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수행품 20장】 정신 끌리는 실상
송 도성이 신문을 애독하여 신문을 받으면 보던 사무라도 그치고 읽으며,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기사의 제목이라도 본 후에야 안심하고 사무에 착수하더니, 대종사 하루는 경계하시기를 [네가 소소한 신문 하나 보는 데에 그와 같이 정신을 빼앗기니 다른 일에도 혹 그러할까 근심되노라. 사람마다 각각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있는데 범부는 그 하고 싶은 일을 당하면 거기에 끌리어 온전하고 참된 정신을 잃어 버리고, 그 하기 싫은 일을 당하면 거기에 끌리어 인생의 본분을 잃어 버려서 정당한 공도(公道)를 밟지 못하고 번민과 고통을 스스로 취하나니, 이러한 사람은 결코 정신의 안정과 혜광(慧光)을 얻지 못하나니라. 내가 이러한 작은 일에 너를 경계하는 것은 너에게 정신이 끌리는 실상을 잡아 보이는 것이니, 너는 마땅히 그 하고 싶은 데에도 끌리지 말고, 하기 싫은 데에도 끌리지 말고, 항상 정당한 도리만 밟아 행하여 능히 천만 경계를 응용하는 사람은 될지언정 천만 경계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되지 말라. 그러하면, 영원히 너의 참되고 떳떳한 본성을 여의지 아니하리라.]
핵심주제
【류성태】 정신 끌리는 실상
【한종만】 천만 경계를 극복
【신도형】 정신 끌리는 실례를 지적해 주심
대의 강령
송도성이 신문을 애독한 후에야 안심하고 사무에 착수함에 대한 대종사의 경계 법문이다.
1) 하고 싶은 일과 싫은 일이 있는데, 범부는 하고 싶은 일에 끌리어 온전하고 참된 정신을 잃는다.
2)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도 끌리지 말아야 한다.
3) 하기 싫은 일에도 끌리지 말아야 한다.
용어 정의
범부(凡夫) 범인(凡人). 번뇌에 얽매어서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공도(公道) 공평하고 바른 도리. 떳떳하고 당연한 이치. 어디에도 기울거나 굽히지 않고 전체를 포함한다는 의미. 어디에도 기울고 굽히는 바 없는 전체를 포용하는 큰 도(道)를 말하는 것.
혜광(慧光) 지혜의 광명
송도성(宋道性) 1907~1946. 본명 도정(道正), 법호 주산(主山). 정산종사의 친동생, 대종사의 사위, 교단 창립에 공헌. 1922년(원기7) 출가, 「마음은 스승님께 드리고 몸은 세계에 바쳐서, 일원대도의 법륜을 크게 굴려 영겁토록 쉬지 않으리라(獻心靈父 許身斯界 常轉法輪 永轉不休)」라는 출가시를 소태산 대종사에게 바침. 교단 초기에 전음광·이공주 등과 함께 [월말통신(발행 제안, 주간)], [월보], [회보] 등의 편집·발행에 주역을 담당. 소태산 대종사의 법설을 많이 수필했고, [심금(心琴)], [진경(眞境)], [적멸의 궁전], [오! 사은이시여] 등 많은 시가와 논설 남김. 8·15 광복 직후 주도해서 발족시킨 「금강청년단」은 뒷날 원불교청년회의 모체가 되었고, 8·15 직후 거교적으로 전개했던 전재동포 구호사업에 앞장서 헌신(전쟁고아 보호시설 ‘보화원’ 설립)하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40세의 젊은 나이로 열반.
영원한 원불교 청년상, 도성(도의 성품을 알았다), 경성출장소 초대교무.
교의품 24, 수행품 20, 변의품 32, 성리품 30, 신성품 18, 부촉품 8.
주석 주해
【류성태】 주산종사가 신문을 보는 것에 대한 집착을 경계한 법어이다. 신문에 끌리는 집착의 정도를 모두에게 표본으로 삼아 경계한 것이다. 끌림 없이 일에 착수하는 자제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침 식후 커피를 마셔야만 일을 할 수 있다거나, 담배를 피우고 난 후에 시상(詩想)이 떠오른다는 것은 끌리는 집착의 정도를 말해준다. 집착이란 다른 것이 아니며, 하고 싶다는 것에 끌려 일손이 잘 잡히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신문을 본 후에 사무에 착수하는 주산종사의 모습은 대종사에 있어 집착의 실례로 비추어졌던 것이다.
