니 새로 산 체인에 헌 체인을 몇 칸 빼서 연결하여 새 체인을 쓰자고 했다. 검둥이는 그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자고 하면서 좋은 생각이라고 기름이 시커멓게 묻은 엄지를 세워 앞으로 쭉 내밀었다.
이 자식이 버릇인가?
말이 안 통하니 소통 방법 중에는 그게 최고지. 체인을 교환하는 작업은 리프트가 없어도 상관이 없다. 오토바이가게 앞에서 작업은 시작되었다. 날은 어두워졌고 옆에서 수리하던 다른 놈들은 마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홍랑은 그곳이 제자리인양 노천카페의 앉은뱅이 의자를 가게 앞에 끌어다 놓고 다시 앉았다.
구동기어가 얼마나 닳았기에 그렇게 요란한 소리가 나는 거였지?
홍랑은 가게 앞에 뒹구는 구동기어를 기름이 묻은 걸레에 싸서 들고 와 살폈다. 어지간히 닳았다.
홍랑은 노천카페 테이블에 놓인 휴지를 뜯어다가 기어에 묻은 기름을 닦아보았다. 기어 이빨이 닳아서 날카롭게 변했고, 닳다가, 닳다가 끝이 부러져 나간 기어이빨도 있었고 몸통의 파인부분도 돌아가는 체인에 닿아서 더 파였다. 그걸 닦아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다.
이 작은 기어가 저 큰 오토바이를 돌려서 어디를 얼마나 달렸을까? 제 몸이 이렇게 닳도록 얼마나 이끌고 다녔을까? 어디를 얼마나 달리다가 이 먼 이국까지 왔을까?
홍랑은 휴지를 더 찢어 와서 기어를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 유심히 살폈다.
체인이 닿은 부분은 반들반들 윤이 나며 옴폭하게 닳아 있었다.
이렇게 몸통이 닳도록 피동기어를 돌린 기어. 홍랑은 갑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구동기어였다.
여태껏 덩지가 큰 오토바이를 끌고 다닌 것이야.
나는 얼마나 닳고 닳았을까? 너무 닳아서 기어이빨이 부러진 곳은 없을까?
홍랑은 자신에게 묻고 금세 숙연해졌다.
서른 살 이전까지는 피동기어였다. 서른이 넘으면서 자기사업을 한다고 뛰어들어 여태까지 구동기어로 달렸으니 얼마나 닳았을까? 쉬지 않고 달렸다.
손에 쥐고 있는 구동기어는 그냥 고철로 처리한다고 고철더미에 던져 넣을 물건이 아니다. 이건 길이 간직해야하는 물건이다.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고 싶은 마음이 일었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물건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홍랑은 닳아버린 구동기어를 보고 자신을 처지를 떠올렸고 잠시 자기 연민에 사로잡혔다,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앞만 보고 달리면서 희열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다.
서른이 넘고부터는 순전히 홍랑 자신의 몸을 돌려, 자신의 힘과 판단으로 피동기어들을 돌려 어떤 대상이든 움직이게 했다. 한때 많을 때는 한국과 몽골에 직원들이 마흔 명이 넘은 적도 있었다. 그들은 덩지가 큰 피동기어였다. 그 피동기어를 돌리려고 얼마나 힘이 들었든가? 그 피동기어들의 딸린 식솔까지 합치면 도대체 몇 명을 끌고 다녀야 했는가? 한때는 구동기어가 힘겨웠던 것도 사실이다. 어깨가 무거웠다는 말이다.
질곡 없는 삶이 있으랴만, 홍랑의 인생 굴곡도 심했다. 구동기어가 이끄는 오토바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던 시기였던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다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만난다. 내리막이라고 구동기어가 쉬는 게 아니다. 속도를 조절하며 역으로 힘을 주어 돌아야 하는 물건이다. 어느 곳이나 구동기어는 쉬지 않고 돌아야 했다. 반들반들 윤기를 내다못해 제 몸의 속살까지 닳아 몸통이 옴폭하게 패이도록.
몽골로, 미얀마로,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사업을 설치고 다녔다. 아내를 비롯한 뭇사람들은 즐겁게 한 시대를 풍미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에 겨운 무엇을 돌렸던 건 사실이다.
정작 무엇을 돌렸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홍랑은 가게 주인아주머니께 걸레 새것을 얻어서 기어를 닦았다. 홍랑은 오토바이를 타면서 이 구동기어의 수고를 모르고 탔었다. 제 살을 깎아먹는 고통을 전혀 모르고 타고 다니며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피동기어는 기어가 엄청 크고 기어의 이빨수가 많다. 그래서 제 살을 깎아 먹도록 돌지 않는다. 결국 수가 많아 고통이 덜하다는 말이다. 피동기어는 늘 외친다. 정작 바퀴를 돌리는 건 우리가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바퀴를 돌리는 건 피동기어지만 피동기어에 동력을 전달하는 건 구동기어다.
비단, 오토바이에 국한 된 말이 아니다.
확대해석 하면 세상사가 그렇다.
피동기어는 바퀴를 돌린다는 이유로 가끔은 브레이크를 건다.
한국에서 날아오는 뉴스를 보니 휴가를 다녀와서 파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찬반투표를 한다는 노조가 세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또한 피동기어의 소요요, 반란이다.
이쯤에서 생각을 접자.
더 깊게 비유하고 분석했다가는 피동기어에게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홍랑은 자신이 몸통이 닳고 이빨이 부서지도록 달린 구동기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홍랑은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구동기어를 깨끗이 닦아서 휴지에 싸서 메고 다니던 손가방에 넣었다.
납작하게 생긴 아주 작은 기어였다.
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돌리는 원동력이 된 기어다. 보관하면서 가끔 꺼내보는 것도 괜찮겠다.
견디다 못해 자신의 몸통을 깎아먹는 소리를 내도록 돌리던 기어다.
홍랑은 기어를 챙겨 넣으며 기어보다도 자신에 대해 연민을 느꼈다.
-헬로!
체인을 교체하던 검둥이가 난색을 표하며 홍랑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 홍랑이 다가가서 보니 체인이 같은 것이 아니다. 헌 체인을 분해는 했는데 새것과 맞추려니 체인 마디마디에 꽂힌 핀의 굵기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체인은 그대로 쓰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괜히 뜯어서 일거리만 만든 셈이다. 다시 조립하는 검둥이에게 홍랑은 다정하게 말했다. 물론 한국어였다.
-나는 구동기어야!
검둥이는 무슨 말인지 몰라 홍랑을 올려다보았다.
-이 구동기어도 이빨과 몸통이 얼마나 닳았는지 보고 좀 고쳐줄 수 있어?
역시 한국말이었다. 알아들을 리가 만무다. 검둥이 녀석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기름 묻은 손으로 엄지를 세워 앞으로 쭉 내밀며 웃었다.
음! 그래야지. 좋은 버릇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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