【박길진】 공부하는 학생 때에는 신문이나 잡지 등을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것은 공부에 전념해야 할 때에는 원리원칙으로 공부해야지 매일 변하는 시사(時事)에 정신이 끌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 신문 보기를 경계하신 것은 그 신문에 끌려버려서는 안된다고 경계한 말씀이다. 끌려버리면 다른 일에 실수하기가 쉽다.
【한종만】 주산 선진이 아무리 급해도 신문을 먼저 보고 일에 착수하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의 공부하는 방향을 정해준 것이다. 이 일을 할 때에 집착하면 이 일에 끌린 것이다. 이 일에 끌려서 저 일을 못한 것이다.
【신도형】 정신 끌리는 실례를 지적해 주심(好惡에 끌리지 말라) ① 범부는 하고 싶은데 끌리어 온전하고 참된 정신을 잃고, 하기 싫은 일에 끌리어 인생의 본분을 놓아 버린다. ② 고로 우리는 好惡에 끌리지 말며, 천만경계를 응용하는 사람은 될지언정 경계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되지 말라. ③ 好惡에 끌리지 않으면 곧 불리자성(不離自性)이 되리라.
관련 법문
【대종경 수행품 제9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보통 사람들은 항상 조용히 앉아서 좌선하고 염불하고 경전이나 읽는 것만 공부로 알고 실지 생활에 단련하는 공부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하나니, 어찌 내정정(內定靜) 외정정(外定靜)의 큰 공부 법을 알았다 하리요. 무릇, 큰 공부는 먼저 자성(自性)의 원리를 연구하여 원래 착(着)이 없는 그 자리를 알고 실생활에 나아가서는 착이 없는 행(行)을 하는 것이니, 이 길을 잡은 사람은 가히 날을 기약하고 큰 실력을 얻으리라. 공부하는 사람이 처지 처지를 따라 이 일을 할 때 저 일에 끌리지 아니하고, 저 일을 할 때 이 일에 끌리지 아니하면 곧 이것이 일심 공부요, 이 일을 할 때 알음알이를 구하여 순서 있게 하고, 저 일을 할 때 알음알이를 구하여 순서 있게 하면 곧 이것이 연구 공부요, 이 일을 할 때 불의에 끌리는 바가 없고, 저 일을 할 때 불의에 끌리는 바가 없게 되면 곧 이것이 취사 공부며, 한가한 때에는 염불과 좌선으로 일심에 전공도 하고 경전 연습으로 연구에 전공도 하여, 일이 있는 때나 일이 없는 때를 오직 간단 없이 공부로 계속한다면 저절로 정신에는 수양력이 쌓이고 사리에는 연구력이 얻어지고 작업에는 취사력이 생겨나리니, (중략)
【대종경 인도품 35장】 하루는 여러 제자들이 신문을 보다가 시사(時事)에 대하여 가부 평론함이 분분하거늘,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어찌 남의 일에 대하여 함부로 말을 하는가. 참된 소견을 가진 사람은 남의 시비를 가벼이 말하지 아니하나니라. 신문을 본다 하여도 그 가운데에서 선악의 원인과 그 결과 여하를 자상히 살펴서 나의 앞 길에 거울을 삼는 것이 공부인의 떳떳한 행실이요, 참된 이익을 얻는 길이니, 이것이 곧 모든 법을 통해다가 한 마음을 밝히는 일이라, 이러한 정신으로 신문을 보는 사람은 신문이 곧 산 경전이 될 것이요, 혜복의 자료가 될 것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리어 날카로운 소견과 가벼운 입을 놀려 사람의 시비 평론하는 재주만 늘어서 죄의 구렁에 빠지기 쉽나니 그대들은 이에 크게 주의하라.]
위 내용은 【류성태(2008), 대종경 풀이 上, 236~238】, 【신도형(1974), 교전공부, 586】, 【원불교 대사전】, 【원불교 경전법문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